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관점의 세계시민사회론과 베세토튜브~글로벌튜브

  1. 세계시민주의 담론
  2. 세계시민사회의 등장과 역할
  3. 동아시아 세계시민주의 논의
  4. 민족의식과 세계시민의식의 조화
  5. 생태문명기의 세계시민주의와 베세토튜브

  1. 세계시민주의 담론

세계시민주의 (世界市民主義, Cosmopolitanism) 또는 사해동포주의 (四海同胞主義)는 이성을 공유하는 것으로서, 전 인류를 동포로 보는 입장으로 그리스어 κόσμος(kosmos, 세계)와 πολίτης(polites, 시민)에서 유래된 κοσμοπολίτης(kosmopolites, 세계의 시민)에서 유래되었다.

세계시민주의의 개념과 역사는 정치사상만큼 오래 되었다. 세계시민(코스모폴리테스, kosmopolitēs)의 기원은 B.C. 4-5세기 사이에 고대 그리스의 키니코스 학파(Cynicos, 견유학파, 犬儒學派)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리스에서 ‘폴리테스’, 곧 시민은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특정 폴리스(polis)에 속했다. 세계시민주의는 고대 그리스시대의 용어이나 오늘날 세계화 시대의 개념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사실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은 고대에도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 키니코스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 인 디오게네스 (Diogenes)는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세계시민(cosmopolites) 이며, 세상이 내 도시(국가)” (Diogenes, VI -63) 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도시도 없고(apolis) 집도 없고(aoikos) 조국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우주에 있는 국가를 진정한 국가로 여기고자 하는 태도를 내포한다.

고대 로마의 키케로(Cicero) 역시 이 세상이 신들과 인간들에게 공통된 단일 국가라고 생각하면서 “동료시민들에게는 올바른 원칙을 적용하면서 외국인들에게는 그렇게 못하겠다는 입장은 인류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연대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대 철학자 칸트(Kant) 역시 야만상태로부터 문명상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듯이,국가들 사이의 자연적 자유상태인 전쟁상태로 부터 평화상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계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세계시민사회 형성은 한 국가가 내부에서 자연상태를 벗어나 문명상태를 구축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각 국가는 자신의 고유한 자주권과 자립권을 갖고 있으며 국가들 사이에 국내에서와 같은 주권자와 국민의 관계가 설정되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는 일시적인 전쟁을 끝내는 평화조약(pactum pacis)을 넘어서 영원히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평화연맹(foedus paccum)’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지금 우리는 지구촌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구촌 세계를 살아가면서 종족 민족적, 종교적 전통을 살아가며 넘나드는 교류 속에서 활기차게 세계의 상식을 창조하고, 타자의 다름을 인정하도록 정신을 일깨우고, 일면적 관점에서 세계시민적 시야로 지평을 전환할 것을 그 어느 때보다 요구 받고 있다.

독일 철학의 효시이자 비판 철학의 창시자인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모든 이론은 이성에 입각한 이론이다. 저서 중 하나인 “순수이성 비판(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은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하여 형이상학을 학문(science)으로서 정립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윤리학을 집중적으로 다룬 “실천이성 비판(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과 미학, 목적론 등을 연구한 “판단력 비판(判斷力批判, Kritik der Urteilskraft)”은 그의 대표작으로 당시는 중세 철학이 막을 내리고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던 계몽주의 시기였다. 그의 철학은 인간 지성의 능동적이고 자발적 능력을 강조한다.

칸트에 의하면, 전쟁은 국가간 혹은 주권자의 권력욕과 영토적인 야심을 근본 원인으로 보았다. 정치와 도덕의 일치를 평화의 근본조건이라고 보았으며 인류가 역사의 어느 시기에 가서는 항구적인 평화상태에서 살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칸트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이고 낙관적이었고 영구평화론은 도덕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칸트는 세계의 영구평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화제를 바탕으로 국내의 각 인간에게, 각 국가 사이에, 그리고 세계 인류 사이에 법의 지배를 확립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대하여 헤겔은 군주연맹체로 그 당시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영구평화론은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개념적 인식이 아니라 주관적인 소망에 근거한 것으로 보았다,

칸트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하나의 통합된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인류를 구성원으로 하는 보편적 공동체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선구자이다. 그는 현존하는 세계질서를 비판할 수 있는 규범적 토대이자 인류가 추구해야 할 세계질서의 원칙으로 ‘세계시민사회이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동심원이 아니라 여러 동심원, 즉 가족, 도시, 민족, 국가, 인류 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로 이루어진 삶의 공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동심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충돌할 때 어느 것에 우선적인 도덕적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친다.

