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동맹 vs 베세토동맹 그리고 베세토튜브

  1. 유럽연합(EU)의 원류인 한자동맹
  2.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폐해
  3. 한자동맹(die Hanse)에서 얻는 교훈
  4. 베이징, 서울, 도쿄의 도시 경쟁력
  5.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결성을 향하여…

  1. 유럽연합(EU)의 원류인 한자동맹

‘한자동맹(≠漢字同盟, 汉撒同盟, ハンザ同盟, die Hanse, Hanseatic League)’은 13~17세기에 독일 북쪽과 발트해(Baltic sea) 연안에 있는 여러 도시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연맹으로 주로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위와 상권 확장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전성기에는 잉글랜드 런던 등 거의 100여 도시에 상관(商館)을 갖는 콘토르(kontor)를 독점적으로 운영하여 한때 역내 국가들과 경쟁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한자동맹은 독일과 영국, 러시아, 노르딕 국가들, 벨기에 그리고 네덜란드의 주요 경제권을 아우르는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나 민족국가의 대두와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대서양 항로 등 새로운 무역로가 열리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오늘날 세계 최대의 단일 경제권으로 자리매김한 유럽연합(EU)도 그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13세기 세계 최초의 역내 자유무역협정인 한자동맹과 만나게 된다.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였던 북유럽 발트해 인근 도시, 탈린과 리가는 ‘유럽의 번영은 국가간, 도시들간의 자유로운 연합과 무역에서 비롯됐다’는 걸 웅변이라도 하듯 수많은 번영의 흔적들을 품고 있었다.

한자동맹은 전쟁과 약탈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중세의 혼란기 속에서도 400여 년 동안 지속하며 유럽의 해상무역을 꽃피웠다. 16개국 187개 도시에서 번성했던 한자동맹으로 인한 부의 축적은 서구 문명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한자동맹은 1200년 독일의 항구도시 뤼벡에서 발족해 서쪽으로는 런던, 동쪽으로는 단치히(현재의 폴란드 그단스크)와 노브고로드(현재의 러시아 북부 지방)까지 아우르는 역내 자유무역 벨트를 형성했다. 한자동맹의 설립 취지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당시 맹위를 떨치던 해적과 강도들로부터 상인들을 보호하고 안전한 무역로를 확보하는 것, 둘째는 회원 도시들이 서로 믿고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한자동맹의 흥망

1370년 5월 24일 독일 슈트랄준트. 10여 년 전쟁 끝에 평화조약 하나가 맺어졌다. 패배자인 덴마크가 승자에게 안전 항행을 보장하며 무역과 어획권 등 특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요 요새를 넘겨주고 15년 동안 배상금 지불도 약속했다. 덴마크의 왕위 계승에 승자가 개입할 수 있는 길도 터줬다.

발트해의 떠오르던 강자인 덴마크를 물리친 승자는 상인들이었다. 국가나 왕, 제후가 아닌 상인. 중개 무역과 어업을 영위하던 상인 집단,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이었다. 한자동맹이 어떻게 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불평등조약까지 강요했을까.

한자동맹은 독일을 중심으로 스웨덴과 덴마크, 지금의 러시아 지역에 퍼져 있던 상업도시들의 연합체로 적을 때는 55개, 많을 때는 83개 대도시가 연합하며 무역과 관련한 각종 이권을 따냈다. 한자동맹 구성원들은 스스로 ‘독일 로마제국의 조합 상인’이라고 여겼다.

유럽 유일의 황제 국가였으나 중앙의 통제력은 물론 제후국과 도시 국가 간 정치적 결속이 강하지 않은 신성로마제국이었으나 도시끼리의 상업적 네트워크는 점차 강해졌다. 한자동맹의 소속 도시들은 외국의 거점 도시까지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세력을 키웠다. 독일기사단까지 한자동맹에 들어왔다.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 억눌러도 끝까지 저항하며 싸웠으며 덴마크와 상권을 둘러싼 이해 다툼도 연혁을 따지면 150여 년 전인 122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제가 급성장한 덕분에 북독일 도시들은 덴마크와 전쟁에서 두 차례 패배했지만 끝내 승리하였다.

