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협치(三位一體協治, Trinity Governance)모델과 베세토튜브

  1. 협치(協治, Governance)의 함의(含意)
  2.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와 지속가능성
  3.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최소화는 온전히 시민사회의 몫
  4. 삼위일체협치 모델과 베세토튜브(글로벌튜브)

  1. 협치(協治, Governance) 함의(含意) 

거버넌스(governance)는 통치(統治, government)에 대비되는 정치·행정학 용어로 협치(協治) 또는 공치(共治)로 번역된다.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많은 주장의 핵심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른 ‘통치’(統治, government)방식으로 사회를 다스리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협치는 통치보다 권력이 분산된 형태의 정치를 뜻하며 ‘협력형 통치‘의 약자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이미 매우 복잡하여, 법치(法治) 혹은 관치(官治)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아졌다.

통치의 방식은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오고 보다 많은 비용을 낭비하기 때문에, 시민과 이해 당사자들을 의사결정에 참여시킬 때 오히려 정치와 행정의 정책목표가 더 잘 실현되고 있다. 수직적 상명하달식의 통치보다 권력이 분산된 형태의 정치로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말하기도 한다.

UN 거버넌스 정의
국제연합(UN)의 여러 기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거버넌스 내용은 참여(Participation), 법의 지배(Rule of law), 반응성(Responsiveness), 투명성(Transparency), 합의지향(Consensus oriented), 공정성과 포괄성(Equity and inclusiveness), 효과와 효율(Effectiveness and Efficiency), 책임추적성 (Accountability)등이다.

거버넌스는 행정이 주체가 되는 ‘정책과정’과 시민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회과정’, 그리고,의회, 정당, 상하위 정부기구 등과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정치과정’ 모두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민(民)-관(官)-정(政)’의 융합적 상호작용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거버넌스는 모든 사회 변화의 양상과 마찬가지로 발전과정을 거친다. 거버넌스(협치)는 시민과 행정, 민과 관이 협력하는 것이다. 민관협력은 시민이 참여해야 시작된다. 시민이 직접 정책결정과 실행에 참여할 때 비로소 그 참여 동기가 분명해지고 지속된다.

지속되어야 참여의 수준이 향상되고, 참여의 효능이 실제로 드러나고 다른 이들도 공감하게 된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협력의 필요성이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이를 안정화하기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따르게 된다. 결국 협치란 시민의 참여가 지속되기 위한 행정의 전략인 셈이다.

거버넌스는 정부(government)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통치행위 자체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거버넌스 이론을 수립하는데 기여한 로즈(Rhodes)는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각 행위자 사이의 상호 의존적 네트워크 관계 형성을 통한 정책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즉 거버넌스는 조직 및 사회가 스스로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의미하며 통치자와 소수의 정책 결정자의 생각에 의하여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구조가 아닌 정책과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각각의 이해 당사자가 끊임없는 토론과 논의를 바탕으로 합의된 기준을 만들어 가는 것이 거버넌스인 것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통신기술을 비롯한 정보기술을 넘어서 인공 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지능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사회는 초연결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초연결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람과 기계가 촘촘하고 폭 넓게 연결된다.

정부와 정치제도 중심의 수직적이고 위계적 정치 체계는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시민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수평적 네트워크 거버넌스로 전환되고 있다. 시민이 주도하는 디지털 네트워크의 힘은 지난 대통령 탄핵 촛불시위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재 급속히 진화하고 있는 지능기술의 발전은 우리 정치행태와 민주주의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무엇보다 시민참여의 범위가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개인이 정부정책을 결정하는 일상의 정치과정에 항시적으로 참여하면서 시민중심의 거버넌스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지능기술을 활용하여 인간 두뇌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정책결정의 효율성과 합리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정책결정 과정에서 인공지능(AI)과 기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람이 아닌 기계에 의한 민주주의가 확산될 우려도 있다.

