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주의와 한국의 역할 및 베세토튜브

  1. 아시아 지역주의 담론과 한계
  2. 지구적 변환인 세계화와 생태문명 전환
  3. 전환기 한국의 역할
  4. 아중해(亞中海)공동체와 베세토 튜브

세계질서에서 큰 변화는 경제·인구에서 힘의 구심점이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힘의 구심점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은 경제발전에 의한 역내 의존성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가주의적 세력경쟁에 의해 지역정치적 불안정이 증대되는‘아시아 패러독스’에 빠져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을 필두로 하여,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의 신흥공업국, 그리고 1978년 이후의 중국, 1990년대이후 동남아시아 국가들까지 포함하는 동북아 및 동남아 국가들은 다른 어떤 권역에서 볼 수 없는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발전의 성과와 상호의존성의 증가가 역내 국가들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최근 중국의 부상, 북한 핵문제의 제기 등으로 동아시아국가들 간에서는 분열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은 탈냉전∙지구화(세계화) 수반된 탈영토∙탈주권이라는 탈근대적 문명전환의 추이보다는 비대칭∙불균등 근대화 과정의 유산인 영토 및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국가주의적 대결, 남북한 관계에서 보이는 냉전적인 극한 대치가 심화되고 있다.

동북아는 신민족주의적 갈등으로 국가주의적 대립을 확대해서는 곤란하다. 영토분쟁과 과거사 논쟁에 의한 동북아 국가들의 마찰은 보다 근원적 차원에서 국가주의를 완화하고 신민족주의를 지양(止揚)하기 위한 지역협력과 지역공동체를 형성하여야 한다.

동아시아는 국가주의적 대립으로 위기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공존∙공영의 지역통합으로 21세기 세계의 중심지역의 위상을 확보해나갈 것인가 하는 역사적 기로에 처해 있다. 역사는 모순구조 속에서 전개되나 이 모순구조가 필연적으로 위기와 파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세계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일찍이 마샬 맥루한(H. Marshall McLuhan)이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말을 쓴 후 인류는 서로가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약탈로 얼룩진 지구(global pillage)’가 되고 있다는 자성이 일고 있다.

세계는 곳곳에서 문화 충돌, 인종 분쟁, 민족 갈등의 형태 아래 전쟁, 폭력, 테러가 끊이지 않고 빈곤, 기아, 압제 등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질서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를 가름했던 패권체제 대신에 점증하는 지역 블록화 아래 다(多)중심적인 힘의 재배치가 강화될 것이다.

세계의 헤게모니가 네덜란드-영국-미국-중국으로 옮겨지면서 유럽과 미국을 잇는 대서양에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태평양으로 중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지구의 자전과 같이 “동→서→동”으로 회전하는 것과 같이 유럽에서 아시아로의 ‘힘의 이동’은 이러한 세계의 재편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동아시아 지역주의에 대한 관심은 냉전체제의 종식(1991)과 유럽연합의 결성(1992)을 기점으로 한국과 일본의 학계와 지식인을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1998년을 전후로 한 한국, 태국 등이 봉착한 외환위기 이후 특히 한국의 학계와 지식인들은 동아시아의 지역화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화 추세는 실천적으로 지역 협력의 확대를 넘어서고 있으나 보다 구조적인 지역통합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동아시아 지역화에 대한 연구와 담론은 동아시아 지역화의 현재적 필요성과 미래비전과 실천적 전략을 도출하는 데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동아시아공동체는 역내 국가들의 평화와 공영을 위해 새로이 형성이 요청되는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로 이론적 이해와 분석보다는 실천의 중요성이 가장 큰 문제이다. 동아시아공동체는 국가주의적 갈등의 파국을 극복하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비전이며 이를 위한 접근의 패러다임과 전략적 로드맵을 마련하여야 한다.

