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명과 아중해공동체 및 베세토튜브

  1. 생태문명(生态文明)의 함의
  2. 왜 동아시아공동체가 아니고 아중해공동체인가?
  3. 베세토튜브는 동아시아 평화의 길
  4. 베세토튜브를 넘어 글로벌튜브로…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인류는 지상의 많은 동물들 중 적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종이다. 적응에 실패한 다른 종들이 그 대가로 멸종이라는 비극을 맞은 반면, 인류는 정반대로 요란하고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인간은 문명이라는 수단으로 지난 수만 년 동안 주위 환경을 변화시켰고, 특히 수천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주변 세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인류는 환경에 적응하는 길을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변화시키는 길을 걸었다.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변온동물은 기온에 따라 체온을 조절하기 때문에 추위나 더위에 잘 적응한다. 하지만 인간은 항온동물이므로 다른 조치가 없으면 추위나 더위 때문에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불을 사용하는 법을 알아낸 것이다.

생물학적 부적응이 그들을 문명의 세계로 내몰았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주변 환경을 변화시켜야만 했고 그 결과 차츰 자연과 싸우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인류는 지구 역사상 어떤 생물도 지니지 못했던 가공할 만한 공격성과 파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나 생태계 파괴 같은 생물 종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해악을 저지르고 있다. 또한 인류는 자신들의 공격성과 파괴성을 인류 자신에게도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20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두 차례의 잔혹한 세계대전을 제외하고라도,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스탈린의 굴라크(강제수용소)로 상징되는 광적인 민족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 탓에 제노사이드가 한시도 끊이지 않고 자행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핵무기나 생화학무기의 대량살상 위협과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에 떨고 있다.

 

  1. 생태문명(生态文明)의 함의

인류는 현재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환경적인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는데 생태와 문명의 기계적인 이해에 근거한 사회적, 문화적 패턴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까운 미래 우리가 직면하게 될 환경적 대참사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류문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다가오고 있는 위기를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변화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생각이나 행동에 주저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과 맞물린 문명의 위기가 나날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일찍이 예고되었던 자본주의적 모순이 각종 경제 및 사회지표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삐 풀린 소비의 욕망에 굴복한 무분별한 자연 개발과 환경 파괴는 멈출 줄을 모른다. 다양한 영역에서 이러한 위기를 포착하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는 지경이다.

현재 세계는 전례 없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기후변화 위기의 예측된 결과를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기반구조를 생태문명에 적합한 구조로 설계를 변경하여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현상 유지를 위한 사소한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 불가능한 화석연료 기반 경제에 독성 화학제품인 녹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제3의 길(The Third Way)이다. 이 패러다임은 보다 지속 가능하고 정당하고정의로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본 틀의 근원적 변화는 ‘생태문명 창달’이다. 이러한 문명 변화는 자연과 인간이 상호 번영하는 것으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협력을 필요로 한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이론과 실천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베세토튜브연구회는 한중일의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명이 재앙의 위기에 이미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탁상공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대안이 필요하다. 실천적 연구에 매진하고 장기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혜안으로 거시적이고도 미시적인 실행대책이 필요하다. 프로세스적 사고(Process Thoughts)에서 발견되는 관계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인류공동체의 이익과 관련된 생태문명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프로세스적 사고는 근본적인 관계성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철학적 시스템이다. 현실의 모든 개체는 진행중인 변화의 과정에 있다.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은 한 시점에서 그 이전의 과거로부터 받은 기본적인 현실적 요소들과 맥락이 닿는 가능성들과 개별 행위자들인 인간 모두의 선택의 조화이다.

따라서 프로세스적 사고는 도덕적, 심미적, 종교적 직관과 과학적 통찰력을 조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베세토튜브연구회는 동아시아와 서양의 종교, 문화적 전통, 특히 서구 사회와 동아시아에서의 논의를 연결하고 발전시키고자 한다

프로세스적 사고는 인간의 정의 문제와 생태적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질서에 대한 철학적이고도 현실적인 접근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는 다문화, 생태, 종교간의 대화,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에 다양한 관심이 있다. 우리의 궁극적인 비전은 한중일의 생태문명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그것을 옹호하고 주창할 것이다.

생태 문명의 철학
현대 세계가 기반을 둔 대륙철학은 주제와 주제를 구분했다. 근대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 데카르트는 모든 형태의 지식을 방법적으로 의심하고 난 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하여 직관이야말로 확실한 지식임을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또 사유를 본질로 하는 정신과 공간 점유를 본질로 하는 물질을 구분함으로써 이원론적 체계를 펼쳐 나갔다.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체계는 이성에 의해 도출된다는 점에서 ‘직관주의적’이지만, 데카르트의 물리학, 생리학 체계는 감각적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경험주의적’이다.

세계나 사상(事象)을 두 개의 상호간에 ‘독립’하는 근본 원리로 설명하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은 정신(mind, soul)과 물질(body, 신체)을 분리시켜 자연과 대상으로서의 인간을 분열시켰다. 그것은 정신, 가치 및 영성을 자연으로부터 박탈한 결과 인간의 정신, 가치 및 영성 또한 위협 받고 있다.

