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문명(1) vs 산업문명(2) vs 생태문명(3) 그리고 베세토튜브

  1. 농업혁명과 농업문명
  2. 산업혁명과 산업문명
  3. 생태혁명과 생태문명
  4. 베세토·글로벌튜브는 생태문명 견인차/플랫폼이다

  1. 농업혁명과 농업문명

고고학자들은 우리 인류가 동아프리카 대지구대(Great Rift Valley)에서 약 500만년 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 대지구대는 약 600만 년 전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폭 30-60km의 깊게 파인 땅들이 길게 남북으로 약 6,400km 늘어서 있는 곳이다.

빅토리아호와 탕가니카호 등 수심이 깊은 호수들이 다수 산재해 있고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대지구대의 나무 위에서 생활을 하던 유인원이 날씨가 건조해지면서 빙하기의 도래와 함께 열대우림이 사라져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자 땅 위로 내려와 두 다리로 서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 인류의 첫 걸음이었다.

인류는 4차례의 빙하기와 급변하는 지구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를 거듭하며 전지구로 확산되었다. 인류의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라시아를 거쳐 아시아대륙에 이른 것은 약 100만 년 전, 유럽에 진출한 것은 20만 년 전 그리고 아메리카에 이른 것은 1만 년 전이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가 도래한 약 1만 년 전에는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을 개발하고 문명을 발전시키게 된다. 농업혁명이라는 식량생산 양식의 개발로 인간은 지표를 끊임없이 변화시키게 되며 지표의 변화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어 5500년 전에는 인공의 거주공간으로 자연과 분리된 생활을 하게 되는 도시를 형성한다. 식량생산을 관리하고 생산된 식량을 침략자로부터 보호하는 곳으로의 도시와 성이라는 정주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18세기에는 화학 에너지를 기계 에너지로 전환하여 거대한 생산수단을 확보하는 산업혁명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일련의 인류사회 발전과정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면 환경변화와 인류사회가 상호작용하면서 진화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중요한 기폭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기후변화 등 환경변화와 여기에 대응하는 인류의 대응을 보다 엄정하게 평가하지 않고서 우리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논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크게 감소될 것이다.

농업혁명과 고대 제국의 명멸
인류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진보의 하나는 농업혁명이다. 농업혁명으로 인류는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정주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주생활은 기술의 축적과 발전을 가능케 하고 사회조직화와 문자 개발로 문명발달의 초석을마련해 주었다.

인류사회는 구석기 시대의 채집 경제로부터 신석기 시대의 농업생산 경제로 발전하는데, 이러한 생산 경제로의 전환은 인류 문화사상 하나의 전기를 가져온 사건이다. 그 때문에 이러한 전환을 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이라고도 한다.

인간이 농정을 시작한 것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한 기후기가 도래하면서 시작된 식량위기에 그 출발점이 있다. 풍부하던 대형 사냥감들은 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과잉 수렵과 기후변덕으로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대형 사냥감의 멸종현상은 1만 87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변덕스러운 기후변화기에 더욱 심해졌다. 대략 1만년 전부터 사피엔스는 몇몇 동물종과 식물종을 기르기 시작했다.

농경의 시작
식량위기에 봉착한 인간들은 약 1만 년 전부터 사막 주변의 스탭지역에서 ‘밭’을 개간하여 벼와 식물을 재배하면서 극심한 자연변화를 극복하였다. 화전농업으로 좁은 면적의 토지에서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인류는 기후변화의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농업으로 본격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 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 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고 한다. 농업혁명은 수렵채집에만 의존하던 식량 사정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식량의 총량이 늘어났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생산한 식량은 저장공간을 필요로 했고 사피엔스는 수렵채집을 하며 떠돌던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부들은 수렵채집인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더 열악한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농업혁명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이자 불평등의 시발점이었다.