세계 국가를 세우려는 극단적인 세계시민주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세계시민주의는 다양한 동심원을 인정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대한 관심이나 충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계시민주의는 가장 중요한 동심원이 인류 전체이고 따라서 인류 전체나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에 대한 충성이 일차적이라고 본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출신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차별 대우를 받지 않고 세계시민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시민주의는 보편주의 관점에서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기본 권리와 더불어 인류애의 관점에서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시한다.

그런데 대체로 공동체주의는 세계시민주의와는 다르게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면서 특정 공동체에 타당한 특수한 윤리 규범을 인정하며,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과 헌신보다는 특정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성, 사랑, 헌신을 더 중시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동체주의는 세계시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다. `다원적 공동체주의`와 `다원적 세계시민주의`는 지역적 공동체성과 더불어 세계시민성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서로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복수의 공동체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경우에 어떤 공동체의 가치를 더 우선시할지에 대해서는 서로 입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자는 더 이상 가까워지기 어렵다. 세계시민주의는 공동체주의보다는 자유주의와 양립 가능성이 더 높다.

자유주의는 보편적 권리를 인정하고 그것의 차별 없는 평등한 적용을 주장하는데, 이것을 국가를 넘어서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 적용한다면 자유주의는 세계시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실제로 이러한 자유주의의 관점을 국내에만 적용시킬 뿐이고 세계적 차원까지 확대 적용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계시민주의자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는 `급진적 세계시민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인류애를 요구하기 때문에 해외 원조에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국경선에 따른 원조 수준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급진적 세계시민주의와는 입장 차이를 보인다.

세계시민적 관점이란 문화적 타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거기서 각 개인의 생존 이해를 결합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세계시민주의는 유럽 근대성의 위대한 이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족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라는 역사적으로 수명을 다한 사상을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

 

  1. 세계시민사회의 등장과 역할

세계화와 더불어 ‘지구촌’의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 것이 ‘지구적 시민사회’ 혹은 ‘세계시민 사회’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상의 발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전개된 민주화 물결, 그리고 사회적 문제들과 도전의 증가, 그리고 이 문제들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지구촌 의식 등이 세계시민사회의 등장에 기여하였다.

세계시민사회는 지방․국가․세계수준에서 사회의 여러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기구(협회, 시민운동단체, 비정부기구)의 총칭이다. 그들이 하는 작업과 활동의 목표는 개인과 사회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데 있다.

세계시민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단체와 제도는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생태문제, 남북관계, 인권문제와 같은 특정한 영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문화적으로 서로 다른 기구나 단체가 초국가적인 수준에서 혹은 지구적인 수준에서 효과적인 협력형태를 개발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언제나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남(개도국)과 북(선진공업국), 선진국 환경보호론자와 개도국 개발주의자, 온건한 개혁주의자와 급진적 혁명주의자, 지방주의자와 세계주의자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세계시민사회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의 근본적인 과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첫째, 그것은 지구적 수준의 양심 혹은 도덕의식을 각성시키는 기능을 떠맡고 있다. 물론 보편적인 종교와 그 산하 종교단체들을 그러한 도덕의식의 담당자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넓게 보면, 세계시민사회가 ‘세계인권선언’의 도덕적 원칙과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 시민사회는 세계적 수준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필요와 소망,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함께 구성하는 데 있어서 대변자 노릇을 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민사회는 인간개발․자유․평등․평화․연대․정의의 물음에 대한 인류의 대변자 구실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계적인 규모에서 기아와 식량부족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근로생활과 가정, 그리고 공공영역에서 여성의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 또한, 생태 적 평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존층파괴와 지구온난화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민족이나 국가간 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하여 빈곤과 사회적 차별, 그리고 불관용의 사례를 줄여나가는 데 노력하고 있다.