 

  1. 아시아 지역주의 담론과 한계

유럽연합의 모델과는 달리 유럽 이외의 지역,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신지역주의’라고 불리는 연성적 행태의 지역주의가 전개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역주의는 ‘지역적 정치통합’이 아닌 다자간 공조포럼의 제도화라는 방식의 개방적이고 중첩적인 방식의 지역주의를 확대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묶어낸 아세안(ASEAN, 1967), 환태평양 국가들을 포괄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의체(APEC, 1989),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1994),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아세안에 한국, 중국, 일본이 참여하는 아세안+3(2000), 아세안+3와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결성한 동아시아정상회의(EAS, 2005), 한국, 중국, 일본의 정상 간의 지역협력 대화체인 한∙중∙일 정상회의(2007) 등등의 다자간 협력포럼이 존재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까지 포괄되어 있는 동아시아의 지역협력체는 경제적∙사회적 상호의존성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들의 집합행동의 결과이지만 개별국가의 영토적 경계와 주권에 대한 집합적 인식을 원천으로 하는 초국가적 지역공동체 구축의 제도화는 미진한 상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연성적 초국가적 협력은 “지역주의 없는 지역화”로 규정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비교해서 새로운 정치단위인 탈근대형 ‘국가연합’(confederation)을 창출하지는 못했지만 개방적이고 연성적인 지역주의가 점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진화 과정이 지역공동체라는 보다 높은 수준의 제도화는 이 지역에 존재하는 제반의 제약 구조에 의해 동아시아공동체’는 실현하기 힘든 ‘신화’로 평가하고 있다.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의 제약 요인

동아시아에는 유럽과는 달리 이 지역의 지역공동체의 구축을 어렵게 하는 여러 가지 제약 요인이 존재한다. 동아시아는 유럽의 역사적 유산, 정치∙경제적 구조와 달리 단일국가를 넘는 지역공동체의 형성에 난관이 되는 주요한 제약 구조가 존재한다.

첫째, 동아시아의 이질성 구조이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체제적, 문명적 이질성이 뚜렷한 지역이다. 동아시아는 한국, 일본, 대만 등 다원적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중국, 북한 베트남 등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에 속하는 국가들이 병존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는 유교∙대승불교∙한자문화가 우세한 동북아 지역과 소승불교와 이슬람의 영향이 강한 동남아라는 문명적 전통의 차이가 뚜렷한 두 지역의 결합해야 하는 전통의 이질성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체제∙문명적 이질성 구조는 동아시아의 지역통합의 제약 요인이 확실하다.

둘째,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격차 문제이다. 동아시아는 선진 국가와 개발도상국, 그리고 최빈국이 혼재한 지역으로 구미 지역과 비교될 수 없는 큰 발전격차가 존재한다. 이 지역의 남북문제는 심각한 수준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발전격차는 지역공동체의 구조적 균열을 야기할 수 있는 요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에 존재하는 과도한 발전격차는 이 지역의 공동체적 결합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제약 요인으로 지역통합과 공동체 형성을 어렵게 하고 있다.

셋째, 동아시아는 미국 등 역외 국가의 전략적 관여도가 높다. 미국의 동아시아에서의 정치∙경제∙전략적 이해관계의 수준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핵심적이고 이와 관련된 역내 국가들의 이익상관성이 큰 편차를 보인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동북아시아 지역은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 중국과 일본간의 세력경쟁이 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듯이 미국은 동아시아의 지역공동체 형성의 주요한 제약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동북아의 긴장고조

특히 동북아 지역은 동북아 지역은 경제적 경제발전과 역내의 상호의존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냉전질서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해양세력과 부상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결집하는 대륙세력 간의 대치는 역내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동북아는 평화와 공영의 21세기를 구축하지 못하고 침략과 저항의 비대칭 근대화,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과 영토분쟁, 분단된 한반도와 중국-대만의 양안(两岸)관계에 내재된 불안정성 등을 안은 채 국가주의적 경쟁과 민족주의적 대립을 지속하고 있다.

동북아는 ‘중국의 부상’에 따라 미국, 러시아 등 역외국가, 한∙중∙일, 북한과 대만 등 역내국가가 연쇄된 치열한 세력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동북아는 19세기 영국과 러시아, 20세기 중반 미국과 소련의 냉전에 이어 21세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라는 제3차 패권쟁탈의 소용돌이에 함몰될 것이 확실하다.

현실의 국제정세는 미국은 21세기, 중국은 20세기, 일본은 19세기 설계도를 그리는 것처럼 우리에게 투영된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네트워크를 유지·강화하면서 동시에 중국을 품어가는 전략이 설계도의 중심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시아 시대에는 미·중·일·러가 제자리에 들어가고 한반도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도 자기 나름의 방을 갖는 형태의 다층적인 주상복합 건물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낡은 청사진의 설계도는 찢어 버리고 최첨단의 3D 입체도면으로 창조적인 설계도면의 모색이 시급하다. 남북한 신질서를 건축하면서 동아시아 신질서 건축과 잘 맞추는 길은 바로 베세토튜브에서 출발하는 아시아튜브, 태평양튜브, 북극해튜브로 완성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의 3차원 설계도이다.