힘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얻지 못했고, 모든 정착지에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그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을 빼앗았고 그것을 토대 왕궁과 사원을 짓고 도시를 건설했으며 정치를 하고 예술작품을 만들고 전쟁을 벌였다.

농경의 시작은 인간의 정주 생활을 가능하게 하였고 정주생활을 출산율을 높여서 인구증가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농경 시작 전 약 400만 명이었던 세계인구는 기원전 5000년 500 만 명, 기원전 1000년 5000만 명으로 빠르지는 않으나 점진적으로 증가하였다.

농경의 시작과 도시국가의 출현 그리고 도시국가들의 경쟁과 전쟁을 통해서 통합되고 멸망하면서 고대제국으로 발전하게 된다. 고대제국 들은 서남아시아와 인도북부지역,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부근, 중국 대륙 등 유라시아 대륙을 지역으로 나누어서 홍망성쇄를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 인구도 점차 증가하게 된다. 고대국가들이 틀을 갖추기 시작한 기원전 1000년에 5천만 명으로 증가한 세계인구는 기원전 500년 1억 명으로 서기 1년 2억 5천만 명,200년 2억 명으로 증가하였다.

고대제국의 형성
제국으로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금속기의 발전 특히 철의 이용이다. 약 4000년 전부터 시작된 쇠를 추출하고 이용하는 기술의 개발과 확산은 전쟁기술은 물론 각종 도구 특히 농업생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철은 청동보다 훨씬 단단할 뿐만 아니라 매우 풍부하였고 무기와 도구로 보다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철기의 사용으로 농지 개간이 보다 용이해 졌고 보다 깊이 땅을 팔 수도 있어 농업 생산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철을 이용한 각종 도구들이 개발되어 생활을 혁신하며 이후 차 산업혁명기까지 철은 가장 중요한 금속으로 인류역사를 선도하게 된다. 전쟁무기로도 단단한 철은 중요해 철기를 먼저 개발 사용한 국가들이 침략전쟁에서 비교우위를 접하게 되었다.

인류는 지난 수백만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에 적응해왔다. 유전자도 수렵·채집 생활의 식습관, 신체활동, 자연환경에 최적화됐다. 그러나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은 최근 일 만년 사이의 일이다. 유전자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엔 시간이 짧다.

수렵·채집 시대와 달리 농업혁명 이후 식단은 고기 등 단백질에서 탄수화물 위주로 바뀌었다. 농경생활로 곡물 생산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면역체계가 부실해져 전염병이 돌았다. 집에서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자 가축에 기생하는 병원균이 인간에게 옮았다.

인구가 늘고 도시가 생기면서 전염병은 재빨리 퍼졌다. 문명화되면서 바뀐 생활 환경이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14세기에 들어 지구는 다시 한냉 기후기를 맞게 된다. 1840년대까지 계속되는 소빙기는 인류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목민들인 투르크족과 몽골족의 이동은 유럽과 중국에 엄청난 환경생태적인 영향을 주었다. 잔혹한 정복전쟁과 함께 이주한 페스트균은 중국대륙에 널리 퍼지고 이어 유럽으로도 전파되어 세계역사를 뒤흔든 대참사를 불러왔다.

페스트로 중국은 몽골족이 침략하기 전 1200년 경의 인구 1억 2300만 명이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1393 년에는 6500만 명으로 격감하였고 유럽은 전체인구의 1/3~1/2을 상실하고 중세유럽의 종말을 고하게 된다.

유럽의 신대륙 침략
소빙기의 변덕스런 기후와 페스트(흑사병)의 대규모 유행에 이은 계속된 한냉기와 페스트의 공격으로 유럽사회는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인구의 9할이 농업에 종사해도 식량자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유럽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붕괴되어 농업부문 등 모든 부문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5세기부터는 필사적인 대외진출로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유럽이 대외진출에 혈안이 되었던 데에는 향료무역 등을 들 수도 있지만 서유럽의 자원 특히 산림의 고갈에서 그 원인의 일단을 찾기도 한다. 중세 온난기 동안의 과잉개발과 벌목으로 산림이 황폐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쪽에는 중국이 남쪽에는 이슬람세력이 버티고 있어 육지의 양쪽을 완전히 봉쇄되어 서쪽과 아프리카를 우회하여 동남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적극적인 대외진출을 위한 탐험의 결과로 유럽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에서 집단농장을 경영하기 위해서 노예무역도 시작하였다.

