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공동체 vs 아중해공동체와 베세토튜브

  1. 동(東)과 서(西)의 구분과 아시아의 유래
  2. 동아시아공동체론
  3.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평가와 성찰
  4. 아중해공동체와 베세토동맹

아시아(Asia, 亞細亞) 또는 아주(亞洲)는 지구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으로, 면적은 44,579,000km²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수에즈 운하를 경계로 만난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는 다르다넬스 해협, 마르마라 해, 보스포루스 해협, 흑해, 코카서스, 카스피 해, 우랄 강 (혹은 엠바 강), 그리고 우랄 산맥과 노바야제믈랴 제도까지를 경계로 한다. 세계 인구 전체의 60% 가 아시아에 거주한다. 아시아의 지역은 대륙과 인도양 및 태평양의 인접 군도를 포함한다.

 

  1. 동(東), 서(西) 구분과 아시아의 유래

오늘날 동(東)과 서(西)는 역사.지리,정치,문화적 복합개념으로 동은 동양(東洋, the Orient)이나 동방(東方, the East), 서는 서양(西洋, the Occident)이나 서방(西方, the West)에 대한 일반적 명칭으로 동서양인 모두 받아들이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중세시기 중국인 들은 동양은 현재의 동/남 중국해, 서양은 인도양, 남양은 동남아시아 일원의 바다를 일컫었다.

아시아 어원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아시리아’어에서 일출(日出)을 의미하는 ‘asu’가 어원으로 기원전 1235년경 흑해지역에서 바빌로니아까지 지배하던 히타이트(Hittite)왕이 에게해(그리스 일원) 동쪽에 있는 ‘앗수바(Assuva)’ 부족과 그 연합체의 영토를 정복한 후 그리스인들은 에게해 동쪽에 있는 ‘무한대의 대륙’을 해뜨는 동쪽 지역이란 뜻으로 ‘아스바(As<e>va)로 지칭하게 된다.

근대 형성기 서구인들이 이슬람, 인도, 중국 등 식민지 대상이 되는 동방지역을 고대 그리스인들이 ‘동족 지방’을 뜻으로 사용하던 ‘아스바As<e>va’에서 유사음인 ‘이시아(Asia)란 관용어가 정착된 것으로 보ㅣㄴ다.

대략 터키를 경계로 우랄산맥-흑해-지중해-홍해를 연결하는 남북선을 기준으로 동쪽지역은 동양, 서쪽지역은 서양으로 대별하며, 특히 당시 해양 패권국인 대영제국은 원근(遠近)거리에 따라 다시 근동(近東, the Near East), 중동(中東, the middle East), 극동(極東, the Far East)로 다시 세분하게 된다.

다른 하나의 설은 그리스어 “Ἀσία”에서 나왔다고 한다. 기원전 440년경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와 이집트에 대비되는 지역 개념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가리키거나 혹은 아나톨리아 지방을 뜻하는 말로 ‘아시아’를 처음으로 썼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자신이 논평하기를, 거대한 세 땅덩어리에 왜 여성 이름(에우로파,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지칭하는 리비아)이 쓰이는지 의아스럽다면서, 그리스인 대부분은 아시아라는 이름이 프로메테우스의 부인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하나, 리디아 사람들은 이 이름이 사르데이스의 한 부족 이름에서 나온 코티스(Cotys)의 아들 이름인 아시아스(Asias)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노라고 썼다.

이 외에도 아카드어로 “밖에 나가다” 또는 “올라가다”라는 뜻으로 중동에서 해가 뜨는 방향을 일컫는 (w)aṣû(m)에서 “아시아” 이름이 나왔으며, “동쪽”을 뜻하는 페니키아어 asa와 아마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이 말은 아카드어로 “들어가다” 또는 “(해가) 뜨다”라는 뜻의 erēbu(m)가 지명 ‘유럽(Europe)’의 어원이 되었다는 비슷한 류의 설명과 대비된다.

 

  1. 동아시아공동체론

동아시아 지정학은 유난히 복잡하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한반도의 대한민국과 조선(북한), 동아시아에 위치하면서도 탈아입구(脫亞入歐) 혹은 탈아입미(脫亞入美)하여 내면적으로는 아시아에 부재하는 일본, 그와 반대로 동아시아에 부재하면서도 현존하는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에 속하면서도 그 경계를 넘어서는 중국이 있다.