이러한 이원론은 두 개의 원리가 상호간에 독립하는 개념으로 두 개의 독립적인 원리가 서로 ‘대립’하고 ‘투쟁’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리하여 대립과 투쟁을 통해 두 개의 독립적인 원리 중 어느 하나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관점이 흔히 이원론의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 된다.

이원론이 아닌 견해는 비이원론(非二元論, Nondualism)이다. 동양 철학인 주역(周易)의 경우, 음양(陰陽)의 두 개의 원리가 있지만 이 두 개의 원리가 때로는 서로 대립하고 때로는 서로 융합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변천하면서 조화, 균형, 중도(中道, middle path), 또는 중용(中庸, mean)의 상태를 찾아간다는 입장이다. 이 때 두 개의 원리는 두 개의 독립적인 원리가 아니라 한 존재 또는 원리 속에 있는 두 개의 ‘극성(polarities)’ 또는 ‘측면(aspects)’으로 존재한다.

힌두교의 어떤 교파들에서는 브라흐마(Brahma), 비슈누(Vishu), 시바(Shiva)의 3신으로 각각 창조자, 유지자, 파괴자이다. 이들을 총체적으로 삼위일체인 트리무르티(Trimurti)라 한다. 힌두교의 삼위일체에서 창조와 파괴의 두 대립 원리는 각각 서로 독립적인 원리로 존재하지 않고 신의 한 측면(aspect)으로 존재한다. 이는 창조된 후에는 파괴가 따르고 파괴된 후에는 다시 창조가 따르는 순환적인 세계관이며 비이원론의 견해이다. 

생태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
행성의 자원을 이용하고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산업문명에서의 세계경제는 자연을 소멸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민들을 해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지구 행성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모습은 공간을 점유하는 자연환경에 의존하며 전체 생명체과 개별 생명체 간의 긴밀한 연결망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우리는 이제 생태문명의 웅장한 꿈을 꾸어야 한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산업문명에 연료를 공급한 화석연료 경제 시스템과 화석연료 고갈 후에 우리의 후손들이 맞게 될 경제 시스템은 어떻게 다를까? 생태문명에 대한 이러한 변화와 대비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인간중심의 철학과 사상 및 제도로 형성된 산업문명은 어떻게 인류를 파국으로 인도하였는가…

생태 문명을 위한 정치와 정책
우리는 올바르고 정의로운 정책과 정치를 통해 생태 문명으로 이동할 수 있다. 생태문명 전환과 관련된 담론과 지배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풀뿌리 생태운동과 녹색정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세계화는 새로운 생태 정치의 길을 만들었다. 전 세계 많은 녹색마을(ecovillages)과  NGO가 함께 작업하고 있다. 

중앙정부보다 주민과 시민들과 밀접한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는 지방 자치 단체와 지방정부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경성 갈등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시민 활동가 또한 생태적인 삶의 방식으로 주민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시민의 감수성을 바꾸고 삶의 목적을 바꿀 수 있다. 이러한 힘이 모아지면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는 시장(기업과 자본)을 통제 할 수 있는 정치 권력을 창출하여 국가(정부)의 실패와 시장(기업/자본)의 실패를 예방하여 국가 및 세계 정치의 틀을 변화시킨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상적 토대인 마르크시즘은 이미 시효가 다했다. 그러나 그 이념이 지향한 로망은 20세기 전체 인류사의 독특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었지만 이와 반비례하여 자원 고갈, 기후 변화, 양극화, 인간 소외 등 여러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여 자연과 인간에게 수많은 폐해를 가져와 그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및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생태주의(ecologism)는 제3의 길(The Third Way)로 인류를 생태문명으로 안내할 것이다. 사람과 자연, 환경과 경제, 사람과 사회의 조화로운 공을 목표로 하는 생태문명 시대의 정치는 “신왕도정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천(天), 지(地), 인(人)이 하나(一)로 합일(合一)하는 새로운 삼위일체의 신왕도정치(王道政治)는 공맹(孔子, 孟子)의 춘추전국 시대의 왕도정치와는 다르다. 하늘과 땅 및 사람이 조화롭게 합일되는 생태정치는 근대 서구에서 탄생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이룩하지 못한 이상을 인류가 달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자연의 자원을 약탈하고 식민지 인간을 수탈하는 근대 자본주의와 인간의 평등을 금과옥조로 하는 마르크시즘은 이제 약발이 다하고 있다. 인류의 문명사는 수렵채취의 원시문명, 농업혁명에 의한 농경문명,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산업문명을 거쳐 화석연료 고갈로 어쩔 수 없이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생태문명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원시문명과 농경문명의 정(正, 테제)인 원생태주의와 산업문명의 자본주의라는 반(反, 안티테제)인 자본주의의 등장 또한 모순적 한계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합(合, 진테제)으로 진화되었으나 이제 다시 본생태주의의 부활로 합명제(synthesis)인 생태문명 도래를 앞두고 있다.

