해상왕 장보고(張保皐)와 아중해(亞中海)공동체 및 베세토튜브

  1. 미래를 꿈꾼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2. 해신 장보고(張保皐) 의 해상왕국 평가
  3. 아중해공동체론의 함의와 대한민국책략
  4. 아중해 공동번영의 마중물인 베세토튜브

바다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을 인식하고 이를 잘 활용하는 자만이 진정한 21세기의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200 년 전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는 해양으로의 진출이 부국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바다를 통해 세계를 제패한 해양경영의 선지자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한국이 동아시아 허브국이 되기 위해서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중·일을 단일 경제공동체로 만들었고 해상무역항로 개척과 무역은 물론 불교, 도자기, 차 문화 전파 등 동서 문화교류에도 큰 업적을 남긴 진정한 세계인이었던 해상왕 장보고(張保皐)를 사표(師表)로 삼아야 한다.

장보고의 리더십과 글로벌 마인드는 오늘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국가경영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이 장보고를 통해 ‘대한민국책략’을 재정립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1. 미래를 꿈꾼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21세기는 해양의 시대, 동아시아의 시대라고 한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 동아시아의 경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에 적극 참여해야 할 때이다.

9세기 장보고(張保皐)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중·일을 단일 경제공동체로 만들었으며, 세계와 통하는 해상무역항로를 새롭게 개척하고 무역은 물론 불교, 도자기, 차 문화 전파 등 동서 문화교류에도 큰 업적을 남긴 진정한 세계인이 었다.

이러한 장보고(張保皐)의 해양경영 업적은 오늘날 급변하는 세계경제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준비하는데 중요한 사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의 발전 모델로 만드는 것은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동아시아, 그 한 가운데 우뚝 서는 것은 우리가 해상왕 장보고의 부활을 꿈꾸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장보고(張保皐)의 어린 시절과 입신

장보고(張保皐-한/중, 張寶高-일본)는 오늘날의 전남 완도 출생으로 790년경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무예가 뛰어났고 특히 활을 잘 다루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각각 궁복(弓福)과 궁파(弓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활을 잘 쏘는 사람 이라는 의미의 ‘활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신라사회의 혼란과 골품제도의 모순을 경험한 장보고는 20대 초반에 당으로 간다. 당시 신라사회는 통일 전 신라를 중심으로 신분이 서열화되어 백제계나 고구려계는 출세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당시 당나라는 기회의 땅이었다.

9세기 초 장보고는 10년 후배인 정년과 함께 당으로 건너가 무장(武將)으로 출세했다. 장보고가 중국으로 건너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805년쯤인 것으로 추정된다. 무술이 뛰어난 그는 강소성 서주(徐州)의 무령군(武寧軍) 절도사 이원의 밑으로 들어갔다.

당시 산동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평로치청 절도사 이정기의 난을 진압하는 데 종군했다. 장보고는 주로 기병으로 이루어진 무령군의 선봉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 마침내 신라인으로서는 오르기 어려운 지위에까지 올랐다. 즉1,000여 명의 군졸을 호령하는 군중소장(軍中少將)으로 임명된 것이다.

국제해상무역센터 청해진(淸海鎭)

9세기 초 해적들이 신라의 양민을 잡아다 중국에 노예로 파는 참상을 목격한 장보고는 이에 분노하여 신라로 귀국한다. 장보고가 흥덕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청해(완도)에 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막을 것을 건의하였다.

흥덕왕은 군사 1만을 주고 장보고(張保皐)를 청해진 대사로 임명하였고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지 1년만에 해적이 소통되었다. 당시 신라의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약탈과 인신매매를 하던 해적들의 실체는 평소에는 여느 무역상과 마찬가지로 무역에 종사하는 인물들이었다.

즉 장사가 잘 되면 무역업자이고 무역길이 막히면 해적이 됐던 반상반구(半商半寇)였다. 이들은 당과 신라 왕권이 약화된 틈을 이용해 오랫동안 국가 간의 교역을 방해하고 신라인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 넘기는 악행을 저질렀다.

