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국제정치론의 시각에서 본 베세토·글로벌 튜브

  1. 국제정치(國際政治) 톺아보기
  2. 현실주의, 자유주의 및 급진주의
  3. 대한민국의 발전과 자유주의 국제관계
  4. 생태문명과 베세토·글로벌튜브

  1. 국제정치(國際政治, International Politics) 톺아보기

 

국제사회는 국내사회와는 달리 ‘무정부상태’(anarchy)이다. 여기서 무정부상태란 질서가 없는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국가보다 상위의 권위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제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개별 주권국가이고, 이들 국가를 통제할 상위의 권위체, 즉 세계정부가 없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국제사회에는 개별 국가의 주권을 능가하는 초국가적인(Supra-national) 권위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國際政治學)은 근대 국민국가 간 관계의 정치적 측면을 다루는 학문으로 국제 사회에서 주권 국가의 정책 결정, 안보, 전쟁과 평화 등의 국제정치를 다룬다.

정치학이 인간사회의 권력현상을 광범위하게 다루는 학문이라 한다면, 국제정치학은 인간사회 간, 혹은 인간 집단 간의 정치적 관계와 권력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다. 인간의 정치단위는 역사상 다양한 모습을 띠어 왔다.

인류공동체는 유사이래 씨족 및 부족 국가, 제국, 도시국가 등 역사적, 지정학적 환경에 따라 변화해왔고, 이들 집단 간의 정치적 관계 역시 다양한 모습을 보였다. 국제정치학은 15세기 말부터 서구유럽에서 강력한 정치단위로 등장한 소위 국민국가(nation-state) 간의 정치적 관계를 다루는 학문으로 규정할 수 있다.

1) 국제정치학의 계보

근대 초기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이 영토국가, 주권국가, 국민국가의 형태를 먼저 갖추어 가면서 이들 간의 정치적 관계가 역사상 특수한 모습을 띠어 왔기에, 국가 간의 정치적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분과가 출현한 것이다.

국제정치학이 학문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은, 다른 사회과학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국제(inter-national)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도, 18세기 말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정치철학, 역사학, 법학 등의 기존 학문에 의해 다루어지던 국제관계현상이 국제정치학이라는 학문으로 독립되어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로 알려져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결(1918년 11월 11일)에서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1939년 9월 1일)까지 시대인 전간기(戰間期) 동안 전쟁방지와 국제평화를 위한 구미 학자들의 열띤 논쟁은 국제정치학의 발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의 “제1차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국제정치무대의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국제정치학의 주요 무대는 미국으로 이동하였다. 2차 대전 중 나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많은 유럽의 국제정치학자들도 미국의 국제정치학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미국의 초강대국 외교의 기틀을 놓는 과정에서 미국의 많은 학자들이 국제정치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미국은 국제정치학의 발전에 중심이 되었고, 심지어 국제정치학은 “미국의 사회과학”이라는 정의가 내려질 정도로 미국 중심적 시각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국제정치학의 미국중심성이 서서히 약화되었고 유럽, 비서구 지역의 국제정치경험이 국제정치학 연구의 축적에 점차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

현실주의, 자유주의,급진주의로 삼분되어 있던 국제정치학의 거대이론들도 구성주의, 탈근대이론, 비판이론 등 다양한 이론들에 의해 도전받게 되었다.

현재까지 국제정치학은 국제정치사상 및 이론, 국제관계사 혹은 외교사, 전쟁론, 안보연구, 평화연구, 국제정치경제, 국제법, 국제기구론, 지역연구, 외교정책론 등으로 분기되었고, 최근에는 정보기술, 지식, 문화 등 새로운 연구영역이 등장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구미 제국주의의 지구적 팽창은 비구미 지역의 정치적 조직원리를 폭력적으로 변화시켰고, 각 지역 질서를 개념화하고, 구성해가는 관념틀까지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근대 유럽의 국제정치관념을 수입하여 이를 토착화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1876년 일본에 의해 개항된 이후 만국공법적 국제정치관을 체화하고, 이를 국제정치학으로 안착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더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근대국제정치의 현실을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여유를 박탈당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의 국제정치학은 구미 국제정치학을 수입하여 소화하고, 이를 한국의 국제정치현실과 연결해 나가는데 고난의 과정을 겪어 왔다. 세계10위권의 산업국가로 성장한 한국은 한반도 현실과 미래구상에 맞는 한국적 국제정치학을 정립하여야 한다.

