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사회와 소강사회 및 베세토튜브

  1. 대동사회(大同社會)의 본질
  2. 유교국가 중국의 꿈(中國夢)
  3. 중화민족(中华民族)주의 고양
  4. 대동(大同)사회 vs 소강(小康)사회
  5. 베세토튜브는 소강사회와 대동사회의 플랫폼이다.

  1. 대동사회(大同社會)의 본질

우리는 흔히 “대동제(大同祭)”나 “대동단결(大同團結)” 혹은 “소강상태(小康狀態)”나 “소강국면(小康局面)”에 접어들었다는 표현을 쓴다. 중국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3단계 발전론을 제시한 이래, “대동”과 “소강”은 중국 사회의 발전 과정을 대변하는 상징어로 자리를 잡았다.

1단계는 국민들이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원바오(溫飽) 단계”, 2단계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소강”을 말하며, 3단계는 만인이 평등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 건설의 완성 즉 “대동”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대동법(大同法)은 광해군 즉위년(1608)에 국가·왕실에 바치는 각종 진상품(進上品)인 공납(貢納)을 쌀로 통일해서 내는 세법을 뜻한다. 과거의 공납은 부자와 빈자의 구분 없이 비슷한 금액이 가호(家戶)마다 부과되어 가난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대동법은 농토(農土)의 많고 적음을 기준으로 부과했으므로 조세정의에 가까웠는데 그 시행 관청이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푸는 관청’이란 뜻의 ‘선혜청(宣惠廳)’일 정도로 가난한 백성들이 환영한 세법이었다.

대동(大同)은 동양의 개혁 정치가들이 지향했던 이상사회였다. 동양 사회는 대동(大同)→소강(小康)→난세(亂世)의 순으로 분류된다. 중국 공산당은 2003년 당시를 소강(小康)사회로 평가하면서 앞으로는 대동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식 사회주의의 진로를 동양 고전에서 찾았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도 미래 방향을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지만 동양 고전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좌우 어느 쪽에서도 하지 않는다. 대동, 소강, 난세의 편린이나마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진로에 대해 조금은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동사회는 요순(堯舜) 임금이 다스리는 사회를 뜻하고, 소강사회는 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시대를 뜻한다. 요순이 다스리는 무위지치(無爲之治)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세상이다.

자유(子游)에게 대동사회의 모습을 설명한 공자는 이어서 소강사회의 모습을 설명한다. 공자는 “지금은 대도(大道)가 모습을 감추니 천하는 자기 집안의 것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대동사회는 천하가 공공을 위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사회라면 소강사회는 천하가 자기 집안을 위하는 천하위가(天下爲家) 사회였다.

공자는 소강사회는 자기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여기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며 재화와 힘을 자기만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천자나 제후 같은 대인(大人)들은 자리를 세습하는 것을 예(禮)로 삼고, 성곽과 해자(垓字)를 파서 스스로 굳게 지키는 사회다. 그러나 소강사회도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로 보았다.

대동(大同)사회

동양 유학사회에서 이상으로 삼았던 대동(대동)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예운은 세상 모든 사람이 한집안 사람처럼 화목하고 천하가 통일되어 태평하게 잘 다스려지는 천하일가(天下一家) 사상을 집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큰 도가 실행될 때와 하(夏) 상(商) 주(周) 삼대의 훌륭한 인물들이 정치를 하던 때는, 내가 그 시절에 미칠 수는 없으나 기록이 남아있어 알 수 있다. 큰 도(大道)가 실행되던 때는, 세상이 공천하(公天下)였으니, 어질고 재능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화목함을 갖췄다. (생략) 이를 대동이라고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큰 도가 사라졌으니, 세상이 가천하(家天下)가 되었다. 각각 자신의 어버이만이 어버이가 되고, 자신의 자식만이 자식이 되었으며, 재물과 힘은 자신을 위해 썼다. (생략) 하(夏)나라 우(禹)임금과 상(商)나라 탕(湯)임금,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은 이러한 예의로 시비를 구별하였다.

이 여섯 군자(君子)들은 예의에 삼가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그럼으로써 그 의로움을 분명히 하고, 그 신의를 깊이 헤아렸으며, 허물을 드러내고, 형벌과 어질음을 꾀하고 꾸짖어, 백성들에게 항상 그러함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권세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물리쳐 백성들이 그를 재해(殃)를 미치는 임금이라고 하게 한다. 이를 일컬어 소강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

공자(孔子)가 농사의 신인 신농(神農)씨를 제사하는 사제(祭)에 빈(賓)으로 참석하고 나서 관(關:성문) 위에서 쉬다가 서글프게 탄식했다. 자유(子游)가 까닭을 묻자 공자는 먼저 ‘대도(大道)가 행해졌던 때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었다(天下爲公)’고 말했다. 대도가 행해졌던 요·순(堯舜) 임금 때는 세상이 모두의 것이라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사상이 지배했다는 뜻이다.

曰君子何嘆(왈군자하탄) : “군자께서는 무엇을 탄식하십니까.”