농업 발달과 인구 증가, 아시아와의 중계 무역으로 부를 늘려가던 북부 독일 상업도시들의 주력 사업은 청어잡이. 배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바다를 메웠다는 청어를 잡고 가공하며 유통하는 모든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유럽 전체가 가톨릭 아니면 그리스 정교를 믿던 시절, 육식이 금지된 사순절 금식 기간과 육류 공급이 어려운 겨울철의 대체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의 근거지인 도시를 방어하는 수비대를 비롯한 군대의 비상식량으로도 청어가 필요했다. 청어잡이와 염장(鹽藏) 가공, 무역은 전후방 사업도 키웠다.

어선과 무역선을 건조하는 조선업과 소금 생산업, 운반 상자를 만드는 목재산업까지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한자동맹의 상인들은 청어를 판 대금으로 영국산 양모와 플랑드르의 모직 제품, 스웨덴과 러시아 지역의 목재, 함부르크의 맥주를 사서 다른 지역에 팔았으며 당시 강력한 국가였던 덴마크와 전쟁을 벌여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막강한 재력이었다.

슈트랄준트 평화조약은 부유한 상인들의 연합 정도로만 인식되던 한자동맹이 정치적으로도 강력한 세력이라는 사실을 유럽 각국에 인식시켰다. 무역 의존도가 높지 않았던 프랑스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들의 한자동맹과 무역은 더욱 늘어났다.

한자동맹은 영국과 벨기에, 스웨덴, 러시아 지역 등에 상관을 설치하고 배타적인 특권을 누렸다. 슈트랄준트 조약 체결 100년 뒤인 1470년에는 런던 주재 한자 상관(스틸 야드, Stellyard) 특권 취소 여부를 둘러싸고 영국과 전쟁에 들어갔다. 한자동맹은 약 4년 동안 간헐적으로 진행된 영국과 전쟁에서도 이겨 각종 특권을 지켰다.

이 시기가 한자동맹의 최전성기로 정치적으로 위세를 떨쳤으나 오히려 위기가 찾아왔다.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했다. 먼저 네덜란드와 영국의 모험 상인들이 한자동맹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왔다.

모직 제품을 제조하거나 양모를 생산하는 산업국가였던 네덜란드와 영국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새로운 형태의 선박을 싸게 건조하며 한자동맹의 상권을 파고들었다.

한자동맹도 초심을 잃었고 누구와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점점 고압적으로 변해갔다.

자유무역을 선호하던 한자동맹의 주요 도시국가들은 우위를 확인한 후 보호무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1434년부터는 외국인 선주에게 각종 장벽을 쌓았다. 새로 건조된 배의 판매는 물론 빌리는 용선(傭船)을 금지하고 모든 한자 상인의 외국인 소유선에 대한 상품 적재도 막았다.

생산 기반이 없는 중개무역상 집단인 한자 상인들의 배타적 해운 정책에 신흥 네덜란드나 영국도 보복에 나서며 자국 상선대를 꾸렸다. 결국 한자동맹은 제 발을 찍은 꼴이 되고 말았다. 보다 결정적으로 두 가지 요인이 한자동맹의 앞길을 막았다.

먼저 종교전쟁으로 신교와 구교로 나뉘어 독일 전역을 피로 물들였던 30년 전쟁이 쇠퇴를 앞당겼다. 종교 이데올로기에 경제가 망가진 셈이다. 풍요의 원천이던 어족 자원이던 ‘왕 청어’의 산란지가 14세기 말부터 갑작스레 발트해에서 북해로 바뀌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도 치명적이 었다.

소국이었던 네덜란드가 거대 제국 스페인과 80년 전쟁 끝에 독립을 쟁취한 원동력도 청어잡이를 비롯한 무역의 힘에서 나왔다. 더욱이 네덜란드에서는 각종 혁신이 잇따랐다. 어부 ‘빌렘 벤켈소어’가 개발한 청어 처리법과 통절임법은 청어 보관기간을 크게 늘리며 한자동맹에 대한 우위를 다졌다.