 

  1. 지구적 변환인 세계화와 생태문명 전환

21세기를 막 시작한지 20년을 경과한 현재 인류는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200여 년간 인류문명은 소위 ‘근대(modern)’ 문명의 시대였다. 근대문명은 인권과 자유의 신장, 산업의 발달과 물질적 풍요, 과학의 발달 등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근대적 개발과 발전으로 인한 폐해도 컸다.

아시아의 부상과 패권 이동

아시아는 다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는 유럽을 제치고 미국을 넘보고 있다. 한국·중국·일본·아세안(ASEAN) 10개국, 그리고 인도를 합친 경제 규모는 거대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16년 아시아의 재부를 합치면 40조 달러로, 유럽(39조 달러)을 뛰어넘고 미국(4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이미 미국과 함께 G2(주요 2개국) 대열에 가세했다. 전 세계의 헤게모니가 네덜란드-영국-미국-중국으로 옮겨지면서, 유럽과 미국을 잇는 대서양에서 미국과 중국을 잇는 태평양으로 글로벌 중심이 이동 중이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과 인도의 라지브 간디(Rajiv Gandhi)가 선언했던 ‘아시아의 세기(Asian Century)’가 현실로 도래한 것이다.

콜럼버스 이전 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훨씬 발전돼 있었다. 인류 역사상 두 번째 천년의 첫 다섯 세기(1000~1500년)는 아시아가 앞섰으나, 두 번째 천년의 나머지 다섯 세기(1500~2000년)는 유럽이 아시아를 앞섰다.

서기 1000년 무렵 중국은 상당히 도시화돼 있었고 중동의 바그다드(현재의 이라크 수도)는 100만 명의 시민이 운집한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다. 9~13세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은 그리스·페르시아·인도 문명의 정수를 담은 서적을 집대성해 놓기도 했다.

유럽은 뒤늦게 아시아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르네상스(문예부흥)의 자각, 과학기술 혁명을 통한 ‘지리상의 발견’에 의해 바다를 제패해 아시아를 앞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시아가 다시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유럽·북미 대륙과 더불어 아시아는 근대 산업 세계의 3대 중심축 중 하나가 됐다. 아시아에서 첫 근대화의 성공 사례인 일본을 따라 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의 ‘네 마리 용’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필리핀의 ‘다섯 마리 호랑이’는 신흥국으로 다가섰다. ‘친디아(CHINDIA)’로 불리는 중국과 인도는 세계의 정치 및 경제 대국을 향해 진군 중이다. 아시아가 보여주고 있는 발전의 역동성은 괄목할 만하다. 아시아의 인구·면적·투자·생산량·교역 규모는 북미·남미·유럽·아프리카보다 크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가 규모뿐 아니라 진정한 세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부문에서 풀어야 할 도전이 산재해 있다. 서구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적 경제 체제와 정치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 가치와 콘텐트가 절실하다.

지금까지 아시아는 유럽중심주의 아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서구적 척도에 의해 폄하되어 왔다. 유럽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며, 생동적이라면, 아시아는 특수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정체적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아시아가 부와 권력이나 지식과 문화의 창출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올라서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부상이 서구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옥시덴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탈(脫)유럽이라는 미명 아래 나타나는 배타적 아시아주의는 결국 역(逆)오리엔탈리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세계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교역량에서 미국과 유럽을 능가하는 가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공동체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한국, 중국, 일본은 세계 경제와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총생산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세 나라는 생산, 투자, 무역, 소비에서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아시아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다. 세 나라는 에너지, 금융, 환경, 테러, 발전 등 일련의 문제에서 공통의 협력 틀이 필요하다.

지역 공동체라는 먼 미래를 위해 한·중·일 세 나라는 문화와 경제 교류의 확대를 통해 국민들 사이의 이해와 신뢰를 높여야 한다. 인적·물적 소통과 교섭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향한 합의의 기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동주공제(同舟共濟)’는 손자(孫子) 구지편(九地編)에 나오는 얘기로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뜻으로 ‘이해(利害)와 어려움을 같이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중일 3국은 아시아라는 지역적 공통분모 아래 동주공제(同舟共濟)하는 비전이 필요하다.