孔子曰(공자왈) :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

大道之行也(대도지행야) : 옛날 큰 도가 행하여진 일과

與三代之英丘未之逮也(여삼대지영구미지체야) : 3대의 영현한 인물들이 때를 만났어도 도를 행한 일을 내가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而有志焉(이유지언) : 3대의 영현들의 한 일에 대하여는 기록이 있다

大道之行也(대도지행야) : 큰 도가 행하여지자

天下爲公(천하위공) : 천하를 공기로 생각하여

選賢與能(선현여능) : 어질고 유능한 인물을 선택하여 서로 전하였다

講信修睦(강신수목) : 당시의 사람들은 믿음을 강습하고 화목함을 수행하였다

故人不獨親其親(고인불독친기친) : 그러므로 사람들은 홀로 자기의 어버이만을 친해하지 않았으며

不獨子其子(불독자기자) : 홀로 자기의 아들만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使老有所終(사노유소종) : 늙은이로 하여금 그 생을 편안히 미칠 수 있게 하고

壯有所用(장유소용) : 장년으로 하여금 쓰일 곳이 있게 하며

幼有所長(유유소장) : 어린이로 하여금 의지하여 성장할 곳이 있게 하고

矜寡孤獨廢疾者皆有所養(긍과고독폐질자개유소양) : 환과고독과 폐질에 걸린 자로 하여금 다 부양을 받을 수 있게 하며

男有分(남유분) : 남자는 사·농·공·상의 직분이 있고

女有歸(여유귀) : 여자는 돌아갈 남편의 집이 있었다

貨惡其弃於地也不必藏於己(화악기기어지야불필장어기) : 재화라는 것은 헛되게 땅에 벼려지는 것을 미워하지만 반드시 자기에게만 사사로이 감추어 두지 않았으며

力惡其不出於身也(력악기불출어신야) : 힘이란 것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不必爲己(불필위기) : 그 노력을 반드시 자기 자신의 사리를 위해서만 힘쓰지는 않았다

是故謀閉而不興(시고모폐이불흥) : 그런 까닭에 간사한 꾀는 폐색되어 일어나지 않았으며

盜竊亂賊而不作(도절난적이불작) : 절도나 난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故外戶而不閉(고외호이불폐) : 그러므로 바깥 지게문을 닫는 일이 없었다

是謂大同(시위대동) : 이러한 세상을 대동의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모든 약자를 봉양하는 복지사회의 전제는 ‘젊은이는 다 할 일이 있었으며… 남자는 직업이 있는’ 사회였다. 곧 풍부한 일자리가 복지사회의 전제라는 사실을 2500년 전의 공자는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공자는 또 “재물을 땅에 버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는 않았다. 몸소 일하지 않는 것을 미워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서만 일하지는 않았다”면서 노동의 보편성과 소유의 공공성을 설파했다. “그래서 바깥 문을 열고 닫지 않았으니 이를 일러 대동(大同)이라고 한다”고 공자는 설명했다.

대동사회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격양가(擊壤歌)다. 1세기 때 왕충(王充)이 지은 『논형(論衡)』 ‘예증(藝增)’ 편에 50세 사람이 길에서 “크도다, 요(堯)임금의 덕이여!”라고 임금을 찬양했다. 그러자 땅을 두드리던(擊壤) 사람이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 지면 돌아와 쉬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서 밥을 먹는데/ 임금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日出而作, 日入而息/鑿井而飮, 耕田而食/帝力於我何有哉))”라고 반박했다. 한마디로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잘 돌아가는 무위이치(無爲而治)의 세상이 대동사회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편에 “봉황은 저 높은 산봉우리에서 울고/ 오동나무는 저 조양 땅에서 자라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兮 于彼朝陽)”라는 노래가 있다. 새들의 왕인 봉황은 제왕이 갖추어야할 덕목을 상징하녀 청와대에도 봉황이 있다. 봉황은 천년에 한 번 열리는 대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 정도로 고결하며, 나라가 태평성대일 때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청와대 봉황문양>

소강사회(小康社會)

대동(大同)사회보다 조금 못한 세상이 소강(小康)사회다. 조선 태종은 재위 7년(1407) 종3품 이하 문신들의 시험 때 직접 시무책(時務策)을 출제하면서 “내가 부덕(否德)한 몸으로 한 나라 신민(臣民)의 임금 자리에 올랐는데 비록 덕교(德敎)를 백성들에게 미친 것은 없지만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거의 소강(小康)을 이루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도전도 태조의 입을 빌려 대신 출제한 과거시험 문제인 전시책(殿試策)에서 “우러러 전대(前代:고려)를 본받아 꼭 소강(小康)을 이루려고 기약한다”(『삼봉집(三峰集)』)고 말했다. 조선뿐 아니라 고려도 소강사회를 지향했다는 뜻이다.

