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명 건설의 첫 삽은 베세토튜브~글로벌튜브이다!

  1. 생태문명을 향한 녹색전환
  2. 환경은 전지구적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
  3. 인간보다 자연중심의 생태문명 창달
  4. 생태문명 건설의 첫 삽이 베세토튜브~글로벌튜브인 이유

과거 석유 자원에 고무돼 있던 시절 두바이의 통치자였던 셰이크 모하메드의 부친 셰이크 라시드 빈 사에드 알-막툼은 일찌감치 석유시대의 한계를 읽어냈다.

나의 할아버지는 낙타를 탔다. 나의 아버지도 낙타를 탔다. 나는 메르세데스를 탄다. 내 아들은 랜드로버를 탄다. 그의 아들도 랜드로버를 탈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탈 것이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던 시절에 나온 그의 이 말은 석유경제의 유한성을 상징하는 명언으로 회자된다.

현재 지구의 자연생태계가 인류의 소비수준을 감당해내려면 지구 1.7개가 필요하다. 세계인들이 미국인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지구가 5개나 필요하며 지금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는 중국인의 생활 수준의 절반정도이다.

생태용량이란 자연이 스스로 자연 자원을 생산하거나 훼손된 자연을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산림, 목초지, 농경지, 어장, 시가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생태용량 값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원관리 방식, 농업 생산 요소 투입, 용수 공급, 기후 및 토양 상태 등에 영향을 받는다. 

용량을 초과하는 소비는 산림 감소, 가뭄, 토양 침식, 생물 다양성 손실, 대기중 이산화탄소 축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한국은 1인당 자원 소비량이 많아, 전 세계인이 한국인처럼 생태자원을 소비하면서 살려면 지구 3.4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고 있다.   

 

  1. 생태문명을 향한 녹색전환 

우리의 세계는 전례 없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기후 위기의 예측된 결과를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지금 당장 필요하며 현상 유지를 위한 사소한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 불가능한 관행에 녹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 패러다임은 보다 지속 가능하고 정당한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본틀의 근원적 변화인 생태문명(生态文明, Ecological Civilization)이다.

이러한 급진적인 문명전환은 상호 번영을 향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협력을 필요하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론과 실천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생태주의의 등장 배경 
근세의 서구 철학은 인식의 주체인 인간과 인간이 인식하는 대상을 구분 짓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인간의 인식을 통해서 사물의 존재 의미를 규정하는 인간 중심적 철학관을 마련하였다.

이에 따르면 자연은 그 자체로서의 가치보다 인간의 사고에 의해서 존재의 의미가 결정이 되므로 우리는 필요에 의해 자연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 중심적 철학관은 자연을 인간의 삶을 위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 주어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인간이 가진 이성이 우리 사회를 무한히 발전시키리라 믿는 계몽주의 철학 사조는 진보에 대한 맹신을 가져와 우리 사회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환경 문제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진보를 위한 성장 제일주의는 산업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결과적으로 생태계 파괴를 가져 왔다.

진보에 대한 맹신이 가져온 사회 진화론은 적자 생존, 약육강식 논리에 따라 자연과 투쟁하는 인간,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시켰다. 전반적으로 자연을 효용성이나 이용 가치에 따라 판단하는 도구적 가치관이 오늘날의 환경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문제 의식에서 생태주의가 출발하고 있다.