유럽의 신세계 진출의 선봉장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으며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이 뒤를 잇는다. 15 세기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 연안의 섬들을 점령하고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16세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오세아니아 대륙을 비롯한 남태평양의 도서 국가 들과 인도대륙 등도 유럽인의 침략으로 무너진다.

농업문명은 인류문명의 뿌리이자 더 나아가 인류의 문명 그 자체를 의미하는 혁명이다. 한때는 몽골 등의 유목 제국 등이 군사력으로 위세를 떨쳤으나 축산업 역시도 농업의 한 범주이다. 지구상의 인류 집단 중에서 농업을 뿌리로 하지 않는 집단은 소수의 원시적 수렵 민족들 정도에 불과하다.

농업으로 형성된 인류문명은 태양과 지력 이외에 별다른 자원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언젠가 자원이 고갈되면 약발이 다해버릴 산업혁명보다 훨씬 장기적으로 인류를 지탱하게 될 혁명이다. 농업을 국가 그 자체의 근본으로 여기는 풍조는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으나, 인류 문명의 근본은 여전히 농업이다.

 

2 산업혁명과 산업문명

산업혁명(産業革命, Industrial Revolution)은 전 세계에 격변을 가져다 준 혁명으로 인류 역사에서 근대의 시작이 되는 사건이다. 인류의 본격적인 과학 기술 개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르네상스 이래 유럽의 전반적인 근대적 발전을 배경으로 한다.

백여 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으로 전개 과정과 시기에 따라 다시 나눌 수 있다.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소비재와 경공업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는 1차 산업 혁명과 19세기 중후반에 전기화학 등 중화학 공업이 시작된 것은 2차 산업혁명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18세기 영국에서 시작이 되었고 그것이 가져온 인류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말한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18~19세기에 유럽과 북미로 확산되었다. 산업혁명은 산업문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 실존양식을 낳은 획기적인 기술적인 변화이다.

1760년대 이후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기계의 발명과 증기기관의 도입 등으로 인류사회는 전통적인 농업중심 경제에서 공업제품의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로 이행하는 사회 및 경제적인 대변동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의 발아
기술적인 차원에서 산업 혁명은 철과 강철이라는 새로운 소재의 활용, 석탄과 증기 기관 같은 새로운 동력원의 사용, 방적기나 방직기 같은 새로운 기계의 발명, 공장제라는 새로운 노동분업 체계의 발전, 증기 기관차나 증기선과 같은 새로운 운송 및 통신수단의 발전 등 다양한 변화를 동반하며 진행되었다.

산업혁명은 영국이 17세기 말 인도에서 수입하여 유럽의 주요 무역상품이된 면직물을 효과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쌓이고 쌓여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산업혁명은 유럽이 신세계를 발견하고 침략하여 약탈하여 온 은과 금 등 막대한 부와 자본의 축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산업혁명의 시발점은 증기기관을 이용하여 열에너지로 기계를 작동하는 동력에너지로 바꾸는 동력혁명이다. 산업화에 따른 기계의 수요 증대는 철 생산을 증대를 초래하였고 18세 기 후반 알카리 공업이 일어나면서부터 유리산업의 보급 등은 에너지 수요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유럽에는 이미 목제는 고갈되었고 에너지원으로서 석탄의 사용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유럽에서 에너지원으로서 산림은 페스트가 유럽을 휩쓴 이후 인구감소와 폐농으로 상승하다 다시 인구증가와 개간의 확대로 17~18세기에는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다.