세계화와 아시아의 시대인 21세기 아시아의 공동 발전은 ‘공통점을 구하고 차이점은 놔둔다’ 는 구동존이(求同存異)로 각기 다른 문화의 존중과 선린우호 관계를 촉진하여야 한다. 이 점에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과 중국의 ‘중화경제권’이란 자국 중심의 패권주의적 구상을 넘어설 수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선취적이고 전향적 리더십을 한국에서 발휘하여야 할 시점이다.

세계화의 메가트랜드

세계화라는 메가트렌드는 오늘의 지구적 변환의 핵심 키워드이다. 세계화란 세계 전체가 국경의 벽을 넘어 하나의 단위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과거 국가와 국가의 품 안에 있었던 개인, 기업, 지방이 그 테두리를 벗어나 세계와 직접 맞상대하며 또한 여러 형태의 민간 조직들이 국경을 넘어 국가의 간섭을 벗어나 활동한다.

세계화는 국제적인(international) 단계를 넘어, 다국적이고 (multinational), 초국가적인(transnational) 차원을 거쳐 전 지구적(global) 단계로 이행을 말한다. 자본, 노동, 상품, 지식, 문화, 정보 등이 국경을 넘어 교류되는 과정으로 국경을 초월하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관계의 심화를 가져온다.

세계화를 경제통합의 전 지구적 수준에서의 심화 및 확산이라고 정의할 때 그 세계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거래비용의 감소 등에 따른 무역, 금융, 투자 영역 등에서의 경제통합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상승일로에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세계화는 자본의 초(超)국가적 흐름을 중심으로 한 세계시장과 자유무역의 확대를 의미한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국민국가의 울타리를 벗어나 지구시민(global citizen)으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세계화의 다른 측면은 국민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제3의 문화’로서 초국적 문화(transnational culture)의 형성이 필요하다.

모든 문명이 필연적으로 진화하고 진보한다고 가정한다면 후기 산업화 시대, 탈화석연료 시대의  방향성은 어쩔수 없이 “생태문명”으로 전환해 갈 것이다. 따라서 생태문명은 지역, 인종을 초월한 명실공히 전 지구적이고 전 인류적인 문명, 생존과 번영을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인류 보편의 문명을 창달하여야 한다.

동북아시아 지역 한국, 중국, 일본의 국제적 위상은 높은 편이다. 한중일의 외환 보유액은 2016년 기준 대략 4.922조 $(중국-3.308조 $, 일본-1.248조 $, 한국-0.366조 $)로 원화기준 대략 5,500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의 엄청난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공업의 쌀이라 비유되는 철(鐵)과 반도체 생산량 역시 막대한 산업국으로 부상하였다.

한국은 2010년 기준으로 세계 7위의 수출 국가이자 세계 9위의 무역 국가이다. 그리고 GDP에서 세계 11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어 냄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여 왔지만 여전히 분단 국가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생태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 

후기산업산회, 탈산업사회에서 더 많은 에너지 사용, 무한한 성장, 끝없는 물질적 진보는 불가능하고 탈석유(Post Oil)시대 글로벌 운송 시스템의 광범위한 변화와 생활상의 예측과 대응방안이 시급하다. 전세계의 모든 인류는 21/22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비전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인류는 현재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환경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데 생태와 문명의 기계적인 이해에 근거한 사회적, 문화적 패턴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까운 미래 우리가 직면하게 될 환경적 대참사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류문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후기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과 맞물린 문명의 위기가 나날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일찍이 예고되었던 자본주의적 모순이 각종 경제 및 사회지표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삐 풀린 소비의 욕망에 굴복한 무분별한 자연 개발과 환경 파괴는 멈출 줄을 모른다.