2) 국제정치론의 대강

국제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국가간의 정치인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국제정치론은 근대 주권국가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한 1648년 웨스트팔리아 체제(Peace of Westphalia, Westfälischer Friede) 등장 이후 국제사회를 무정부적(anarchic) 상태라고 간주한다.

국제정치에 관한 이론적, 체계적 연구는 본래 근대 유럽국가들 간에 일어났던 외교사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국제정치론은 일반적으로 국경을 넘어서서 일어나는 관계들이나 현상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국경을 넘어선 국가들 간의 관계들과 연관되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영역들에 걸쳐 관련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국가들 간의 관계에 있어 전쟁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촉진시켰다.

국가들 간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설명을 시도하면서 정치적 이상주의(political idealism)가 등장하여 인간본성이 선하고 협력적이라는 전제에서 국제사회에서 전쟁은 제도들을 재조직함으로써 회피될 수 있고 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세계는 다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의 국제정치의 현실과 일치되지 않았던 정치적 이상주의는 설득력은 상실하게 되어 정치적 현실주의(political realism)가 등장했다.

국가가 유일한 행위자로 국가들 사이에 힘의 균형을 핵심이라고 여기는 현실주의 이론이 주류이론으로 발전하였며, 이와 함께 국제정치를 제도와 협력으로 풀어내려는 자유주의/이상주의 의 두 축을 중심으로 수많은 국제정치 이론들이 파생되고 있다.

 

  1. 현실주의, 자유주의 및 급진주의

 

일반적으로 국제정치, 국제관계 또는 세계정치의 연구에는 3 가지의 지배적인 시각이 있다. 3 대 시각은 현실주의(Realism), 자유주의(Liberalism), 급진주의(Radicalism, 또는 Marxism, Globalism, 구조주의 Structuralism)로 구별된다.

1) 현실주의 국제관계론

지난 100 년 동안 국제정치를 해석하고 설명하는 지배적인 방식인 현실주의는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된 시각이다. 특히, 2 차 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으로 등장하고, 소련과의 대립이 지속되는 냉전 상황에서 현실주의는 국제정치 연구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따라서 자유주의나 급진주의의 논의의 대부분은 현실주의가 갖는 약점 또는 단점에 대한 비판과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주의의 사상적 배경은 기원전 5 세기 아테네의 투키디데스(Thucydides, 471-400 B.C.), 16 세기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와 17 세기 영국의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에서 나온다.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 세기 아테네 사람으로 후에 현실주의 전통의 창시자로 꼽힌다. 기원전 431 년 고대 그리스 세계의 강대국이던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30 년간의 전쟁  인 펠로포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 431-404 B.C.)은 고대 세계 최대의 전쟁이었다.

당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장군이었으나, 스파르타군의 아테네 도시 공략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국외추방을 당한다. 그후 그는 저술에 전념했고, 유명한 역사서인 ‘펠로포네소스 전쟁사’(The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를 남기게 된다.

이 책에서 그는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간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데 흥미를 느꼈는데, 결국 당시 신흥 강대국인 아테네의 정치적 힘이 기존 강대국인 스파르타에 비해 급속히 커졌고, 이에 따라 스파르타가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이 펠로포네소스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마키아벨리는 16 세기 초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이다. 대표작으로는 ‘군주론’(The Prince, 1532)이 있는데, 여기서 세속 군주의 정치활동에 있어 권력과 이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최고통치자인 군주의 최상의 덕목은 정글과도 같은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생존을 지키고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때로는 비도덕적인 수단과 방법이 동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마키아벨리는 무정부상태(anarchy)인 국제사회에서는 살아남는 것, 즉 생존이 국가의 제 1 의 목표이고, 따라서 국가가 대외정책을 결정할 때 도덕이나 국제법의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홉스는 17 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로 절대주의 왕권을 옹호하고 합리화한 정치철학을 발전시켰다. 홉스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힘과 권력을 추구하며, 그 목표를 위해 처절하게 투쟁한다고 본다.