동북아 바다에서 해적들이 깨끗이 사라진 것은 청해진이 설치되면서부터 였다. 양국 정부가 수십 년에 걸쳐 바로잡으려 했던 숙원사업을 청해진은 단숨에 해치웠던 것이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중·일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실시하였다.

동서 문화교류의 전령사

청해진은 군사와 무역체제를 갖춘 군·산·상 복합체(軍·産·商 複合體)로서 일본 하카다와 중국의 적산, 영파 등지에 지사를 갖춘 오늘날의 ‘종합무역상사’였으며, 동남아와 아라비아상인이 오가는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다.

흥덕왕은 장보고(張保皐)에게 ‘대사’라는 직함을 부여했는데 이 직함은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라 중앙정치체제에 존재하는 관등이나 관직이 아니었다. 대내적으로 본다면 장보고는 골품제에 입각한 신라 지배체제에 참여하기가 곤란한 신분이었다.

그래서 흥덕왕은 중앙의 관직들과 비교가 애매한 일종의 별정직으로서 대사라는 관직을 새로 제정한 것이다. 장보고는 오지나 다름없던 서남해안 구석의 완도가 남북 중국 항로와 대 일본 항로를 장악할 수 있는 천혜의 요충지임을 간파했다.

더욱이 청해진의 이웃 지역인 지금의 강진과 해남 일대가 도자기 생산지로 크게 번창한 곳이어서 중국, 일본과 도자기를 교역하는 기지로 활용될 수 있었다.

당시 조류와 해류, 바람을 이용하는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청해진은 진가를 발휘했다.

발달된 항해술과 조선술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여 이슬람 상인들의 주 이용 항로인 동남아, 인도항로와 동아시아 항로를 연결시킨다.

아랍으로부터 신라와 일본으로까지 연결되는 해상실크로드를 완성하였으며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교류에 이바지하였다.

장보고(張保皐)의 암살

장보고는 민애왕을 폐하고 왕족인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킨 사건을 계기로 장보고는 중앙 정계의 권력 다툼에 휘말려 들었다. 장보고의 정치개입과 결정적인 도움에 힘입어 왕위에 오른 신무왕은 장보고에게 감의군사(感義軍使)란 직책을 내리고 식읍 2,000호를 봉했다.

식읍 2,000호는 주로 청해진이 있던 완도를 중심으로 그 인근 지역을 포함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곧 이 지역에 대한 장보고의 실질적인 지배를 인정해준 것으로 해석된다. 장보고의 중앙 정계 진출은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듯했으나 새로이 즉위한 신무왕이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신무왕이 죽자 그의 아들 문성왕이 즉위했는데, 장보고에게 진해장군(鎭海將軍), 즉 ‘바다를 다스리는 장군’이라는 직책을 내렸다. 즉 문성왕은 장보고에게 진골귀족에게 해당하는 예우를 해준 것이다.

그러나 당시 신라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진골귀족들은 이미 장보고를 견제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납비(納妃) 문제가 대두되었다. 납비 문제란 장보고의 딸을 문성왕과 혼인시키는 문제였다. 그러나 장보고의 딸을 태자비로 맞이한다는 것은 당시 국법이나 다름없던 골품제 하에서는 극히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다.

장보고(張保皐)에 대한 진골귀족들의 반감은 이 문제를 계기로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청해진의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려던 장보고의 의도는 왕실과 귀족사회의 반발을 초래했다. 마침내 신라 조정은 그를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그의 부하였던 염장(閻長, ≠鹽醬)을 시켜 불시에 장보고를 암살했다.