대동사회는 요순(堯舜) 임금이 다스리는 사회를 뜻하고, 소강사회는 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시대를 뜻한다. 요순이 다스리는 무위지치(無爲之治)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세상이다. 자유(子游)에게 대동사회의 모습을 설명한 공자는 이어서 소강사회의 모습을 설명한다. 공자는 “지금은 대도(大道)가 모습을 감추니 천하는 자기 집안의 것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이 부분이 대동과 소강의 가장 큰 차이다. 대동사회는 천하가 공공을 위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사회라면 소강사회는 천하가 자기 집안을 위하는 천하위가(天下爲家) 사회였다. 공자는 소강사회는 자기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여기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며 재화와 힘을 자기만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천자나 제후 같은 대인(大人)들은 자리를 세습하는 것을 예(禮)로 삼고, 성곽과 해자(垓字)를 파서 스스로 굳게 지키는 사회다.

그러나 소강사회도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로 보았다. 공자는 그 이유를 “예의를 벼리로 삼아서(禮義以爲紀), 군신(君臣) 사이가 바르게 되고, 부자(父子)가 돈독하게 되고, 형제가 화목하고 부부가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우·탕·문왕·무왕·성왕·주공 여섯 군자(君子)는 예(禮)를 삼가지 않은 이가 없어서 의(義)가 드러나고, 믿음이 이루어졌는데, 공자는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집권자라도 백성들로부터 재앙으로 여겨져서 쫓겨났다_박근혜 탄핵?”면서 “이를 일러 소강(是謂小康)”이라고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서 말했다.

禹湯文武成王周公由此其選也(우탕문무성왕주공유차기선야) :

우왕· 탕왕· 문왕·무왕·성왕·주공은 이 예의를 써서 잘 다스린 자들이다

此六君子者未有不謹於禮者也(차육군자자미유불근어례자야) :

이 여섯 사람의 군자들은 예를 삼가지 않은 이가 없다

以著其義(이저기의) : 그리하여 의를 드러내고

以考其信(이고기신) : 신의을 이루며

著有過(저유과) : 허물 있는 것을 드러내 밝히고

刑仁(형인) : 인을 법칙으로 하며

講讓(강양) : 겸양의 도를 강설하여

示民有常(시민유상) : 백성들에게 떳떳한 법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如有不由此者(여유불유차자) : 이 떳떳한 법에 좇지 않는 자가 있으면

者去(재예자거) : 귄세의 지위에 있는 자일지라도 배척해 내쫓아서

衆以爲殃(중이위앙) : 백성들이 그를 백성에게 재해를 미치는 임금이라고 하게 한다

是謂小康(시위소강) : 이러한 세상을 조금 평안한 세상(小康)이라고 말한다

중국 공산당은 2003년 대략 소강사회는 이룩했다면서 앞으로 대동사회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이 유교국가로 갈 것으로 보는 주요한 근거의 하나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같은 난세(亂世)에서 벗어난 것이 맞지만 지금이 소강사회라는 데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우리 한국사회도 소강사회에 도달했다고 절대 말할 수 없겠으나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촛불혁명으로 집권자가 예(禮)를 삼가지 않고 의(義)와 믿음을 져버린 집권자인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소강사회의 초입으로 진입하는 계기는 아닐런지…

난세(亂世)

대동(大同)과 소강(小康)보다 못한 사회가 난세(亂世)다. 전국(戰國)시대 공양고(公羊高)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서 분류한 것으로 태평(太平·대동), 승평(升平·소강), 난세(亂世)라고도 한다. 고려 말 목은 이색(李穡)은 ‘함창음(咸昌吟)’이란 시에서 “어지러운 천하에 몇 개의 진나라 지났던가(天下紛紛過幾秦)”라고 읊었다.

송(宋)나라 왕안석(王安石)의 ‘도원행(桃源行)’에 “중화(重華·순 임금) 한 번 갔으니 어찌 다시 오겠는가/어지러운 천하에 몇 개의 진나라 지났던가(重華一去寧復得/天下紛紛經幾秦)”라는 시구에서 딴 것이다.

역사를 돌이키면 순 임금이 다스리던 대동사회는 짧았던 반면 진(秦)나라 같은 난세가 이어져 왔다는 한탄이다. 난세에는 기존 질서가 무너지면서 내전(內戰)이 벌어지거나 내전에 가까운 분열(分裂)이 발생한다.

난세에는 군자(君子)가 해를 입거나 세상을 피해 숨는 반면 소인들이 득세한다. 『초사(楚辭)』 복거(卜居)에 “황종은 버려지고, 질솥이 우레처럼 울린다(黃鐘毁棄, 瓦釜雷鳴)”는 구절이 있다. 십이율려(十二律呂)의 기준이 되는 황종은 버림받고 진흙으로 만든 솥이 울리는 것은 군자는 배척되고 소인들이 득세함을 뜻한다.

‘내 발을 다치다’ ‘해바라기만 못하다’는 말은 난세에 처신을 잘못한 것을 뜻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성공(成公) 17년조에 제(齊)나라 포견(鮑牽)이 경극(慶克)의 비행을 국무자(國武子)에게 고발했다가 되레 발이 끊기는 월형(刑)을 당했다. 공자(孔子)가 “포장자(鮑莊子·포견)의 지혜는 해바라기보다도 못하구나. 해바라기는 오히려 잎사귀로 제 다리를 가려서 보호할 줄 아는데…”라고 논평한 데서 나온 말이다.