주식회사와 복식부기 등으로 해외시장 개척 자금도 싸게 조달할 수 있어 남아프리카, 북미대륙, 오세아니아 등 방대한 식민지 건설과 세계 제1의 무역국으로 발돋움하였고 일본의 개화기 난학(蘭學)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결국 한자동맹은 네덜란드와 영국에 밀리며 17세기 후반 이후 급속하게 자취를 감췄다. 유럽을 양분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처럼 독일 한자동맹의 핵심 도시들도 19세기 중후반에는 ‘국민국가’에 묻혔다.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산업혁명 이전까지 북유럽 최대 호황을 이끌었다는 한자동맹이 남긴 흔적은 화려한 건축물과 함께 문화와 제도적 분야에도 적지 않다.

자본가를 뜻하는 ‘부르주아(bourgeois)’ 개념이 한자동맹에서 처음 나왔고 춥고 음습한데다 사방이 적에게 둘러싸인 북독일의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사업을 시작해 모은 재산을 지키려 상인들은 성(城)을 쌓았다. 독일어로 성벽을 뜻하는 ‘부르크’는 이런 유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세에 ‘성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근대 이후 ‘자본가’가 됐다.

한자동맹이 낳은 흔적이 아직도 살아있는 부문도 있다. 자국에서 건조된 배에, 자국산 물품을 싣고, 자국인 선원이 운항하는 선박에게만 연안무역권을 부여한 미국 존스법(Jones Act)의 원조가 한자동맹의 배타적 해운 규칙이다. 산업혁명 이래 발전을 이끌었던 나라들의 발전 과정에도 한자동맹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중개 무역에만 의존하다 사라진 한자동맹과 이렇다 할 국내 제조업 기반이 없었던 네덜란드가 무역으로 일군 반짝 호황 이래 각국은 제조업과 해운업, 무역의 삼각체계를 중시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영국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다. 일본이 그랬고 중국도 따라 하고 있다.

한국만 반대다. 최근 제조업의 경쟁력 악화와 무역의 축인 조선산업이 흔들리고 해운업의 한 어깨가 무너졌다. 한자동맹처럼 시대의 흐름을 못 읽은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된 것인지는 후일 밝혀질 것이다. 

한자동맹 번영의 원동력은 자유와 신뢰

한자동맹의 회원 도시 간에는 무역 관세가 면제되었으나 규정을 어기면 동맹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불공정거래의 관행도 줄었다. 한자동맹 이전까지는 믿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에 무역의 범위가 제한되었다.

그러나

한자동맹을 중심으로 신뢰가 구축되자 상인들의 활동 반경도 크게 넓어졌다. 수많은 국가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전쟁과 평화를 되풀이했던 유럽에서 한자동맹이 흔들림 없이 400년이나 지속된 원동력은 자유와 신뢰였다.

상인들을 위한, 상인들에 의한, 상인들의 연합체였던 것이 한자동맹의 경쟁력이었다. 도시들 간엔 왕도, 귀족도 없었고, 계급과 권위보다 거래를 통한 이득이 우선이었고 동맹과 관련된 의사결정은 각 도시에서 파견된 상인 대표들이 모인 의회에서 이뤄졌다.

한자동맹의 구성원들은 이데올로기나 종교도 강요하지 않았으며 당시 절대적 권력을 지니고 있던 국가나 교회가 자신들을 억압하려 들면 저항했다. 때로는 전쟁도 불사하여 1426년 덴마크의 에리크 왕이 코펜하겐 인근의 외레순트 해협을 지나는 외국 국적 배들에 높은 관세를 부여한다.

이에 반발한 한자동맹은 덴마크에 전쟁을 선포해 승리하고 1469년엔 해상 강국인 영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당시 한자동맹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한자동맹의 몰락은 자유무역의 원칙이 흔들리면서 시작되었다. 한자동맹은 그 위세가 막강해 짐에 따라 점차 배타적으로 변해 외국인 선주의 영업을 금지하고 동맹 상인들의 외국 국적 선박 이용도 막았다.

마침내는 한자동맹의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만을 회원으로 받는 규제를 도입하게 됨으로써 그동안 부를 쌓아온 대도시와 그렇지 못한 신흥 회원 도시 간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동맹 내에 불화가 발생했다.