신라 해상왕국의 몰락

장보고 사후 10년 내에 청해진은 해체되고 그의 해상왕국도 소멸되었다. 장보고가 살해된 직후에 청해진세력이 염장에게 저항하지 못했다는 것은, 청해진이 장보고 개인의 능력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장보고의 죽음 이후 신라의 국제교역은 거의 단절되고 말았다. 청해진이 폐쇄된 뒤에도 장보고 휘하에서 국제무역을 하던 재당 신라인 무역상들은 일본을 상대로 무역활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신라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동아시아 해상의 패권은 송나라 상인들과 아라비아인들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청해진 폐쇄로 큰 타격을 입은 신라의 대외무역은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면서 붕괴되고 말았다. 장보고의 죽음이 주는 의미 중의 하나는 신라사회가 차츰 붕괴되어가는 상황에서 장보고가 지방호족세력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장보고는 죽었지만 그 후 제 2의 장보고인 견훤 · 궁예 · 왕건이 등장하게 되어 폐쇄적이고 견고했던 신라사회를 흔들고 중세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을 이끌어 낸 인물이었다. 신라가 멸망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장보고와 같은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해양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장보고의 해상왕국은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졌으며, 이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해양 경영은 지속적으로 쇠퇴했다. 장보고 이후 후삼국으로 분열된 신라는 마침내 멸망하고 장보고의 후예인 왕건을 중심으로 한 해상세력에 의해 고려가 건국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일본은 장보고와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신흥 지방세력에 의해 장원제와 무사제가 형성되는 등 동북아시아는 고대사회에서 중세봉건사회로 전환되는 변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역사서의 평가

장보고(張保皐)는 한·중·일 3국의 정사(正史)에 모두 기록된 우리 역사상 유일한 인물이다. 이밖에도 미국의 동양사학자인 라이샤워(Reischauer) 교수는 장보고를 ‘해양상업제국의 위대한 무역왕’이라고 평가하였다.

한국 역사서-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김유신 열전에는 “비록 을지문덕의 지략과 장보고의 의용이 있어도, 중국의 서적이 아니었던들 그 위대함이 알려지지 않을 뻔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외에도 『동사강목(東史綱目)』과 『동국사략(東國史略)』 등 에서는 “소인배 무리가 없는 사실을 꾸며 임금과 신하 사이를 이간하고 왕이 이를 살피지 못하여 나라의 주석지신을 몰래 죽였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중국 역사서-

「당서(唐書)」와「신당서(新唐書)」에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년)의 「번천문집(樊川文集)」에 수록된 장보고의 전기를 그대로 옮겨 소개하고 있다.

무령군 군중소장으로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장보고와 그가 설치한 청해진을 상세히 언급하고 특히 “사심을 버리고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인물”로 그 위대성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역사서–

「일본후기(日本後記)」등에는 일본 정부가 장보고 선단과 독자적인 무역관계를 설정하고 신라와 당으로부터 선진문화와 물품의 공급을 장보고에게 의존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일본 천태종의 3대 좌주인 엔닌(圓仁, 慈覺大師)은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 장보고(張保皐)의 도움으로 당에서 무사히 구법(求法)활동을 마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깊은 감사와 흠모의 정을 표현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엔닌의 여행기(Ennin’s Travels in Tang China)-

미국의 동양학자로서 주일대사를 지낸 하버드대 라이샤워(Reischauer) 교수는 그의 저서 『Ennin’s Travels in Tang China』에서 장보고(張保皐)를 ‘해상 상업제국의 무역왕’이라 칭송한 바 있다.

 

  1. 해신 장보고(張保皐)의 해상왕국 평가

주인공 장보고(張保皐) 역에 최수종, 그 라이벌 염문 역으로 송일국, 그 외 주요 인물로 수애, 채시라가 등장했던 드라마 해신(海神)은 KBS2의 사극으로 최인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총 51부작으로 2004년 방영되었다.

평균시청률은 28.5% 내외의 인기 작품으로 해상왕 장보고(張保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드라마였다. 역사시대 자체를 중시하는 ‘정통 사극’에서 탈피하여 독립된 개체로서 인물 그 자체의 소소한 부분까지 그려내는 소위 ‘트렌디 사극’의 시초로 평가받았다.

바다를 번영의 터전으로 만든 선지자

장보고(張保皐)는 바다개척을 통해 해외로 나아가 해운과 무역의 영광을 창조해낸 해양경영의 영웅으로서 바다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도 일찍 깨달았으며, 우리민족의 미래가 바다에 있다는 것을 투시한 선지자이다.

그는 바다를 번영의 터전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해외진출을 통한 무역이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지름길임을 인식하고 청해진을 중심으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교역망을 구축, 무역은 물론 문화와 정치,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업적을 남긴 진정한 해양인이자 세계인이다.