때마침 코크스가 발명되어 석탄에서 유황제거가 가능해지자 그동안 더러운 에너지 (dirty energy)로 간주되어 천대받았던 석탄이 널리 이용될 수 있었다. 기계와 동력을 이용한 생산성의 증가는 원료와 제품 수송 수요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였다.

기계와 동력을 이용한 생산성 증가는 원료와 제품 수송 수요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였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여 육로와 해로 수송 수단의 혁신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증기기관은 철도 그리고 증기선으로 발전하면서 육로와 해로 수송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와서 전 세계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산업혁명의 심화
 19세기 초 증기기관차의 등장은 원료와 제품 수송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기는 물론 여객수송을 통해 도시의 확산에도 기여하였다. 19세기 중반에는 증기선이 등장하여 해외에서의 원료와 제품 수송 그리고 전쟁 능력에 있어서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산업혁명이 심화되면서 19세기 후반부터는 공장제와 대량생산이 주류 생산양식이 되었다. 공업화는 새로운 기술을 계속 가져왔고 사회에는 상품의 양과 형태를 바꿔 놓았다. 지난 200 년간 공업생산의 엄청난 증가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특정이다.

공업생산의 획기적인 증가는 공작기계가 도입되어 생산시설의 효율이 크게 향상시킨 탓이다. 공작기계는 1840년대에 미국에서 도입되었고 유럽에서는 1870년대에 널리 쓰였다.

산업화의 물결은 공업생산에 국한되지 않고 농업생산에도 인조비료가 발명되어 도입된다. 인조비료는 19세기 중반 인광석을 분해하여 인산비료를 생산하게 된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20세기 초 암모니아 합성에 의한 질소비료 생산기술이 개발되면서 농업생산력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산업혁명에 의한 석탄에너지 사용의 증대는 산업도시를 중심으로 심각한 환경오염문제를 야기하였다. 증기기관의 작동을 위한 석탄의 연소는 막대한 양의 먼지와 이산화황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농업부문에서의 인조비료의 도입은 농경지 부근의 하천, 호수, 바다의 부영양화, 인조비료에 잘 작용하는 작물로의 단순화, 농업부문에서의 빈부격차의 심화, 농촌인구의 도시로의 압출 등의 환경 경제,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하였다.

본래 로마제국 멸망이후 서유럽은 오스만 제국 등 중동 문명권에 대체로 수세적이고 문명적으로도 수혜자의 입장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훨씬 강력해진 유럽은 중세 이래 유지되어 오던 유라시아 대륙의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청나라로 대표되는 이슬람세력, 인도세력, 중국세력을 연달아 제압하며 세계의 지배자로 떠오르게 된다.

 

  1. 생태혁명과 생태문명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이스터 섬의 부족과 마찬가지로 자원을 공유하고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폴리네시아의 이스터 섬이 고립되어 있었듯이 오늘날 지구도 우주공간에서 고립되어 있다.

이스터 섬의 주민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탈출할 곳도 없었고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듯이 현대 지구인도 곤경이 심화될 때 의지할 곳이 없다.

이것이 이스터 섬의 멸망을 우리 미래의 은유이자 최악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박사는 외계인과 접촉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외계인과의 접촉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그곳의 원주민들이 거의 전멸에 가까운 몰살을 당한 것처럼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령 외계인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를 몰살시키기 전에 우리 서로가 이스터 섬의 여러 부족들처럼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멸망한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들을 그저 관광자원으로 여기는 것처럼 후일 외계인들도 우리 지구를 하나의 관광 코스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생태문제를 ‘우리가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기업은 환경정화 장치니 폐수 처리 장치를 사용하여 이 지구를 살리자’ 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구조와 연결시켜야 한다. 지구생태의 문제는 한 개인이나 기업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 체제인 자본주의 생산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전 지구적 위기와 생태혁명
생태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것은 지구의 환경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이러한 대부분 공감대를 형성하는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IPCC가 채택하는 “정상영업”이라 부르는 사회경제적 시나리오를 따르고 있다.