두예(杜預)는 “해바라기는 잎과 꽃이 해를 향하게 해서 햇빛이 뿌리에 닿지 않게 한다”고 주석을 달았다. 난세에는 벼슬아치들이 아둔하고 소인들이 득세하기 때문에 함부로 정의감을 드러내면 되레 해를 입는다는 뜻이다.

음악도 그 시대를 표현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난세의 음악은 원망하고 분노하니 그 정치가 인심에 어긋났기 때문이다(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사회는 극심하게 분열되어 있으니 난세에 가깝다.

『한서(漢書)』를 편찬한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戱)’에 공석불난(孔席不暖)이란 말이 있다. ‘공자의 자리는 따뜻할 틈이 없다는 뜻’으로 ‘묵자의 집 굴뚝은 그을릴 틈이 없다’는 뜻의 ‘묵돌불검(墨突不黔)’과 함께 쓰인다. 난세를 바로잡기 위해 바쁘게 다니는 군자란 뜻이다. 바쁘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없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1. 유교국가 중국의 꿈(中國夢)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최상위 국정 목표는 ‘중국의 꿈’의 실현이다. 중국의 국가목표는 21세기 중반 무렵 중국이 과거 성당(盛唐)시대 영광을 되찾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華民族的偉大復興)’을 이룩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성당(盛唐)시대는 당나라 전성기인 태종부터 현종까지 100여 년(626~741)에 이르는 찬란한 문명을 재현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과정으로서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 무렵에 전면적 소강(小康. 모든 인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사회의 완성 단계를 거쳐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중반 무렵엔 중국이 현대화된 사회주의 복지사회인 대동(大同)사회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꿈(中國夢)’은 단적으로 왕도사상에 의거한 현대판 중화제국 건설을 말한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토대 마련을 위해 대내적으로 경제발전과 정치사회적 안정을 기하고, 대외적으로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2020년 소강사회 건설’은 공산당의 20여년 전부터의 인민에 대한 약속

돌이켜보면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으로 상징되는 ‘서구의 충격(western impact)’에 직면한 이래 다양한 근대화의 길을 모색해 왔다. 위로부터의 개혁과 아래로부터의 혁명 등 갖은 시도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우여곡절 끝에 중국은 공산당 혁명을 통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건국 후 추진된 마오쩌둥(毛澤東)의 사회주의 ‘건설’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의 계급투쟁 방식에 치우침으로써 혼란과 낙후만 초래했을 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 점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이 해결하지 못했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한 위대한 업적으로 간주된다. 다만, 개혁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은 시진핑 시대의 또 다른 과제로 남게 되었다.

덩샤오핑은 1970년대 말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천명하면서 ‘선부론’을 제시했다면, 시진핑은 중국의 지니계수(소득불평등 지수)가 유엔이 제시한 ‘사회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인 0.4를 넘어선 상태에서 ‘전면적 샤오캉 사회’를 제시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역사적인 개혁개방 노선을 결정한 이후 4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룬 중국은 오늘날 국제사회의 핵심 주역으로 위상을 굳혔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서 경제적 영향력의 확대와 함께 외교·문화·과학 분야 등에서의 발언권도 미국과 나란히 할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한 스모그 등 환경오염, 지역·도농·계층간 빈부격차,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 부정부패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는 당장 중국몽 실현의 첫단계인 2020년 전면적 샤오캉 사회 건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시 주석은 2020년부터 2035년까지 샤오캉 사회의 전면적인 기초 아래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2035년부터 21세기 중반까지 부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몸을 굽히고 실력 키우자는 덩샤오핑의 ‘도광양회(도광양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자는 ‘중화부흥’을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이 이끄는 중국은 덩샤오핑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게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군사력에서도 미국을 바짝 쫓고 있다.

이런 중국의 위상에 걸맞게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강조하며 공산당의 신중국 건국 100년이 되는 2050년에 경제・군사・외교 등 모든 면에서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이 될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 중화민족(中华民族)주의 고양

2000년대 이후 중국 당과 정부에서‘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华民族的偉大復興)’을 기치로 내세우면서 중국 민족주의 논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게 되었다. 세계화의 최전선에 선 21세기 중국에서 새삼 중화민족주의 재등장은 적지 않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화평굴기(和平崛起)’를 통해 강대국으로의 부상을 공식화한 시점에 정부가 공공연히 중화민족주의를 들고 나온 것은 새로운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표출한 것인가 하는 논란을 낳고 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中华民族的偉大復興)

봉건 왕조시대 중국에는 민족국가 대신에 천하(天下)가, 민족주의 대신에 중화주의라 일컬어지는 문화주의(culturalism)가 존재했다. 문화주의는 중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중국인과 외국인을 구별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유가사상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 민족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중국의 문화주의는 서구와의 충돌을 통해 민족주의로 전환되었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서 기존의 문화주의에 기초한 정치 구성체가 크게 훼손되면서 더 이상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서 한계에 직면하게 되자 비로소 베스트팔렌적인 근대적 의미의 민족주의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시기 중국 민족주의의 시작은 배외사상(排外思想)을 지닌 저항의 형태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는 체제의 정당성 확보, 국가 통합, 그리고 대외 협상력 제고의 수단으로 민족주의를 유효 적절하게 통제하고, 활용해왔으며 2000년대 이후 중국 민족주의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형태로 고조되기 시작했다.