거버넌스 현황
사회연결망서비스(SNS)의 확산에 힘입어 정부와 정치엘리트에 저항할 수 있는 개인의 힘은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국민 개개인이 품고 있던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SNS를 통해 결집하면서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이 기존 정치체제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이 대표적 사례이다. 부패한 독재 권력에 대한 분노가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결집하고 확산하면서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의 독재정권은 무너졌다. 한국의 디지털 시민은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냈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과 한국의 촛불 혁명 둘다 부패한 권력을 몰아냈지만 새로운 민주주의 완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정부의 유지, 발전은 전혀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이 저항의 힘을 강화했다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지능기술은 통치의 능력을 향상하는데 도움을 준다. 많은 미래학자가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AI)이 국회를 대체하리라 전망한다.

인공지능(AI)이 국회의원 보다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국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언 피어슨 (Ian Person) 퓨처라이즌(Futurizon) 소장은 미래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국회의원이 아닌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Big Data)가 시민들의 대표가 되어 협상하고 사회적 합의를 할 것이라 주장한다.

지금과 같은 거대한 조직을 가진 정당은 점차 사라질 것이고 디지털 네트워크 정당이나 시민들이 주도하는 ‘정책 네트워크’가 입법기능을 대신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정보기술이 정치 엘리트의 권력을 견제하고 시민참여 거버넌스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활용되었다.

정책결정 과정에 지능기술을 활용하는 사례가 급속히 퍼지고 있으나, 여전히 인간이 정치과정을 주도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Big Data)는 인간의 판단을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지능기술이 정치과정을 주도하는 알고리즘 민주주의(Algorithm Democracy)가 대두 될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 민주주의
엘리트가 주도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뿐 아니라 국회, 정당 등과 같은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는 급속히 낮아지는 반면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인의 정치적 역량은 나날이 발전 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개인들의 정보 습득이 많아지고 사회적 쟁점에 대한 이해와 판단력이 정치 엘리트보다 결코 낮지 않다.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으로 개인들은 더 고립된 존재가 아닌 촘촘히 연결된 정치세력으로 변모했다.

정보기술의 발달은 네트워크 개인(networked individuals)을 확산시켰고, 이들이 하나로 결집한 세력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면서 권력의 축은 점차 엘리트에서 시민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연히 대의 민주주의는 약화되면서 시민들이 직접 관여하는 참여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향후에는 지능기술의 발달과 함께 권력의 축이 시민에서 인공지능(AI)으로 옮겨가는 알고리즘 민주주의가 대두할 것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빅데이터(Big Data) 등 인간과 사물의 사고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지능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사회 전 분야에서 일상화 되는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ies)로 자리 잡을 것이다.

정보기술(ICT)이 인간의 정보 활용 능력을 높이면서 인간의 판단을 지원하는 도구적 역할을 했다면, 지능기술은 인간의 의사결정력을 높일 뿐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집행하면서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한편 급속히 진행되는 사회 복잡화와 미래에 대한 불예측성 또한 지능기술에 의존하는 알고리즘 민주주의(Algorithm Democracy)의 등장을 촉진시킬 것이다. 후기 산업사회(Post Industrial Society)가 심화되면서 사회구조는 점차 더 분화되고, 구성원들 간의 이해관계 또한 복잡해진다.

사회변화 속도 또한 빨라지면서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미래예측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복잡하고 불안한 쟁점들이 돌출하면서 사회구성원의 합의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져 결국 인간의 인지·판단 능력을 향상시키는 지능기술에 대한 의존은 불가피해 질 것이다.

시민을 위한 알고리즘 (Algorithm)
민주주의를 위하여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정치 엘리트가 주도하는 ‘철인정치 (Philosopher King)’를 설파한 이후 이상적 민주주의 모델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의 논쟁은 계속되었다.

‘대표’와 ‘시민’ 가운데 누가 국가운영을 주도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산업혁명 후 현대식 민주주의가 도입된 후 2백 년 넘는 기간 동안 대의민주주의가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거버넌스 방식으로 채택되었다.