지역이란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행위자에게 특정한 지리적·정치적 경계로 인식되는 담론적 개념이다. 자연지리적으로 지역 자체는 하나의 땅이나 바다 등 물질적인 것으로서 관찰되지만, 그것이 지역이 되기 위해서는 땅과 땅을 가르는 등의 행위를 통해 인간에게 인식되어 한다.

하나의 땅이 국제관계에서 ‘지역’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시민과 같은 인식주체가 지역을 발견하고 구체화해야 하며 그 인식의 인식주체는 자신이 속한 대상으로써 지역을 창조하며, 지역은 인위적으로 구성된다.

지역의 의미는 자연지리적 근접성을 기초로 한 지리학적 의미보다 확장된다. 지역을 관찰하는 인식주체는 지역 문제에 대해 어떤 행위자들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확인함으로써, 어떤 행위자가 해당 지역에 속하는가를 파악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후의 동아시아는 자연지리학적으로만 파악되기보다 지리정치학적 혹은 지리경제학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아시아는 유럽의 관점에서 보아 지중해 동부부터 일본까지 포괄하는 광활한 지역으로 역내 국가와 문화는 너무나 다양하고 이질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광대한 아시아의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의 연합을 생각하거나, 아시아를 단일 지역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점이 바로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지역 공동체의 논의가 ‘동아시아론’으로 수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1 근대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역사

역사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구상은 주로 일본을 중심으로 제안되어 왔다. 이는 위에서 설명한 각국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에서는 동북아 지역을 자국의 일부 경계지역으로 간주하거나 아니면 이념적 개념의 하부개념으로 인식함으로써 지역공동체에 대한 구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식민지시대, 냉전시대를 거치고 1990년대 이후에 들어서야 동아시아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특별히 주목할 만한 구상을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일본은 19세기 서구열강의 동양진출에 대해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리고 전후에는 최소한 경제 면에서 아시아의 질서를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구상을 제시해왔다.

한․중․일 3국의 입장을 동등한 차원에서 비교하기 위해 과거 지난 세기 한․중․일 3국에서 대표적으로 제시된 한국의 동양평화론,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중국의 대아시아주의 등 국가별로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안중근(安重根)의사의 동양평화론

안중근의 동양평화회의체 구상을 살펴보면 정치협력, 금융협력, 안보협력의 3대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그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오늘날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공동체가 아시아에서도 출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안중근은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 당시 러시아, 일본, 중국의 군사세력이 치열하게 다툼하였던 여순을 일본, 중국, 한국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고 3국이 대표를 파견하여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할 것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세 나라의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에게는 2개국 이상의 어학을 배우게 하여 우방 또는 형제의 관념이 높아지도록 함으로써 한․중․일 3국의 청년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한편, 안중근은 실질적인 3국 제휴를 가능하게 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3국 공동으로 은행을 설립하여 공동화폐를 발행할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다.(상세내용⇒ 안중근의사의 동양평화론과 베세토튜브)

일본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亜共栄圏)

대동아공영권은 일본의 쇼와 시대에 제국주의 정부와 군대에 의해 급조되어 보급된 구상이다. 1930년대의 국제정세를 보면 영미의 헤게모니 블록, 이탈리아의 후발 자본주의 블록, 소련의 공산주의 블록 등 지역블록화가 성행했는데, 이러한 추세에 편승해 일본에 의해 주도되고 서방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아시아 블록을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표현한 것이 대동아공영권이다.

1940년 7월 당시 일본의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이 결정한 기본국책요강과 관련해 9월 마쓰오카 외상이 담화에서 언급한 이래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대동아공영권은 일본, 만주, 중국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구성하고 동남아시아를 자원공급지역으로 하였으며, 군사적 측면에서는 인도양 및 남태평양 지역까지를 국방권에 포함시켰다.

대동아공영권의 요체는 아시아 국가를 구미열강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시키고 아시아 각국의 ‘공동번영’을 모색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하여 번영과 평화를 나눈다는 것이었지만, 실제적으로는 구미열강의 식민지배를 일본이 대체했을 뿐이었다.

