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도와 디올코스 단상궤도 및 베세토튜브

  1. 로마 아피아 가도
  2. 디올코스 단상궤도(單相軌道)
  3. 단상궤도 vs 삼상궤도
  4. 베세토튜브는 평화와 번영의 길

  1. 로마 아피아 가도

사회 기반시설 혹은 사회 간접자본은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적소유를 원칙으로 한다. 공공을 뜻하는 영어 ‘퍼블릭(public)’의 라틴어 어원은 ‘푸베스(pubes)’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전제 하에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사회 전체에 대해 각성된 성숙성 또는 시민의식(maturity)을 의미한다.

기반시설(基盤施設), 기간시설(基幹施設), 또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는 경제 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들을 말하며, 도로나 하천, 항만, 공항 등과 같이 경제 활동에 밀접한 사회 자본을 말한다. 흔히 인프라(infra)라고도 부른다.

사회 기반시설을 뜻하는 영어 단어 인프라스트럭처의 어원은 기초, 토대, 하부 구조란 의미의 라틴어 인프라(INFRA)다. 라틴어 문자와 법률, 종교와 함께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인공적으로 건설된 사회 간접 자본이 활짝 꽃핀 곳은 고대 로마였고 그리스 문명의 뒤를 이은 로마 문명은 오늘날 서양 문명의 모든 기초와 토대를 제공하였다.

로마의 ‘삽질 군대’가  위대한 길을 만들다.

로마는 일찍이 도로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많은 역사가들이 저마다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로마가 고대 서양 문명의 축으로 부상한 배경과 이유를 들고 있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라는 말처럼 고대 로마를 잘 설명하는 것도 없다.

국가 기간 산업이며 혈맥인 도로를 지배 지역 곳곳에 건설하여 군대의 이동을 쉽게 하고 물산을 쉽고 빠르게 유통시킴으로써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로마는 바로 이 ‘길’을 통해서 시작됐고 완성되었다. 기원전 세계 문명에서 유일하게 하드웨어로서 건축물을 건설한 로마는 압도적 힘으로 주변을 재패했다. 

한국에서 한동안 로마 열풍을 이끌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주제 중의 하나도 바로 이 길이다. 이 책은 열린 사회와 갇힌 사회를 나누는 기준으로서 길에 대해 말한다. 길을 놓으면 그 처음과 끝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어떤 길이든지 시작하는 지점이 종착점이 되고 종착점이 또 시작점이기도 하다.

길이 품고 있는 지역의 모든 것은 평등하게 길로 수렴된다. 길을 연다는 것은 누군가 이 길을 통해서 들어올 수 있으며 또 이 길을 통해 미지의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외부 세력의 침입이 두렵거나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는 길을 열 수가 없다.

자연계의 오솔길이 인공적인 길로 진화했고, 현대에 와서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이제 길은 소통의 중요한 물리적 수단으로 자리 잡아 어떤 사회가 ‘열린 사회’인지 ‘닫힌 사회’인지 가늠하는 잣대로까지 기능한다.

현대 국가의 지도자들이나 정부가 길이나 네트워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하는지, 협소한 당파적 이익을 챙기는지 알 수 있다. 고대 로마의 ‘길’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이다.

2000년 역사의 향취가 풍기는 아피아 가도

아피아 가도는 폭 4미터 이상의 마차 전용 길을 깔고, 이 바깥에 배수로를 파서 도로 파괴의 가장 큰 적인 물이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졌다. 배수로 옆에는 다시 인도를 깔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인도는 도보 여행을 하는 민간인 전용 도로이기도 했다.

로마의 중무장 군단병이 중앙 도로를 이용해 행군할 때 맞닥뜨리는 사람들은 양옆의 인도를 이용해서 길을 막는 일이 없도록 했다. 로마의 가도들이 일상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됐는지를 알려주는 것은 카이사르가 교통 체증에 대응한 법을 제정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카이사르가 집권한 기원전 1세기 중엽의 로마는 서구 세계의 중심이었다. 아마도 지금의 뉴욕이나 런던, 파리 같은 분위기를 풍겼을 것이다. 방금 북아프리카나 루비콘 강 건너 북이탈리아 전선에서 돌아온 군인들,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 들어온 아프리카인들, 마케도니아, 그리스, 비잔티움(이스탄불), 중동에서 온 방문객들과 상인들이 가도를 이용해 한데 모여들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도로에 체증이 생기고 교통사고 사상자도 늘어났다. 