1602년엔 네덜란드에서 누구나 투자를 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가 생겨나고,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대륙과의 거래가 활성화되는 등 무역 체계에 격변이 일어났지만 한자동맹은 이 같은 업계의 변화에도 무심했다.

한자동맹에 불만이 쌓인 상인들은 비한자권 조합으로 서서히 거취를 옮겼고, 쇠락한 한자동맹은 1669년 마지막 의회를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한자동맹의 유산

한자동맹은 이렇게 사라졌지만 그 속에서 활약했던 발트해 연안의 상공업 길드들은 20세기 초반까지도 명맥을 이어왔다. 그리고 한자동맹의 전통 역시 이어지고 있다.

과거 한자동맹 회원 도시가 있었던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모두 EU 회원국으로서 역내 자유무역과 이동의 자유를 보장할 뿐 아니라 상호 간 다양한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EU 내에서도 보다 끈끈한 관계를 구축했고 세계 최고수준의 복지국가로 우뚝 서게 된다.

독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국가들이 지난 1997년부터 진행 중인 발트해 지역 개발 프로그램(BSR)도 그 중 하나다. 지난 2014년 개시된 3차 프로그램에선 스타트업 육성과 천연자원 개발 및 환경보호, 교통 인프라 확충 등 지역 간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파리기후변화협정 등 국제협약에서 연이어 탈퇴했고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철강·알루미늄 ‘관세 폭탄’ 등 ‘보호무역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고,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세계를 경영했던 영국은 고립주의를 택하며 EU를 탈퇴하였다.

이런 자본주의 맹주국가인 영국과 미국의 위기적 상황은 역설적으로 과거 제국주의 시절 자유무역의 영화가 주는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1.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폐해

무역은 세계 경제의 혈액으로 경제 건전성, 경제 발전의 원동력, 기술 이전의 촉진제, 생산성 향상 및 소득 증대의 원동력이다. 세계 무역의 급속한 성장은 특히 아시아에서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는 일본을 시작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으며 싱가포르, 홍콩, 한국, 대만, 중국 등 ‘호랑이’ 국가들이 빠르게 이를 이어받았고, 현재는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이들을 뒤따르고 있다.

아시아의 이러한 경제 발전 단계에서 드러난 공통된 현상은 외향적이고 수출 지향적인 전략 실행을 위한 각 국가경제의 재조정이었다. 아시아는 이제 세계 무역의 약 3분의 1을차지한다. 그러나 2008년의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미쳤고 세계 무역량은 급감했다.

세계 경제 성장과 비교했을 때도 세계 무역 성장의 감소세는 심각한 편이다. 일정 기간 동안 세계 무역성장이 세계 경제 성장보다 더딘 것은 처음 있는 일이며, 이점는 세계경제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역 침체의 일부는 구조적 문제로 신자유주의를 창안하고 세계 각국에 시장개방을 강요하던 서방 선진국에서 무역 자유화에 반대하는 정치적 흐름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신흥국의 수출 경쟁에 맞서 미국 제조업체들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로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를 선택했다.

트럼프 현상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기타 지역에서의 포퓰리즘, 반세계화를 지지하는 정치인 선출 등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반동적인 국수주의의 극명한 사례일 뿐이다.

이러한 국수주의 정서가 자유주의적인 무역정책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훼손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런 국수주의적 감정은 각 국가들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데서 출발했다. 그 예로,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12개국이 참여한 지역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미국의 탈퇴를 꼽을 수 있다.

이 협정은 이미 각 회원국들이 서명하고 발효를 준비하던 중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탈퇴로 미국의 리더십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행히도 남은 TPP 서명국들이 미국을 제외하고 유사한 협정을 추진해, 더 넓은 지역을 포괄하고 중국까지 포함시킬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아세안, 호주, 중국, 일본, 인도, 한국,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기존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을 보다 폭넓은 TPP 스타일의 협상으로 활용할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무역 자유화는 무역량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소일 뿐이다. 더 폭넓은 경제 통합, 기술 변화, 물류개선을 포함한 다른 요인들의 영향이 지속될 것이다. 과거 무역자유화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착취도구였으나 세계화 시대에서 아시아를 번영으로 이끈 동인으로 반전되었다.