장보고(張保皐)의 해상지배는 동북아 제국의 중앙집권적 질서가 약화되고 해상질서가 혼란에 빠진 시대적 환경 속에서 성립되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과 광범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청해진이라는 복합적·자립적인 조직을 구축했다.

더욱이 대담하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함으로써 당과 일본을 교역망에 포섭하고 재외 신라인을 활용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당시의 시대 환경은 중앙 권력의 약화, 교역수요의 증대, 다수의 해외 거주 신라인, 해적의 창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요인들은 한결같이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지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상왕국의 시대상황

8세기 중반 이후 신라, 당, 일본 등 동북아 3국에서는 공히 중앙집권 체제가 약화되기 시작했는데 이에따라 관(官)·공(公) 무역도 점차 퇴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9세기에 들어서면서 중앙집권세력의 약화가 두드러지고 지방 호족들의 할거가 시작되었다.

이들 새로운 정치세력으로는 토착 세력층인 내륙지역의 촌주들과 함께 해상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한 해상세력들을 들 수 있다. 이같은 사정은 당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되자 오히려 대중들의 해상진출과 교역활동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는 것이다.

각국의 귀족층을 중심으로 유효수요가 증가하자 이를 노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상의 교역이 활발해지자 이와 더불어 여러 가지 문제점도 함께 드러나게 되었는데, 가장 심각한 것은 해적의 창궐이었다.

각국의 공권력이 제 역할을 못하게 되자, 황해 해상을 중심으로 한 해적의 노략질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해적행위의 소탕과 인신매매의 근절이라는 시대적 여망은 점차 간절해지고 있었다. 또한 주요 환경으로서 재외 신라인 네트워크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시 당, 일본 등지에는 다수의 신라인들이 생활 터전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같은 조건들, 즉 중앙권력의 약화와 민간 교역의 활성화, 해적의 창궐, 광범한 영역에 퍼져 있던 신라인 거점 등은 결과적으로 장보고라는 희대의 해상왕이 탄생하기에 적절한 토양이 되었다.

장보고(張保皐)는 전략가였다. 그의 모든 활동은 치밀한 전략적 사고에서 출발했다. 당시 당나라는 세계의 중심 국가였고, 장보고는 이곳에서 한 차원 높은 안목으로 세계 정세를 판단할 수 있었다. 당시의 국제무역은 소위 ‘조공책봉(朝貢冊封) 관계’라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공무역은 동아시아에서 국가간 교역의 가장 초기적인 형태이다. 장보고는 종래 유지되어 온 엄격한 중앙집권질서가 와해되고 국가 간 긴장이 완화되면서 민간의 자발적인 교역이 증대할 것임을 간파했다.

장보고의 전략적 스케일은 매우 웅대했다. 그는 중국의 양주에서 일본의 하카다까지 섬과 대륙으로 둘러싸인 동북아를 ‘하나의 세계’로 인식했다. 장보고는 신라, 당, 일본에 흩어져 있던 재외 신라인들을 하나의 네트워크 아래 결집했다.

또한 장보고는 인재를 거느릴 줄 아는 탁월한 리더였다. 민군(民軍) 1만여 명과 그 가족들을 거느렸던 해상왕국이 질서를 잃지 않고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리더십이 필수적이었다.

그는 다양한 인력과 기능이 복합된 청해진을 중심으로 광활한 활동 영역을 일사불란하게 경영했다. 그는 국가별로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할 줄 알았으며, 다양한 인재를 거느릴 수 있는 도량을 지니고 있었다.

청해진(淸海鎭)의 독특한 위상

청해진은 신라 영토 내에 있었지만 독자적인 기구로서 경제는 물론 군사적인 기능까지도 자체적으로 보유한 독특한 조직이었다. 청해진의 설치가 장보고의 주도 하에 전개되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다른 축은 흥덕왕을 비롯한 신라 조정이었다.

신라 조정 역시 장보고가 등장하기 이전부터 신라의 방위체제를 재편하고, 해적을 소탕하기 위한 해상방위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강한 군사력은 청해진이 활동을 전개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경쟁우위 요인이었다. 장보고는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해상교역을 주도하게 된다.