민족주의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리던 중국 당과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중화민족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대형 이벤트를 활용하여 중화민족주의를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고취시키기 시작했다. 공산당의 공식문건에 ‘중화민족의 부흥’이 등장한 것은 1997년 제15차 당대회가 처음이다.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주의 주창을 통해 이제는 ‘치욕의 100년’이라는 피해자 의식에서 탈피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국의 민족주의가‘치욕과 굴욕의 세기’를 거쳐 형성된 피해 의식이 내재된 이른바 ‘상처 받은 민족주의(wounded nationalism)’, 또는 ‘좌절된 민족주의(frustrated nationalism)’라고 한다면 2000년 이후 중화민족의 부흥을 주창하며 나타나고 있는 민족주의는 자신감과 성취감이 내재된 자긍적 민족주의(confident nationalism)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새로운 현상은 중국에서도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이른바 ‘인터넷 민족주의’가 신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당정이 주도했던 국가 민족주의, 그리고 정부의 통제범위 내에 있던 대중 민족주의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의 환경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세대라 불리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들은 개혁개방 이후 성장한 독자(獨子)들로서 가정과 국가 모두에서 풍요 속에 성장하며 중국의부상에 대한 높은 긍지와 열망을 지니고 있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강한 중국’에 대한 기대를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 정서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새로운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화민족주의와 천하일가

21세기 중화민족주의는 외부 위협에 대한 위기 인식은 거의 사라진 반면에, 중국 부상에 대한 열망이 고조된 상황에서 등장하여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재하고 있다. 즉 21세기 중화민족주의는 중국의 부상을 실현할 수 있는 내부 통합과 발전을 극대화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것이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도약을 위한 또 한 번의 중요한 ‘전략적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글로벌 리더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로 포착하고 있으며, 중화민족주의는 이러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중요한 시점에 고양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맹자 이래 수 천 년간 왕도(王道)의 위대함과 패도(覇道)의 위험성을 학습해온 제국임에도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위대한 투쟁, 위대한 공정, 위대한 사업을 추진하는 중국몽(中國夢)과 강군몽(强軍夢) 및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의 외교정책은 주변국들에게 분노를 사고 있다.

중국은 시대착오적인 ‘화이사상(華夷思想)’ 사상과 노골적인 중화민족주의 부활로 동아시아와 세계시민들에게 미국을 대신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패권국가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전전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일본 역시 경이로운 경제적 성취에도 근린국가들에게 존중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생태문명의 전환을 모색할 때 동아시아 문명의 ‘천하일가(天下一家)’ 이론은 대한민국이 제시할 철학과 가치의 역사적 뿌리이다. 서구 문명의 평화론이나 국제정치의 패권이론이 아닌 동아시아 문명에 기원을 둔 천하일가(天下一家)’ 세계평화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기, 대학, 중용 등 동아시아의 고전 속에 있다.

한·중·일 삼국은 공히 서구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판단하기 힘든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을 지닌 사회이다. 저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이며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중국과 한국 및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서구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적인 방식’으로 현대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시진핑 주석은 2050년에 중국을 세계 초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그러나 그 목표는 보편주의가 아니라 중국 중심의 패권주의다. 패권주의로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인 ‘천하일가’와 민주주의에 근거한 세계평화론의 제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동아시아 문명 중에서도 유일하게 민주공화정을 발전시킨 한국이 새로운 세계 민주주의의 요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홍익사상과 촛불혁명까지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성한 발군의 국가로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의 중화민족(中华民族) 패권주의나 일본 복고적인 봉건주의, 민족적 폐쇄성은 세계시민들로부터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1500년 넘게 피의 보복과 전쟁으로 화해 불가능한 문명의 충돌을 불러왔다. 밀레니엄의 출발점에 일어난 9·11 테러는 그 이후 이슬람국가(IS)의 출현,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즘 그리고 중동 평화에 위협을 낳고 있다.

21세기는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시대다. 동아시아 문명은 경제적 성장보다 정신적 가치와 문명 간 화해와 협력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할 때야 세계시민들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명은 세계시민 들로부터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서구 문명에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을 받는다.

 

  1. 대동(大同)사회 vs 소강(小康)사회

대동사회는 요순(堯舜) 임금이 무위지치(無爲之治)로 다스리는 사회를 뜻하고, 소강사회는 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시대를 뜻한다. 대동사회는 천하가 공공을 위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사회라면 소강사회는 천하가 자기 집안을 위하는 천하위가(天下爲家) 사회였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의 대동사회

이 부분이 대동과 소강의 가장 큰 차이다. 공자는 소강사회는 자기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여기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며 재화와 힘을 자기만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천자나 제후 같은 대인(大人)들은 자리를 세습하는 것을 예(禮)로 삼고, 성곽과 해자(垓字)를 파서 스스로 굳게 지키는 사회다.