즉,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하게 되며, 이러한 투쟁에서 약한 자는 결국 강한 자에게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인간의 자연상태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도 무정부상태이므로 국가간의 경쟁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살벌한 정글 구조이고, 따라서 국가간의 불신, 분쟁, 그리고 전쟁은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냉엄한 국제환경에서는 살아남는 것이 국가의 최대 목표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power)을 키워야 한다고 봄으로써 현실주의 국제정치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결국,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사상은 1, 2 차 세계대전을 치른 국제사회와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즉, 냉엄한 국제현실을 직시하게 했고, 강한 국가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현실주의 학파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모겐소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 ‘국가간의 정치’(1948)라는 책에서 국제정치를 권력투쟁으로 특징짓고, “모든 정치가들은 국가이익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쟁”하며, 이런 철칙이 국제정치에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겐소는 국제정치가 권력투쟁의 장인 이유는 국제정치의 내부 논리가 경쟁적일 뿐 아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이 무한하다는 데서 연유한다고 믿었으며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소련의 지배야욕을 분쇄하고 여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무력 개입이나 위협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그 본질은 권력투쟁이며 국가들 간의 권력투쟁은 세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즉, 국가들이 각종 정책을 통해서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거나 과시한다는 것이다.

이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들의 정책들을 각각 현상유지정책 (a policy of the status quo), 제국주의정책 (a policy of imperialism), 권위정책 (a policy of prestige)으로 명명하였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는 국력을 확장하려 노력하고 또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과 위협 등의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희생당하기 쉬운 약소국들은 강대국과의 동맹을 통해 생존을 보장받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모겐소는 이런 무질서한 국제질서에서 세계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세력균형 정책은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며,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외교를 통해 세력균형과 국력 추구의 국가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화에 따른 다양한 분야의 초국가적 이슈들이 급증하였으며 환경안보, 경제안보, 인간안보, 마약 및 국제범죄 이슈, 테러리즘 등 다양한 비전통 안보 혹은 포괄적 안보문제가 국제관계 연구의 주요 주제로 부상하였다.

이와 더불어 국제기구 비정부단체 다국적 기업과 같은 다양한 행위자가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911 테러 사건 이후 국제사회는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면서 국제정치는 보다 다각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적 접근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2) 자유주의 국제정치관계론

자유주의(Liberalism)는 현실주의(Realism)와 함께 국제정치 연구의 두 축을 형성해 왔고, 오늘날 현실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이자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실주의가 기본적으로 국제정치질서는 강대국의 ‘국가이익’을 반영하고, 힘을 바탕으로 한 ‘권력정치’(power politics)를 통해 유지되고 앞으로도 강대국들의 국가이익과 힘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자유주의는 국제정치질서는 국가간의 적극적인 ‘타협과 협력’으로 형성된 ‘국제제도’의 영향 속에서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법, 규칙, 규범, 관행과 같은 국가 간의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를 바탕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국가들간의 ‘상호의존’을 세계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보며 국가간 협력과 평화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자유주의는 무정부상태의 국제체제 안에서도 상호간의 이익을 보장하는 ‘제도’와 ‘레짐’을 통해 협력이 가능하며, 그러한 협력이 궁극적으로 세계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키워드는 타협, 협력, 조화, 평화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개인들 사이의 합의를 통해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인위적인 정치질서와 제도를 모색하고자 하는 사상을 말한다.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은 자유주의 사상의 등장과 함께 국제정치에 등장했다.

자유주의는 개인적 자유를 중시하고 보편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으며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다. 자유주의는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제도적 보완 장치들을 통해 서 국가 내에서 개인들은 평화를 확보하고 상호 관용의 정신 하에서 공존공영을 도모할 수 있다. 국가 간의 경제적 측면에서의 협력은 당연히 가능하며 이는 점차 확대되어 안보와 군사 분야까지 이르고 있다.