기후변화 위기의 예측된 결과를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기반구조를 생태문명에 적합한 구조로 설계를 변경하여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현상 유지를 위한 사소한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 불가능한 화석연료 기반 경제에 독성 화학제품인 녹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제3의 길(The Third Way)이다. 이 패러다임은 보다 지속 가능하고 정당하고 정의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본 틀의 근원적 변화는 ‘생태문명 창달’이다. 이러한 문명 변화는 자연과 인간이 상호 번영하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협력을 필요로 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론과 실천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행성의 자원을 이용하고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산업문명에서의 세계경제는 자연을 소멸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민들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지구 행성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모습은 공간을 점유하는 자연환경에 의존하며 전체 생명체과 개별 생명체 간의 긴밀한 연결망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우리는 이제 생태문명의 웅장한 꿈을 꾸어야 한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산업문명에 연료를 공급한 화석연료 경제 시스템과 화석연료 고갈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맞게 될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다를까? 생태문명에 대한 이러한 변화와 대비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인간중심의 철학과 사상 및 제도로 형성된 산업문명은 어떻게 인류를 파국으로 인도하였는가…

인류의 문명사는 수렵채취의 원시문명, 농업혁명에 의한 농경문명,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산업문명을 거쳐 화석연료 고갈로 어쩔 수 없이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생태문명을 향한 생태유토피아(Ecological Utopia)의 비전은 오랫동안 산업문명에 대척점에 있었다. 우리는 생태문명의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진보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생태문명은 자원절약, 환경보호, 자연 회복력 위주의 도시생활 공간과 산업구조, 생산방식, 생활방식을 생태친화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과학 기술과 생산성의 발전은 인간에게 커다란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인류사적으로 조망하면 지금의 물질적 풍요는 지속될 수 없는 한여름 밤의 꿈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여야 한다. 한계에 도달한 세계 자본주의는 다음 단계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제 4 차 산업 혁명, 로봇, 인공 지능(AI), 빅 데이터 등의 용어에서 미래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일 뿐이다. 한정된 지구자원을 약탈하는 화석연료에 기반의 산업문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는 문명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순기능보다 금융자본과 결합된 역기능이 더 많이 조망되고 있고 현실화될 것이다.

산업혁명의 마지막 과정인 장미빛 4차 산업혁명이 삶을 향상시킬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탐구하는 것은 희망의 과학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무한한 창의력을 갖춘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면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구조와 거버넌스를 창출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과학은 종교와 철학과 대화를 가져야 한다.

 

  1. 전환기 한국의 역할

동북아시아는 아시아의 동부와 북부가 합쳐진 지역을 아우른다. 역내국으로 주택에 거주하는 대륙국 중국, 해양국 일본, 반도국 한국이 동북아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몽골는 물론이고 러시아와 함께 역외국이나 상가에 입주해 있는 미국도 포함할 수 있다. 이중 한국, 중국, 일본은 비교적 강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동북아시아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방향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공동체의식을 함양하여 지역 안에 협조와 공존을 위한 문화와 경제 교류의 확대를 통해 세 나라 국민 사이의 이해와 신뢰를 높여야 할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를 자처한 것도 미국과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북방동맹’과 ‘남방동맹’이라는 대립적 구도 아래에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이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동북아 균형자가 되기에 한국의 역량이 있는가의 여부는 차치하고, 갈등으로부터 협력으로의 동북아 지역 질서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한국의 선도적 의지는 읽을 수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실은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함으로써 한국을 밀어내고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이 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은 동북아 균형론으로 인해 미국과의 남방동맹으로부터 이탈하여 ‘친중노선’으로 전환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현재 동북아시아의 상호 협력을 가로막는 원인은 일본이 중국과 한국에 대해 과거 식민지 시대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보상에 앞서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남경학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수상들의 신사 참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역사 교과서에서 중국과 한국의 식민지화를 미화하는 왜곡도 불사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중국도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면서도 ‘서남공정’과 ‘서북공정’에 이은 ‘동북공정’에서 나타나듯 한국의 고유 역사를 부정하는 패권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영토 분쟁 역시 동북아의 상호 협력을 저해하는 또 다른 원인을 제공한다. 북방 4도의 소유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갈등은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과 센카쿠열도(尖閣列島)/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분쟁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동북아시아는 현재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라는 중층적 갈등 아래 놓여 있다.