당대의 저술가 스타티우스가 남긴 기록을 보면 로마인들은 아피아 가도를 ‘가도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Appia teritur regina longarum viarum 
“아피아 가도는 도로의 여왕이다”.

아피아 가도는 기원전 312년에 로마가 건설한 최초의 가도다. 훗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대명제를 만들게 한 첫 출발지가 바로 아피아 가도다.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남쪽,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에서 발목 쪽에 위치한 이탈리아 남부지역인 브린디시까지 연결하는 540Km의, 노선이다.

아피아 가도가 만들어진 뒤 기원전 220년에는 집정관이었던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가 플라미니아 가도를 착공한다. 로마에서 북쪽으로 나아가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종착지인 리미니까지 340Km의 노선으로 아피아 가도에 비해서 짧은 구간이지만, 평지로 이루어진 아피아 가도와 달리 산악 지역인 플라미니아 가도의 공사가 훨씬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피아 가도와 플라미니아 가도가 연결되면서 이탈리아는 남북을 관통하는 초현대식 첨단 도로를 갖게 됐다. 이 두 가도의 효용성이 입증되면서 본격적인 도로 건설에 나서 주요 간선과 지선들이 탄생했다.

오늘날의 영국을 말하는 브리타뉴까지 포함한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걸친 로마 가도는 간선만 8만 km에 이르고 지선까지 합하면 15만 km에 이르는 엄청난 인프라스트룩투라였다. 현재 유럽의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폴란드, 터키 등 긴 철도 운영 노선을 가진 나라들의 철도 운행 킬로미터를 모두 합한 길이와 맞먹는다. 

로마 가도를 예외로 한다면 19세기까지도 인류는 근대적 의미의 길을 갖지 못했다. 길은 비만 오면 진창이 되어 걸을 수가 없었다. 소나 말이 진흙 밭에서 허우적거리고 수레바퀴는 속수무책으로 갇혀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천후에도 이용할 수 있는 도로가 생긴다는 것은 사회가 혁명적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가도는 도시의 한 복판을 관통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그만큼 도로 접근성을 높여 주어 가도를 품고 있는 도시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 

로마 가도의 최우선 목적은 군용이었기에 건설은 당연히 군대의 몫이었다. 가도의 여왕이라 불리는 아피아 가도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카푸아까지였으나, 이후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장악하게 되면서 이탈리아 남단인 브린디시까지 연장되었다.

고대 로마 제국의 힘의 원천이었던 군사력은 집정관이 이끄는 군단 병력을 핵심으로 했다. 이 군단 병력의 주력은 중무장 보병이었다. 중무장 보병은 전투 시에 맡는 역할이었고, 일상적인 경우에는 비무장 공병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로마군은 따로 공병을 두지 않았다. 도로 건설에서 이동 시의 숙영지 조성까지 모두 병사들이 맡아서 했다. 시오노 나나미조차 “로마군은 곡괭이로 이긴다“는 말을 소개한다. 로마군의 일상이 주로 ‘곡괭이·삽질‘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물류의 원활한 이동에도 이용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 가도 이름이 ‘소금 길‘인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이다. 보통 이런 도로 계획을 짜는 것은 재무관이며, 그것을 기리기 위해 초기 가도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이 가도를 계획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로마 가도는 최하층 구조로 지표면에서 1-1.5m 깊이로 파 내려가서 길을 평탄하게 한 후 자갈을 까는 1단계 시공을 한다. 이 위에 돌과 자갈과 점토를 섞어서 깔고, 이 위에 다시 잘게 부슨 돌멩이를 아치형으로 깐다. 잘게 부순 돌멩이들은 철도에서 선로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갈을 깐 것처럼 가도가 받는 압력을 지탱해 주는 완충 역할을 맡았다.

아치형의 설계는 비가 오면 도로 양옆으로 자연 배수가 되도록 한 것이다. 마지막 최상층에는 사방 70cm로 두껍게 자른 돌을 빈틈없이 붙여 완벽한 포장도로가 되게 하였다. 이렇게 탄생한 로마의 가도들은 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로마 가도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세계 각지의 물리적 거리를 고속철도처럼 대폭 단축시켰다. 게다가 비만 오면 움직일 수 없는 조건에서 주·야간을 불문하고 언제든지 전천후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2000년 전의 과학 기술과 사회 발전 정도를 따져볼 때 그야말로 혁명적인 일이었다. 