이처럼 대동아공영권에 포함된 일본의 아시아 공동체론은 193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어난 일본제국의 동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도구에 불과했었으며, 이는 이후 일본의 대외정책에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남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아시아 국가들은 대동아공영권을 제국주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괴뢰정부를 내세워 각국을 통치하려 했던 수단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기억은 일본경제가 부상함에 따라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결집하려고 할 때 많은 국가들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도록 만든 부정적인 유산으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손문(孫文, 中山)의 대아시아주의

중국에서는 손문,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등이 아시아주의를 주장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손문의 대아시아주의였다. 손문은 1924년 11월 28일 일본의 고베에서 ‘대아시아주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는데, 이 연설에서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조망과 함께 아시아의 연대를 강조하였다.

손문은 당시의 국제정치구도를 서양과 동양의 전쟁, 즉 군사력에 기반을 둔 서양의 ‘패도의 문화’와 인의도덕에 바탕을 둔 동양의 ‘왕도의 문화’ 간 대결구도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대결구도에서 아시아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아시아주의를 주창하였다.

손문은 대아시아주의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은 왕도문화인데, 이것은 단순한 저항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아시아 제 민족을 결속시키고 아시아에서 서구 제국주의 세력을 배척할 수 있는 수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손문은 아시아 국가들이 연합해야만 서구열강의 침략에 대해 아시아국가들이 독립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당시 현실은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이므로 아시아 전체가 협력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손문은 중국과 일본이 중심이 되어 아시아 평화를 회복하는 데 공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손문은 “일본은 이미 서구의 패도문화를 습득하였고 아시아의 왕도문화의 본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데 일본의 역할이 막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에 대해“이후 세계문화의 전도에 대해 서양패도의 개(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동양왕도의 간성(干城)이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손문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아시아 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중․일 연대를 호소하는 한편 중국과 일본을 두 축으로 하는 아시아연대에서 더 나아가 소련과의 연대도 모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2-2 현대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개략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 지역공동체론을 구체적으로 제안한 것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이 1990년 세계적인 블록경제화에 대응하기 위한 동아시아국가의 블록 경제화 구상으로서 동아시아 경제그룹(East Asian Economic Group)을 제안한바 있다.

총리 시절 그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쳤다. 그러나 반 서구주의였던 그의 구상은 미국 등에 대항하는 아시아국가들의 결속이라고 판단한 미국이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를 의식한 일본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논란이 일어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97년~98년, 동아시아 지역에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10개국(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브루나이)이 한, 중, 일 정상 들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ASEAN+3 정상회의가 열린 동아시아 지역공동체 구축 논의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동아시아에 대한 규정은 학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대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대만, ASEAN 10개국을 포괄한다. 좁은 의미의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시아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로 설정된다.

ASEAN은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지역연합의 모범사례로 ASEAN을 통한 동남아 통합 문제는 엄밀히 말해 동북아 통합 문제와 구분된다. 한국으로서는 ASEAN과는 별개로 동북아 지역 국가들 간의 협력이 당면한 핵심 과제인 것이다.

ASEAN은 심각한 외교적 갈등이 지속되던 동남아시아에서 경제협력을 통해 정치협력을 도출해낸 지역협력의 긍정적 성과물이다. 그러나 ASEAN에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이 참여하기 시작하고, 대립하는 미-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협력체가 등장하면서 ASEAN의 기능은 약화되어 쇠퇴를 거듭하고 있다.

ASEAN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상은 동북아 국가들이 넘어서야 할 국제정치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ASEAN이 맞이한 분열이라는 한계가 국제정치적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이는 미/일-중 대립의 최전선인 동북아 지역에서 더욱 직접적인 반-통합 기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 경제적 교류와 함께 백촌강 전투, 창궐하였던 왜구집단,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군사적 충돌이 있어 왔던 것은 EU와 다를 바 없겠지만, 강력한 국가주의의 전통 아래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통합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는 유럽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오늘날 아시아 지역에 APEC, ASEAN, ASEAN+3 등이 있다. 21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APEC은 느슨한 경제 협력체이다. 비록 1994년의 보고르(Bogor)정상회의에서 역내 무역 자유화에 관한 일정이 합의되었지만(선진국은 2010년, 그리고 개도국은 2020년), APEC이 실질적인 경제 지역 블럭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난관이 앞에 가로 놓여 있다.