셋째, 세계시민사회는 새로운 정치적 행동방식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세계적 수준의 활동공간을 제공한다. 세계시민사회의 기능은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데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행위방식을 통해서, 세계시민사회는 문제해결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며, 새로운 제도적․경제적․사회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회를 활용한다.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행위자로 행세하는 각국 정부는 이제 지역적․국제적․지구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과 대결하거나 함께 논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세계시민적 관점이란 문화적 타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거기에서 각 개인의 생존이해를 결합하는 것을 뜻한다. 이때 세계시민주의는 유럽 근대성의 이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종족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라는 역사적 화석을 뛰어넘는 것을 뜻한다.

세계시민주의는 좌우를 막론하고 종족중심주의와 민족주의를 처방하는 해독제이며 지구화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시민의 상호소통의 새로운 공론장에 기여할 수 있는 자각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국가나 지역에 귀속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구촌의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며 세계시민의식으로 지구촌의 공론장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오늘날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1. 동아시아 세계시민주의 논의

동양사상과 세계시민

동양사상에서 세계시민에 관한 연결고리는 특히 천하일가(天下一家)사상과 유가의 대동(大同)사회론에서 찾을 수 있다. 천하사상은 춘추전국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사회의 보편적 질서를 의미하는 정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유가(儒家)의 대동론(大同論)은 천하사상에서 표방하는 세계의 궁극적 모습을 함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도덕 공동체를 이룩하여 세계 곳곳에 평화가 깃들고 사람마다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태평천하(太平天下)를 그린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덕 공동체는 인류 전체의 항구적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천하일가(天下一家)사상과 그 궁극적 이상인 대동론(大同論)은 보편적 세계공동체로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

천하일가 사상과 대동론에 함축되어 있는 인식과 가치는 개인의 절대화와 도구적 이성이 부른 현대 민주주의의 병폐를 구제하여 보편적인 세계시민에 관한 논의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그렇지만 대동의 최고원칙인 공천하(公天下)를 이루어내지 못한 채 가천하(家天下)의 범주 내에서만 사고함으로써 끝내 중심관념과 위계질서적 세계관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한계점도 안고 있다. 즉 중화(中華)로부터 흘러내리는 천하였으며, 군자로부터 흘러내리는 대동이었다.

그 결과 주변국가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공동의 운명을 논의할 수 없어 보편적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다수 민중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취급되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 합의에 기초한 보편적 민주질서를 마련하는 데 곤란한 점이 있다.

이러한 내재적 한계를 의식하면서 중국의 천하관과 유가의 대동론을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 이념과 상호보완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면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시민의 개념을 확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즉, 정치문화의 측면에서 서양 근대 민주주의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제도를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동양정신과 적절히 결합시킬 수 있다면 개인적․사회적 측면에서 보다 발전된 문화세계의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

생태문명의 전환을 모색할 때 동아시아 문명의 천하일가(天下一家)’ 은 대한민국이 제시할 철학과 가치의 역사적 뿌리이다. 서구문명의 평화론이나 국제정치의 패권이론이 아닌 동아시아 문명에 기원을 둔 천하일가(天下一家)’ 세계평화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기, 대학, 중용 등 동아시아의 고전 속에 있다.

대동(大同)사회와 소강(小康)사회

중국 고전에서는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복희씨와 여와씨가 인류를 만든 이래, 삼황오제는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대동(大同)사회라는 태평성대를 구가해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백성들이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는 이기주의가 도래하게 되었다.

하(夏)나라 우(禹)임금과 상(商)나라 탕(湯)임금,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 여섯 군자(君子)들은 규율을 정하여 먼저 자신들이 솔선수범하고 나아가 백성들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바로 소강(小康)사회의 시작이다.

대동사회는 요순(堯舜) 임금이 무위지치(無爲之治)로 다스리는 사회를 뜻하고, 소강사회는 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시대를 뜻한다. 대동사회는 천하가 공공을 위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사회라면 소강사회는 천하가 자기 집안을 위하는 천하위가(天下爲家) 사회였다.

공자는 성인이 통치하는 대동사회를 꿈꿨고, 또 자신의 뜻이 좌절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그러한 대동을 그리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춘추시대와 같은 혼란스러운 난세에서 대동은 그저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뿐,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춘추시대와 같은 난세의 상황에서는 소강사회로의 복귀가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동의 사회라는 것은 우선 소강사회를 회복하고 나서 다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일 것이다.