근현대  교통법의 효시(嚆矢)인 로마교통법 

카이사르는 ‘율리우스 교통법’을 만들어 일출부터 일몰 때까지 공공 목적이 아닌 마차나 수레의 로마 진입을 금지했다. 이 법이 시행되자 로마 시내는 교통지옥에서 해방되고 제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성곽 밖에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가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사라진 후 일제히 로마 시내로 쇄도하는 수많은 마차와 수레들의 모습은 새로운 교통법이 만들어낸 진기한 풍경이었다. 

해 질 녘 로마 시내로 앞다투어 들어오는 마차 바퀴들의 굉음은 도로 주변 주민의 원성이 자자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로마 시내에서는 걸어 다녀야 한다는 율리우스 교통법에 따라 카이사르도 걸어 다녔다.

물질적 토대가 정치적, 법률적 구조를 생성해내듯이 기원전 120년경에 드디어 인류사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셈프로니우스 도로법’이라는 ‘율리우스 도로법’보다 훨씬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본격적인 도로교통법이 만들어져 근현대 교통법의 효시(嚆矢)가 된다.

이 법에 따라 로마 가도에는 마일스톤( Milestone)인 구간 이정표(里程標)가 생긴다. 1로마 마일인 1밀리아레는 1,000걸음에 해당하는 거리인 약 1.5km 정도(1밀리아레)마다 사람의 키 높이 정도 높이에 지름 30cm 기둥 모양의 이정표를 세웠다.

여행객들은 오늘날 도로 노선도에 해당하는 여행용 지도(Itinerarium)를 가지고 다니며 현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고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어떤 노선의 로마가도를 선택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여행일정(itinerary)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은 이정표 혹은 여행용 지도를 의미하는 Itinerarium에서 근원하고 있다.

로마는 길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는 문명이다. 로마는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팍스 로마나는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처럼 곳곳에 파병을 했다. 로마 중심의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카르타고나, 대량 살상 무기를 숨겨두었다고 의심되는 갈리아족 같은 ‘악의 축’들을 제거하기 위한 원정을 수시로 시도했다.

고대 로마 가도들은 이 원정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수행하게 도왔다. 로마에 도전하는 세력들을 번개처럼 응징할 수 있는 기동타격대는 잘 닦인 로마 가도를 통해서 적들이 미처 상상할 수 없는 시간에 들이 닥쳐 로마의 군사력을 보여줬다. 

2. 디올코스 단상궤도(單相軌道)

고린도 지협(地峽)은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가느다란 땅이다. 고린도 지협의 길이는 약 15 킬로미터이고, 너비는 가장 넓은 곳이 6 킬로미터 가량이고, 가장 높은 곳이 해발 90 미터를 넘지 않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고린도의 서쪽 바다인 이오니아 바다와 동쪽의 에게해 바다를 연결하는 현재의 고린도 운하는 길이가 6,343 m이다. 폭은 아래가 약간 좁고 위쪽이 조금 넓어서 25 m(아래쪽은 21 m)이며, 수심 8~10 m, 다리에서 수면까지의 높이가 약 60 m-~80 m정도이나 알흠다운 풍광으로 수에즈, 파나마 운하와 함께 세계3대 운하로 손꼽힌다.

신약성서의 주요 저자인 바울이 고린도 지역의 초기 기독교 신자들에게 성경구절을 담아 보낸 편지 묶음이 신약성서의 고린도서다. 고린도전서 13:4-7은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 가장 자세하게 표현한 구절이다. 함께 내용을 읽어보자.

[고린도전서13:4-7]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1 Corinthians 13:4-7]
4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5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6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7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야트막하고 좁디 좁은 고린도 지협(地峽)을 통하여 거대한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붙어 있는데 두 개의 땅덩어리가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형상이다. 이 지형이 고대 그리스에서 석회석 선로를 깔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아테네 항을 출발한 무역선들이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에게해 남단을 거쳐 거친 지중해로 나아가 다시 이오니아 해로 진입하는 항로로 펠로폰네소스 반도 전체를 돌아 가는 원양항해를 해야만 했다. 고대의 선박 건조 능력과 항해 기술로 거친 에게해를 극복하고 지중해를 도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은 고린도 지역의 잘록한 허리인 지협(地峽)에 선박을 이동시킬 수 있는 길을 놓는 건설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고린도 언덕에 단단한 석회암으로 평평하게 선로를 깔았다. 궤도의 간격은 광궤로 알려진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궤도 폭보다 10여cm가 넓은 1.6m였는데 현재 철도의 표준 궤도가 1.43m이니 지금의 기준으로 하면 초광궤를 건설한 셈이다.