동북아시아의 미래는 기회와 위협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장 큰 도전은 한국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복합적인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면, 한국, 중국, 일본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동북아시아 지역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유럽의 경험은 지역 공동체의 형성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오랜 역사의 동북아시아에서 경제적 교류와 군사적 충돌이 있어 왔던 것은 EU와 다를 바 없겠지만, 강력한 국가주의의 전통 아래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통합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는 유럽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으로 인해 APEC의 발전적 제도화가 지체되고 있다. 10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는 ASEAN(Association for South East Asian Nations)은 경제 협력을 강조하지만 회원국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의 긴장과 갈등을 협력과 상생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의 건설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경향 아래 패권 경쟁은 이 지역에서 지역공동체의 건설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역공동체 건설을 경제적으로 뿐만아니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지역공동체의 모색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국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대국적 팽창주의의 피해자일 수 있다. 여기서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재등장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의 시대적 소명이 도출될 수 있다.

물론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국력 면에서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국의 비(非)팽창주의적 입장이 중국과 일본에 대해 도덕적 차원에서 헤게모니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지역 패권국가의 역할을 담당할 능력이 있는 국가이나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에 있어 그러한 능력과 지도력을 방기하고 있었던 까닭에 지역주의 발전이 늦어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일본의 경우 장기 불황 등으로 인해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저하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일본의 상대적 영향력도 크게 약화된 상태이다. 그 와중에 일본은 2000년대 이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거의 ‘일체화’ 수준으로까지 강화해오며 중국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상호 갈등이 심화되며 역내 양대 강국인 중국과 일본은 그 어느 쪽도 지역주의 발전을 위한 패권국가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여기서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처럼 중국과 일본이 일종의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하여 단일 패권국가 부재상태를 극복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한국이 과연 패권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3대 경제대국 중 하나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역학구조에 일정한 영향을 끼쳐 지역통합을 위한 국제협력상황을 이끌어내고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나라는 아니다.

한국 이 동아시아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하드파워보다는 소프트파워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서 하드파워를 구사하는 ‘구조적 리더십’을 가질 수는 없어도, 공동체의 필요성과 방안 그리고 그것의 공공재적 성격 등을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여 제시하고 설명함으로써, 역내 국가들의 통합 여론과 지지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실제 통합의 진전에 기여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는 충분히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의 미국발 경제위기는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동아시아 통합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1997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대외 취약성의 심각성이 드러나면서 받았던 충격이 잊혀갈 무렵 발생한 이 사건을 ‘제2의 외부 충격(the second shock)’으로 받아들여 이제야말로 확실한 잠금(lock-in)효과가 있는 제도적인 공동대응 방안의 체계화를 주창하여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 소비경제의 위축과 달러가치의 하락 추세 등을 감안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역외시장 수출 주도형 성장전략에서 탈피하여 역내 내수시장 중심의 새로운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상당한 호응을 받고 있다.

그를 위해서는 결국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제도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충분한 규모의 안정적인 대안 통상 공간을 역내에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뒤따름은 물론이다. 요컨대, 제2의 외부 충격을 받은 지금이야말로 대외 의존성과 취약성을 경제통합의 진전을 통한 역내 시장의 활성화로 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최적의 시기인 것이다.

지역주의 미발전에 따른 동아시아의 기회비용

동아시아는 세계경제의 3대축을 구성하고 있는 지역이다. 다른 두 축인 EU와 미국 혹은 북미가 지역주의 발전과 세계화의 주도권 행사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흩어져 개별적으로 오직 그들의 타깃으로서만 존재하고 있는 형국이다.

동아시아국가들도 유럽이나 북미주의 국가들이 이미 그러했고, 라틴 아메리카와 남아프리카 등 타 지역의 국가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듯 지역주의를 통해 스스로 지역 행위자로서의 영향력을 강화해놓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그것이 다가올 무역전쟁의 파고를 해쳐갈 대안이다.

이제 다시 동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며 지역주의적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1990년대 말의 상황 인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제2의 외부 충격으로 다가온 2008년 이후의 미국발 경제위기상황을 그 맥락에서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일국주의에 의한 개별 대응으로는 미국이나 EU와 같은 거대세력을 발원지로 하는 외생적이며 이질적인 세계화 압력에 대처하기 힘들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역주의적 공동대응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지역주의 경로를 통한 세계화의 완성으로 이어질 동아시아공동체 시대의 당당한 역사적 주체로 서기 위해서도 동아시아의 지역주의 발전은 필수이다.

자본주의 표준경쟁 상황하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개별 국가들은 자신들 고유의 시장경제체제가 안정적으로 정립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하나의 표준으로 발달된 시장경제체제의 수용 압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미국의 양자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압력이다.