20세기 말부터 본격화된 정보기술 혁명은 대의민주주의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함께 정치적 대표와 일반시민 사이에 존재하던 정보와 전문성의 비대칭성이 무너지면서 대의제도에 대한 불신은 높아지고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대한 욕구는 나날이 높아졌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선진민주주의 국가 시민들의 대의제도에 대한 불신은 동남아나 중국과 같은 후진민주주의 국가보다 훨씬 높다. 세계 각국의 시위 발생 빈도를 보더라도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가 높을수록 더 높다.

대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시위 참여 증가는 우리 사회에서도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최근 원자력발전소 공사중단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공론화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스스로가 권력 행사를 방기하고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자, 막상 위원회는 자신들이 최종 결정권한을 갖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양상이 표출되었다.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시민들이 정부의 일방적 의사 결정, 즉 대의민주주의 방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부-시민 협치 거버넌스는 향후 정부의 일상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능기술이 활약하는 알고리즘 민주주의가 확대되면 원자력발전소 쟁점과 같은 뜨거운 감자격인 각종 정책은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

주관과 감정이 개입된 사람의 판단보다 데이터에 근거하는 인공지능의 판단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합리적 결정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 정책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결국 빅데이터(Big Data)와 인공지능(AI)이 내린 결론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남을 것이다. 또한 공동체의 미래를 인공지능(AI)의 손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치는 결국 사람에 관한 것이며, 알고리즘 민주주의의 운영주체 역시 사람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정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확한 분석 자료를 제시한다 할지라도 사회구성원들 간의 이해와 신뢰, 그리고 토론과 설득을 통한 합의 문화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알고리즘 민주주의(Algorithm Democracy)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지능기술의 발달에 못지않게 사람 간의 교감기술, 감정기술, 배려기술, 판단기술, 리더십기술과 같은 인간기술에 대한 교육과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

 

  1. 굿 거버넌스 지속가능한 발전

유엔을 중심으로 2015년 이후 발전 어젠다로서 기존 새천년개발목표(MDG)를 대신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에 대한 논의는 인류사회의 새로운 발전목표를 모색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SDGs는 경제적 번영, 사회적 통합, 환경적 책임과 같은 보편적인 발전목표들을 지칭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지속가능발전의 기반으로 ‘굿 거버넌스’란 정치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굿 거버넌스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굿 거버넌스란?
첫째 굿 거버넌스는 자체로 중요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로서 일국적인 차원에서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둘째 굿 거버넌스는 다른 경제ㆍ사회ㆍ환경 발전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즉 지속가능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셋째 지속가능발전은 글로벌한 문제로서 지구적 차원에서 각국의 헌신과 기여 및 협력이 중요하다. 우리가 발전하려면 모두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글로벌 굿 거버넌스’의 시각이 요구된다.

넷째 일국적이건 글로벌 차원이건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시민사회를 포함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한국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 및 비정부 행위자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민주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수립하고 외부적으로 지구적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요청으로 이어진다. 제프리 삭스 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는 한국의 발전이 국제사회에서 지속가능발전의 “빛나는 본보기”라고 지적한바 있다.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은 1990년대 초반부터 사용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987년에 세계은행(World Bank) 보고서 등에 거버넌스 이슈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국가발전이나 경제개발 실패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나쁜 거버넌스(Bad Governance)라고 지적되면서 이를 계기로 대칭적인 차원의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국내외적으로 개혁의 방향을 말할 때 좋은 거버넌스라는 용어를 자주 인용하면서 거의 오남용 수준에 이를 만큼 그 사용빈도가 급증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심층적인 국내외 연구는 아직도 크게 진척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거버넌스에 해당하는 용어마저 통일되어 있지 않다.

경영분야에서는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로 번역하여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으나 지배라는 어휘는 여러 차원에서 부적절하며 정치 행정분야에서는 그 번역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한때 일부에서 공치나 협치 등으로 번역하기도 했으나 최근 추세는 ‘거버넌스’로 고착되고 있다.