생태문명을 향한 생태유토피아(Ecological Utopia)의 비전은 오랫동안 산업문명에 대척점에 있었다. 우리는 생태문명의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진보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생하는 생태문명은 자원절약, 환경보호, 자연 회복력 위주의 도시생활 공간과 산업구조, 생산방식, 생활방식을 생태친화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생태 문명을 위한 학제 ​​간 대화
과학 기술과 생산성의 발전은 인간에게 커다란 자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인류사적으로 조망하면 지금의 물질적 풍요는 지속될 수 없는 한여름 밤의 꿈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여야 한다. 한계에 도달한 세계 자본주의는 다음 단계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제 4 차 산업 혁명, 로봇, 인공 지능(AI), 빅 데이터 등의 용어에서 미래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시도일 뿐이다. 한정된 지구자원을 약탈하는 화석연료에 기반의 산업문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는 문명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의 순기능보다 금융자본과 결합된 역기능이 더 많이 조망되고 있고 현실화될 것이다.

산업혁명의 마지막 과정인 장미빛 4차 산업혁명이 삶을 향상시킬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탐구하는 것은 희망의 과학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무한한 창의력을 갖춘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하면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구조와 거버넌스를 창출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과학은 종교와 철학과 대화를 가져야 한다.

 

  1. 왜 동아시아공동체가 아니고 아중해공동체인가?

베세토튜브 연구회는 중국, 한국, 일본의 수도인 베이징(北京,Beijing)↔서울(首尔,Seoul) ↔도쿄(东京,Tokyo) 간을 진공자기부상 궤도를 육상과 해상에 건설하여 극초고속 튜브셔틀을 운행함으로써 21세기 동북아  韓·中·日국민의 친선과 우의를 증진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의 무대가 펼쳐지는 서해, 동해, 남해 일원의 바다를 아중해(亞中海)로 통칭한다.

아중해의 영어표기는 ‘AJungHae’로 하여 유럽.아프리카.아시아(터키)내해인 지중해(地中海, Mediterranean Sea)에 대응하는 유라시아 동부 지중해를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되도록 하여 과거 찬란한 동아시아 문명의 우수성과 21/22세기 지속가능한 성장(SDGs)과 평화공존의 대명사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본 베세토튜브연구회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후기 산업화’ 시대와 이후 도래할 태양에너지 시대인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혹은 ‘생태사회(Eco society)’시대의 아중해(亞中海) 문명창달(文明暢達)방안을 연구하고자 한다.

왝더독의 동아시아 정치판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든다”는 왝더독(wag the dog)은 본말전도(本末顚倒), 주객전도(主客顚倒)의 뜻을 갖는다. 보통 몸체가 주이고 꼬리는 부수적으로 몸체에 붙어 다니는 것인데 꼬리가 몸체를 끌고 다닌다는 역설에 의미로 1998년 개봉되어 많은 논란을 가져온 정치풍자 블랙 코메디 영화인 웩 더 독(Wag The Dog)에서 유래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촬영된 픽션으로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 등 여러 여자들과의 성추문 사건을 빌미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촬영한 영화이다. 다만 차이점은 실제로 클린턴과 르윈스키는 불륜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대통령이 일방적인 걸스카우트 소녀를 성추행한 것이라는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영화를 보면 누구나 황당한 상황전개에 의문이 든다. 대중은 이토록 무기력한 존재인가, 여론조작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능한가? ‘왝 더 독’은 전쟁조차 가짜로 만들어 내는 극단적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성추행 사건을 덮기 위해 백악관은 여론조작 전문가와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를 고용한다.

단지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라는 이유로 알바니아가 ‘적국’으로 선택되고, 배우 지망생이 고통받는 알바니아 소녀로, 복역 중인 범죄자가 전쟁 영웅으로 ‘캐스팅’된다. 테러의 참상은 스튜디오에서 촬영돼 컴퓨터그래픽을 거쳐 TV로 전달된다.

국민들은 테러리스트와 알바니아를 규탄하고, 전쟁 영웅에 열광한다. 미디어는 대통령의 성추행을 은폐하는 도구로 쓰이고, 대중은 기만당한다. ‘왝 더 독’ 영화의 결말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비밀을 알고 있는 모스는 제거된다.

이렇게 ‘왝 더 독’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정치 모리배들이 주인공들이다. 미디어 영상의 강력한 영향력에 도취되고, 이를 비즈니스에까지 연결시키려는 할리우드 제작자의 모습도 역겹게 그려진다. 기실, 영화를 통한 이미지 조작과 윤리의 세뇌는 계속되어 왔다.

거의 이 십년 전 1997년 제작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가짜 현실이 진짜 현실을 압도하는 여론조작과 미디어 정치의 부작용을 다룰 때 언급되는 이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과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웩더독은 정치를 넘어 일상 생활에도 많이 관찰되고 있다. 사은품이 본 상품보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대중매체보다, 1인 방송이 주류 매체보다, 카드 뉴스가 TV 뉴스보다 인기를 끄는 등 말 그대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인 본말전도(本末顚倒)가 속출하고 있다.