장보고(張保皐) 휘하의 군사 및 무역 선단이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라의 발달된 조선술과 항해술 때문이었다. 당시 신라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동북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신라인 및 재외 신라인들은 남북종단 연근해 항로, 복잡한 서해 연안의 물길, 그리고 대한해협의 물길을 잘 알고 있었다.

장보고는 이러한 범신라인들을 조직화함으로써 항선(航線)의 관리를 일원화했으며 뛰어난 선박·항해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항로를 개척했다. 장보고의 무역 모델은 단지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 간 3국 무역에 그치지 않았다.

청해진은 신라·당·일본 항로의 중심일 뿐 아니라, 페르시아·인도·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남양 항로와 동북아 항로의 연결고리였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나·당·일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을 포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청해진은 당과 일본에 거주하는 재외 신라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선단을 조직화하여 국제 물류에 적극 활용했다. 장보고는 이들의 역량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되었다.

청해진의 무역 모델

청해진은 무역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청해진은 단순함 무역 업무뿐만 아니라 정부의 무역 대행, 3국 정부 공식사절 안내, 여객 운송, 선박 건조와 수리, 한·중·일 통역 및 선원 제공, 종교·문화 지원 등의 기능을 보유했다.

민군 1만여 명의 인원이 장기간 자립적인 삶의 터전을 구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보듯, 당시 청해진은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를 수행하고 있었다. 청해진은 군(軍), 산(産), 상(商)을 망라한 복합 조직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더욱 독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장보고(張保皐)가 구현한 해상지배 역량의 원천은 동북아 해상과 연안을 거미줄처럼 엮은 네트워크였다. 장보고는 중국의 대운하와 연안, 일본의 하카다를 잇는 광대한 지역에 펼쳐진 신라인의 삶의 터전들을 하나의 목적을 향해 상호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한편 장보고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국제인으로서 동북아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 들면서 사업을 전개했다. 현지 거점을 설치하여 구심점의 다극화를 꾀함으로써 글로벌 표준화와 함께 현지화의 조화를 추구했다.

동아시아를 하나의 세계로 바라본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의 주요항구를 무역과 물류 중심의 네트워크로 연결시키고 이를 동남아 인도항로와 연결함으로써 동서 무역망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하였다.

바다를 경영한 세계인

장보고(張保皐)는 바다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여 신라, 당, 일본 3국간의 교역은 물론 멀리 이슬람세계와도 교역한 세계무역의 선지자이다. 장보고가 활동하던 시기는 나·당·일의 중앙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해상질서가 무너지는 격변의 시기이며, 조공무역에서 사무역으로 바뀌는 대전환의 시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국제질서 태동에 일찍 눈을 뜬 장보고는 강력한 해상관리자가 되어 동아시아의 신흥무역세력으로 성장한다. 그가 주도한 무역은 금융, 선박 대여 등 관련 서비스를 병행함은 물론 대금을 먼저 받고 물품을 공급하는 신용거래를 하는 등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민간무역을 꽃피웠다.

9세기 청자는 오늘날의 반도체에 버금가는 최첨단 제품이자 고부가가치 명품으로 중국에서만 생산되었다. 장보고는 청자의 국산화를 위해 도공들을 국내에 데려와 직접 생산하여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했고 전수된 기술은 우리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고려청자의 모태가 되었다.

장보고 상단은 단순한 무역뿐만 아니라 정부무역 대행, 운송, 선박건조 및 수리, 금융 및 정보제공 등 각종 서비스산업도 병행하고 당과 일본의 주요항구에 지사를 설치 운영함으로써 오늘날 종합무역상사이자 다국적 기업마인드로 활동하였다.

장보고는 당과 일본에 흩어져 거주하던 백제, 고구려 유망민과 신라인을 자신이 구축한 무역네트워크에 적극 편입시켜 국내외를 연결하는 한민족 경제공동체를 이끌었다. 이는 포용력, 진취성과 개방성으로 대표되는 장보고의 글로벌 리더십으로 함께 더불어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공유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1. 아중해(亞中海)공동체론의 함의와 ‘대한민국책략’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경우 영토 확장을 통해 대국이 되기는 어렵다. 이것은 세계를 지배했던 다른 많은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토를 넓히기보다는 바다를 지배함으로써 자국의 역량을 신장시켰다.