그러나 공자는 소강사회도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로 보았다. 그 이유를 “예의를 벼리로 삼아서(禮義以爲紀), 군신(君臣) 사이가 바르게 되고, 부자(父子)가 돈독하게 되고, 형제가 화목하고 부부가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우·탕·문왕·무왕·성왕·주공 여섯 군자(君子)는 예(禮)를 삼가지 않은 이가 없어서 의(義)가 드러나고, 믿음이 이루어졌는데, 공자는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집권자라도 백성들로부터 재앙으로 여겨져서 쫓겨났다”면서 “이를 일러 소강(是謂小康)”이라고 하였다.『예기(禮記)』 ‘예운(禮運)’ 편

공자는 성인이 통치하는 대동사회를 꿈꿨고, 또 자신의 뜻이 좌절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그러한 대동을 그리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춘추시대와 같은 혼란스러운 난세에서 대동은 그저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뿐,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춘추시대와 같은 난세의 상황에서는 소강사회로의 복귀가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동의 사회라는 것은 우선 소강사회를 회복하고 나서 다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대동사회의 성인과 소강사회의 군자를 구하는 기준을 설명한다. 성인은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대동사회의 지도자”라 하였고, 군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소강사회의 지도자”라 하였다.

공자가 성인이 통치하는 대동사회를 꿈꾸었지만, 춘추전국시대라는 현실정치에서 소강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군자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인, 의, 예, 악을 익히고 백성들을 지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태평성대를 누렸던 요순시대 이후, 공자가 꿈꾸는 대동사회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공자는 실현 가능한 소강사회를 오히려 더 역설한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에 지도자에게 말하고 싶은 건 대동사회의 꿈이 아닌, 현실정치를 바르게 이끌 소강사회이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은 결코 공자가 말한 ‘소강사회’라고 할 수 없다. 난세만 벗어났을 뿐이다…

천하위가(天下爲家)의 소강사회

중국 근·현대사는 공자 수난사로 점철됐다. 모두 근대화 과정에서 중국 역사상 가장 상징적 인물인 공자는 세 번에 걸쳐 집단적 타도대상에 오른다. 태평천국, 5·4운동, 문화대혁명이 그 때다.

첫 번째 파도인 태평천국 당시 지도자 홍수전(洪秀全)을 숭앙하는 백성들은 공자를 ‘요마’(妖魔)라고 칭하며 공자 사당을 닥치는 대로 부쉈다. 공자의 목주(위패), 그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열 사람인 십철(十哲)의 사당도 보이는 대로 파괴하고 불태웠다. 백성을 탄압하고 나라를 망치는 것이 유교와 부패한 관리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남녀평등과 농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게 그들의 이상이었다.

중국 현대사의 시발점이 된 5·4운동 때는 ‘공자 상점을 타도하라!’ ‘공자주의를 쳐부수자’가 주요 슬로건 가운데 하나였다. 반전통·반봉건 사상혁명은 도덕문화의 근간인 공자와 유교에 대한 비판운동이 핵심이었다. 공자가 가장 혹독하게 비판받은 것은 문화대혁명 때였다.

마오쩌둥을 추앙하던 홍위병들은 공자의 무덤까지 파헤쳐 확실히 죽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정도였다. 공자는 마오쩌둥의 후계자 린뱌오와 함께 끌려 나와 또 모욕을 당했다. 이른바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공자를 때려잡는 무기는 태평천국의 경우 기독교였고, 5·4운동 때는 민주주의와 과학이었다. 문화대혁명 때의 무기는 마르크스주의였다.

문화대혁명은 중국은 현대 중국을 크게 퇴보시킨 광풍이자 분서갱유의 20세기판 리메이크로 1966년~1976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0년 동안 마오쩌둥이 기획, 연출하고 홍위병이 주연을 맡은 대규모 반달리즘으로 평가된다.

줄여서 “문혁(文革)”이라고도 하는 문화대혁명의 원래 내세운 목표는 파사구(破四舊)라 하여, 낡은 사상[舊思想], 낡은 문화[舊文化], 낡은 풍속[舊風俗], 낡은 관습[舊習慣]을 타파(打破)하여, 이타주의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사회주의 문화를 창조하자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역사적인 문화 검열 사건이자, 전국 단위로 실행된 대규모 반달리즘이 됐을 뿐이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1973년 공자가 몰락한 노예 소유 귀족의 대표인물로 제 10차 당대회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으며, 그의 고향인 산동성 곡부현의 묘비가 홍위병에 의해 두동강이 났다. 그랬던 공자가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과 더불어 복권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때는 장엄한 의식으로 공자의 부활을 전 세계에 알렸다. 중국 정부는 세계 96개국 322곳에 ‘공자학원’을 세워 공자의 세계화와 중국문화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1000곳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이 ‘소프트 파워’를 키워 서구 문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자사상을 활용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공자의 고향인 산둥성 취푸를 성역화하고,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공자(孔子)’를 만든 것도 같은 취지다.