자유주의는 현실주의의 핵심적인 전제들을 수용함과 동시에 국제제도 역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국제정치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보고 무정부 상태가 국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국제제도들이 국가의 행동에 독립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며 무정부 상태일지라도 국제제도에 의해 국가간의 협력은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자유주의 시각에서는 국가의 절대성이 부정된다. 국가는 개인이 만든 집단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도 국제질서가 무정부상태라고 보고 있으나 이러한 무질서상태는 협력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현실주의가 세력균형에 의한 평화가 가능한다고 본 것과 대비하여 자유주의는 협조를 통해 국제사회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은 초기 자유주의자인 루소와 로크를 거쳐 칸트에 의해 최초로 가장 체계적으로 제시되었다. 인간 이성을 통한 인류 발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던 칸트는 그 이전의 어떠한 자유주의자들 보다도 국제정치에서도 전쟁상태의 지속과 반복이 아니라 평화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한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칸트는 공화정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헌법’을 완전히 확립시키는 문제는 법이 지배하는 국제정치현실을 창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으며 분쟁의 일시 중단은 평화의 보장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평화 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영구평화(perpetual peace)론’의 구체적 방안들을 제시한다.

칸트는 맹자의 ‘성선설’처럼,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착하다고 보고 상호 협력이 가능하며, 정글과 같은 국제사회가 아니라,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믿었다. 국가의 주권과 독립이 무의미해지는 ‘세계정부’의 탄생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칸트의 사고는 후에 국가간 평화와 협력을 중요시하는 자유주의 국제정치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자유주의는 1940년대 이후 기능주의, 상호의존이론,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로 세분화되어 발달한다.

자유주의는 상위정치(high politics)인 군사/안보 이슈 못지않게 하위정치(low politics)라고 부르는 경제, 사회, 환경 등의 다양한 이슈들도. 국제정치의 의제(agenda)가 된다. 전쟁과 불가항력적인 무정부적 국제정치현실에 직면하여 내일이 오늘과 같을 수 없다는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다.

3) 급진주의(Radicalism, 맑스주의- Marxism, 구조주의- Structuralism, Globalism)

국제관계의 특성을 현실주의는 무정부상태로, 자유주의는 상호의존적 관계로 파악하는데 반해, 급진주의는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또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종속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부의 불평등한 관계가 갈등의 원인이라고 파악한다.

급진주의 시각은 구조적인 착취 수단에 초점을 두고 있어 구조주의(Structuralism)라고 한다.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고 또는 세계경제의 중심부에 있는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들이 주변에 있는 남반구의 가난한 국가들을 지배하는 구조적 착취를 말하기 때문이다.

급진주의 이론가들에 따르면, 역사는 ‘착취’로 점철되어 왔으며, 현 체제의 주요 특징은 ‘자본가 계급'(부르주아 계급)이 ‘노동자 계급'(프로레타리아 계급)을 착취하는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맑스주의 국제정치이론은 국내 계급 집단들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갈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국가 중심의 국제정치는 전세계적 차원의 계급적 연대에 의해 지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정치의 주요한 행위자는 국가가 아니라 계급이고, 국제사회는 불평등한 계급들 간의 위계적 구조(hierarchical structure)를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계급 간의 갈등을 제거하여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소멸되고 대신 사회주의가 확립될 때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맑스주의를 시작으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는 수정주의, 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독자노선의 티토주의, 마오쩌둥주의(毛澤東主義) 등 다양하게 분파되었으며, 사회주의적 평화는 세계가 사회주의체제로 동질화 될 때 이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주의가 위험에 처했다고 판단되면, 어느 사회주의 국가든 개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공산주의혁명이라는 보편주의적 목적을 내세우면서도 소련의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국가주의적 보편주의’(nationalistic universalism)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회주의 동질체제간에 벌어진 1969년 중소 국경 분쟁, 1979년의 중월전쟁 등 여러 번의 전쟁이 일어났으며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공산국가들마저 몰락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의 현실과 미래도 암울하다.

‘공산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고 공유재산제도를 실현해 빈부의 격차를 없애는 사상’을 말한다. 오늘날 공산주의는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활동하는 현대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가리키고 있다.

4) 이상주의(idealism)

국제관계론에서 현실주의의 정반대에 위치한다고 여겨지는 이상주의(理想主義, idealism)는 국제협조에 따라 평화를 구축하려고 하는 학설을 일컫는다. 국제사회에서의 도의와 윤리, 국제법과 국제기관을 중시하고, 평화가 만국의 이익이라고 여겨졌다.