미국과의 양자주의 관계는 개별 동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협상력 절대 열위상태를 감안할 때,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 전자의 요구에 대한 후자의 수용이라는 비대칭적 결론인 각개격파(各個擊破)로 끝날 것은 지난 플라자 합의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증명된바 있다.

한중일 각국이 미국식 세계화 혹은 무역장벽의 수용과 그로 인한 별다른 공동 대책 없이 기존의 양자주의 관계가 지속되는 한 동아시아의 ‘미국화’는 21세기 내내 지속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미국화가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경제 및 사회․문화적 사정과 조건, 정서 등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이는 두고두고 심각한 문제가 된다. 스스로 자기 사정에 맞는 대안체제를 디자인하고 발전시키지 못한 까닭에 이질적이고 불편한 외래체제를 수용하여 거기에 자기 자신을 억지로 맞추어가는 형국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공동체 지향의 역사와 그 문화전통이 강한 동아시아 사회에 가장 적합한 자본주의 표준으로 자리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동아시아는 공동체 의식 외에도 인구밀도나 산업구조 등의 제반 조건상 구성원들 간의 사회경제적 격차에 대한 용인 정도가 비교적 낮은 국가들로 형성된 지역이다.

격차문제에 민감한 사회이며 따라서 격차 발생을 당연시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보편적 채택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시장의 자유보다는 사회적 연대나 공동체의 가치를 더 부각시킬 수 있는 자본주의의 다른 대안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의당 검토해봐야 할 문제이다.

동아시아 최적의 자본주의체제를 동아시아 국가들 스스로가 형성하고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동아시아 고유의 유교자본주의 표준 설정 작업은 동아시아의 경제통합이 선행 혹은 적어도 병행될 것을 요구한다.

지역경제 통합이 진행되어야 그 과정 중에 비로소 제도, 정책, 규범 등의 수렴 혹은 공유 필요성이 역내 국가들 사이에 확산되어 종국에 동아시아 고유의 자본주의체제 혹은 제3의 길을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현재와 같이 동아시아 각국이 일국경제로만 계속 남을 경우 세계화 압력에 대한 그들의 취약성은 날로 증가되어 그들은 결국 구미표준에 스스로들을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역사의 수동적 객체로만 머물게 될 것이다. 

중국과 일본 변수 관리방안

갈수록 막대해지는 중국의 힘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위축과 경계심이 동아시아 통합의 최대 장애라는 지적이 많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국이 ‘세계의 공장’ 지위를 넘어 ‘세계의 시장’으로 그리고 이제 G2로 글로벌 차원에서의 외교안보적 영향력까지 획득해가고 있는 21세기적 상황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통합이란 결국 ‘동아시아의 중국화’를 의미할 뿐이라는 우려인 것이다.

그 진위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와 같은 소위 ‘중국 위협론’이 역내외에서 팽배해질 경우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제도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아시아 각국은 정치, 역사, 문화, 종교적으로 서로 다른 배경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격차가 있기 때문에 융합이 용이하지 않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3국 사이에서도 역사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과 마찰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시기별로는 이들 국가 간 갈등이 오히려 확대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영토문제를 둘러싸고 국가 간 마찰이 빈발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며 아시아의 리더로 부상하는 것을 경계하여 미일동맹으로 중국과 대립은 향후에도 고착될 것이며  중국도 과거와 같은 일본의 영향력 행사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최근 영토분쟁으로 위험수위에 접근하고 있다. 두 나라 갈등이 지속되어 관계가 악화될 경우 주변 국가들 전체가 어려운 여건에 놓일 수 있고 동아시아 통합이 요원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로서는 아시아 지역 내 어느 특정 국가가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유럽 통합과정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구조적 리더십과 기업가적 리더십, 지적 리더십을 잘 발휘한 것을 감안하면 아시아에서의 국가적 리더십 부재는 통합에 있어서 아킬레스건이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공자왈, “군자는 조화롭게 어울리지만 반드시 같기를 요구하지는 않고, 소인은 반드시 같기를 요구하지만 조화롭게 어울리지는 못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목적을 추구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같은 말이다. 조화를 추구하지만 모두가 똑같아지도록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에서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동아시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 올 것이다. 하지만 동이불화(同而不和)는 동아시아에 불화와 갈등을 가져와 지난 세기 불행했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일이다.