경제부문에서도 선물(先物: 꼬리)시장이 현물(現物: 몸통)시장을 흔드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되어 현물시장에서 나온 파생상품 시장의 움직임이 거꾸로 현물시장을 뒤흔드는 현상을 말한다. 파생상품 중 선물거래란 미래의 특정시점에 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매수, 혹은 매도할 것을 약속하는 거래이다.

따라서 선물거래는 앞으로 주식 시장이 오를 것이다, 혹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이뤄진다. 계약을 체결하는 동시에 상품을 받고 돈을 지급하는 현물거래는 미래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은 급격한 가격변동으로 인한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선물거래를 이용한다.

이른바 위험 회피(헤지·hedge) 수단이다. 비유하자면 개의 몸통, 즉 주(主)가 되는 것이 현물시장이고, 꼬리가 되는 객(客)이 선물시장이다. 하지만 선물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말 그대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주식시장에서 말하는 왝더독 현상이다. 왝더독 현상은 투자자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돼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장에서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개인과 외국인, 기관 등 모든 투자자가 소극적인 매수세를 보일 때 급작스럽게 프로그램 매매로 매물이 쏟아져 나와 주가가 급락하는 경우가 그렇다.

한중일의 정치분야에서도 웩더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적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고 있다. 한줌도 안되는 수구적 반동세력이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겨자씨와 같은 티끌만한 조그마한 섬을 두고 너죽고 나살자는 식의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 독도에 대한 명칭문제,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와 명칭, 러시아아 북방 4도등 일본 주변의 섬들을 둘러싼 분쟁의 시발점은 일본의 제국주의의 근린국가 침략전쟁과 1951년 9월에 조인된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그 뿌리가 있다.

원래 강화조약에서는 영토 처분은 의문의 여지가 없도록 명확히 결정되어야 하는데, 독도를 비롯해 일본의 소위 북방4도, 센카쿠(댜오위다오)제도 등은 강화조약에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아중해(亞中海)는 중립적인 용어정의이다,

동아시아공동체론은 전전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한 일본이 중국의 외교적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지역구상이다. 고이즈미 수상 시절(2002~06년) 중국의 아세안 접근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지자 이에 충격을 받은 일본의 고이즈미 수상은 2002년 동남아 국가들을 순방하면서‘일-아세안 포괄적 경제연휴구상’을 제안하면서 맞대응에 나서게 된다.

특히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의 성격규정을 둘러싼 외교적 노력이 중국과 연성균형을 이루려는 본격적 출발이었다. 일본은 2004년 6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출범을 준비하기 위해 열린 APT 고위실무급회의(SOM)에서 논점 보고서(Issue Paper)를 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밝혔다.

첫째, 일본은 기능적 접근으로 역내의 현실적 여건, 즉 국가 간 경쟁, 민족주의의 건재 등을 고려해 볼 때 제도적 접근, 즉 여러 부문에 걸친 포괄적이고도 높은 수준의 제도화를 꾀하는 노력은 오히려 국가 간의 알력과 대립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FTA, 금융, 환경, 비전통적 안보부문 등 기능적 영역에서의 협력을 심화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 고수준의 통합적 제도 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둘째, 기능적 접근의 차원, 특히 경제의 차원에서 볼 때 지역의 범위는 동북아 및 동남아(즉, APT)와 함께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괄하는 대영역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 뉴질랜드를 포괄하는 지역구상은 이미 2002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바 있으나, 2004년부터 일본은 본격적으로 아세안+3(APT)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 3국을 추가하는 지역안을 추진하였다.

또한 일본은 ‘공동체’의 의미를 ‘커뮤니티(コミュニテイ)’에서 ‘共同體’로 전환하였다. 고이즈미 수상은 2002년 1월 아세안과의 정상회담에서 ‘함께 가는 커뮤니티(共に步み共に進むコミュニテイ)’ 를, 2003년12월 일․아세안 특별정상회담에서 ‘동아시아커뮤니티(東アジアコミュニテイ)’를 주창 하였으며, 2004년 9월에는 유엔 연설에서 본격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東アジア共同體)’를 띄운다.

이러한 변화를 정밀하게 따져보면 일본은 영어로 일반사회를 의미하는 커뮤니티에서 일어로 게마인샤프트적인 사회를 의미하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자세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공동체란 지역담론을 내건다면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공동체가 공유할 특정한 가치와 이념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일본이 과거 대동아공영권에서 띄웠던 정체성의 근거가 동아시아란 공간에 내재된 특정한 가치나 환경이었다면 21세기 일본의 경우는 대단히 서구적인 가치를 내걸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이런 점에서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전통적 관점에서 동아시아 국가로 보기 어려운 국가들이 가치를 공유하는 한 구성원으로 들어오는 공동체는 추진력을 갖기 어렵다.