아시아 지역의 경제적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입장으로 인해 APEC의 발전적 제도화가 지체되고 있다. 10개 나라로 이루어져 있는 ASEAN(Association for South East Asian Nations)은 경제 협력을 강조하지만 회원국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ASEAN은 경제 약소국인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으로 인식하여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APEC에 대해 유보적이다. ASEAN+3은 아시아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ASEAN에 한국, 중국, 일본이 가담하는 형식으로 출범하였으나, 세 나라는 의사 결정권이 없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정도의 포럼에 그치고 있으며 향후 아시아 지역에는 ASEAN+3과 APEC 등이 느슨한 형태의 네트워크로 파티를 열고 말의 성찬(盛饌)이 지속될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의 긴장과 갈등을 협력과 상생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의 건설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경향 아래 패권 경쟁은 이 지역에서 지역공동체의 건설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역공동체 건설을 정치, 외교, 안보 문제는 미루어 두고 경제와 문화 부분부터 접근하는 것이 유용할 수 있다. 국가 간 공동체는 결코 단일한 의미가 아니며 지역공동체는 동맹, 연방, 연합 등 여러 개념들로 구분되어 정의되며, 각각의 개념들 내부에서도 수많은 차이점을 가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한다.

지역공동체 논의의 가장 심화된 담론은 연합으로 유럽연합(EU)과 같이 주권의 이양과 공유 문제를 둘러싼 무수한 논쟁이 야기되었고 영국의 브렉시트와 같이 재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1.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평가와 성찰

3-1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문제점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동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때론 1940년대의 대동아 공영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대동아’란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을 가리키는 말로 1940년 7월 일본이 국책요강으로 ‘대동아 신질서 건설’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대동아 공영권’이란 1940년 8월1일 마쯔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외무상이 담화를 통해 발표한 것으로, 아시아민족이 서양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을 중심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결성하여 아시아에서 서양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제적 정치적 블록화를 통한 공영의 슬로건은 식민지조선을 포함한 일본, 중국, 만주를 중심축으로 하여 인도차이나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의 식민화 및 영토침략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또한 그 실질은 이들 대동아 지역의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고 이들 지역의 철저한 독립운동 탄압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현재 대두되고 있는 각종의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식민지 지배를 전제로 하고 있지 않고, 독립국가간의 공존 공영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동아공영권론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많은 경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동아시아지역의 공존과 공영의 중요한 전제의 하나임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즉, 일종의 한반도 중심주의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중심주의를 취하여 결국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였던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와도 다르다.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론은 몇가지 문제점과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공동체론의 대상이 되는 동아시아 개념의 모호성이다. 사실 동아시아라는 개념은 한중일 3국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의 개념으로 시작되었으나 동남아시아 각국이 결성한 ASEAN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또한 공동체론의 목표지점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대안체제까지를 목표에 둔 개념이라고 한다면, 동남아시아 각국은 물론이고 한중일 3국만 대상으로 하더라도 경제는 물론 정치시스템이 다른 나라여서 갈 길이 먼 동상이몽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식 공동체 담론으로 목적지를 잃고 배가 산으로 간 형국이 되었다.

3-2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의 성찰

지역공동체의 구축은 인류사의 긴 여정, 그리고 근대 주권국가체제의 형성과 확산으로 정형화된‘국가체제’의 대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역내 각국의 주권과 자율성이 담보되는 동시에 상호의존의 공동체적 연대가 충만한 지역 차원의 공동체로서, 세계적, 현대적, 인간적 가치의 보편성과 지역적, 역사적, 문화적 전통의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체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아시아에서의 지역공동체는 국가의 대체단위가 아니라 문화와 국가, 지역이 서로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융합되는 변환적(transformative) 광역∙복합의 단위체로 파악하여야 한다. 지역공동체는 또 다른 차원의 ‘상상의 공동체’로 비전이 상상되고, 방법이 탐구되어, 전략적으로 추진되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고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형성은 수렴적이고 통합적인 진화를 통해 진전된다는 측면에서 결과보다는 과정의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과정’으로서 동아시아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 구축의 현실성 여부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의 선택을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공동체의‘ 동아시아적’ 경로에 대한 전략적 패러다임의 모색이 될 것이다.

이 전략적 패러다임은 동아시아공동체의 영역과 수준을 결정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립의 준거가 될 것이며, 이를 기초로 역내 국가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리고 대중들의 포괄적인 지지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공동체의 형성은 다원주의와 평등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개방적 지역주의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방적 지역주의의 틀에서 전개 될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를 확정할 수는 없다.