공자는 대동사회의 성인과 소강사회의 군자를 구하는 기준을 설명한다. 성인은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대동사회의 지도자”라 하였다.

군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소강사회의 지도자”라 하였다.

공자가 성인이 통치하는 대동사회를 꿈꾸었지만, 춘추전국시대라는 현실정치에서 소강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군자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인, 의, 예, 악을 익히고 백성들을 지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태평성대를 누렸던 요순시대 이후, 공자가 꿈꾸는 대동사회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실현 가능한 소강사회를 오히려 더 역설한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지도자에게 말하고 싶은 건 대동사회의 꿈이 아닌, 현실정치를 바르게 이끌 소강사회이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은 결코 공자가 말한 ‘소강사회’라고 할 수 없다. 난세만 벗어났을 뿐이다.

군자론(君子論) 세계시민론

공자는 정치를 담당하는 지도자를 대동사회의 지도자인 성인(聖人)과 소강사회의 지도자인 군자(君子) 그리고 실무담당 전문가인 그릇(기: 器)로 분류하고 있다. 성인이나 군자와 같은 지도자는 덕(德)을 행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데 주력해야 하고 실무담당 전문가는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했다.

성인과 군자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 성인(聖人)은 태초부터 존재했으므로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도(道)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대동사회의 지도자이다.

한편 군자(君子)는 비록 성인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나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소강사회의 지도자를 일컫는 것이라는 점이다.

공자는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을 선비(士) 이상으로 규정함으로써 종법제도(宗法制度)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이 종법제도는 공자가 가장 존경한 인물이자 노나라의 시조(始祖)인 주공(周公)이 최종 완성한 것이다.

세계시민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개념으로서 ‘군자(君子)’를 훌륭한 정치가로 정의할 경우 평화와 안녕이라는 세계공동체의 정치적 이상에 합치한다고 볼 수 있다. 군자가 갖는 강한 도덕성은 칸트의 도덕론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는 역할에 주의를 기울이고, 시민을 정치에 참여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정치인을 군자로 정의하면 군자론은 세계시민사회론 논의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가사상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을 추진할 수 없으며 봉건적인 계급제도는 근본적으로 사회의 조화 안정을 호위할 수 없다. 그리고 전통적 도덕적 기준은 결코 사회주의 사회의 도덕적 위기를 구제하는 통치 철학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세계 2강으로 도약했지만 날로 늘어만 가는 빈부격차로 좌파사상 강화와 ‘마오쩌둥 정신 되살리기’는 중국의 당면과제이다. 공자와 마오쩌둥은 중국의 이상과 현실을 대변하며 중국 사회의 가치관 혼란과 갈등을 매우 상징적으로 방증한다.

유일신 종교의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1500년 넘게 피의 보복과 전쟁으로 화해 불가능한 문명의 충돌을 불러왔다. 밀레니엄의 출발점에 일어난 9·11 테러는 그 이후 이슬람국가(IS)의 출현,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즘 그리고 중동 평화에 위협을 낳고 있다.

한중일 삼국은 공히 서구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판단하기 힘든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을 지닌 사회이다. 저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이며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중국과 한국 및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서구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적인 방식’으로 현대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동아시아 문명 중에서도 유일하게 민주공화정을 발전시킨 한국이 새로운 세계 민주주의의 요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홍익사상과 촛불혁명까지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성한 발군의 국가로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21세기는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시대다. 동아시아 문명은 경제적 성장보다 정신적 가치와 문명 간 화해와 협력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할 때야 세계시민들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명은 세계시민 들로부터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서구 문명에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을 받는다.

유가사상에서 군자를 강조하는 것은 도덕적 윤리관계의 확장을 통한 세계 시민의식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사상 내에서도 세계시민론을 유추해 낼 수 있는 근거가 있는데, 예를 들면 퇴계나 율곡의 이기론에서도 우주적 세계질서를 구상하였다.