우리 시대 위기의 핵심인 자본주의와 환경의 적대적 관계는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녹색사상가들보다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사회주의자들이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주된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의 본질과 논리이다.

모든 공동체 하나하나, 모든 지역 하나하나가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새로운 체제는 어떤 수요와 욕구보다도 인간의 기본적인 수요-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물, 안전한 식품, 적절한 위생, 사회적인 교통, 보편적인 의료지원과 교육, 이런 것들은 토지와의 지속가능한 관계 위에서 가능하다.

경제논리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되는 현대 자본주의 아래서는 지구에 밝은 미래는 없어 보인다. 지구와 평화롭게 지내는 생태혁명는 경제문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는 이윤보다 인간과 자연을 우선시함으로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술적 접근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생태적ㆍ공동체적 혁명이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문명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막이 남는다. 엄청난 기후변화와 생태계의 변화로 인해 수많은 인간과 생물종이 위험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치유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문명 자체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오늘날 생태문제의 핵심은 막다른 길에 다다른 자본주의라는 문명체제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근대 세계의 혁신 원동력으로서 역할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축적의 사회적 비용을 빈곤층, 저개발국, 더 나아가서는 지구 전체에 전가하기 때문에 점차로 인류의 발전과 생존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GDP에 매달리는 구식 경제의 꿈을 초월해야 할 때가 되었다. GDP증가는 전쟁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거나 전쟁준비에 의해서만 보강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팽창된 잉여를 전쟁이란 엄청난 낭비를 통해 흡수할 뿐, 균등하게 배분하거나 공황을 유발하지 않고 해소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더 나아가 금융, 보험, 독점기업이란 수단을 통해 유지되는 거짓 안정은 역동적인 평형상태를 달성할 수 있는 효율적인 사회적 수단의 사용을 좌절시킨다. 그래서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장기적 해답은 자연과 인간이 상호 의존적이고 역동적인 공동체를 재건하는 것이다.

생태혁명은 자본주의가 파괴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복원하고 모든 인간과 토지를 함께 끌어안는 공동체적 신진대사 체계를 추구하는 생태사회 혁명을 수반한다. 이 방식은 필요한 경우에는 대안 기술의 적용을 수용하지만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사회의 구성을 그 바탕이 되는 현존하는 생산의 사회적 관계에서부터 바꾸는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문명사적 전환을 의미하며 이 목표는 지속가능한 인간개발의 과정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생산과 분배, 교환과 소비를 평등하고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요구된다. 인간/자연의 상호 신진대사관계의 균열이 지속되는 것을 막고 보다 유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생태적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화석연료가 소진되어야 생태문명이 도래할 것인가?
흔히 환경오염의 원인에 대해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사용, 울창한 산림남벌, 도시의 광역화, 화학배합물질의 사용 등을 꼽는 것이 정설이다. 이에 따른 결과는 생태계의 교란으로 이어지고 지구는 점점 더 따뜻해지는 온난화로 이행된다.

지구 온난화의 허점을 파고들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지구의 순환이라는 반대론자의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 더워져 버린 지구라는 인식은 이미 깊숙이 각인되었다. 우리가 지금껏 지구 온난화와 생태변화에 대해 접근한 방식은 과학적인 사고에 의한 예측적 기후모델에 의한 결과의 산물이다.

유한한 자원에 대한 활용과 분배에 대한 헤게모니는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왔지만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오류를 극복할 해결책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이익에 대한 분배의 과정을 경제적이고 이성적인 합리성을 요구한다.