이상주의는 국제제도의 형성을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으로 집단 안보(Collective Security)를 통한 평화 유지로 설명된다. 이상주의자들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의했고 연맹 규약 제16조에 집단안전보장체제를 도입함으로써 국제정치에서 전쟁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려는 방안을 모색했다.

우드로 윌슨의 제안에 의해 세워진 국제연맹이나 유엔이 이상주의의 대표적인 산물로 이상주의와 국제연맹은 승전국을 대표한 윌슨대통령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에 이상주의를 윌슨주의라고도 부른다. 윌슨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

공자와 맹자, 플라톤과 같은 이상주의자들에게 전쟁의 참담한 현실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또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가능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에게 어울리는 정치적 삶의 모습과 태평성대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설파했다. 그러나 난세에는 현실주의가 기본 이론이다. 이상주의는 공허한 규범 이론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상주의는 치세(治世)를 가져오고 그 치세에서 성세를 구가하기도 한다.

 

  1. 대한민국의 발전과 자유주의 국제관계

 

전쟁과 안보가 불안정한 상황 하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꽃필 수 없다. 자유의 확산을 위한 군사적 개입은 장기간에 걸쳐 대상 국가에게 안보 우산을 제공할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오늘날처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구한말 자유주의 사상의 도입과 함께 3.1운동 이후 수립된 임시정부와 국내의 활발한 민족 언론의 활동은 자유주의 이식을 위한 토양을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815 해방 이후 미군정기 미국이 한국 사회에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한국 내에 이미 자유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전통과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승만을 비롯한 대한민국 건국의 지도자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고 민주주의와 함께 자유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수용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한국의 자유주의 발전은 미소 냉전 대결에서 자유주의 이념을 표방한 미국의 세력권 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국제정치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건국과 함께 한반도는 분단과 전쟁을 경험함으로써 자유주의 이념 이외의 대안적 이념은 고려 대상 밖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50년 이상 유지되어온 한미동맹에 의해 제공된 안보 우산이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 이념은 사회주의와 달리 동맹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냉전 시기 공산주의는 소련 중심의 지도력을 따르도록 동맹국들을 강제하는 초국가적 이념적 지향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중앙집권적인 동맹 노선은 강한 결집력을 보일 것 같지만 세계공산주의 운동의 지도력은 단일 국가가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둘러싼 이념논쟁이 벌어질 경우 공산주의 동맹권의 분열과 갈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한다.

티토의 독자노선, 중소 분쟁, 브레즈네프 독트린 등은 공산주의 이념의 자기분열적 속성을 잘 보여주는 예들이다. 공산주의와 달리 자유주의는 초국가적 이념적 지도력을 주장하는 단일 국가에 의해 동맹권이 통제되지 않는다.

자유주의 국가의 경우 정통성의 근거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와 대의정치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국가들 사이의 동맹관계는 공산주의 국가들처럼 파국적이고 분열적이지 않다.

미소 냉전 대결은 패권체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패권국가의 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현실주의적으로 국력의 불평등한 분포상태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패권체제의 성격과 작동원리 및 동맹관계의 성격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패권적 질서와 미국 주도의 패권체제는 미국 정치체제의 자유주의적 성격으로 인하여 양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21세기 국제정치질서는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 체제의 속성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자유주의 사상과 함께 등장한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은 칸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현실주의가 무정부적 국제정치현실의 재생산과 반복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개인의 안전, 복지, 인권의 측면에서 단선적인 발전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인간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대외적 조건의 꾸준한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핵심적 이론적 가정이다.

역사적 경험에 의해 더 이상 자유주의자들은 국가 간의 이해관계의 조화가 자연발생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는다.