도로폭은 3.4m에서 6m로 이 폭을 기준으로 그 위를 지나갔을 배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사용된 범선 가운데 하나인 갤리(Galley)선이었다. 고대 지중해에서 군함으로 쓰이기 시작한 범선인 갤리선은 바람보다 노를 이용해 주로 움직였다.

노는 주로 죄수나 전쟁포로를 노예로 하여 강제로 젓게끔 하는 일이 성행하였다. 영화 벤허에서 벤허가 노예로 끌려가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특히 전투선으로 주로 3단에서 5단 노를 갖춘 갤리선이 전투의 주력이었다.

전투시에는 돛을 내리고 노만으로 조정하였고 당연히 항해술이 뛰어난 민족이 지중해의 지배민족이 되었다. 고린도와 펠로폰네소스 사이의 잘록한 지협(地峽)을 관통하는 6~8.4km 길이의 그리스 최초의 ‘궤도수레’로 오늘날 철도격인 디올코스(Diolkos) 궤도는 기원전 600년 전 운행을 시작한다.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선로위에 바퀴가 달린 평평한 ‘궤도수레’를 준비하고 그 위에 에게해에서 이오니아해로 넘어갈 배가 올려 진다. 25t의 무게에 35m 길이, 5m 높이의 돛대를 장착한 3~5단 노의 갤리선이 운반 중 파손에 대비해 단단히 묶인 채 이동을 시작한다. 

이 ‘궤도수레’를 운행하기 위해 112명에서 142명의 사람들이 동원됐다. 시간이 촉박한 화물을 위해 급행수레도 운행되었는데 이때에는 180명 정도의 인부가 수레를 끌었다. 디올코스 ‘궤도수레’의 속도는 시속 2km였는데 전체 구간을 이동하는데 세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디올코스(Diolkos) 궤도가 가동되자 해상 무역의 신기원이 열렸다.

목숨을 걸고 거친 바다에서 400 km를 우회해야 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온 궤도교통 수단이었다. 영국 과학사학자 M.J.T 루이스에 따르면 디올코스 궤도는 궤도위의 바퀴가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는 현대 철도의 모습을 정확히 구현한 ‘고대 철길’이라고 말한다.

공공적 목적으로 건설되었지만 이용자에게 통행료를 받아 해상 무역 과정에서의 이익을 챙긴 디올코스 궤도는 서기 1세기 까지 약 650년 정도 유지됐다. 현대의 모든 철도노선을 포함해서 가장 오래 동안 이용된 노선이 디올코스 궤도교통 수단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건설한 디올코스 ‘궤도수레’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사회 기반 시설이다. 

배를 육로로 운반 할 수 있도록 사용되었던 포장된 도로로 인 “디올코스(Diolkos)는 BC 7세기 건설되어 AD 9세기까지 1000 년 이상 사용되었다. 큰 포장 돌로 만들어졌고 약 11-20 피트(3.4-6m) 폭으로 지협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가능한 한 높은 지면을 피하면서 건설되었다.

주로 선실이 없는 전함인 갤리선을 옮겼고, 상선일 경우에는 “겐그레아 부두”에서 선내의 짐을 하역하고 배를 가볍게 하여 고린도만의 레헤온 항구로 “올꼬스 네온”을 이용하여 옮겼으며 가까운 고린도 지방의 일부는 통행료, 관세, 해운 업계 관계자의 서비스 및 도로 유지 및 보수 등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이렇게 육로로 배를 옮겨서 이동할 경우 잦은 풍랑이 높은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단의 말레아 곳을 돌아가는 위험한 뱃길보다 약 400 km정도 단축할 수 있었다. 안전과 지름길이란 이유로 고대에는 노예를 부려 육로로 배와 화물을 옮겨서 가고자 하는 반대편의 항구로 옮겼던 것이다.

말이 끄는 형태의 궤도교통이 고대 그리스의 몰타에서 시작됐고 돌을 깎은 레일을 이용한 노선들도 고대 로마제국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으나 고린도 지협(地峽)의  디올코스(Diolkos, Δίολκος) 단상궤도(Two Track)는 고대 최고 수준의 궤도교통 인프라로 평가된다.