미래의 국제정치에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으나 역사는 진보하게될 것이다. 세계화를 주창하던 서방 선진 각국의 반세계화 추세는 길게 보면 주기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주기적’이란 말은 ‘일시적’이란 뜻이고, 실제로 경기 회복을 암시하는 신호가 적지 않다. 

최근 몇 년 내 무역에 대한 가장 확실한 주기적 영향은 글로벌 무역 활동 규모에 영향을 미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용도, 차입 비용, 환율, 원자재가격 등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무역 약화를 가속화하였다.

미국 리먼브라더스의 붕괴 이후 8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세계 무역에 미친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주요 7개국(G7) 선진국들의 소비지출은 하락세가 뚜렷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경제성장은 민간 및 공공소비가 주도했다.

반면 철도, 도로, 공장, 사무용 건물, 쇼핑센터와 같은 물리적 자본에 대한 지출은 경제 생산력을 높이지만 이 분야에 대한 투자는 약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데이터에 따르면 2016 년 G7 국가들의 투자 지출 수준은 10년 전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자본수지에 대한 지출은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기업은 투자에 대한 충분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때만 투자한다. 기대수익률은 미래의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며 투자는 생산성 향상 등 미래의 강력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된다. 현재의 투자가 부족하다면 내일의 경제 성장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베스트셀러 경제학 교재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유무역을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철강·알루미늄 ‘관세 폭탄’ 등 ‘보호무역 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맨큐 교수는 자유무역의 혜택은 명백하며 무역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이론까지 증명되었고 개방 경제는 폐쇄 경제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다며 자유무역 확대로 일시적으로 일부 계층이 타격을 입더라도, 자유무역이 옳다는 명제는 흔들리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전쟁시도는 수입금지, 초고율의 관세부과 등 보호무역으로 경제를 성장시킨 선진국들이 자신들이 먼저 밟고 올라간 ‘발전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째째한 행동이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할 기회를 빼앗는 ‘사다리 걷어차기’는 결국 세계 경제와 무역을 위축시켜 공멸로 가는 아주 위선적이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발상임은 한자동맹의 교훈이 증언하고 있다. 

 

  1. 한자동맹에서 얻는 교훈

북해와 발트해를 중심으로 12세기 초반부터 17세기 후반까지 약 5세기 동안 북유럽 지역에 형성된 한자동맹은 북부 유럽의 상업무역을 독점한 교류공간이었다.

유럽사에 있어서 하나의 문명권이라고 불릴만큼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했던 한자동맹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중간계층의 층위가 두꺼워 진 것은 이전 중세적 신분사회를 붕괴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자상인들이 그들의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무역 상대국인 제국국가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독점주의적 무역을 고집하면서 몰락하기는 했지만, 혼돈상태에 있던 중세 봉건 유럽사회에서 성공적인 무역을 위해 능숙한 외교수완과 무력을 소유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힘이 돋보인다.

이러한 한자동맹이 형성한 영향력은 현재에서도 계속해서 미치고 있으며 지난 1980년대 새롭게 부활한 ‘신한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자동맹이 독점이윤을 너무 많이 챙기고, 여러 가지 혼란을 초라하기도 했었지만, 그들이 북유럽 생활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고 통상조직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유럽의 잊혀진 역사가 된 한자동맹이 수백 년이 지난 후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 경제협력 논의에 영감의 단초를 준다. 지정학적 긴장관계가 본격적 지역경제권 형성에 장애가 되고 있으나, 역내 경제 네트워크 활성화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과 한반도 평화구축 기반 마련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주요한 과제다.

오늘날 유럽연합을 탄생시킨 유럽 지역경제의 통합은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다수의 정치, 경제적 네트워크에 터잡았다. 중세시대에 번영을 누린 한자동맹은 상품 교역과 상관 운영에서 상당한 수준의 제도화, 표준화를 이루었고, 담당 인력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양성됐다. 신분상승 기회가 제한된 소위 흙수저 소년들이 수년간의 혹독한 견습 과정을 통해 상인계급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유럽통합의 기원인 석탄철강공동체 역시 1920년대부터 형성된 유럽 지역 내 철강 카르텔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지역경제협력은 원점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존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할 때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동아시아의 특수성은 민간ㆍ도시차원 협력을 어렵게 만들어 왔다. 냉전시기부터 이어진 역내 국가 사이의 정치적 갈등과 상이한 경제 체제가 주된 걸림돌로 이를 극복하려면 새롭고 창의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추진하고자 하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은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세력과 일본과 미국의 해양세력을 연결하여 이해관계를 조정(Switching/Routing)할 수 있는 림랜드 국가인 대한민국의 몫이다.