주권의 공유를 전제로 기능주의적 통합을 제도화하여 국가연합에 이른 유럽연합(EU)과 달리 동아시아는 국가성과 지역성의 융합, 체제∙문명적 이질성의 완화, 각 국가 지역의 발전격차 해소, 미국과 러시아 등 역외 국가의 관여 등 동아시아 고유의 과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공동체는 중대하고 결정적인 정치적인 결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지역정세, 경제상황, 사회구성의 진화과정에 따라 지역주의적 제도화가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아시아공동체는 진화주의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공동체적 진화는 역내의 주요 문제의 변환과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아시아의 중핵 국가인 한∙중∙일 동북아 3개국 모두 현재 온전한 국가로 보기 어려운 ‘결손국가(缺損國家, handicap state)’의 상태에서 현재 ‘국가성’(statehood)의 전환을 겪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로서 통일의 과제’를 안고 있고, 중국도 ‘분단국가이자 (탈사회주의)체제 전환국’이며, 일본은 ‘평화(기지)국가’로 부터 ‘전쟁가능한 보통(정상)국가’로의 이행을 도모하고 있다.

이 과정은 불균등하고 비대칭적 근대화와 냉전기 시대부터 구조화된 것으로 동북아 3국은 탈냉전과 더불어 이 전환을 민족주의를 재결집하고 국가주의적 수단으로 ‘미완의 근대’를 완결하려고 하고 있다.

동북아 한중일 3국의 ‘국가성의 전환’은 영토분쟁과 과거사 논란으로 표출되고 있고, 이는 중국과 미국과의 새로운 패권경쟁과 함께 역내 수구 반동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세력의 발호와 정치세력화를 부추기고 있다.

현 시점에서 동아시아공동체 비전은 신화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역공동체의 비전과 필요성은 바로 동북아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극단적 대립을 제어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민족주의에 준거한 국가주의적 근대 완결은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격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영토분쟁과 과거사 논쟁은 국가주의를 완화하고 다자주의적 지역화 차원에서 협의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동북아 3국의 국가성의 전환은 근대적 국가주의의 재연(再燃)이 아니라 탈근대 지역주의적 비전에 융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은 3국의 창조적 진화 능력을 실험하게 될 것이다.

동북아에는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국가가 존재한다. 중국은 현대화 정책으로 경제적으로는 탈사회주의에 성공하고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이끌었던 ‘발전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지배가 지속되는 체제의 이원성(공산주의 vs 자본주의)이 공존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발전과 정치 다원화(민주화) 간의 긴장 고조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중∙단기적으로는 중화민족주의를 강화하여 체제이완의 원심력을 제어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다원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체제전환 과정에 나타나는 긴장을 관리하고 제어하는데 많은 국가역량을 소모할 것이다.

중국의 점진적 변화 전망과는 달리 3대 세습의 전제국가이자 핵무장의 모험국가로 전락한 북한은 급변사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개방을 통한 정상국가화의 경로를 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핵무장과 폭압적 전제정권화로 스스로 정상국가로의 변화를 봉쇄한 상태이나 북한의 체제변동은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을 촉진할 것이다.

북한을 제외한 동북아의 주요 국가는 이미 성장경제와 무역국가의 구조를 갖추었고 역내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점증하고 있다. 중국의 고도성장으로 동북아의 경제는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와 더불어 삼각구도를 형성했다. 동북아 경제의 역내 의존도도 유럽연합에는 약간 못미치나 북미자유무역지대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아울러 동북아는 환황해, 환동해, 환발해 등 ‘국지적 경제권’의 형성으로 경제의 지역화는 꾸준히 구조화되고 있다. 아울러 한∙중∙일은 모두 미국과 유럽연합(EU)과 고도의 무역관계를 맺고 있어 역외국가나 지역과의 쌍무적, 지역적 경제협력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무역국가’의 차원에서 동북아 국가들은 지역경제공동체의 구축에 필요한 기반을 이미 만들었다. 아울러 이 지역 국가들은 APEC을 통해 미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그리고 ASEM을 통해 유럽연합과의 경제협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물론,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강국으로 부활한 러시아와의 경제협력도 활발하다. 동북아 지역은 경제와 무역의 차원에서 국가주의를 넘어서 지역주의를 제도화 할 수 있는 기반을 구조화시킨 것이다.