2008년 이후 미국이 금융위기로 좌초하고 다른 서방사회까지 타격을 입게 되자 중국은 딴 생각을 품게 됐다. 서구모델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세계질서의 지배이념도 중국식 모델로 바꾸겠다는 의중으로 공자의 본격적 부활은 이 같은 복합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유가사상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을 추진할 수 없으며 봉건적인 계급제도는 근본적으로 사회의 조화 안정을 호위할 수 없다. 그리고 전통적 도덕적 기준은 결코 사회주의 사회의 도덕적 위기를 구제하는 통치 철학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세계 2강으로 도약했지만 날로 늘어만 가는 빈부격차로 좌파사상 강화와 ‘마오쩌둥 정신 되살리기’는 중국의 당면과제이다. 공자와 마오쩌둥은 중국의 이상과 현실을 대변하며 중국 사회의 가치관 혼란과 갈등을 매우 상징적으로 방증한다.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가 경제 성장은 이뤄냈지만 사회변화의 열망을 견인해 내야하는 수많은 난제가 창당 100돌(2021년)이라는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의 책상 앞에 쌓여가고 있다.

 

  1. 베세토튜브는 소강사회와 대동사회의 플랫폼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70년, 중국은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의 그늘에서 벗어 난지 40년, 한국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에서 벗어 난지 65년이 경과하였다. 긴 역사의 맥락에서 살펴보면 한중일 3국은 이제 겨우 난세(亂世)의 질곡에서 한걸음 벗어났을 뿐이다.

‘온포(溫飽)’가 백성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라면, ‘소강사회’는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된 사회로 볼 수 있다. 즉 ‘대동사회’가 으뜸가는 최선의 사회라면, ‘소강사회’는 버금가는 ‘차선의 사회’다.

일찍부터 한국과 중국의 권력자들은 공자가 말한 예의를 벼리로 삼아서(禮義以爲紀), 군신(君臣) 사이가 올바르고, 부자 관계가 돈독하며, 형제간에 화목하고 부부 사이가 조화롭다는 ‘소강사회’를 지향했다. 공자의 ‘대동사회’는 무위지치(無爲之治)로 표현되는 요순(堯舜)시대의 이상향(理相響)을 지칭한다.

대동사회는 노인들이 편안하고 젊은이는 모두 일자리가 있어야….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공자는 ‘대동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노인들은 편안하게 일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이는 모두 직업이 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으며, 여자는 다 시집갈 자리가 있고, 과부·홀아비·병든 자를 모두 사회가 봉양한다”고 말했다.

재물은 사회와 나누고 직접 노동하는 것이 고귀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야말로 ‘대동사회’로 풍부한 일자리가 복지사회의 전제임을 2500년 전에 설파했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10년 약 70억 명에서 2100년 약 101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중·일 3국의 인구는 같은 기간 동안 15억 명에서 11억 명으로 감소하고 2035년에는 세계 노인 인구 10명 중 3명이 될 것으로 전망돼 3개국의 고령화 현상은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중·일 3국의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총 1억4000만 명으로 전 세계 노인 인구의 약 28%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10~20년간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고 있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한국과 중국은 각각 2010년 11.1%, 8.2%에서 2020년 15.7%, 12%, 2030년에는 23.3%, 16.5%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몰려오는 고령화 폭풍 “늙어가는 동북아…세계경제 새 리스크로” 

급격한 출산율 감소와 가파른 기대 수명 증가는 한·중·일 고령화의 중요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1970년 출산율이 4.5명을 넘는 고출산 국가에서 2010년에는 출산율이 인구 대체 출산율(2.1명) 이하로 감소한 저출산 국가로 바뀌었다. 

출산율 감소와 대조적으로 한중일의 기대 수명은 1970~2010년 동안 각각 38%, 23%, 16% 증가했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을 제외한 한국과 중국은 같은 기간 동안 세계 평균보다 높은 기대 수명의 증가로 인구구조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 

한·중·일 3국의 인구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고령화 속도로 대표될 수 있다. 한국은 노인 비중이 전체 인구의 7%에서 18%로 증가하는데 18년, 중국은 25년, 일본은 24년이 소요되는데, 이는 프랑스의 115년, 스웨덴의 85년, 미국의 73년 등 다른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다.

급속한 고령화 속도는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을 고령 친화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충분한 시간을 제공해 주지 않아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고령화에 따른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고령화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 시스템을 고칠 타이밍을 놓치면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이 증폭될 수 있다는 위험이 존재한다. 

가시화되는 경제적 후폭풍

한·중·일 3국은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지만 고령화 수준과 진행 과정은 상이하다. 빠른 고령화 속도에 힘입어 고령화에 대한 관심은  3개국 모두에 핵심적 공통 사회 이슈로 자리 잡고 있지만 동일한 고령화 수준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로 다른 경제적 수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8%인 시기를 기준으로 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하면 중국 6382달러, 일본 1만7480달러, 한국 2만1071달러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일본과 달리 국가 차원에서 고령화 충격을 수용할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기도 전에 고령화가 진행되는 ‘웨이푸셴라오(未富先老)’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내부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노인 부양에 대한 가족의 의무를 강조하는 한·중·일에서는 젊은층의 경제적 부담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적은 수의 젊은 계층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세금을 지불하고 많은 수의 비경제활동 노인층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세대 간 불평등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3개국 중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10년에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35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가 됐고 한국은 같은 해에 15명, 중국은 11명 수준이다. 하지만 2020년에는 국가별 노인 부양 비율이 증가해 일본은 100명의 생산가능인구가 48명의 노인을, 한국은 22명의 노인을, 중국은 17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로 급속하게 변할 것으로 예측된다.