마치 한중일이 유럽연합(EU)나 NAFTA에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것을 과연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일본의 이러한 모호한 정체성을 띤 공동체 추진전략은 중국에 대한 관여(engage)전략으로 중국을 특정한 다자제도에 결속시켜 의도와 행위를 일정하게 통제, 구성하려는 시도로 허망한 일장춘몽일 뿐이다.

동아시아 지역을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단위체로 설정하고, ‘자유, 민주, 인권, 법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동체적 가치와 정체성으로 표현하는 정책에 중국을 얽어 놓음으로써 이를 벗어나는 독자적 행동에 고비용을 부과하도록 만드는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중국의 부상과 위협이 지역제도의 형성을 저해한다는 기왕의 수동적 사고를 넘어 적극적으로 중국의 변화를 촉구하고 변화하는 중국을 기회로 삼아 일본의 재생과 동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하려는 형용모순의 대외전략일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전략적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중국이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는 자유민주국가가 되는 한 역내 주도권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를 중국이 받을 가능성이 없는 한 중국 견제와 포위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이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동아시아공동체에 포함시키는 노력을 집요하게 경주한 이유는 이들이 위의 보편적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역내 이들의 존재는 중국을 보편가치로 결속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2009년에 등장한 민주당 정부는 이전 자민당 정부와 달리 대중 비즈니스를 고려하여 동아시아 중시 정책을 주창해 왔고, 집권 후 하토야마 총리는 회원국을 둘러싼 역내 논란(즉, 아세안+3 대 아세안+6/EAS)보다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과의 동반자적 관계를 주도하는 데 정책적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동시에 새 정권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주창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주적인 일본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하토야마 총리는 경제공영을 위한 협력, 녹색아시아를 위한 협력, 생명을 지키기 위한 협력, ‘우애의 바다’를 만들기 위한 협력 등 다섯 가지 협력분야를 제시하였으나 센카쿠 분쟁 등으로 다시 미국과의 동맹강화로 경사되었다.

2012년 자민당의 재집권으로 2기 아베 정권 수립 이후 일본은 미일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외교안보 정책에서 미국과 싱크로율 100%의 기조를 채택함으로써 일본이 주창하던 동아시아공동체는 그 수명을 다하게 된다. 향후에도 일본은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질서 구상에 동조하면서 중국을 제어하는 데 외교적, 군사적 역점을 둘 것이다.

중국은 맹자 이래 수 천 년간 왕도(王道)의 위대함과 패도(覇道)의 위험성을 학습해온 제국임에도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위대한 투쟁, 위대한 공정, 위대한 사업을 추진하는 중국몽(中國夢)과 강군몽(强軍夢) 및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돌돌핍인(咄咄逼人)’의 외교정책은 주변국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50년에 중국을 세계 초일류국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그러나 그 목표는 인류애적 보편주의가 아니라 중국 중심의 패권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패권주의로 동아시아 문명의 뿌리인 ‘천하일가(天下一家)’와 보편적 민주주의에 준거한 세계평화론의 제시는 불가능할 것이다.

중국은 시대착오적인 ‘화이사상(華夷思想)’ 사상과 노골적인 중화민족주의 부활로 동아시아와 세계시민들에게 미국을 대신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패권국가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전전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일본 역시 경이로운 경제적 성취에도 근린국가들에게 존중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공화정을 발전시킨 한국이 새로운 세계 민주주의의 요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홍익(弘益)사상과 촛불혁명까지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성한 발군의 국가로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가 가능한 나라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의 중화민족 패권주의나 일본 복고적인 봉건주의, 민족적 폐쇄성은 세계화시대 세계시민들로부터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동해, 일본해. 남해, 동중국해, 동지나해, 황해, 서해 등 한반도 주변 바다의 명칭은 그 자체로 분쟁 요소가 되고 있다. 반동적인 일부 극우 수구 혐한(嫌韓) 세력들이 취약한 국내 지지기반을 만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이슈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본말전도(本末顚倒)되고 주객전도(主客顚倒)로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든다”는 왝더독(wag the dog)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수구 반동적인 민족주의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는 우선 지명과 명칭부터 중립적인 이름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반도 주변의 바다를 모두 아중해(亞中海)로 통칭함으로써 국가간 갈등요소를 완화시키고자 할 따름이다. 언어는 ‘정치’가 아니라 삶과 배움의 도구다. 논란이 되는 용어는 다듬어서 빠진 데 없이 튼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고속 성장한 중국, 한반도 평화체제가 시급한 대한민국, 아시아의 일원으로 탈구입아/탈미입아의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국가이기주의와 강성 민족주의를 조금씩 완화하고 지역 공동체 형성에 나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에게해 문명을 능가하는 아중해(亞中海, AJungHae) 생태문명을 창달하여야 할 것이다.