사실 거버넌스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협회나 소규모 일반조직 등에도 널리 사용되는 개념이므로 이를 행정에만 국한하여 공치(共治)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협치(協治)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협치(協治)는 “협력적 거버넌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거버넌스를 협치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독단적이고 수직적인 거버넌스가 있을 수 있는가 하면, 협력적이거나 수평적인 거버넌스가 있을 수 있으며, 아울러 공간적으로 매우 다원적인 형태의 거버넌스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거버넌스는 보다 넓은 차원의 다양한 이해당사자간 관계 속의 권위배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미로 굿 거버넌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합의된 것이 없다.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작업은 엘리트 관료와 지배정당이 주도하는 폐쇄적 정책결정 패턴에 대한 불신, 장기침체와 공동체의 균열, 세대와 지역 간 대립구도 격화 등과 같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대안으로 ‘굿거버넌스’가 창출될 때 가능할 것이다.

거버넌스는 대내외 환경변화에 부응하는 정부-시장-시민사회의 협력적 통치(協治)를 의미한다. 좋은 혹은 나쁜 거버넌스는 국가별 발전성과의 차이와 직결된 문제이다. 이때 총체적 국가 경쟁력을 구성하는 3대 요소인 국부, 국질, 국격의 거버넌스 방식은 각기 역동적과 정태적, 포용적과 배제적, 이타적과 이기적 등으로 대비가 가능하다. 

굿거버넌스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오래되고 보편적인 현상이다.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등에서는 참여, 투명성, 책무성, 포용, 법치, 합의, 3Es(효율성, 효과성, 형평성), 법치주의 등과 같은 성격을 지닌 거버넌스를 좋은 거버넌스로 보고 있다.

요동치는 국제정세 환경에서 확실한 안보와 안전을 전제한 상태에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계속 도전하고 변화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하고 복잡한 관료제는 안정적·반복적 업무수행을 위해 세밀하고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관리된다.

따라서 공공부문의 관료제 조직은 민간의 역동적 조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고, 경직적이며, 답답하고, 소모적이라 변화하기 어려운 존재로 간주되나 눈높이가 높아진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시민이 직접 정책결정과 실행에 참여하는 협치(協治)를 원하고 있다.

부패는 최소화되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책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나아가 사회와 경제의 복잡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나 관행은 한번 형성되기는 어렵지만 일단 안정화되면 오래 지속하면서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거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로 의존 현상을 유발한다.

조직이나 개인이 미래를 선도하는 주역으로 부상하거나 비교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유지된 경로를 창조적으로 파괴해야 한다. 기업이나 개인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환경변화에 취약한 작은 나라들도 혁신적 변화를 중시해 왔다.

이스라엘, 아일랜드, 싱가포르 등은 신생 벤처기업방식을 벤치마킹해 국가경쟁력을 제고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강소국 사례는 효율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적 국부의 증진 사례라는 점에서 편향적이므로 균형발전의 견지에서 복지국가를 선도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굿거버넌스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2015년 9월 유엔은 2030년까지 인류가 직면한 지구촌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발표했다. SDGs는 유엔이 지난 15년 간 추진해온 ‘새천년개발목표(MDG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잇는 후속 프로그램이다.

주로 최빈국의 빈곤문제 해결과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개발원조에 중점을 둔 8개의 MDGs를 넘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대상으로 경제, 사회, 환경의 균형 발전을 위한 17개의 목표와 169개의 세부 목표로 구성되었다.

17개의 목표 중 마지막 두 목표(Goal 16 & 17)는 ‘평화, 정의, 제도’와 ‘지구촌 협력’으로서, 좀 더 구체적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사회 증진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사법제도, 모든 수준에서 효과적ㆍ책무성있는ㆍ포용적인 제도 구축’과 ‘이행수단 강화 및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재활성화’를 제시한다.