 

  1. 베이징(北京), 서울(首尔), 도쿄(东京)의 도시 경쟁력

도쿄 소재 선도적 도시 개발 업체인 모리 빌딩(Mori Building)의 모리기념재단(Mori Memorial Foundation)이 설립한 연구소인 도시전략연구소(Institute for Urban Strategies)는 도쿄, 싱가포르, 서울, 홍콩, 시드니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 주요 5개 도시를 세계 10위권 도시로 평가한 2017년 세계 도시 국제경쟁력지수(Global Power City Index, GPCI) 보고서를 발간했다.

2008년부터 매년 발표된 GPCI 연차 보고서는 도시의 ‘흡인력(magnetism)’, 즉 전세계의 창의적인 인재와 기업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전반적인 역량에 따라 세계 44개 주요 도시를 평가하여 순위를 정한다. 이들 도시는 경제력, 연구개발(R&D), 문화적 상호작용(Cultural Interaction), 거주적합성(Livability), 환경, 접근성(Accessibility)등 6개 부문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순위를 매긴다.

작년에 파리를 제치고 3위에 오른 도쿄는 ‘문화적 상호작용’과 ‘접근성’ 부문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아 2위인 뉴욕과의 격차를 좁혔다. 싱가포르는 ‘거주적합성’ 부문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10위권에 포함돼 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균형 잡힌 도시 중 하나로 평가됐다. 특히 싱가포르는 주로 풍부한 녹지대와 우수한 대기 품질에 힘입어 ‘환경’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서울은 등록된 특허 건수와 연구 인력이 많아서 ‘연구개발’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전반적 순위에서 6년 연속 6위를 기록했다. 홍콩은 전반적 순위가 7위에서 9위로 낮아졌지만 ‘접근성’ 부문에서 계속 높은 점수를 유지했으며 시드니는 ‘거주적합성’에서 평가 점수가 크게 올라 7년 동안에 처음으로 전반적 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중국의 양대 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는 인구 규모와 GDP(국내총생산) 수준 및 이들 도시 안에 있는 세계 500대 기업의 수를 바탕으로 ‘경제력’ 부문에서 높이 평가돼 각각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또 상하이는 취항하는 국내 및 국제 항공편을 통해 도착 또는 출발하는 승객의 수가 많아서 ‘접근성’ 부문에서 3위를 기록했다.

순위 평가에 포함된 다른 아시아 도시들은 오사카(26위), 쿠알라룸푸르(31위), 방콕(33위), 타이페이(36위), 후쿠오카(37위), 자카르타(41위), 뭄바이(42위) 등이다.

츠지 신고(Shingo Tsuji) 모리기념재단 이사 겸 모리 빌딩 최고경영자(CEO)는 “오늘날 세계적 도시들은 단순히 우수한 사업 환경만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고 높은 품질의 주거 환경, 다양한 문화 및 소매 시설,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는 교통망, 풍부한 자연 환경 등 더욱 향상된 생활 방식을 제공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전반적인 흡인력을 강화하고 전세계로부터 인재와 투자를 유치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지구촌의 핵심 화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국가경쟁력이 더욱 중요해 졌다. 국가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도시경쟁력으로 직결된다. 현대 도시의 역할이 커지면서 도시국가가 번성했던 중세에 비견되는 신중세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오늘날 40개 주요 도시권역이 세계 경제활동의 3분의 2, 혁신의 90%를 차지하는데 이런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국가보다 도시가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형상이 전개되고 있다. 도시경쟁력은 국가경쟁력을 대변하지만 역할과 기능면에서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시 마케팅은 기업과 투자가, 이주민, 관광객을 대상으로 낙후된 도시의 이미지 쇄신과 기업 유치를 통해 경제 활성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국제적인 평가기관은 도시 순위와 경쟁력을 확인할 때 경제, 문화자산, 시민, 환경, 인프라, 여가생활 등 6대 항목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도시는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고 그 안에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경제, 사회, 문화, 생활이 담긴 그릇이다. 서로의 다른 생각과 가치관, 아이디어, 경험이 교류하면서 도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명, 창조의 중심이 되어 발전해 왔다.