생태주의의 전개 
데카르트를 주축으로 한 서구 철학은 인식의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는 합리성으로 과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나, 환경 파괴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생태주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간 중심적 사고관으로는 더 이상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 하면 지금의 환경 문제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자연을 도구화하는 데서 시작되었으므로 이러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금의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태주의는 그 동안 인간이 인식하는 대상으로만 판단하던 자연을 주체의 자리로 돌려놓고 `지배가 아닌 공존,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 시장 경쟁이 아닌 나눔의 공동체’라는 목표에 따라 환경 문제의 대안을 모색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생태주의는 다음의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리자적 입장에 있는 환경 관리주의는 고도의 기술이나 정책, 생활 양식의 변화 등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지금의 환경 문제 발생이나 문제의 시급성 등은 인정하되,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한 세심한 관리가 자연을 적절히 조절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Environmentally Sound and Stainable Development; ESSD)’은 현 세대에게 필요한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계 보전을 담고 있는 개념으로 이는 지구의 자정능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환경 관리주의보다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나, 여전히 성장 위주의 해결책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생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자본주의나 제국주의 같은 불평등 사회 구조가 환경 문제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본다. 이처럼 생태 사회주의는 경쟁과 지배를 만드는 사회 구조를 생태 위기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만큼, 인간 사회를 자연 생태계에 맞도록 재구성하여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생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부터 환경 문제의 원인을 이끌어내며,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청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자 한다. 사회 생태론은 현재 처한 환경 문제가 사회문제로부터 야기되었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환경 문제를 발생시킨 사회 모순을 개선하지 않고는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 학자인 머레이 북친은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는 인간에 의한 인간지배로부터 비롯된다.’는 주장을 통해 환경 문제를 사회 구조와 연관시켰으며 자연 세계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인간의 독특한 위상을 무시한 채 환경 문제의 모든 원인을 인간 개개인에게만 돌리는 것에 반대한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의 개선이 환경 문제의 대안이라고 생각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비판적 이성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본 생태주의는 1970년대 이후의 환경 운동이 환경 개량주의라고 비판하며 인간 중심적인 의식의 변혁을 요구하며 등장하였다.

근본 생태주의는 생을 영위할 권리가 모든 생명체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있다는 생물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자연 속에서의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 뿐, 특권을 지닌 존재가 아님을 주장하였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상호 의존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에게 가한 영향력은 용납될 수 없으며, 환경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근본 생태주의는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자연 법칙 안에서 순응하며 전체 생태계의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근본 생태주의의 의의와 한계 
근본 생태주의는 우선 기존의 가치관을 완전히 전환함으로써 환경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의 환경 문제의 대안이 기술이나 정책 등을 개선하는 인간 편의적 측면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근본 생태주의 입장은 환경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파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 가치관을 비판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주장하는 근본 생태주의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나 신비감을 부여하여 인간의 능동적인 역할을 없애버렸다.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환경 문제가 발생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의 역할이 중요할 수 있는데 근본 생태주의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구호에만 그치고 있어 인류가 제시할 수 있는 환경 문제의 대안이 없다.

또한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근본 생태주의의 방식이 현 사회 체제를 부정하고 발전적이고 진보적인 인간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근본 생태주의가 비판하는 도구적 이성이 환경 문제를 발생시킨 것은 사실이나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통해 사회의 진보를 이룩한 사실 또한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주의적 태도는 극복되어야 하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행동만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인간 스스로를 폄하하거나 사회 체제를 부정하는 시각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근본 생태주의에서 지적할 수 있는 또 다른 한계는 환경 파괴의 책임을 인간 전체에 부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과 후진국, 부자와 가난한 자, 남성과 여성 등을 구분하여 환경 오염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환경 파괴에 책임이 없는 모든 인간을 포함하여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맞게 될 생태문명
지구는 모든 인간이 선진국 국민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하며 이를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산업문명의 경제성장 이데올로기가 상정하고 있는 유토피아는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구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구를 끊임없이 개발 하다 보면 모든 인간이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허상이었다 허상을 쫓으며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근원인 지구를 파괴한 결과 우리는 스스로의 존립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저탄소 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을 지난 수 세기 산업문명을 지탱해 온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야 함을 의미한다.

석유는 검은 황금으로 현대 산업문명의 기반이자 상징으로 현대 문명 그 자체다. 전세계적으로 농업, 수산업, 공업, 수송, 통신, 전력, 군수산업 등 모든 현대적 산업은 석유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자, 군사적인 전략물자이다.