이 두 목표는 본질적으로 정치의 문제다. 바꿔 말하면 경제, 사회, 환경 영역의 지속가능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국내정치적으로 평화로운 사회와 법치 그리고 효과적이고 책무성 있는 정치제도를 확립하여야 하며, 국제정치적으로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헌신과 이행을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협력과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 담론에서는 이를 ‘굿 거버넌스’로 부른다. 아시아의 중핵국가로서 대한민국은 “더 넓은 시야, 보다 능동적인 자세로 국제사회와 교류하고 이를 통해 세계의 평화와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그리고 “범세계 차원에서 지구촌 공통 관심사에 관해 적극 협력하고 처방을 내리는 나라”로 위상을 정립하여야 한다.

한국의 글로벌 거버넌스 수준
한국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되지만, 세부 지표 상 중요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세계은행 자료는 한국의 국내 거버넌스 수준은 OECD 국가들의 평균 이하로 평가 받았다.

이코노미스트의 민주주의 지수를 봐도 한국은 거버넌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의 ‘정치참여’ 부문의 평가에 있어 다른 부문에 대한 평가와 비교하여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이익만 추구하지 않고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국제관계의 틀 속에서 국익 개념을 설정하고 이를 추구해야 하며 글로벌 외교에 있어 “제로섬(zero-sum)의 경쟁이 아닌 윈-윈(win-win)을 위한 공존”과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나라 소프트파워가 강한 국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글로벌 굿 거버넌스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한국의 글로벌 거버넌스 수준은 대단히 취약하다. 미국의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가2003년부터 발표해온 국가별 개발기여지수(Commitment to Development Index, CDI)는 2015년 평가에서 27개 대상 국가 중 26위를 기록하여 최하위의 평가를 받았다.

한국은 경제적 위치, 민주주의적 지위, 그리고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의 글로벌 거번너스 외교 성과를 보인다. 스웨덴, 캐나다, 네덜란드 등은 명실공히 국제적으로 선한(Global Good Samaritans)국가의 전형이자 선두주자로서 잠재력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주는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잠재력에 비해 성과가 저조한 느림보 혹은 늦깎이(laggard)의 전형이다. 경제적 위치, 민주주의적 지위, 그리고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준의 글로벌 거번너스 외교 성과를 보인다. 한 국가의 글로벌 거버넌스 외교의 성과가 그 국가의 객관적인 잠재력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즉 잠재력을 잘 활용하여 선두주자가 된 스웨덴, 캐나다, 네덜란드 같은 국가들이 있는가 하면, 한국과 같이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늦깎이로 전락하기도 하고, 코스타리카나 남아프리카처럼 잠재력이 결여되었어도 노력 여하에 따라 선한(Good Samaritan) 국가의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1.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최소화는 온전히 시민사회의 몫

거버넌스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핵심 이해관계자가 함께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조정해 가는 과정이다. 오늘날 다원적 민주제 국가는 제1섹터로 절차적 합의에 의해 위임된 삼권분립적 통치권력과 제2섹터로 경제사회를 구성하는 시장시스템 그리고 제3섹터로 일상적 삶의 현장인 시민사회로 분화되어 있다.

제1 섹터인 공공영역인 행정과 정치 분야는 합의 위임된 강제력을 집행하는 국가존립의 뼈대로 이다. 위임된 강제력/공권력은 공정하고 불편부당하게 집행되어야 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따뜻한 권력은 사회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필수요소다.

그러나 사회의 최상위 시스템인 국가, 정치, 행정, 사법 시스템은 우리의 일상을 편하고 즐겁게 하는 영역이 아니라 불쾌하고 짜증스러운 주제로 변질되고 의미없는 합리성과 목표를 추구하는 성과주의가 시민의 일상을 과도하게 짓누르고 있다.

제2 섹터인 시장시스템은 생활에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상의 영역이다. 정치적 합의체라는 인위적 사회구조 속에 사는 개인으로서 시민은 자신의 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초재를 혼자서 만들고 공급할 수 없다. 따라서 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하여 교환과 매매를 통하여 제공받는다.

자본주의 사회가 보편화되면서 천부적 자연재인 토지와 인간의 노동, 그리고 교환의 편리한 수단으로 등장한 화폐와 허상인 신용까지 상품화시키고, 자본의 탐욕을 실현하려는 시장에 종속시키면서 인간사회에 빈곤과 소외라는 갈등과 모순이 일상화되고 있다.