아중해 생태문명 창달을 위한 주요 과제

1991년 소련의 해체는 전후 냉전 체제의 종식으로 미국이 단일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등의 가치가 지배하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글로벌 세계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세계는 오히려 걸프만전쟁(1991), 코소보사태(1999), 아프가니스탄전쟁(2001), 이라크전쟁 (2003), 최근의 이슬람국가(IS) 전쟁과 시리아 내전 등 전쟁과 영토분쟁 등 국가간의 실재적, 잠재적 분쟁 가능성은 오히려 냉전기보다 증가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진영의 수호자로 경제·문화·군사적으로 압도적이었던 미국 중심의 세계는 우리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특히 중동전쟁과 고문 자행·무차별 살상·국제법 준수 거부 등으로 미국의 도덕적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노선과 2008년 미국 발 금융 공황과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다시 알려주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는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리더십에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국 혼자서 매년 전세계 에너지의 25%를 소비하고 있으며 미국인의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7921Kg으로 세계 1인당 평균 사용량 1631Kg의 5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9.1톤으로 세계평균 4.9톤의 4배에 달하고 있다.

신흥국인 인구 14억의 중국과 13억의 인도의 산업화가 더욱 진전되어 미국 수준에 도달하려면 5~6개의 지구가 있어야 한다는 전문기관의 전망을 고려하면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인 인류 모두의 과제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베세토튜브와 같은 미래 기반시설 프로젝트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인류를 달과 화성에 보내는 일과 같이 인류의 성취목표와 다음 세대의 목표 기준을 높일 것이다. 배새토(글로벌)튜브는 지구와 문명, 사회,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설사 석유가 점점 고갈되더라도 그 충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석유로 좀 더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에서 시작해야 탈석유 시대와 생태사회를 맞이할 우리 후손들이 완성할 수 있는 과업이 될 것이다.

후기산업산회, 탈산업사회에서 더 많은 에너지 사용, 무한한 성장, 끝없는 물질적 진보는 불가능하고 탈석유(Post Oil)시대 글로벌 운송 시스템의 광범위한 변화와 생활상의 예측과 대응방안이 시급하다. 전세계의 모든 인류는 21/22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비전을 애타게 찾고 있다.

베세토튜브연구회는 인류의 프런티어 아카데미로 21/22세기 생태문명(生态文明) 창달을 위한 만리장도(萬里長途)에 나서고자 한다. “베세토튜브(besetotube)연구회”의 주요 연구과제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역내 협력 프로젝트 추진방안
- 베세토(한·중·일), 아시아(ASEAN), 태평양(NAFTA), 북극해(EU)튜브
- 사할린/시베리아 송유관, 천연가스파이프라인의 튜브망 병행 구축
- 시베리아/몽골/아중해 풍력단지(Wind Farm)와 동북아 슈퍼그리드
- 저(低)엔트로피 생태문명 경제체제에 적합한 교통모드 시스템
 (전기차 파워트레인+자율주행자동차+스마트시티 등) 구축방안
- 4차산업혁명과 생태문명 시대의  역내 경제산업 클러스터 구축방안

생태문명 시대 인류 보편적 문화·경제·기술의 기초연구
- 서구문화(1)와 동양문화(2)를 씨줄 날줄로 엮는 생태문화(3)
- 인본 위주의 포스트 자본주의 생활문화와 경제제도 창출
- 자연 순환형의 도시문화와 정보와 에너지의 도시 기반구조
- 탈산업화 시대의 인문과 자연과학 및 기술공학의 요람지

♣ 생태문명(生态文明 )시대 지역안보 레짐 구축방안
- 산업화 시대 약탈적 국제정치 레짐의 극복과 치유방안
-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는 군사비 지출삭감을 위한 역내 군축방안
- 한중일, 동북아 FTA(한중일+러,몽골,대만 등)로 경제공동체 구축
-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위한 다자간 안보협력 기제개발

 

  1. 베세토튜브는 동아시아 평화의 길 

현재 동아시아 지정학은 유난히 복잡하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한반도의 대한민국과 조선(북한), 동아시아에 위치하면서도 탈아입구(脫亞入歐) 혹은 탈아입미 (脫亞入美)하여 내면적으로는 아시아에 부재하는 일본, 그와 반대로 동아시아에 부재하면서도 현존하는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 속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서는 중국이 있다.

지정학에서 지역이란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행위자에게 특정한 지리적·정치적 경계로 인식되는 담론적 개념이다. 자연지리적으로 지역 자체는 하나의 땅이나 바다 등 물질적인 것으로서 관찰되지만, 그것이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땅과 땅을 가르는 등의 행위를 통해 인간에게 인식되어 한다.

하나의 땅이 국제관계에서 ‘지역’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시민과 같은 인식주체가 지역을 발견하고 구체화해야 하며 그 인식의 인식주체는 자신이 속한 대상으로써 지역을 창조하며, 지역은 인위적으로 구성된다.

지역공동체의 구축은 인류사의 긴 여정, 그리고 근대 주권국가체제의 형성과 확산으로 정형화된‘국가체제’의 대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역내 각국의 주권과 자율성이 담보되는 동시에 상호의존의 공동체적 연대가 충만한 지역 차원의 공동체로서, 세계적, 현대적, 인간적 가치의 보편성과 지역적, 역사적, 문화적 전통의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체현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 형성은 수렴적이고 통합적인 진화를 통해 진전된다는 측면에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과정’으로서 동아시아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 구축의 현실성 여부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의 선택을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공동체의‘ 동아시아적’ 경로에 대한 전략적 패러다임의 모색이 되어야 한다.