금융 시장도 석유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유 중의 하나도 석유결제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위상 때문에 산유국은 언제나 강대국들의 이권각축 현장이 되었다. 지구 자원이 한정된 만큼 화석연료도 유한하다. 유가가 뛸 때마다 석유 고갈론과 피크오일(peak oil) 이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하지만 “석기시대가 돌이 부족해서 끝나지 않았듯 석유가 부족하지 않아도 석유시대는 끝날 것”이라고 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셰이크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 전 석유장관의 말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비외른 롬보르도 “인류가 석기 사용을 중단한 것은 청동과 철이 더 뛰어난 재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에너지 기술이 더 나은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석유 사용은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의 고갈은 불가피하게 에너지 수급뿐만 아니라 화석연료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 전반의 구조개혁을 필요로 한다. 더 본질적으로는 인간 중심적인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인간과 자연 기술과 환경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문명’으로 도약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환경위기는 자연에 대한 착취와 파괴를 바탕으로 오직 인간의 재화공급에만 치중하는 ‘산업문명’ 그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해 ‘기후변화에 대한 제5 차 종합 보고서’ 에서 지구 기온 상승 목표 한도인 2℃를 지키기 위해선 온실가스 배출을 금세기 내로 ‘제로(0)’ 로 줄여야 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생태계를 교란하는 종(種)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문명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목표와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는 현대 문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새로운 생태문명으로 도약하는 길뿐이다.

목전에 닥친 절박한 위기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에게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결과를 최대한 정확하게 예측하여 이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온실가스의 농도 상승이 가져올 단기적 장기적 변화를 예측하는 기후과학과 생태학이 육성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후변화가 인간 사회에 가져올 영향에 대한 지리학 및 사회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제 분야에 대한 지원 역시 절실하다. 이러한 연구는 반드시 개별 분과학문의 테두리 안에서가 아니라 상호 연동되는 현상에 대한 탐구로서 융합적 연구로 진행되어야 한다.

 

  1. 환경은 전지구적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

현재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나타나는 빈부의 격차와 전쟁, 투명성 상실과 부패 그리고 경쟁, 대도시화, 해양오염, 사막화가 여기에 더하여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1994년 ‘유엔개발기구(UNDP)’는 이 위기에 대응하여 “지구공공재”를 제시하면서 지구규모에서 인간이 더 이상 파괴에 동참하지 않을 조치를 발표하였다. 1994년에 기존의 세계각국 정부가 생산하는 공공재에 처음으로 “지구”라는 말을 붙인 사건이다.

“환경” “평화” “빈곤해결” “투명성” “외환안정”등 지구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이러한 공공재가 과소 투자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지구공공재의 투자를 늘려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이후 나타난 것이 오늘의 “기후변화협약”이다.

그런데 UNDP의 이러한 조치 이후에도 세계는 20년 전보다 더 악화되고 있다. 이유는 인간이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생활양식(Life Style)과 행동양식이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는 흡사 마약 중독자처럼 에너지 중독에 빠져있고 매일 매일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에너지 중독의 대표적인 나라인 미국이 일으킨 중동전쟁의 끝은 결국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데 그 해답이 있듯이 지구공공재의 성공적인 실현을 위해서는 결국 가장 중요한 지구공공재가 사람의 생활양식의 전환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불어 과소 투자된 지구공공재를 적절하게 투자하는 의미는 지구생명과 인간존재 가치를 회복하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이론으로 본 환경문제 협력
환경 문제는 발생 지역의 범위가 여러 국가에 걸쳐 있고, 그 범위가 지구 전체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해 지역에는 국경이 따로 없다. 따라서 환경 문제는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연대하여 함께 나서야 한다.

환경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과 규제가 강조되었고, 국제기구를 통한 다양한 환경 관련 협약이 맺어졌다. 산성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대기 오염 물질을 통제하는 제네바 협약(1979년)이 체결되었고, 오존층 파괴로 인한 지구 생태계 및 동식물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의 사용을 제한하는 몬트리올 의정서(1987년)가 채택되었다.

또한, 생물종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생물종 다양성 협약(1992년), 기후 변화에 따른 사막화를 막기 위한 사막화 방지 협약(1994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국가 간 합의를 위한 교토 의정서(1997년)에 이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이 발효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협약들은 국가 간의 환경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활동 범위를 갖는 비정부 기구(NGO)에서도 환경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린피스, 지구의 벗 등 대표적인 비정부 기구는 환경 보전과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일반적으로 외부효과(externality)를 수반한다. 외부효과는 어떤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을 주거나 손해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대가를 받지도 지불하지도 않는 현상을 말하며 부정적 외부효과의 대표적 사례가 온실가스와 황사 및 미세먼지 문제를 들 수 있다.