고린도가 일찍부터 그리스 세계의 상업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본토와 펠로폰네소스를 잇는 동시에 두 만의 바다를 이어주는 지협(地峽)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배라도 한쪽 바다에서 다른 쪽으로 사람의 힘이나 동물의 힘을 이용하여 옮기는 일은 힘이 들고 위험한 일이었다.

고대부터 이 지협에 운하를 파려는 수많은 계획과 시도가 있었다. BC 6 세기 초에 고린도를 다스렸던 페리안드로스는 이곳에 운하를 팔 계획을 세웠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로마의 폭군 칼리굴라 황제 역시 운하를 팔 계획을 세웠지만 비명횡사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에 로마의 네로 황제는 6, 000명의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서부터 고린도로 이주시켜 운하를 파는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전쟁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 때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 살게 된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고린도에 남아 살게 되었으며 이 유대인들이 나중에 사도 바울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들에 의해서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교 교회를 고린도에 세우게 된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고대 고린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이 운하 만들기를 계획하였으나 기술과 재정문제로 실패하였다. 그 후 19세기 프랑스 자본과 기술로 고린도 운하는 2000년 간의 수많은 시도 끝에 개통된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던 프랑스의 토목 기술자 레셉스가 1882년에서 1893년까지 12년간의 대역사를 벌여 완성하여 뱃길을 무려 320 km를 단축해 주는 아름다운 운하가 완성되었다.

 

  1. 단상궤도 vs 삼상궤도

단상궤도(單相軌道, Two Phase Track)

인류는 유사이래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오솔길부터 시작하여 바퀴를 발명하고 가축을 이용한 마차시대가 전개되었다. 군사목적과 물류의 효율화에 기여한 로마가도와 ‘중국의 진직도(秦直道)’ 등의 도로망과 고속도로망을 정비하고 구축하였다.

그 후 수로를 이용한 수운의 발전으로 대규모 내륙운하와 해운운하(고린도, 수에즈, 파나마 등)를 통한 해운운송을 거쳐 산업혁명기 증기기관을 이용한 철도망에서 고속철도망으로 진화하였고 항공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륜바퀴와 단상궤도는 고대의 수레 혹은 마차에서 연원한 기술적 사상으로 오랜 세월 기술개선으로 열차주행 속도를 꾸준히 증대하여 왔다. 그러나 단상궤도와 이륜바퀴에서 나타나는 정현파 형태의 사행동(蛇行動, snake motion, hunting)은 철도차량의 공진현상 중 하나이다.

주로 직선부를 고속으로 주행할 경우 차체나 대차, 차축 등이 연직축 둘레방향 회전진동(yawing)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궤도나 대차·차체에 손상을 주며 정도가 심한 경우 탈선사고의 주된 원인이 되므로 고속화에서는 특히 이 현상에 대한 대책이 중요하다.

단상궤도 방식은 중력극복을 위한 경제적인 자기부상 기술의 적용이 어렵고 초고속 주행에 따른 공기저항의 극복이 지난하다. 또한 진동과 섭동 등의 다양한 문제점 해결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하여, 음속돌파와 같은 초고속 주행 이동체 시스템 적용은 새로운 기술방식의 개발이 요구된다.

삼상궤도(三相軌道, Three Phase Track)

베세토튜브는 종래 단상궤도와 이륜바퀴의 기존 철도기술에서 연원하는 단상궤도 자기부상 열차와 진공튜브 열차기술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튜브내 정삼각형 꼭지점 ABC에 삼상(Three Phase) 자기부상 궤도(Track)가 안치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진공 자기부상 이동체 시스템을 제공한다.

튜브 내부 정삼각형 꼭짓점 A(π/2), B(7π/6), C(11π/6)에 안치되는 자기편의 프레임은 WF보(wide-flange beam)에 상응하는 구조물로 튜브내부에 형성되는 음정현파형 내벽에 WF보의 플랜지(flange)가 취부되고 웨브(web)와 또 다른 플랜지가 자기편의 프레임이 되는 구조를 갖게 된다.