우리는 장보고(張保皐)라는 인물을 통해서 아중해(亞中海, 동북아 내해)를 완벽하게 지배해 본 경험이 있다. 바로. 그는 신분과 국경의 벽을 넘어 당대 최고의 자원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활용했다. 비록 미천한 신분이었지만 그 무엇도 그의 상상력을 가로 막지는 못했다.

그는 시대를 가로 지른 무인 이었고, 정치가였으며, 기업가였다. 그의 신사적이고 공정한 지배는 어느 부분에서도 흠집을 남기지 않았다. 장보고의 행적은 오늘날 재발견되고 재해석되어야 할 기념비이다.

흔히 21세기는 태평양 시대라고 한다. 우리에게 진심으로 태평양 시대를 대비할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먼저 장보고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결집력으로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있던 신라인을 하나로 모으고 청해진을 중심으로 거대한 해상 왕국을 만들었다.

그의 글로벌 마인드는 국제화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삶에는 강대국인 중국, 일본과 어깨동무할 수 있는 비결이 숨겨져 있다. 이제 우리는 신라시대 그가 가졌던 꿈과 성공비결을 통해 우리가 처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한 수 배워야 될 것이다.

장보고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국가 간의 모든 교류는 항상 정치적·군사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장보고는 민간적·경제적 차원의 가능성을 미리 내다보았다. 그는 청해진(淸海鎭)이라는 복합적 성격의 군진을 구축하여 동북아 해상에 평화를 가져왔고 민간 무역의 신(新)질서를 창출했다.

그를 통해 한·중·일은 미증유의 자유무역을 시작했다. 장보고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바다와 같은 포용력으로 동북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던 신라인들의 역량을 결집했다. 그는 강력한 군대를 육성했고, 도자기 등의 신상품을 발굴했다.

첨단 조선술과 항해술을 확보하였으며 통역관과 기술인력들을 수하에 모았으며, 심지어 이념적 구심점을 제공하기 위해 해외와 국내에 웅장한 사원을 건립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그는 동북아 바다에 큰 흔적을 남겼다.

한반도의 해양여건과 지정학적 위치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반도국가로서 좋은 항구, 아름다운 해양경관, 생산성 높은 어장 등 좋은 여건의 바다를 보유하고 있다. 장보고는 이 같은 우리의 천혜 조건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당대 최고의 해양강국을 실현할 수 있었다.

21세기는 항만, 도로, SOC를 기반으로 하는 물류산업, 자연 조건을 활용하는 관광산업, 잘 짜인 기업여건 등이 모두 국가의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시대이기에 장보고의 혜안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지정학적 여건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자체 생산되는 자원은 빈약하나 세계 각지로부터 자원을 배로 가져와 가공·수출하는 세계적인 공업국이며 기술 산업국이다. 현재 경제적 측면만 보아도 우리의 수출입 물동량의 99% 이상이 바다를 통해 운송되고 있으며 석유, 석탄 등 에너지와 식량 등 주요 전략자원의 대부분이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다.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반도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 세계 제3의 경제와 기술 부국인 일본, 21세기 에너지와 자원 강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러시아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치는 연변지역(rimland)로서 대륙의 장점과 해양의 이점을 한꺼번에 살릴 수 있는 동아시아의 경제적 요충지이며 전략적 관문이다.

부끄러운 아시아패러독스

한·일, 중·일 관계는 역사인식과 숙적관계로 많은 갈등이 있으나 이러한 갈등 상황은 오히려 동아시아 평화협력구상과 같은 역내 신뢰구축을 위한 3국간 노력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동아시아 지역은 다른 그 어떤 지역보다도 상호의존이 빠르게 심화되고 있어 경성 및 연성 안보 분야에서 협력 수요가 많다.

연성안보 의제는 실제 협력의 효과가 커서 역내국가들의 참여를 보다 쉽게 유도할 수 있으며 연성안보 이슈에서의 협력은 궁극적으로 갈등을 완화하고 경성안보 이슈의 핵심 관건인 상호 신뢰 회복에도 기여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진행 과정을 보더라도 로마제국 이후 이 천년 동안 민족, 지역, 국가간 끝없는 전쟁과 1,2차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석탄과 철강 등 경제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점차적으로 이슈를 확대하여 가장 민감한 사안인 군비 축소에 대한 논의에까지 이르렀다.