시민사회는 제1섹터와 제2섹터의 기반 구조에서 일상적 삶을 펼치는 영역으로 각 섹터는 서로 관계하고 의존하는 동시에 상호 견제 및 보완 그리고 긴장하는 관계에 있다. 정치와 행정, 시장도 결국은 시민사회의 일상적 삶이 풍요롭고 즐겁기 위해 필요한 기제이다.

그러나 정부와 시장 시스템 자체가 스스로를 강화하고 확장하면서 일상적 활동을 억압하고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로 시민사회는 각성과 조직화를 통해 정치와 시장을 원래의 기능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임무를 부여 받게 되었다.

시민사회는 기존에 잘못된 정치와 사회경제 시스템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동력이자 주체의 영역으로 강력한 시민 역량은 민주주의의 가장 확실한 방어력이다. 시민의 힘을 강화시키고 시민사회의 운동방향을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예방하고 시민적 역량이 성숙되어야만 비가역적으로 민주주의가 전진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마치 한 그루 나무처럼 제대로 된 토양 조건과 기후 환경이 잘 맞아야 무성하게 자라고 성숙할 수 있다. 시민사회라는 일반적 조건이 바로 민주주의의 토양이자 받침대이며, 신뢰를 기초로 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 여부가 민주주의 운영과 성공의 열쇠이다.

3섹터인 시민사회
정부(제1섹터)와 시장(제2섹터) 사이의 대안적 영역을 가리키는 제3섹터는 다소 생소한 용어이지만 오랜 기간 조합이나 비영리조직(non-profit organization)의 형태로 정부와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왔다.

최근 들어 글로벌화, 경제위기, 인구고령화 등 환경 변화에 따라 점점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모순을 해결할 한 가지 대안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부영역과 시장영역을 감시·견제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중간 영역에서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제3섹터의 역할과 속성이 공공성 위기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국가와 기업에 이어 시민 스스로의 공동체 공간인 제3섹터의 공동체 활동은 사회 서비스, 건강, 교육과 연구, 예술, 종교 등 전 분야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제3섹터는 활성화된 시민사회와 자원봉사와 같은 자발적 공동체 활동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많은 경제활동을 수행하여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실업을 해소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현재 제3섹터는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와 신뢰를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제3섹터가 일부 취약계층을 위한 것만이 아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두와 관련된 일인 이유이다.

국가 중심 민주주의에서 국민 중심 민주주의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국민이 직접 정책 기획 및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확대되고 자발성을 가진 개인들의 연합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제3섹터는 NPO, 시민단체 그 외의 민간의 비영리단체를 의미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으며 시민단체를 체제외적인 비판세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지속 가능한 대안세력으로 인식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접근하여 바람직한 정부와 시민사회와 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시장실패, 정부실패
시장경제의 원리는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원이 저절로 잘 배분된다는 것이다. 시장이 자유롭게 굴러가는데도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상황을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고 한다. 그 대표적 사례로 과거 1929년 미국과 전 세계에 몰아친 대공황(1929)을 들 수 있다.

대공황의 영향으로 실업자의 증가와 중산층의 몰락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초래하였다. 일본에서는 1931년 하마구치 내각이 실각하면서 입헌 민주주의(大正デモクラシー)의 종언과 만주 침략을 알리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유럽에선 파시즘의 등장을 촉발하여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빈부격차나 환경파괴가 대표적인 예이며 사회에 정작 필요한 공공재의 공급이 달릴 수도 있으며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대해 정책목표를 가지고 개입했다가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시장가격을 왜곡시키는 것을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라고 하며 관료의 부정부패나 관료주의가 이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공장 매연 때문에 대기와 식수의 오염이 심해지면 정부가 세금이나 벌금 등으로 공해 발생을 억제할 수 있고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소득재분배 정책을 쓰는 것도 시장 실패를 정부가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정부가 섣불리 앞에 나서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부가 시장의 원리를 잘 아는 척하지만 실상은 정보가 부족해 엉뚱한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실기업을 억지로 살리기 위해 자금을 대주면서 질질 끌려 다니다가 피해를 키우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책이 오히려 가격폭등을 초래하고 단기 부양책이 경기를 살리기는커녕 후유증만 생기게 하는 것도 정부 실패로 현대적 시민사회는 정부실패 때문에 등장했다.