이윤의 창출과정은 지속가능한 범주의 개념을 모두 경제적인 시스템으로 해석하며, 자본주의는 과실의 분배보다 이익의 창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분배의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시스템을 애초에 포기하였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분배의 평등의 해결수단으로 어느정도 사회주의적 요소를 들여와 체제 내부의 모순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비중을 더욱 싣게 되는 수정자본주의(修正資本主義, Modified Capitalism)로 진화하게 된다.

한편,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의 고유한 창조력, 즉 노동에 핵심적 가치를 심는다. 노동은 유한계급의 구별을 철폐하고 자본소외에 대한 이상향이 바로 유토피아라는 사상을 내세웠다. 마르크스는 물질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하다는 관념인 유물론에 입각하였다.

무장봉기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대표되던 혁명적 사회주의의 폭력성을 배격하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 평등도 달성하자는 사상인 사회민주주의(社民主義)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사회주의 이념을 말한다.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혁명 등으로 급격하게 무너뜨리지 않고 점진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대의민주주의를 위한 정책과 소득 재분배 정책, 그리고 사회 전반의 이익과 복지 정책을 포함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이다.

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의 논쟁을 넘어 단순한 도식으로 풀어보면 인간과 자연은 공생의 관계, 즉 지속가능성의 범주의 한 묶음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과 조우하게 된다.

생태혁명을 위한 성공적인 수단은 탐욕을 경계하고 분배와 평등의 관계로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을 대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인류는 현재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환경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데 생태와 문명의 기계적인 이해에 근거한 사회적, 문화적 패턴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까운 미래 우리가 직면하게 될 환경적 대참사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류문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후기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과 맞물린 문명의 위기가 나날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일찍이 예고되었던 자본주의적 모순이 각종 경제 및 사회지표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삐 풀린 소비의 욕망에 굴복한 무분별한 자연 개발과 환경 파괴는 멈출 줄을 모른다.

생태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
다양한 영역에서 이러한 위기를 포착하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기후변화 위기의 예측된 결과를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기반구조를 생태문명에 적합한 구조로 설계를 변경하여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현상 유지를 위한 사소한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 불가능한 화석연료 기반 경제에 독성 화학제품인 ‘녹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제3의 길(The Third Way)”이다.

행성의 자원을 이용하고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산업문명에서의 세계경제는 자연을 소멸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민들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지구 행성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모습은 공간을 점유하는 자연환경에 의존하며 전체 생명체과 개별 생명체 간의 긴밀한 연결망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우리는 이제 생태문명의 꿈을 꾸어야 한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산업문명에 연료를 공급한 화석연료 경제 시스템과 화석연료 고갈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맞게 될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다를까? 생태문명에 대한 이러한 변화와 대비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인간중심의 철학과 사상 및 제도로 형성된 산업문명은 어떻게 인류를 파국으로 인도하였는가…

어쩔 수 없이 맞게 될 생태문명
지구는 모든 인간이 선진국 국민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하며 이를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산업문명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상정하고 있는 유토피아는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구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구를 끊임없이 개발하다 보면 모든 인간이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허상이었다. 허상을 쫓으며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근원인 지구를 파괴한 결과 우리는 스스로의 존립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저탄소 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을 지난 수 세기 산업문명을 지탱해 온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함을 의미한다. 석유는 검은 황금으로 현대 산업문명의 기반이자 상징으로 현대 문명 그 자체다.