또한 환경문제는 기본적으로 공유재의 성격을 가진다.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과 무임승차자의 문제(free-rider problem)와 결부되어 개별 행위자들 간의 합의나 외부의 제재가 없을 시 목초지의 비극과 같은 공멸의 길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공유재의 문제는 명확한 재산권의 설정이나 개별행위자 간의 합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나 환경문제는 공공재적 성격으로 문제해결이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환경 문제의 공유재·공공재적 성격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점, 경제 성장과의 연관성 등의 현실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지금까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환경문제의 국제협상의 상황은 보통 죄수의 딜레마(囚人煩悶, prisoner’s dilemma)게임으로 묘사된다. 단기에서 이 게임은 상호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 상호 협력하여 오염시키는 물질을 줄이는데 협력한다면 모두이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택하게 될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모두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에서 공히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라고 평가 받고 관찰되어 온 “받은 대로 준다”는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은 협력의 이슈가 다변화되고 무한반복 게임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짐을 알 수 있다.

“받은 대로 준다”는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배신이 아닌 협력으로 가는 것이 각 국가가 얻을 수 있는 편익이 커지기 때문에 한중일이 서로 협력할 경우 서로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각 국의 이기주의와 욕심은 서로에게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3 인간보다 자연중심의 생태문명 창달 

인간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살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국가체제와 사회체제가 명멸해왔다. 원시공동사회에서 부족국가로 그리고 절대왕정에서 공화정과 공화국으로 변모하였고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잇따라 등장하였다.

1990년대에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를 시작으로 소련까지 몰락함으로써 사회주의가 체제경쟁에서 자본주의에 완패를 당한 후 이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그 어떤 경쟁자도 없이 지구촌 곳곳을 지배하게 되었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달은 모든 영역에서, 바로 이 순간에도 가속화되고 있다. 과학의 힘은 거시적으로는 천문학이 다루는 우주와 미시적으로는 양자역학이 다루는 미립자의 비밀을 하루가 다르게 새로이 밝혀내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삶은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단 하루라도 완전히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리고 과학적 발달은 인류에게 거의 기적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은 자연 현상에 관한 실증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과학적 사유는 인간이 진화하기 시작했던 그 시간으로부터 지금까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경험의 집적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없는 인간 사회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생태계 파괴를 비롯한 핵전쟁 같은 현대 문명의 지구적 위기의 핵심 원인을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달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적 사고와 기술 위에 구축된 근대 문명을 통째로 버려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현대 기술문명, 즉 서구적 문명의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하면 그것은 과학 지식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근시안적 관점에서 잘못된 목적과 가치를 위해서 과학을 잘못 사용해 왔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자본주의가 흔들리는 징조가 보이기는 하지만 사회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에 대적할 대안체제가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자본주의체제는 꽤 오래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에 맞서 그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함으로써 자본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본주의 질서가 전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가면 나갈수록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불거져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모토로 하는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반휴머니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이념이 공감을 얻을 수 있었고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였던 사회주의가 몰락함으로써 이제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되는 것이 바로 생태사회이다. 인류의 문명자체가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파괴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본주의의 등장과 기계문명의 발달과 함께 생태계 파괴는 가속화되어 이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요즘 지구촌 도처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재앙들은 생태계에 적대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생태계 문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자본주의와 산업문명과는 전혀 다른 대안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활발히 벌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근본 생태론에서부터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사회생태론 그리고 여성문제까지 생태주의에 포함하는 생태페미니즘 등으로 분화되어온 생태사상과 생태운동은 새로운 생태문명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성찰을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이 제안하는 생태문명은 생태계 위기가 어디에서 초래되었으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래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의 생명을 존중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제, 정치, 교육, 문화, 사회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사회는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기란 어렵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부정적, 파괴적 기능의 원천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잘못된 목적과 세계와 인간에 관한 어리석은 인식에 있다. 이러한 인식의 착오는 매사의 문제를 원시안(遠視眼)적이 아니라 근시안(近視眼)적으로 파악해 왔던 데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늘날 문명과 인류의 종말을 위협하는 것들, 가령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핵무기의 확산 등 문명과 인류의 존속과 참다운 번영을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들의 근본적인 열쇠는 또 다른 과학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의 참다운 세계 인식과 슬기로운 도덕적 행위 및 실천에 달려 있다.