비정부조직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동시 극복 수단으로 제 3의 대안으로 시민사회의 역할이 재조명되었고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시장실패의 해결사로도 주목받고 있다. 국가·시장·시민사회 각각의 능력을 높이고 이 세가지 사이의 분업-협업, 균형- 견제의 올바른 관계를 구축하여야 한다.

작금의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의 집중과 불평등을 비판하는 캐치프레이즈는 ‘20 대 80의 사회’에서 ‘1 대 99의 사회’로 급속히 악화되고 있으나 상위 1%의 부자들은 여전히 규제완화를 부르짖으며 지금의 이 자본주의조차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인류 최고의 정치적 발명품이라 자부해왔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라는 근본적으로 상충하는 두 가치로 인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자유주의와 국민의 합의를 최대한 존중한다는 민주주의는 수시로 공익과 사익의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대체로 국민의 뜻을 대리하지 못한 채 이익단체에 포획돼 있다. 투표제도와 여론수렴 절차의 허점, 정부의 비대화와 관료의 사익추구 문제, 지대추구를 위한 정경유착 문제 등 시장에서의 상품 선택처럼 정치도 유권자의 공공선택에 따른 수요·공급의 법칙으로 이뤄진다.

시장을 효과적으로 견제함으로써 시장의 실패를 최소화하고,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함으로써 정부의 실패를 최소화하는 주체로 시민사회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

대안은 시민사회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본가치간의 긴장과 갈등을 조화시키려면 제3의 가치 내지는 덕목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평화(peace), 박애(philanthropy), 정의(justice)로 이를 대변할 세력이 시민사회이다. 시장이 자유를 대변하고 국가가 평등을 대변한다면, 시민사회는 제3의 가치를 대변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 시장과 국가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조화시켜 나가는 일을 해낼 세력이 시민사회다.  모두가 이기적인 개인으로 파편화(破片化) 되어 가는 현대사회 속에 자연이나 이웃 국가와의 공간적 공동체와 역사나 전통과의 시간적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간의 상품화가 아니라 시장의 인간화를 위해서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종래에는 국가가 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담당해왔으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과정에 이러한 국가의 기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이 기능을 시민사회가 보완해야 한다. 많은 나라들이 소위 선거 민주주의는 달성했다고 하지만 명실상부한 자유민주주의에 이르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고 대단히 험난하다. 민주주의의 내실화와 정착을 위한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관심과 감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형식화 내지 형해화(形骸化)를 막기 위해서 시민사회가 시민참여, 주민감시의 강화에 노력하고 국정운영 파트너로서 시민사회의 비중과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관 주도보다 민관합작이 더욱 공정하고 능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회·경제 문제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를 줄이기 위한 시민사회의 감시와 협조 노력도 점차 중요해질 것이다. 요컨대 이제는 시민사회의 발전과 성숙 없이는 공동체의 유지도 어렵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성공도 어렵다.

 

  1. 삼위일체 협치 모델과 베세토튜브(글로벌튜브)

숫자 3에는 “완성 완벽, 영원, 안정, 근원, 조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라틴 명언 중에 ‘셋으로 이루어진 것은 모두 완벽하다’는 말이 있다. 만물에는 3가지로 완성되는 것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우주의 구성은 시간·공간·물질이며, 나무도 뿌리·줄기·잎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빛의 삼원색은 빨강(R)·초록(G)·파랑(B)이며, 색의 삼원색은 빨강(R) ·파랑(B)·노랑(Y)이다. 물체의 상태도 고체·액체·기체 3가지로 완성된다.