전세계적으로 농업, 수산업, 공업, 수송, 통신, 전력, 군수산업 등 모든 현대적 산업은 석유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자, 군사적인 전략물자이다. 금융 시장도 석유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유 중의 하나도 석유결제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위상 때문에 산유국은 언제나 강대국들의 이권각축 현장이 되었다. 지구 자원이 한정된 만큼 화석연료도 유한하다. 유가가 뛸 때마다 석유 고갈론과 피크오일(peak oil) 이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하지만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나지 않았듯 석유가 부족하지 않아도 석유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셰이크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전 석유장관의 말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비외른 롬보르도 “인류가 석기 사용을 중단한 것은 청동과 철이 더 뛰어난 재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에너지 기술이 더 나은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석유 사용은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의 고갈은 불가피하게 에너지 수급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 전반의 구조개혁을 필요로 한다. 더 본질적으로는 인간 중심적인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인간과 자연 기술과 환경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문명’으로 도약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환경위기는 자연에 대한 착취와 파괴를 바탕으로 오직 인간의 재화공급에만 치중하는 ‘산업문명’ 그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해 ‘기후변화에 대한 제5 차 종합 보고서’ 에서 지구 기온 상승 목표 한도인 2℃를 지키기 위해선 온실가스 배출을 금세기 내로 ‘제로(0)’ 로 줄여야 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종(種)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문명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목표와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는 현대 문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생태문명으로 도약하는 길뿐이다.

목전에 닥친 절박한 위기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에게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결과를 최대한 정확하게 예측하여 이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의 농도 상승이 가져올 단기적 장기적 변화를 예측하는 기후과학과 생태학이 육성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후변화가 인간 사회에 가져올 영향에 대한 지리학 및 사회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제 분야에 대한 지원 역시 절실하다. 이러한 연구는 반드시 개별 분과학문의 테두리 안에서가 아니라 상호 연동되는 현상에 대한 탐구로서 융합적 연구로 진행되어야 한다. 

산업문명과 자본주의 폐해는 생태문명으로 치유해야
선진국에서는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추구를 멈추고 후진국은 인구증가를 억제하여야 하며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환경 친화적이며 자원 절약적인 기술이전이 촉진되어야 한다. 기후변화, 생물종 다양성, 사막화, 식량 에너지 문제 등 작금의 지구환경 문제는 국제적인 협력과 공조 없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다.

특히 지금까지와 같은 서구적 시각인 유목민적인 생각과 행동으로는 문제를 경제사회적 약자와 약소국으로 전가하여 악화시킬 뿐 해결의 실마리 발견이 힘들다. 지구사회가 인류역사 발전의 환경적인 측면을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환경 혁명을 위한 공생 공영을 위한 협력을 심각하게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 환경 혁명의 방향은 인간과 자연이 공진화 한다는 관점에서 생태계의 원칙이 존중됨과 동시에 사회 및 문화의 발 전과 기술진보 등으로 경제활동의 효율성 향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석유는 본질적으로 재생 불가능하며 따라서 공급에 한계가 있는 자원이다.

지구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고 단순하고 작은 기술로도 이용할 수 있는 태양에너지나 풍력 등에 바탕을 둔 에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이에 맞추어서 경제와 사회와 문화도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야만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재생가능 에너지는 단순한 화석연료의 대체물만은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인류문명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가 중심이 되는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재생가능 에너지에 기반을 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태양에너지 난방, 발전, 풍력발전, 바이오매스 생산으로 에너지를 얻는 것이 한 순간에 갑자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긴 시간표와 장기적인 시나리오가 필수적이다.

1972년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로 환경과 자원의 한계 문제가 부각된 이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에 관심이 일어났다. 그 후 40년 동안 파국을 늦추기 위한 노력은 지속적으로 계속되었으나 확실한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기존 근대체제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근 300년 이후 20세기 후반 탈(脫)근대(postmodern)란 이름으로 시작된 변화의 시기는 인류사회가 안정된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농업문명 시작 때도 오랜 시간에 걸쳐 대형화된 전쟁이 세상을 휩쓸던 상황을 여러 문명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농업사회 체제 정착에 그런 과도기가 필요했던 것처럼 산업화 사회 체제 정착에도 2백 년의 과도기를 거쳐 오늘날 마지막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탈근대와 산업문명의 황혼기에서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넘어선 진정한 ‘생태문명(Ecological Civilization)’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태혁명과 생태문명은 제3의 길이다…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라는 양극단을 넘어, 약자 포용 ‘사회적 평등’ 강조하는 제3의 길(the third way)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단점을 배제하고 장점만을 융화시킨 새로운 개념의 차별화 전략이다.