한중일 삼국은 동아시아공동체에 관해. ‘쉬운 것을 먼저 합의한 뒤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하고(先易後難), 공통점을 찾아 합의하되 이견은 뒤로 미루고(求同存異), 순서에 맞춰 점진적으로 추진(循序漸進)’하여야 한다.

 

  1. 아중해공동체(亞中海共同體)와 베세토 튜브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 Community) 형성과 베세토튜브 프로젝트는 국가와 정부의 리더십으로는 실패가 명약관화한 사안이다. 현재의 국가이기주의와 민족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이고, 백년하청(百年河淸) 더 나아가 천년하청(千年河淸)의 과업이다.

조직화된 위선(organized hypocrisy)?

동아시아 국가들의 지역공동체에 관한 수사와 담론이 그들의 실제적 행동과 일치하지 않은 현상을 우리는 위선(hypocrisy)이라 부를 수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말하면서, 국내정치에서 민족주의를 동원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조직된 위선이 지속되는 한, 동아시아 지역통합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동아시아의 지역주의적 제도화가 유기적으로 전개되지 못하는 것은 이 지역 국가들의 ‘조직화된 위선’(organized hypocrisy)의 관성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역통합과 공동체에 대한 담론을 확산시키고 여러 수준의 다자대화를 통하여 상호작용을 강화시키면서도, 개별국가의 주권에 대한 그 어떤 제약도 용인하지 않는 ‘조직화된 위선(organized hypocrisy)’을 답습하고 있다.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의 어려움은 우선 외부요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통합을 원하지 않는다” 혹은 “미국을 배제한 지역통합의 어떤 노력도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과 함께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적, 문화적 이질성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집합적 정체성의 부재 혹은 집합 행동의 어려움을 거론하는 것 역시 조직화된 위선이다.

동아시아는 현재 국가주의적 갈등과 지역주의적 공영의 선택이라는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는 지역주의라는 문명전환적 추이, 그리고 이를 제약하는 제반 구조와 환경, 패권경쟁과 국가주의적 관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1990년대의 동아시아 지역통합 논의와 담론, 국가 간 대화보다도 현재의 동아시아 지역주의에 대한 전망은 훨씬 비관적이다. 동아시아는 점증하는 지역주의의 필요를 전략적으로 제도화시켜 공영적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느냐, 아니면 국가주의적 대립과 갈등에 지속하느냐 하는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의 제약 및 방해요인을 기회요인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창조성이 필요하다. 국가이기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운 시민사회와 같은 제3섹터에서 담론을 형성하는 한편, 정치·외교·안보 문제 등 국가간 경성 갈등구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지방정부와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국가와 정부는 후원하거나 적어도 방해하지 않는 거버넌스가 긴요하다.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ベセト同盟)으로

따라서 동아시아공동체 혹은 아중해공동체(亞中海共同體)와 베세토튜브는 과거 중세시기 북유럽의 한자동맹과 같이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ベセト同盟, Beseto League)의 결성을 통해 추진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길이다.

중국의 베이징(北京)시 정부, 한국의 서울(首尔)시 정부, 일본의 도쿄(东京)도 정부의 3각 동맹을 주축으로 경과노선에 있는 텐진시, 인천시, 경기도, 강원도, 이시카와, 기후, 나가노, 야마나시현 정부가 참여하는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체제로 출발하여 점차 참여도시를 확대하여 아중해동맹(亞中海同盟)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중·일 3국이 국가주의·민족주의에 매몰되어 아시아 국가간 갈등을 증폭하고 분쟁을 지속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서방진영의 걸기대(乞期待)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는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무리 커도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력과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음은 걸프전, 이라크전과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Plaza Agreement, プラザ合意) 및 세계금융/경제 위기에서 증명되었다. 이제는 소프트파워, 스마트파워가 필요한 시기이다.

아시아의 중핵 국가인 한중일 3국은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에서 시작하여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를 완성하여야 한다.

22세기 생태문명 사회를 살아갈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와 함께 상생하고 공영하는 것만이 산업혁명 이후 식민지와 자원약탈형의 서구 근대문명을 초극(超克)하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증명하는 제3의 지름길로 한·중·일 3국이 이 길을 활짝 열어야만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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