서양 문명의 위대한 발견이자 창조물인 이성적 사고력과 과학적 기술의 문제는 그것이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과 가치관의 포로가 된 인간이 근시안적 지평에 갇혀서 원시적인 도덕적 통찰력을 갖추지 못하고 살아온 데 있다. 그렇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처럼 과학을 맹목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문맥에서 동양 문명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부각될 수 있다. 왜냐하면 21세기의 동양 문명은 서양 문명의 창조물인 귀중한 지식과 사유 양식으로서의 과학과 기술을 거의 세계적 수준까지 높이고, 경제적으로도 서양의 강대국 대열에 함께 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양 문명은 서양 문명과는 달리 인간중심적이 아니라 자연 중심적 세계관과 도덕적 인생관, 미학적 감수성, 공격적이 아니라 타협적 태도, 외향적이 아니라 내향적 심성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다.

서양 문명의 핵심이 외향적이고 기하학적이며, 이성적이고, 공격적이고, 차디차며 배타적이고, 인간중심적이라면, 동양 문명의 핵심은 내면적이고 심미적이며, 감성적이고 따뜻하며 생태친화적이다. 서양 문명의 골격이 과학적이라면, 동양 문명의 핵심은 인문학적이다.

그리고 최근 인문학의 위기와 학문의 통합을 두고 언급할 때 흔히 전제되어 있는 바와는 달리 그것들 간의 통합은 과학에 의한 인문학의 통합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인문학에 의한 과학의 통합만이 가능하다. 언뜻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인문학이 과학의 일부가 될 수는 없지만 과학이 인문학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철학, 역사, 문학 등, 인식 양식으로서의 학문들을 인문학으로 분류하고 과학과 대립시키는 근거가 인문학이 인간의 주관적 사유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과학도 일종의 인문학의 일부이다. 학문은 어떤 객관적 대상의 발견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요성에 맞추어 의도적으로 고안하고 구성해낸 관념적, 도구적 제품이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문학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인식 양식인 과학도 주어진 대상의 객관적 발견이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이 주관으로 구성한 관념적 작품이다. 인문학과 과학이 상호 의존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면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유기적이고 전일적인 인식 양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과 과학이 위와 같은 방식으로 통합될 수 있고, 통합되어야 한다면,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 간의 공존, 화합 그리고 통합은 가능하다. 이러한 지평과 정신으로 자연과 인간, 생태계 보존과 자연개발, 새로운 문화의 탄생과 새로운 문명이 창조된다면 보다 신선한 자연과 인간의 삶의 새로운 개벽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문명의 틀은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인간중심적 근대 과학 기술 문명도 아니며 동양의 도덕적, 즉 인문적 덕목만 중심 가치로 삼는 동양의 전통적 문명도 아닌 제3의 길에 있다. 그것은 두 전통적 문명사에서 상대방의 부정적 측면을 서로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만약 세계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동은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이동이며, 그 이동은 인간중심적 세계관에서 생태중심적 세계관으로의 이동이며 ‘사필귀정’의 우주의 원리에 따른 것이며, 그것은 앞으로의 “생태문명”이라는 자연과 인간이 융합된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양은 이러한 ‘세계의 중심 이동’을 서양에 맞선 동양의 승리나 우월성으로 인식하고 좋아하는 ‘유치함’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반대로 서양은 자신이 지금까지의 문명사에 기여한 공적에 대해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되 병적인 자기 연민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문명은 서양의 오래된 전통의 산물인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근대 과학적 자연 인식 양식과 동양의 오래된 전통의 산물인 생태중심적 자연관 간의 조화로운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생태문명은 인간화된 과학기술 문명인 동시에, 과학적 사유로 보완된 인문 정신문명이 하나의 유기적인 통합 형태를 갖춘 제3의 문명이다. 자본주의와 산업문명의 폐해를 치유하는 21~22세기 보편적 인류문명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1. 생태문명 건설의 첫 삽이 베세토튜브~글로벌튜브인 이유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정책 등 녹색성장 국내 제도와 정책, 그리고 녹색ODA 정책 등 국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분야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 억제책보다는 인간안보, 경제안보 등의 핵심의제로 격상하여 국가경쟁력은 물론 외교력도 향상시킬 수 있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석유문명 이후 인류는 다시 범선(帆船)을 탈 것인가?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에는 말과 낙타를 탔고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는 자동차를 탈 것이다. 그러나 석유가 고갈된 이후의 우리 후손은 다시 말과 낙타를 타야 할까? 비행기 대신 바람으로 움직이는 범선(帆船)으로 해외여행과 교역을 하던 19세기 이전으로 교통수단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할까?