만물의 근본(根本)이고 형이상(形而上)인 이(理)와 만물의 형질(形質)로 형이하(形而下)인 기(氣)를 논한 이기론(理氣論)의 성리학적 윤리 사상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인들은 칸트의 자발적인 인간 주체성, 인격 윤리, 만민 평등, 시민사회, 국제평화 사상에서 상당한 친화성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이 동아시아 담론에서 “피해자이자 약자”로 간주되지만, “동아시아에서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와 정치적 전통”을 보유한다고 말한다.

한국 지식인들이 “동아시아 정세에 대한 위기감과 강렬한 비판정신, 책임감, 그리고 중국 대륙과 타이완, 일본에서는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미국 패권에 대한 또렷한 저항의식”을 나타낸다고 평한다.

 

  1. 민족의식과 세계시민의식의 조화

폐쇄적․배타적 민족주의의 극단적인 보기로는 과거 독일의 민족사회주의나 오늘날 ‘외국인 혐오’ 행태를 보여주는 극우파를 들 수 있다. 인류문명의 보편적 차원에서 민족의식과 세계시민의식의 연계성 문제를 고려하면 개방적․다원적 민족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적 가치준거와 민족적 가치준거의 바람직한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민주주의와 개방적․다원적 민족주의의 조화와 균형에 기초하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기본가치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규범적인 과제는 민족(ethnos)이라는 특정문화 혹은 집단의 특수성과 ‘민중(demos)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보편성, 그리고 동포애나 민족애에 호소하는 정서적인 측면과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합리적인 측면의 긴장관계를 적절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사회철학 혹은 종교적으로 두 가지 노선을 구분할 수 있다. 기독교 및 이슬람교와 같은 유일신 종교는 하나의 보편주의를 대표한다. 이 유일신교는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나의 신, 하나의 진리, 하나의 가치표준을 가정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노선은 힌두교와 불교와 같이 문화적 가치의 특수성을 더 많이 강조한다. 이들은 진리와 가치, 권리와 생활양식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보다 더 많은 자유의 여지를 허용한다.

인권에 대한 세계적인 규모의 합의도 역시 국민과 국가의 틀 속에서 발생한 국가시민 혹은 공민으로서의 연대의식과 대등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시민의식 혹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연대의식은 예를 들면 세계인권선언에서 표현한 도덕적 보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세계화와 문화적 다양성 오늘날 세계는 마치 하나의 마을인 것처럼 좁아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화’나 ‘지구촌’ 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제 개인적인 이기주의와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한 이기주의가 지배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들 사이에는 어느 것이 더 좋고 옳은 것이며, 어떤 것이 더 나쁘다거나 틀린 것이란 평가를 단정적으로 내릴 수는 없다. 각 사회의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상대적이다.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할 때, 우리는 문화의 상대성도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화현상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규모에서 보편적이고 통일적인 문화요소가 점점 더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서로 다른 문화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문화적 다양성을 관찰할 수 있다.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인류가 추구하는 도덕에 있어서는 공유점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의․책임윤리․인류애․생태보호윤리․인류공동체의식 등이 그런 것에 속할 것이다. 또한 공유되어야 할 정치문화요소로서는 민주주의, 국제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등을 들 수 있다.

세계시민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제도․실천을 탐색하고 확장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지구의 생태적 한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세계화의 역동성이 모든 정치적․문화적 공간의 탈경계화 혹은 경계파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갈등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서 21세기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다.

환경과 세계화의 갈등관계에서 살펴보았듯이, 세계화 시대에는 지구전체를 고려하는 이른바 ‘지구적 세계관’ 또는 ‘지구적 관점’이 요청된다. 세계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지구적 관점을 가지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거기에 따라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태와 문제들을 세계적이고 총체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세계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고, 인류를 하나의 같은 운명공동체로서 간주하며, 그 인류가 미래대비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의 여부를 따질 수 있다.

이 지구적 사고는 국경을 넘어서는 사고, 초국가적 사고, 상호의존적이고 구조적인 사고, 그리고 조망(眺望)을 할 수 있는 사고로 구체화할 수 있다. 지구적 사고는 기존의 의식 및 행동방식을 필요한 경우에는 버려야 한다.