한중일 3국의 평화공존은 아시아적 가치에 있다.

주권의 공유를 전제로 기능주의적 통합을 제도화하여 국가연합에 이른 유럽연합(EU)과 달리 동아시아는 국가성과 지역성의 융합, 체제∙문명적 이질성의 완화, 각 국가 지역의 발전격차 해소, 미국과 러시아 등 역외 국가의 관여 등 동아시아 고유의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공동체는 중대하고 결정적인 정치적인 결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지역정세, 경제상황, 사회구성의 진화과정에 따라 지역주의적 제도화가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아시아공동체는 진화주의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공동체적 진화는 역내의 주요 문제의 변환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아시아의 중핵 국가인 한∙중∙일 동북아 3개국 모두 현재 온전한 국가로 보기 어려운 ‘결손국가(缺損國家, handicap state)’의 상태에서 현재 ‘국가성’(statehood)의 전환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로서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고, 중국도 ‘분단국가이자 공산당의 일당지배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사실상 ‘국가자본주의’ 국가이며, 일본은 ‘평화(기지)국가’로 부터 ‘전쟁가능한 보통(정상)국가’로의 이행을 도모하고 있다.

이 과정은 불균등하고 비대칭적 근대화와 냉전기 시대부터 구조화된 것으로 동북아 3국은 탈냉전과 더불어 이 전환을 민족주의를 재결집하고 국가주의적 수단으로 ‘미완의 근대’를 완결하려고 하고 있다.

동북아 한중일 3국의 ‘국가성의 전환’은 영토분쟁과 과거사 논란으로 표출되고 있고, 이는 중국과 미국과의 새로운 패권경쟁과 함께 역내 수구 반동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세력의 발호와 정치세력화를 부추기고 있다.

현 시점에서 동아시아공동체 비전은 신화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역공동체의 비전과 필요성은 바로 동북아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극단적 대립을 제어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민족주의에 준거한 국가주의적 근대 완결은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영토분쟁과 과거사 논쟁은 국가주의를 완화하고 다자주의적 지역화 차원에서 협의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동북아 3국의 국가성 전환은 근대적 국가주의의 재연(再燃)이 아니라 탈근대 지역주의적 비전에 융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3국의 창조적 진화 능력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생태문명의 전환을 모색할 때 동아시아 문명의 ‘천하일가(天下一家)’ 이론은 대한민국이 제시할 철학과 가치의 역사적 뿌리이다. 서구 문명의 평화론이나 국제정치의 패권이론이 아닌 동아시아 문명에 기원을 둔 천하일가(天下一家)’ 세계평화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학>과 <중용> 등 동아시아의 고전 속에 있다.

한중일 삼국은 공히 서구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판단하기 힘든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전통을 지닌 사회이다. 저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이며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중국과 한국 및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서구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시아적인 방식’으로 현대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1500년 넘게 피의 보복과 전쟁으로 화해 불가능한 문명의 충돌을 불러왔다. 밀레니엄의 출발점에 일어난 9·11 테러는 그 이후 이슬람국가(IS)의 출현,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나는 테러리즘 그리고 중동 평화에 위협을 낳고 있다.

21세기는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시대다. 동아시아 문명은 경제적 성장보다 정신적 가치와 문명 간 화해와 협력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할 때야 세계시민들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명은 세계시민 들로부터 유구한 역사 속에서 서구 문명에 대안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을 받는다.

한중일 3국의 제3의 길과 베세토튜브

한국·중국·일본 3국은 최근 GDP 및 무역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세계경제의 주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한중일 3개국의 인구 고령화 현상이 주목 받는 이유도 인구 고령화로 이들 국가의 경제가 큰 영향을 받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3국의 인구 고령화로 공적 연금 재정지출이 증가하고 노동인구 및 노동생산성이 하락하며 노인 의료비와 노인 복지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면 동북아 3국의 고령화 현상은 세계경제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the third way)을 모색하여야 한다.

미국중심의 질서와 세계관을 극복하고 중국의 중화주의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과 같은 정치.군사 중심의 패권적 아시아주의를 넘어서 경제협력과 문화 교류를 촉진하여야 하는 한중일 국민·인민·신민은 3국간 신뢰관계를 진흥하여야 한다.

한중일 3국의 평화와 안전 및 번영을 공동체의 이념으로 하는 시민기반의 공동체(civil community)는 삼상궤도(三相軌道, Three Phase Track) 기반의 베세토튜브(besetotube, 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건설로 실현되기를 희망한다.