이때, 주행튜브 내심의 2π/3 길이를 갖는 3개 WF보의 플랜지를 2π/3 위상(120도) 간격으로 배열하고 쐐기(wedge)로 주행튜브 내부에 취부하는 방법으로 조립하면 주행튜브를 한 겹 더 보강하는 샌드위치보의 효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자기부상 이동체 운행에 따른 동역학적 응력을 선로튜브 전체면으로 분산시켜 인장․비틀림․굽힘․압축강도 향상으로 반복적인 하중을 받아 지속적으로 강도가 저하되어 발생하는 피로파괴(fatigue failure)를 예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기부상이동체인 튜브셔틀(tube shuttle)은 단독 혹은 군집형 운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되며 셔틀 본체에 매립형 전자기편 요(凹)를 정삼각형 꼭지점 A(π/2), B(7π/6), C(11π/6)에 안치함으로써 중력위치 에너지(gravitational potential energy)와 탄성위치 에너지(elastic potential energy)를 튜브셔틀의 기하학적 중심점인 3차원 xyz축상의 가상원점 O(0, 0, 0)으로 이동시켜 계(system)의 안정평형(stable equilibrium)상태에서 튜브셔틀의 초음속 혹은 아음속의 극초고속 운행이 가능하게 된다..

베세토튜브의 자기부상 이동체인 튜브셔틀(tube shuttle)은 양정현파 주름관 주행튜브와 튜브셔틀의 정삼각형 꼭짓점(π/2, 7π/6, 11π/6)에 자기편 철(凸)과 전자기편 요(凹)가 위치하는 xyz축 원통 좌표계(cylindrical coordinate system)의 삼상궤도(three phase track) 자기부상 기술방식이다.

삼상궤도 자기부상 방식은 이동체의 무게 중심(center of gravity)과 모멘트 중심(center of moment)을 원통 실린더 형상인 튜브셔틀의 가상원점 O(0, 0, 0)으로 이동시켜 안정평형(stable equilibrium) 상태 주행이 가능하므로, 기존 단상궤도 자기부상 기술의 중립평형(neutral equilibrium)과 열차 주행시의 불안정 평형(unstable equilibrium) 문제를 해소하여 진동이나 섭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본 방식은 종래 2궤도 단상방식의 자기부상 열차나 진공 자기부상 열차기술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진공 혹은 아진공의 양정현파 주름관을 다중으로 연접한 주행튜브와 튜브 내벽 정삼각형 꼭지점ABC에 안치하는 삼상궤도를 초음속 혹은 아음속으로 주행하는 실린더 형상 선형스테핑모터(LSM)방식 튜브셔틀(tube shuttle)은 중앙관제소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자율주행을 제어하는 진공 자기부상 이동체 시스템을 제공한다. 

정리하면, 삼상궤도(three phase track) 튜브선로와 이동체 시스템은 기존 2궤도 단상부상 방식보다  √3배(1.732)의 부상력과 견인력 및 내진동 특성을 갖게 되고 1/√3(0.577)의 부상력과 견인력만으로 2 궤도 단상방식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게 되는 특장점으로 튜브셔틀(tube shuttle)의 극초고속 운행이 가능한 성(省)에너지 교통수단이다.

이러한 삼상궤도(Three Phase Track) 방식은 자기부상 이동체인 튜브셔틀(tube shuttle)의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과 모멘트 중심(center of moment)의 벡터합력과 복원력을 xyz축의 가상원점 O(0, 0, 0)에 구속시켜 안정평형(stable equilibrium) 상태의 극초고속 주행을 가능케 한다.

특히, 양정현파(陽正弦波) 주름관의 튜브는 동일체적에서 최대 주행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주행튜브의 정삼각형 꼭지점ABC에 안치되는 자기편은 튜브 내심 원호 길이를 갖는 3개 WF보(Wide Flange Beam) 형상의 부재로 보강하여 다중샌드위치보(Multiple Sandwich Beam, MSB)의 구조물로 동일체적 대비 편평관보다 월등한 인장, 비틀림, 굽힘, 압축 강도를 시현할 수 있는 제5모드(mode)의 교통수단이다.

 

  1. 베세토튜브는 평화와 번영의 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s lead to Rome)말과 같이 길(道)은 연결과 소통의 플랫폼이다. “강한 사람은 길을 만들고 약한 사람은 성벽을 쌓는다.” 라는 말과 “길을 열면 흥하고 벽을 쌓으면 망한다”라는 징기스칸의 명언은 오늘날 글로벌 시대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방벽을 쌓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보호무역과 관세장벽은 ‘갇힌 사회’로 가는 지름길로  결코 미래를 위해 바른길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외적의 방비를 위한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은 버려졌으며 철의 장막을 친 소련은 결국 무너졌고 중국의 만리장성은 원(元), 청(淸)의 칩입에 무력했다.