‘제1의 길’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르는 포괄적인 복지국가를 목표로 했던 고전적 사회민주주의라고 하면,, ‘제2의 길’은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신자유주의를 상징한다.

제3의 길은 제1의 길에 대해선 시장의 효율성을 부각시키고 제2의 길에 대해선 사회적 평등을 강조하는 전략으로 변증법적 통합을 모색한다.

‘급진적 중도, 새로운 민주국가, 활발한 시민사회, 민주적 가족, 신혼합경제, 포용으로서의 평등, 적극적 복지, 사회투자 국가, 세계주의적 민족, 세계적 민주주의’가 그 의제들을 구성되며 중심적 가치는 사회적 평등이다.

후기 모더니티는 빈곤층이 사회 중심에서 강제적으로 배제되는 동시에 부유층은 스스로 배제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국가의 일차적 과제는 분열된 사회를 포용적 공동체로 새롭게 재구조화하는 데 있고 대표적인 두 정책 아이디어는 ‘사회 투자’와 ‘적극적 복지’다.

사회 투자가 인적 자본·사회 서비스 지출에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을 말한다면, 적극적 복지는 교육개혁·직업훈련 등에 주력해 일자리 창출을 복지의 중심으로 삼는 것을 지칭한다. 이러한 정책들을 추진함으로써 세계화 및 정보사회의 도래에 적극 대응하려는 전략이 바로 제3의 길이다.

 

4. 베세토·글로벌튜브는 생태문명 견인차/플랫폼이다

베세토튜브는 아시아 중핵국가인 한중일 3국의 국제협력 프로젝트로 1차문명인 농업문명(Agricultural Civilization)과 2차문명인 산업문명(Industrial Civilization)을 거쳐 3차문명인 생태문명(Ecological Civilization)으로 전환하는 시금석(試金石, touchstone)이다. 

베세토튜브(besetotube, 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는 베이징(北京,Beijing)↔서울(首尔,Seoul)↔도쿄(东京,Tokyo)구간을 육상-해상-육상-해상-육상으로 경유하는 최단 구간(약 2,177km)에 건설한 이후 아시아튜브, 태평양튜브, 북극해튜브, 대서양 등으로 연장될 글로벌튜브는 5대양 6대주를 연결한다.

지구공학적 차원의 사상 최대규모 프로젝트로 베세토튜브연구회가 추진하는 기술표준은 하이퍼루프 등 기존 방식과는 달리 다중튜브(Multi tube)와 삼상궤도(三相軌道, Three Phase Track)기술 방식을 특징으로 하며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데 대략 100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며 1억명이 넘는 노동자가 필요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겠지만 여기에는 큰 기회가 잠재되어 있다. 새로운 교통 매체인 베세토튜브와 글로벌튜브망은 화석연료의 고갈과 생태문명 시대를 대비하는 혁신적인 교통 시스템으로 세계를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어 진정한 글로벌 시대를 열어줄 것이다.

‘베세토튜브연구회’는 삼상궤도(三相軌道, Three Phase Track)기술 기반의 극초고속 튜브셔틀 시스템의 연구과 함께, 베세토튜브, 아시아튜브, 태평양튜브, 북극해튜브 건설을 위한 국제사회의 각 행위자인 국가, 국제기구, NGO, 개인들의 기대가 수렴되는 일련의 국제적 규범체계 및 실행절차를 의미하는 국제레짐(international regimes) 이론을 개발코자 한다.

이렇게 개발되고 축적된 지식과 지혜는 천하일가(天下一家)의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들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소강사회(小康社會)와 대동사회(大同社會)의 ‘마실길’인 베세토튜브(한중일), 아중해튜브(한중일+러시아, 대만), 아시아튜브(아세안, 인도아대륙, 중동),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 건설에 활용될 것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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