칸트 이후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가들은 국가들 사이에 발생하는 안보딜레마를 완화시키고 상호협력을 진작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들이 인간과 국가의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제도들에는 외교 관행, 국제법, 국제기구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또한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은 과학 및 기술의 발전과 인간 의식의 변화가 국제정치현실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자유주의적 현실주의

인간 지식의 향상, 국가 간 상호의존의 증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평화의 정착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개인의 자유, 번영, 정의가 실현되는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자유주의자들은 믿는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믿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는 패권체제 확립을 위한 국가들 사이의 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국가간 평화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권력정치의 현실과 자유주의이념을 동시적으로 고려하는 ‘자유주의적 현실주의’라는 복합적 패러다임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무시하고 이념에 경도된 이상주의적 발상은 기존의 불안정한 평화마저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달리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하지 않은 맹목적 현실주의는 국가간 협력을 어렵게 할 것이다.

국가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정책에 의해 관리하면서 역내 비자유주의 국가들의 체제 변화를 점진적으로 도모해 나가는 ‘자유주의적 현실주의’라는 복합적 패러다임이 21세기 평화 실현을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북한의 자유주의적 전환의 구체적 시기에 대한 예측은 매우 어렵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유주의적 평화지역의 등장은 역내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패권국가의 등장에 대한 안보딜레마를 완화시킬 것이고 심지어 패권의 평화적 이양을 가능케 할 것이다.

19세기 대영제국에서 20세기 미국으로 패권이양 과정은 자유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1세기 한국은 내적으로 자유주의를 더욱 공고히 다지고 평화통일을 달성할 경우 동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는 현실주의의 기본 가정에 대해 도전하는 시각으로 국가뿐 아니라 비국가행위자(nonstate actors) 역시 국제관계에서 무시될 수 없는 중요한 실체이다.

군사/안보 이슈의 상위정치(high politics)인 못지않게 경제, 사회, 환경 등의 하위정치(low politics)도 국제정치의 의제(agenda)가 된다. 국가간, 사회간의 상호의존이 심화함에 따라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실제로 오늘날 국제정치는 경제, 환경, 자원 등의 문제가 때로는 국제적인 논의의 중심에 등장한다.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는 국제정치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슈들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생태계 오염과 파괴의 문제에 대한 대안마련은 개발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조화를 통해서 진보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4. 생태문명과  생태정치 및 베세토·글로벌튜브

 

산업혁명 이후의 서구 근현대문명은 자본주의와 결합한 데카르트-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지구와 식민지지의 인적자연자원을 약탈하는 반생태적·반생명적 세계관으로 수많은 전쟁을 야기시켜 인류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 경영은 종식되었으나 또다른 형태의 소프트한 전쟁인 환율전쟁, 무역전쟁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무분별한 개발 이데올로기, 무한경쟁, 무한성장을 추구하여 공급과잉과 지구환경의 파괴를 초래하였다. 

이는 ‘45억년 역사의 생태계 원리’를 불과 ‘200년 역사의 자본시장원리’가 대체한 결과이다. 자본 논리는 언제나 착취의 대상이 필요하다. 자연착취에서 식민지착취를 거쳐 금융착취와 이제는 우주 식민지 개척과 자원착취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1) 어쩔 수 없이 맞게 될 생태문명

지구는 모든 인간이 선진국 국민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하며 이를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산업문명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상정하고 있는 유토피아는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구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구를 끊임없이 개발 하다 보면 모든 인간이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허상이다 허상을 쫓으며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근원인 지구를 파괴한 결과 우리는 스스로의 존립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저탄소 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을 지난 수 세기 산업문명을 지탱해 온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함을 의미한다. 석유는 검은 황금으로 현대 산업문명의 기반이자 상징으로 현대 문명 그 자체다.

전세계적으로 농업, 수산업, 공업, 수송, 통신, 전력, 군수산업 등 모든 현대적 산업은 석유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자, 군사적인 전략물자이다. 금융 시장도 석유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유 중의 하나도 석유결제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석기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은 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언젠가는 석유의 시대도 종말을 고하겠지만, 그것이 석유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자키 야마니/사우디아라비아 전 석유장관

인류가 석기 사용을 중단한 것은 청동과 철이 더 뛰어난 재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에너지 기술이 더 나은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석유 사용은 중단될 것이다,” -비외른 롬보르도/회의적 환경주의자 저자 

석유의 고갈은 불가피하게 에너지 수급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 전반의 구조개혁을 필요로 한다.