아닐 것이다. 인류의 무한한 지혜와 지식 및 창의력은 자원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돌이 부족해서 청동기와 철기시대로 문명전환이 이루어 지진 않았다. 언젠가는 석유의 시대도 종말을 고하겠지만, 그것이 석유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석유는 검은 황금으로 현대 산업문명의 기반이자 상징으로 현대 문명 그 자체다. 전세계적으로 농업, 수산업, 공업, 수송, 통신, 전력, 군수산업 등 모든 현대적 산업은 석유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세계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자, 군사적인 전략물자이다.

금융 시장도 석유자본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인 이유 중의 하나도 석유결제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위상 때문에 산유국은 언제나 강대국들의 이권각축의 현장이 되었다. 지구 자원이 한정된 만큼 화석연료도 유한하다.

유가가 뛸 때마다 석유 고갈론과 피크오일(peak oil) 이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비외른 롬보르도 “인류가 석기 사용을 중단한 것은 청동과 철이 더 뛰어난 재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에너지 기술이 더 나은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석유 사용은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한한 석유로 좀 더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에서 석유에너지 고갈에 대비하고 21~22세기에도 지속가능한 최상위 교통계층(transport hierarchy)시스템을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그 길은 바로 제5의 교통모드인 “관도(管道, tubeway)”가 될 것이며 기존의 도로, 수상, 철도, 항공모드의 의존을 축소함으로써 지구촌 인구100억명 시대의 교통 인프라를 재구축하여야 한다. 새로운 교통 매체인 베세토튜브와 글로벌튜브망은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한 혁신적인 교통시스템이다.

세계를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어 진정한 글로벌 시대를 열어줄 것이다.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과 진지한 지구 공학적 접근이 필요하며 관건은 최소의 비용으로 진공 튜브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과 함께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여 구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베세토~글로벌튜브는 세계공영전략이다.
베세토튜브(besetotube, 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는 베이징(北京,Beijing)↔서울(首尔,Seoul)↔도쿄(东京,Tokyo)구간을 육상-해상-육상-해상-육상으로 경유하는 최단 구간(약 2,177km)에 건설한 이후 아시아튜브, 태평양튜브, 북극해튜브, 대서양 등으로 연장될 글로벌튜브는 5대양 6대주를 연결한다.

지구공학적 차원의 사상 최대규모 프로젝트로 베세토튜브연구회가 추진하는 기술표준은 하이퍼루프 등 기존 방식과는 달리 다중튜브(Multi tube)와 삼상궤도(三相軌道, Three Phase Track)기술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데 대략 100년의 기간이 걸릴 것이며 1억명이 넘는 노동자가 필요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겠지만 여기에는 큰 기회가 잠재되어 있다. 새로운 교통 매체인 베세토튜브와 글로벌튜브망은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한 혁신적인 교통 시스템으로 세계를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어 진정한 글로벌 시대를 열어줄 것이다.

‘베세토튜브연구회’는 삼상궤도(三相軌道, Three Phase Track)기술 기반의 극極초고속 튜브셔틀 시스템의 연구과 함께, 베세토튜브, 아시아튜브, 태평양튜브, 북극해튜브 건설을 위한 국제사회의 각 행위자인 국가, 국제기구, NGO, 개인들의 기대가 수렴되는 일련의 국제적 규범체계 및 실행절차를 의미하는 국제레짐(international regimes) 이론을 개발코자 한다.

이렇게 개발되고 축적된 지식과 지혜는 천하일가(天下一家)의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들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소강사회(小康社會)와 대동사회(大同社會)의 ‘마실길’인 베세토튜브(한중일), 아중해튜브(한중일+러시아, 대만), 아시아튜브(아세안, 인도아대륙, 중동),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 건설에 활용될 것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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