정치적 긴장과 군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였으며 역내 국가들이 공동으로 노력한 결과로 유럽의 냉전종식과 평화구축에 기여한 헬싱키 프로세스 역시 적대감과 불신이 팽배했던 냉전기에 출범하여 유럽연합(EU)을 결성한 점은 동북아에도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 내 각국의 정치·경제·문화적 이질감과 역사적 반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다자안보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며 동아시아공동체 협력 구상은 민감한 이슈에 대한 논의는 가능한 한 후 순위로 미루고 공통 관심분야의 협력에 대한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형성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지역내 대화와 협력의 틀을 정착시키기 위해 상호신뢰의 기반을 마련하여 동아시아 평화협력 틀에 적합한 분야를 발굴하고 상호 보완관계를 통하여 한·일·중 3국 간의 협력이 3국 간 평화와 안정, 나아가 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협력 프로젝트가 요구된다.

현재 한중일 3국의 연간 상호 방문객은 약 2000만 명(2014년 기준)으로 2020년 3000만,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관계 및 관광객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 할 전망이며, 600개 이상의 도시가 자매결연을 맺는 등 만약 경제적으로 더 저렴하고 항공편 보다 소요 시간이 대폭 단축 되는 신교통 수단이 등장할 경우 한중일 3국의 방문객은 폭증할 것이다.

편협한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 自民族中心主義)와 자국 이기주의에 기반한 3국간의 정치 외교적인 갈등인 아시아 패러독스는 과거 19세기 서세동점의 시기 서방국가 들의 유산으로 역내 국가간 개방과 협력이 필요한 글로벌 시대는 단연코 지양되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축이 아시아로 회기한 21세기에도 전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한 서구 국가들이 ‘글로벌 거버넌스’를 장악하여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세계무대에서 아시아 국들은 경제력이나 인구 및 문화적 측면에서 향유하여야 할 본연의 몫을 행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노정되고 있다. 

동아시아 허브국을 향해

21세기에 한국 경제가 가진 큰 비전 중의 하나는 한국이 동아시아의 허브국이 되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비약적 성장, 남북한 긴장의 완화 등은 허브국의 비전을 더욱 매력 있고 현실성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은 가까운 러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가 이 지역으로 몰려든다는 뜻이며, 남북의 긴장이 완화된다는 것은 한국이 명실공히 중·러·일·미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된다는 뜻이다. 한국은 인적 자원이 우수하고, 중국 등으로의 진출이 쉬운 지리적 이점이 있을 뿐 아니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허브국으로서의 이점이 크다.

남·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국을 연계하는 개방형 국토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공항, 항만 등 SOC를 확충함으로써 중국, 일본,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려는 해외 기업을 유치해야 하며, 중국무역 및 물류 거점으로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경제특구를 활용해야 한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물류산업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 물류 중심지가 된다는 것은 비즈니스 중심지, 관광 중심지, 금융 중심지로 발전할 가능성을 함축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한국의 경제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경제외교력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아울러 동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하는 경제블록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국력을 집중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중·일이 주축이 되고 러시아, 몽골이 참여한 동아시아 경제블록이 탄생한다면 이는 북미와 EU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 경제권이 될 수 있다.

한국이 동아시아 허브국이 되기 위해서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황해 및 동해의 활용을 극대화해야 한다. 동아시아 영해와 관련해서는 복잡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바다 국경선이 가장 많이 중첩되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한국의 주도적 참여가 관건이다.

바다문제의 해결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시대를 열어갈 중대한 관건이다. 전임 주한 EU대사인 프랑크 헤스케도 “한·중·일 3국이 경제 공동체를 추구하려면 ‘바다’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중해(亞中海)공동체대한민국책략이다!

한중일 삼국은 이웃사촌이다. 한국과 중국은 좁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마주보며 한반도와 중국대륙이 직접 연접하고 서해(황해)의 일의대수(一衣帶水)로, 한국과 일본은 동해(東海)의 일의대수(一衣帶水)로, 중국과 일본 역시 동중국해(東中國海)의 일의대수(一衣帶水)로 누 천년을 함께 하였고 우리의 후손들도 그리할 것이다.