더 본질적으로는 인간 중심적인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인간과 자연 기술과 환경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문명’으로 도약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환경위기는 자연에 대한 착취와 파괴를 바탕으로 오직 인간의 재화공급에만 치중하는 ‘산업문명’ 그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기온 상승 목표 한도인 2℃를 지키기 위해선 온실가스 배출을 금세기 내로 ‘제로(0)’ 로 줄여야 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2) 지구촌 공동체를 구현하는 생태정치

인간이 더 이상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종(種)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문명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우리가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는 현대 문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생태문명으로 도약하는 길뿐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결집하여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는 생태정치의 활성화로 지지부진한 녹색정당을 넘어서야 한다. “생태정치“는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지구를 살리는 정치“, “지구공동체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정치“를 말한다.

국민국가에서 세계시민사회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는 생태정치는 자율성과 평등성에 기초한 세계 시민사회의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생태정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 지구상에 없다.

모든 생명현상은 개별 유기체의 속성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적 시스템의 속성이다. 인류문명사 전체의 대전환기인 오늘에 있어 생태정치학은 인류 전체와 생명·비생명 모두를 포함한 새 삶과 새 세계의 새로운 원형을 제시하는 생명학이다.

생태정치는 인간사회 핵심인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상호의존성, 통합성에 준거한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서 생명계와 정치, 경제 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또한 생태정치는 전 우주권으로의 의식 확장을 통해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지금까지 정치는 지배와 복종의 이원화된 구조에 입각해 우주의 본질인 생명을 살리는 정치가 아닌 생명을 죽이는 권력정치(파워폴리틱스)에 천착해 왔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이 땅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의 삶과 그 터전을 한반도와 지구행성의 생태환경을 회복하여야 한다.

3) 생태문명과 생태정치를 견인하는 베세토·글로벌튜브

미국 혼자서 매년 전세계 에너지의 25%를 소비하고 있으며 미국인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7,921kg으로 세계 1인당 평균 사용량 1,631kg의 5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1톤으로 세계평균 4.9톤의 4배에 달하고 있다.

신흥국인 인구 14억 중국과 13억 인도의 산업화가 더욱 진전되어 미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5~6개의 지구가 있어야 한다는 전문기관의 전망을 고려하면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인류 모두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2세기 생태문명 시대의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은 지구자원을 약탈하여 소비하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산업화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이를 추동하는 정치 경제적 체제에서 벗어나는 전환적 발전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산업혁명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근대 육상, 해상, 항공 교통시스템은 모두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어 다량의 온실 가스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석유고갈에 따라 지속 가능하지 않는 교통 시스템이다.

탈산업화시대(Post-industrial society)와 생태사회(Eco Society)에 대비한 새로운 운송체제의 개발과 구축은 석유로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준비하여야 하는 시대적 과업으로 새로이 등장할 교통수단은 반드시 석유고갈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교통모드일 수 밖에 없다.

선박은 너무 느리고 비행기는 과다한 온실가스를 지구 상공에 배출하여 자연을 통한 회복보다 빠른 속도로 바다와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석유정점을 맞이하는 21세기 한정된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낭비해서는 안된다.

22세기 탈 석유사회시대에는 항공 교통모드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관도(管道, Tubeway)모드의 교통수단이 최상위 교통계층(transport hierarchy)의 지속가능 교통 시스템(Sustainable transport system)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하고 경제적으로 서구를 추월할지라도 서구근대문명을 초극(超克)하는 길은 지극히 멀고 험난하다. 탈 산업화시대로 생태문명이 꽃필 21~22세기는 군사력과 기축통화 발권력으로 유지되는 패권국은 과거 로마제국과 같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를 기반으로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글로벌튜브(汎球管道, Global Tube)를 완성하는 과업은 서구 근대를 초극(超克)하여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를 열고 생태문명(生态文明)을 꽃피우는 제3의 길이다.

베세토∙글로벌튜브는 지구와 문명, 사회,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생태문명 마중물” 프로젝트이다. 이러한 튜브피아(Tubepia)를 시현하여 아중해(亞中海) 일원을 대동사회로 안내하는 것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인류를 달과 화성에 보내는 일보다 더욱 가치있는 목표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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