자연적 생활 근거를 유지하고 보전 하려는 관점에서 사회상태를 재정립하고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대안적인 사고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은 크게 하고 시작은 작은 것부터 실행하는 자세로 바람짇한 지구사회의 미래상과 실천 가능성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1. 생태문명기의 세계시민주의와 베세토튜브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지구적 윤리를 형성한다는 것은 어느 특정 국가의 이익이나 정체성을 추구하는 논리나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 등으로 나뉘는 이데올로기의 차원이 아니라 개별적인 문화 종교 이념을 뛰어 넘어 개인 각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시민사회의 일원으로 규정하고 전 구적으로 통용 가능한 의식과 윤리를 가져야 한다.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 공동체 특성은 탈국경적인 시민연대이며 동아시아의 균형과 지역 국가 간의 수평관계를 증진시키며, 나아가 ‘수평적 지역 네트워크’를 형성하여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지역성, 법제도화, 정부 의존성, 시민사회, 시장화와 민영화, 민관협력 등의 특성을 가진 사회적 경제의 동아시아적 연결이 요구되고 있다.동북아 3국은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만 3국 모두 빠른 고령화 속도에 힘입어 고령화에 대한 관심은 동북아 3개국 모두에 핵심적 공통 사회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노인 비율의 증가는 사회보장비 지출과 의료비 지출 등을 증가시켜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중국·일본 3국은 최근 GDP 및 무역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세계경제의 주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한중일 3개국의 인구 고령화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도 인구 고령화로 이들 국가의 경제가 큰 영향을 받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과 경제가 당면한 두려운 현실은 전세계적으로 젊은 층의 실업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환경 파괴와 기존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등의 신호가 이를 증명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행성 지구에서 건강하고 공정하고 의미 있게 사는 법에 대한 논의를 일찍 시작할수록 우리 모두에게 더욱 이로울 것이다.

화성(火星, Mars)이나 또다른 행성(Planet)으로 이주하지 않는 이상 자원은 유한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도 한계를 지녔기에 결국 경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제로’상태가 될 것이며 한국처럼 작고 성장이 집약된 국가는 문제가 더욱 빨리 닥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부족은 이미 당면한 문제로 당연한 듯 소비되고 있는 에너지에 대해 지금과 같은 과도한 소비가 필요한지 고찰해봐야 한다. 석유정점을 맞이하는 21세기 한정된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낭비해서는 안된다.

결국 22세기 탈 석유사회시대에는 항공 교통모드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관도(管道, Tubeway)모드의 교통수단이 최상위 교통모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석유에너지 고갈에 따른 21/22세기형 최상위 교통계층(transport hierarchy)의 지속가능 교통 시스템(Sustainable transport system)은 제5 교통모드인 “관도(管道, tubeway)” 가 될 것이다.

5대양 6대주를 연결하는 삼상궤도(Three Phase Track)방식의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 Way)를 구축함으로써 기존 도로, 수상, 철도와 특히 항공모드 의존을 축소함으로써 지구촌 인구 100억명 시대의 교통 인프라를 재구축하여야 한다.

옛말에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 이웃을 산다 (白萬買宅 千萬買隣)고 하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국가인 한중일 3국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자세로 공동이익을 위해 진정 서로 이해하고 협력함으로써 3국의 국민·인민·신민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동아시아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여 한다.

베세토튜브, 아시아튜브, 태평양튜브, 북극해튜브, 대서양 등으로 연장될 글로벌튜브는 5대양 6대주를 연결하는 지구공학적 차원의 사상 최대규모 프로젝트이다. 베세토튜브연구회가 추진하는 기술표준은 하이퍼루프 등 기존 방식과는 달리 다중튜브(Multi tube)와 삼상궤도(Three Phase Track)기술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세계를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어 진정한 글로벌 시대를 열어줄 새로운 교통 매체인 베세토튜브와 글로벌튜브망은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기본틀을 형성하고 탈 산업화 시대이자 ‘생태 문명(Ecological Civilization)’의 세기인 22세기 모범적인 생태 패권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22세기 생태문명 사회를 살아갈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와 함께 상생하고 공영하는 것만이 산업혁명 이후 식민지와 자원약탈형의 서구 근대문명을 초극(超克)하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증명하는 제3의 지름길로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를 열고 생태문명(生態文明/生态文明, Ecological Civilization)을 꽃피우는 제3의 길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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