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노인 비율의 증가는 사회보장비 지출과 의료비 지출 등을 증가시켜 정부의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급속한 고령 인구 증가로 의료비와 연금 지출 규모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일본과 중국은 의료비 관련 지출 규모 증가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중·일 3국은 최근 GDP 및 무역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세계경제의 주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3국의 인구 고령화 현상이 주목받는 이유도 인구 고령화로 이들 국가의 경제가 영향을 받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3국의 인구 고령화로 공적 연금 재정지출이 증가하고 노동인구 및 노동생산성이 하락하며 노인 의료비와 노인 복지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면 한·중·일 3국의 고령화 현상은 세계경제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3국이 21세기 소강사회에 진입하고 유지 발전시키는데 고령화 문제는 뇌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제어할 수 없는 인구 고령화와 석유에너지 고갈에 따른 지속가능 성장를 도모하여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대동사회·생태문명(生态文明)의 마중물(pump priming)인 베세토튜브

새로운 교통 매체인 베세토튜브와 글로벌튜브망은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한 혁신적인 교통 시스템으로 세계를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어 진정한 글로벌 시대를 열어줄 것이다. 기술의 속도와 역량이 자본과 결합하여 인간과 노동을 구축(驅逐)하는 기술적 실업이 증가하면서 전세계 각 국은 현재와 미래의 젊은이들을 계속해서 고용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를 찾아야 한다.

신흥기술과 자동화는 미래의 대형 프로젝트를 저렴하면서도 실현 가능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베세토튜브(besetotube, 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는 베이징(北京,Beijing) ↔ 서울(首尔,Seoul) ↔ 도쿄(东京,Tokyo)구간을 육상-해상-육상-해상-육상으로 경유하는 최단 구간(약 2,177km)으로 건설한다.

한·중·일 물가수준, 환율, 사회적 비용 등이 각기 다르나 육상구간(694Km)의 경우 토지보상이 불필요한 지하 100m 이상의 대심도 터널과 해상구간(1,483 Km)은 해저면에 진공튜브를 수중앵커 방식으로 부설하는 공법을 채택하면 Km 당 육상과 해상의 건설비는 한국의 지하철 건설비(800~1360억원)와 유사하고 하아퍼루프원 건설비(500억원)의 두배 수준인 1000억원/Km으로 상정하면 대략 200조 원대의 건설비가 예상된다.

200조원 베세토튜브 프로젝트 건설비의 경제적 파급효과인 생산유발, 부가가치 유발, 고용유발 효과 등의 분석은 현시점에서 의미는 없으나 개략적인 추산으로 직접 고용 33만명 수준의 고급 일자리 창출과 협력업체의 간접 생산유발과 고용창출 효과를 상기하면 대단히 큰 경제적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베세토튜브는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기술적 실업이 증가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젊은이들을 계속해서 고용할 수 있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신흥 기술과 자동화는 미래의 대형 프로젝트를 저렴하면서도 실현 가능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베세토튜브와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구축한 데는 대략 1조 달러가 넘게 소요될 것이며 약 1억명 이상의 고용이 창출될 것이다. 또한 화석연료 기반 산업문명 말기 경제의 연착륙(Soft Landing)과 생태문명(生态文明) 전환의 마중물(pump priming)이 될 것이다.

공자(孔子)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노인들은 편안하게 일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이는 모두 직업이 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으며, 여자는 다 시집갈 자리가 있고, 과부·홀아비·병든 자 모두를 사회가 봉양한다”고 말했다.

베세토튜브(besetotube)와 글로벌튜브(global tube)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빠르고 저렴한 운송수단으로 환경오염을 예방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줄 뿐만 아니라 탈석유시대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최상위 계층의 교통수단이다. 

아시아의 중핵 국가인 한·중·일 3국은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에서 시작하여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건설을 시대적 과제로 받아 들여야 한다.

최첨단의 기술력과 함께 막대한 외환보유액 등 자금력도 충분하다. 단지 고질적이고 빈약한 글로벌 리더십이 문제일 뿐이다. 아시아의 중핵국가인 한·중·일 3국은 유사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인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22세기 생태문명 사회를 살아갈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들이 함께 상생(相生)하고 공영(共榮)하는 것만이 산업혁명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식민지 수탈과 자원약탈에 이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후발국에 대한 보호무역, 기축통화의 지배력 남용, 반복되는 환율전쟁으로 근린궁핍화 전략을 정당화하는 서구 근대문명의 모순을 극복하고 근면과 성실, 예의와 공손,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참된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증명하는 것이다.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를 기반으로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를 완성하는 과업이야말로 서구 근대를 초극(超克)하여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를 열고 생태문명(生態文明/生态文明, Ecological Civilization)을 꽃피우는 제3의 길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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