3 (the third way)
제3의 길(the third way)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단점을 배제하고 장점만을 융화시킨 새로운 개념의 차별화 전략으로서, 기든스(A. Giddens)가 이론적으로 체계화했고 이를 영국수상인 블레어(T. Blair)가 정치노선으로 채택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제3의 길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를 제1의 길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를 제2의 길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절충된 대안인 제3의 길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처럼 복지국가를 청산하자는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비효율성 등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3의 길은 사회투자국가, 복지다원주의, 그리고 발상의 전환 등을 지향한다. 먼저,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는 인적자본 등에 대한 투자를 통해 국민들의 경제활동 참여기회를 확대하고 더 나은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있다.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노령 및 실업대책 등이 그것이다. 노령자와 실업자에게 무조건 무상의 사회복지정책을 시행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사회에 진입하여 국가에 공헌할 수 있도록 정년퇴직조항의 삭제 및 재교육 시행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지다원주의(welfare pluralism)는 주로 중앙정부에서 담당해 왔던 복지제공의 업무를 기업, 시민단체, 지역사회, 지방정부 등으로 다원화하여 복지국가의 비효율성을 줄이자는 것이며 발상의 전환(conversion of notion)은 수혜자가 스스로 복지국가에 대한 의존성향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개인의 책임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제3의 길은 사회보장과 재분배 등 사회복지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부를 산출하는 주도적인 주체로서 복지수혜계층의 역할과 책임, 즉 노동연계복지(workfare)를 근간으로 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의 길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국가의 재정부담 등과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빈부격차 등 부작용을 고려하여 절충했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절충에 대한 명확한 기준 등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제3의 길은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삼위일체협치(三位一體協治, Trinity Governance)모델
제1섹터인 국가(정부)과 제2섹터인 시장(기업) 및 제3섹터인 시민사회가 하나되는(Three in One) 삼위일체협치(三位一體協治, Trinity Governance)는 각 섹터의 역량을 높이고 이 세 영역 사이의 분업-협업, 균형- 견제의 올바른 협치(協治, Governance)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 정족지세(鼎足之勢), 정족삼분 (鼎足三分), 국가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눠 분담하는 삼권분립과 같이 삼위일체협치(三位一體協治, Trinity Governance)모델은 숫자 3이 내포하는 “완성 완벽, 영원, 안정, 근원, 조화”의 협치모델이다.

즉, 시장여건의 불완전성 또는 재화와 서비스의 특성 등으로 자원의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인 시장실패와 시장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개입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해치는 상황인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다.

시민사회의 국제연대
세계는 경제적으로 통합되고 상호의존의 연결구조(interlocking system) 속으로 편입돼 가고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독립된 개별 국민국가 단위로 분열돼 있다. 단일화되는 세계경제가 야기하는 문제를 분열되어 있는 국제정치가 해결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 공동체 특성은 탈국경적인 시민연대이며 동아시아의 균형과 지역 국가 간의 수평관계를 증진시키며, 나아가 ‘수평적 지역 네트워크’를 형성하여야 한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평화와 인류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세계시민주의는 유연하고 열린 민족주의를 매개로 국가우선주의와 근본주의의 발호로 인한 야만과 피해를 예방하고 전쟁을 억제하는 지속가능한 평화질서 구축의 길이다.

베세토튜브는 아시아 중핵국가인 한중일 3국의 국제협력 프로젝트로 1차문명인 농업문명(Agricultural Civilization)2차문명인 산업문명(Industrial Civilization)을 거쳐 3차문명인 생태문명(Ecological Civilization)으로 전환하는 시금석(試金石, touchstone)이다. 한중일 3국은 3차문명인 생태문명(生态文明, Ecological Civilization)삼위일체협치(三位一體協治, Trinity Governance)모델로 구축하여야 한다.

한·중·일 3국이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여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를 기반으로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 (汎球管道, Global Tube)를 완성하는 과업은 서구 근대를 초극(超克)하고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로 함께 나아가는 제3의 길이 될 것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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