1929년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으로 촉발된 대공항(Great Depression)은 미국이 보호무역과 관세장벽을 쌓는 무역전쟁으로 전이되고,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치스와 일본 군국주의의 발호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을 낳았음은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방벽보다는 길을 내는 자가 승리한다

방벽과 장성이 외침에 무력했던 역사는 성벽이 무너져서가 아니라 내분과 경제적 쇠퇴가 겹쳤기 때문이다. 징기즈칸은 “어떤 성벽도 그걸 지키는 병사들보다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실크로드(Silk Road), 로마가도와 같은 ‘열린 길’은 문명의 교류와 교역을 촉진하여 부(富)를 키우고 평화를 가져 왔다.

따라서 한·중·일 3국은 ‘갇힌 사회’가 아니라 ‘열린 사회’를 지향하여야 한다. 한중일 3국의 위상은 경제분야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는 반면 내재하는 숙적관계와 역사 및 북한 핵문제 등 정치·안보 갈등은 심화되는 소위 “아시아 패러독스”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 글로벌 무대에서 ‘아시안 디스카운트’ 현상이 노정되어 본연의 역량이 평가절하되고 있다.

현재 한중일 3국의 연간 상호 방문객은 약 2000만 명(2014년 기준)으로 2020년 30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며,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관계 및 관광객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 할 전망이며, 역내 600개 이상 도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경제적으로 더 저렴하고 항공편 보다 소요시간이 대폭 단축 되는 신교통 수단이 등장할 경우 한중일 3국의 방문객은 폭증할 것이다.

퇴행적이고 편협한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ism, 自民族 中心主義)와 자국 이기주의로 인한 3국간 정치 외교적 갈등은 과거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본격 형성된 국민국가 들의 국익 우선과 영토확장을 추구한 서세동점 시기 서방 국가들의 유산이다. 역내 국가간 개방과 협력이 필요한 후기 산업문명과 초기 생태문명이 개화할 천하일가(天下一家)의 21~22세기에는 단연코 지양되어야 한다.

세계 경제의 축이 아시아로 회기한 21세기에도 전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한 서방국가 들이 ‘글로벌 거버넌스’를 장악하여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아시아 국들은 경제력이나 인구 및 문화적 측면에서 향유하여야 할 본연의 몫을 행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지속적으로 노정되고 있다.

베세토튜브(besetotube)라는 기념비적 프로젝트를 한·중·일 3국의 국민·인민·신민의 뜻을 모아 공동으로 연구·개발하여 다음 세기가 도래하기 전인 2099년 이전에 개통하고 노선을 점차 연장하여 아시아는 물론 미주(NAFTA)와 유럽(EU)을 연결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로 확장하여 천하일가(天下一家)의 글로벌 신 교통망으로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아중해(亞中海)를 생태문명((生态文明)) 중심지로

아시아의 중핵 국가인 한중일 3국은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에서 시작하여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를 한중일 3국의 주도로 완성하여야 한다. 최첨단의 기술력과 함께 막대한 외환보유액 등 자금력도 충분하다. 단지 고질적이고 빈약한 글로벌 리더십이 문제일 뿐이다.

22세기 생태문명 사회를 살아갈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들이 함께 상생(相生)하고 공영(共榮)하는 것만이 산업혁명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식민지 수탈과 자원약탈에 이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후발국에 대한 보호무역, 기축통화의 지배력 남용, 반복되는 환율전쟁으로 근린궁핍화 전략을 정당화하는 서구 근대문명의 모순을 극복하고 성실성, 예의와 공손,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참된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증명하는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유사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인 ‘아시아 패러독스’를 스스로 극복하여 한다.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를 기반으로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를 완성하는 과업이야말로 서구 근대를 초극(超克)하여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를 열고 생태문명(生態文明/生态文明, Ecological Civilization)을 꽃피우는 제3의 길이다.

옛말에 “백만금으로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 이웃을 산다(白萬買宅 千萬買隣)”고 하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국가인 한중일 3국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자세로 공동이익을 위해 진정 서로 이해하고 협력함으로써 3국의 국민·인민·신민이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동아시아공동체를 구축하여야 한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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