더 이상 도시는 한 나라의 소속이 아니며, 지리적, 국가적 경계를 넘어 세계와 교감하고 발전하고 있다. 도시의 발전 여부가 국가발전과 미래 경쟁력의 척도가 되면서, 도시를 살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려는 새로운 도시전쟁이 불붙고 있다.

국가 경제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대도시정책을 성장관리에서 경쟁력 강화로 바꿔야 한다. 국경을 초월해 살기 좋은 장소를 찾아 떠나는 창조적 인재와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하이테크 기업들의 유치를 위한 과감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정책은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도시경쟁력 세계 1위의 런던은 이미 1970년대부터 거대한 도시재생사업에 착수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경제가 침체되고 슬럼가와 불모지로 방치됐던 런던 템스 강 하구 재래부두가 있는 도클랜드 지역(700만 평)을 민관 파트너십으로 재개발한다.

58만 평을 투자지구로 지정해 국내외 투자자에게 10년간 법인세 등 면세 혜택을 주고 투자자금의 15%까지 되돌려주는 보조금 정책을 펼쳐 세계적 대기업 50여 개를 유치했고 고급 일자리만 7만5000개를 창출했다. 런던의 도시재생사업이 도시브랜드를 강화했으며 영국의 국가경쟁력을 주도한 대표적 사례이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으로서 경쟁력을 지닌 도시이나 서구 도시나 도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의 다른 도시에 비해 특징적으로 내세울 경쟁요소가 부족하다. 대도시 간 경쟁이 국가 경쟁을 좌우하는 메갈로 폴리스(Megalopolis) 전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서울의 도시경쟁력 약화는 국가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자본의 흐름, 정보교환, 기업활동이 세계적인 도시를 매개로 이뤄짐에 따라 이들 도시가 결합하고 경쟁하는 지구도시화(glurbanization)와 탈(post)산업 시대 지속가능한 도시화(sustainable urbanization)라는 새로운 현상을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1.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결성을 향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리우 환경회의 이후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실제 정책들에 응용되어 왔다. 22세기 생태문명 시대에도 지속가능한 도시화(sustainable urbanization)는 지구자원을 약탈하여 소비하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산업화 시대의 도시화 과정 및 이를 추동하는 정치 경제적 체제에서 벗어나는 전환적 발전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지속가능한 생태문명은 국가의 실패나 시장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로 시민들의 자발적 실천과 연대(네트워크)를 통해 자기 의존적이고 환경 정의적 전략들의 실행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도시화는 ① 도시를 생태체계로 이해하고, 재화와 에너지 흐름의 자기 완결 체계를 갖추어야 하고 ② 건축물이나 도로 등 도시의 하부 시설들 등 도시의 공간구조 전반을 ‘지속가능성’에 적합하도록 (재)설계·(재)건설하여야 하며 ③ 환경오염물질의 제거를 통하여 환경을 개선하고, 오염물질을 유발하는 생산공정, 제품, 그리고 소비양식을 전환시키고 도시환경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주요한 요소로서 토지이용과 교통 그리고 에너지의 문제를 각각 분리해서 관련 대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이들을 통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과 서울 및 도쿄는 농경사회 때부터 각국의 수도 혹은 중심지로 산업사회시대 세계적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탈(post)산업화 시대와 화석연료 고갈 이후 생태사회 및 생태문명 시대의 수도는 현재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후기 산업화 시대 고속 성장한 중국, 한반도 평화체제가 시급한 대한민국, 아시아의 일원으로 탈구입아(脫歐入亞)/탈미입아(脫美入亞)의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국가이기주의와 강성 민족주의를 조금씩 완화하고 지역 공동체 형성에 나서야 한다.