동해, 일본해. 남해, 동중국해, 동지나해, 황해, 서해 등 한반도 주변 바다의 명칭은 그 자체로 분쟁 요소가 되고 있다. 반동적인 일부 극우 수구세력들이 취약한 국내 지지기반을 만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이슈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본말전도(本末顚倒)되고 주객전도(主客顚倒)로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든다”는 왝더독(wag the dog)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수구 반동적인 민족주의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지명과 명칭부터 중립적인 이름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베세토튜브연구회”는 한반도 주변의 바다를 모두 아중해(亞中海)로 통칭함으로써 국가간 갈등요소를 완화시키고자 할 따름이다. 언어는 ‘정치’가 아니라 삶과 배움의 도구이다. 논란이 되는 용어는 다듬어서 빠진 데 없이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아시아공동체론은 아직까지 공동체 형성의 현실적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실제로 실현된 경험은 당연히 없으며, 초보적 수준의 실험마저도 무르익지 못하는 말의 성찬(盛饌)으로 일부 정치인과 먹물 지식인 들의 클리셰(cliché)일 뿐이다.

 

  1. 아중해(亞中海) 공동번영의 ‘마중물’인 베세토튜브

석유 고갈은 불가피하게 에너지 수급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 전반의 구조개혁을 필요로 한다. 더 본질적으로는 인간 중심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인간과 자연·기술과 환경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문명(生态文明)’으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22세기 생태문명 시대의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은 지구자원을 약탈하여 소비하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산업화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이를 추동하는 정치 경제적 체제에서 벗어나는 전환적 발전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탈 산업화시대로 생태문명이 꽃 필 21~22세기는 군사력과 기축통화 발권력으로 유지되는 패권국은 과거 로마제국과 같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예의, 공손함, 성실성, 공동체에 대한 헌신,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로 근대 산업문명의 폐해를 치유하는 모범적인 ‘생태패권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산업혁명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근대 육상, 해상, 항공 교통시스템은 모두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어 다량의 온실 가스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석유고갈에 따라 지속 가능하지 않는 교통 시스템이다.

탈산업화시대(Post-industrial society)와 생태문명 시대를 대비하는 새로운 운송체제의 개발과 구축은 석유로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준비하여야 하는 시대적 과업으로 새로이 등장할 교통수단은 반드시 석유고갈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교통모드일 수 밖에 없다.

석유정점을 맞이하는 21세기 한정된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낭비해서는 안된다. 22세기 탈 석유사회시대에는 항공 교통모드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관도(管道, Tubeway)모드의 교통수단이 최상위 교통계층(transport hierarchy)의 지속가능 교통 시스템(Sustainable transport system)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베세토튜브(besetoTube)는 중국, 한국, 일본의 수도인 베이징(北京, Beijing)↔서울(首尔, Seoul) ↔도쿄(东京, Tokyo) 간을 진공자기부상 궤도를 육상과 해상에 건설하여 극초고속 튜브셔틀을 운행함으로써 21세기 동북아 韓·中·日국민의 친선과 우의를 증진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이다.

서울↔베이징(도쿄)간 약 30~1시간대 주파와 베이징↔도쿄간 약 1~2시간대 주파를 목표로 100년 대계의 관점에서 22세기 이전인 2099년 완성을 목표로 베이징-서울-도쿄를 육상과 해상을 경유하는 최단 구간(약 2000km)의 진공 튜브 방식으로 건설하고, 삼상궤도의 자기부상 튜브셔틀을 투입하여 평균 시속 1,000~2,000 km로 주파할 계획이다.

베세토튜브(한중일+),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 대서양 등으로 연장될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는 5대양 6대주를 연결하는 지구공학적 차원의 사상 최대규모 프로젝트이다.

베세토튜브와 글로벌튜브는 석유가 점점 고갈되더라도 그 충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석유로 좀 더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에서 시작해야 탈석유 시대와 생태문명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후손들이 완성할 수 있는 과업으로 지구와 문명, 사회,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생태문명의 마중물” 프로젝트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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