탈 산업화시대로 생태문명이 꽃 필 21~22세기는 군사력과 기축통화 발권력으로 유지되는 패권국은 과거 로마제국과 같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예의, 공손함, 성실성, 공동체에 대한 헌신,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로 근대 산업문명의 폐해를 치유하는 모범적인 ‘생태패권국’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리우 환경회의 이후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실제 정책들에 응용되어 왔다. 22세기 생태문명 시대에도 지속가능한 성장은 지구자원을 약탈하여 소비하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산업화 시대의 이데올로기와 이를 추동하는 정치 경제적 체제에서 벗어나는 전환적 발전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1. 베세토튜브를 넘어 글로벌튜브로…

산업혁명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근대 육상, 해상, 항공 교통시스템은 모두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어 다량의 온실 가스를 배출할 뿐만 아니라 석유고갈에 따라 지속 가능하지 않는 교통 시스템이다.

탈산업화시대(Post-industrial society)와 생태사회(Eco Society)에 대비한 새로운 운송체제의 개발과 구축은 석유로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준비하여야 하는 시대적 과업으로 새로이 등장할 교통수단은 반드시 석유고갈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교통모드일 수 밖에 없다.

생태문명의 인프라가 될 베세토튜브

현재 ET3, 하이퍼루프 등 여러 진공튜브방식 운송 시스템이 제안되고 있으나 모두 아이디어와 기술의 실용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기초 요소기술의 시험단계로 아직까지 성공적인 실용화 사례는 전무한 단계이다.

오늘날 환경과 경제가 당면한 두려운 현실은 전세계적으로 젊은 층의 실업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환경 파괴와 기존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는 등의 신호가 이를 증명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유일한 행성 지구에서 건강하고 공정하고 의미 있게 사는 법에 대한 논의를 일찍 시작할수록 우리 모두에게 더욱 이로울 것이다.

화성(火星, Mars)이나 또다른 행성(Planet)으로 이주하지 않는 이상 자원은 유한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도 한계를 지녔기에 결국 경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제로’상태가 될 것이며 한국처럼 작고 성장이 집약된 국가는 문제가 더욱 빨리 닥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부족은 이미 당면한 문제다. 가장 먼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연한 듯 소비되고 있는 에너지에 대해 지금과 같은 과도한 소비가 필요한지 고찰해봐야 한다. 선박은 너무 느리고 비행기는 과다한 온실가스를 지구 상공에 배출하여 자연을 통한 회복보다 빠른 속도로 바다와 대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석유정점을 맞이하는 21세기 한정된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낭비해서는 안되며 결국 22세기 탈 석유사회시대에는 항공 교통모드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신재생 에너지를 사용하는 관도(管道, Tubeway)모드의 교통수단이 최상위 교통모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석유에너지 고갈에 따른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21/22세기형 최상위 교통계층(transport hierarchy) 의 지속가능 교통 시스템(Sustainable transport system)은 제5 교통모드인 “관도(管道, tubeway)” 가 될 것이며 5대양 6대주를 연결하는 삼상궤도(Three Phase Track)방식의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 Way)를 구축함으로써 기존 도로, 수상, 철도와 특히 항공모드 의존을 축소함으로써 지구촌 인구 100억명 시대의 교통 인프라를 재구축하여야 한다.

빠르고 저렴한 운송수단은 오염을 낮추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급격히 줄여줄 뿐만 아니라 고도로 연결된 사회(Hyper-connected society)를 낳을 것이다.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과 진지한 지구 공학적 접근이 필요하며 관건은 최소의 비용으로 5대양 7대주를 연결하는 진공 튜브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과 함께 음속에 가까운 속도를 최소 에너지로 구현하는 것이 될 것이다.

베세토튜브~글로벌튜브의 목표

베세토튜브, 아시아튜브, 태평양튜브, 북극해튜브, 대서양 등으로 연장될 글로벌튜브는 5대양 6대주를 연결하는 지구공학적 차원의 사상 최대규모 프로젝트이다. ‘베세토튜브연구회’가 추진하는 기술표준은 하이퍼루프 등 기존 방식과는 달리 다중튜브(Multi tube)와 삼상궤도(3 Phase Track)기술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베세토튜브는 종래 단상궤도와 이륜바퀴의 기존 철도기술에서 연원하는 단상궤도 자기부상 열차와 진공튜브 열차기술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튜브내 정삼각형 꼭짓점에 삼상(3 phase) 자기부상 궤도(track)가 안치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진공 자기부상 이동체 시스템을 제공한다.

삼상궤도 자기부상 방식은 이동체의 무게 중심(center of gravity)과 모멘트 중심(center of moment)을 원통 실린더 형상인 튜브셔틀의 가상원점 O(0, 0, 0)으로 이동시켜 안정평형(stable equilibrium) 상태 주행이 가능하므로, 기존 단상궤도 자기부상 기술의 중립평형(neutral equilibrium)과 열차 주행시의 불안정 평형(unstable equilibrium) 문제를 해소하여 진동이나 섭동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지속가능한 생태문명은 국가의 실패나 시장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로 시민들의 자발적 실천과 연대(네트워크)를 통해 자기 의존적이고 환경 정의적 전략들의 실행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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