한중일 3국과 극동 러시아의 내해인 동아시아 지중해인 아중해(亞中海, AJungHae) 경제권의 핵심은 베이징, 서울, 도쿄라는 메갈로 폴리스이다. .

국가주도의 동아시아/아중해공동체는 백년하청/천년하청이다.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 Community) 형성과 베세토튜브 프로젝트는 국가와 정부의 리더십으로는 실패가 명약관화한 사안이다. 현재의 국가이기주의와 민족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이고, 백년하청(百年河淸) 더 나아가 천년하청(千年河淸)의 과업이다.

국가와 정부 주도의 동아시아공동체는 그야말로 ‘말의 성찬(盛饌)’이자 언어농단(壟斷)이다.  시민사회와 같은 제3섹터의 추진동력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실효성이 없다. 개별 프로젝트와 이벤트를 넘어서 지역경제협력은 금융과 인적자원, 그리고 교역대상자들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그만큼 금융, 물류, 자원 등에 특화된 인력을 키워내고 그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충분히 씨를 뿌리고 추수를 기다리는 인내가 동아시아 경제협력의 요체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한·중·일의 반동적인 수구세력이 아니라 많은 젊은 인력들이 참여하고 성장해야 한다.

국가 형성이 미비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북유럽 한자동맹의 경제권 형태가 오늘날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질적 이해관계를 토대로 한 민간ㆍ도시경제의 유기적 연계는 앞으로 한국이 주도해야 할 동아시아 경제협력의 모습을 시사하고 있다.

북해의 거친 파도와 발트해의 매서운 바람을 헤치며 촘촘한 지역경제권을 개척한 한자동맹과 같은 수평적 네트워크 형성이 한·중·일 3국이 염두에 두어야 할 동아시아 경제의 항해 지도가 될 것이다.

대안은 제3의 길로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에 있다.

지역협력의 요체는 결국 민간 부문의 자발적 참여 네트워크 형성에 달려있다. 개별국가의 독자적인 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국가간 프로젝트가 병행되어야만 저상장, 제로성장, 역성장 시대의 국부를 키우고 역내 평화와 공동번영을 달성할 수 있다.

생명력을 지닌 지역경제권의 형성을 위해서는 국책사업뿐만 아니라 국제협력 프로젝트와 같은 다층적, 수평적 연계가 긴요하다. 따라서 동아시아공동체 혹은 아중해공동체(亞中海共同體)와 베세토튜브는 북유럽의 한자동맹과 같이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ベセト同盟, Beseto League)의 결성을 통해 추진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국가이기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운 시민사회와 같은 제3섹터에서 담론을 형성하는 한편, 정치·외교·안보 문제 등 국가간 경성 갈등구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지방정부와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국가와 정부는 후원하거나 적어도 방해하지 않는 거버넌스가 긴요하다.

중국의 베이징(北京)시 정부, 한국의 서울(首尔)시 정부, 일본의 도쿄(东京)도 정부의 3각 동맹을 주축으로 경과노선에 있는 텐진시, 인천시, 경기도, 강원도, 이시카와, 기후, 나가노, 야마나시현 정부가 참여하는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체제로 출발하여 점차 참여도시를 확대하여 아중해동맹(亞中海同盟)으로 발전시키는 “서울책략“, “대한민국책략“이 긴요하다.

한·중·일 3국이 국가주의·민족주의에 매몰되어 아시아 국가간 갈등을 증폭하고 분쟁을 지속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서방진영의 걸기대(乞期待)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는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무리 커도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력과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은 걸프전, 이라크전과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Plaza Agreement, プラザ合意) 및 세계금융/경제 위기에서 증명되었다. 이제는 소프트파워, 스마트파워가 필요한 시기이다.

아시아의 중핵 국가인 한중일 3국은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에서 시작하여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를 완성하여야 한다.

22세기 생태문명 사회를 살아갈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와 함께 상생하고 공영하는 것만이 산업혁명 이후 식민지와 자원약탈형의 서구 근대문명을 초극(超克)하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증명하는 제3의 지름길로 한·중·일 3국이 이 길을 활짝 열어야만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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