아울러 동북아 경제는 미국, 러시아 등의 이 지역에 핵심적 이해관계를 투사하고 있는 역외 국가들까지 포괄한 지역경제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 활력과 상호의존성이 역내 외 국가들의 세력경쟁을 완화시켜 공동체적 제도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회와 문화 역시 고유성과 다양성이 우세한 편이다. 권역별로 문명적, 문화적 정체성의 각성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동아시아 전체를 통할하는 보편적 가치나 사회∙문화 양식의 계발은 미진하다.

특히 동북아 3국은 유교문화, 불교적 전통, 한자의 사용 등 국가주의를 넘는 지역적, 문명적 정체성의 재인식이 가능할 것이나 탈냉전 이후 이 지역 국가들의 정치가들이 선동하고 대중이 결집하는 신민족주의의 분출로 국가주의가 지역주의를 압도하고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에서는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민주화 수준의 국가별 편차로 동아시아적 시민사회의 구축이 쉽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한류(韓流)의 동아시아 지역으로의 확산에서 보듯이 동아시아 시민사회는 고유성을 넘는 뉴트랜드를 개발할 여지는 존재한다. 그러나 유럽연합에서 보듯이 ‘유럽 시민성’의 결집 같은 지역적 시민사회의 구축은 상당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화될 것이다.

정리하면 동아시아론은 아직까지 공동체 형성의 현실적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실제로 실현된 경험은 당연히 없으며, 초보적 수준의 실험마저도 충분히 무르익지 못한 채 말의 성찬(盛饌)으로 끝났다.

미래를 보는 안목, 준비수준,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성찰 없이 전개되는 말의 성찬은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냉소주의 등 역효과만 초래할 뿐이다. 그러나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해서 동아시아론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론이 지역공동체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아시아의 특수성을 내재적으로 분석해 낸 성과는 의미가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다른 형태의 지역공동체를 내포하는 열린 개념을 창출하는 토대로 활용될 수 있다.

3-3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의 바람직한 방향

20세기 초 유럽은 국가주의적 극단경쟁으로 1차 세계대전의 파국으로 치달았다. 최근 동북아의 국가주의적 세력경쟁 질서와 영토 및 역사 갈등의 심화를 두고 동북아의 파국적 미래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시아공동체는 역내 국가들의 체제적, 단위적 이질성을 통합하는 동시에 이 지역의 이해 상관국인 미국, (극동)러시아 등 역외 국가들의 참여가 불가피하다. 즉, 동아시아공동체는 동북아와 아세안, 아시아∙태평양, 유라시아의 국가들의 개방적 네트워킹이 복합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동아시아공동체는 한∙중∙일이 중심이 된 동북아와 동남아의 아세안이 중심으로결합하되 미국, 러시아, 대양주 국가들이 영역과 쟁점에 따라 선별적으로 참여하는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공동체를 구상하고 제도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ASEAN, APEC, ASEM, 동아시아정상회의, ARF+3, EAS 등 등 이미 구축된 지역협력체의 공동체적 재구성을 위한 수렴∙통합의 로드맵을 구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호혜성의 원칙이 견지되어야 한다. 동아시아공동체가 국가주의적 대치를 극복할 대안이지만, 위계적 패권체제의 수단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최근 중국의 부상에 따른 중화주의의 확산에 대한 국제적인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중국 당국과 학자들의 복고적인 ‘천하질서’의 부활로 서구적 ‘베스트팔렌 체제’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은 패권주의의 제도화라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주권적 경쟁체제의 내재적 모순 때문에 신중세적 위계질서를 재활시킬 수는 없다. 동아시아의 체제, 문화와 문명의 이질성, 발전격차와 단위성의 차이가 제국적 패권으로 제압될 수 없다. 이런 차원에서 동아시아는 아세안이 구축한 호혜평등의 지역화 경험을 차용하는 동시에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체제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다자주의’가 공동체 구축의 제도적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원성의 원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동아시아는 유럽의 일원적 국가연합의 통합 모델을 구축하기 힘든 다양성이 존재한다. 제국적 세력경쟁, 분단국가의 존재, 개발격차, 문명적 이질성 등등에 대한 공동체적 수렴을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는 유럽연합과 같은 주권공유에 의한 최상위공동체 구축은 난망하다.

이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요소를 해소하고 협력요인을 증진하는 다양한 영역과 수준의 하위공동체를 다원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1. 아중해공동체를 향한 베세토동맹…..

마샬 맥루한(H. Marshall McLuhan)이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말을 쓴 후 인류는 서로가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다고 기대했으나 오늘날의 세계는 더욱 혼란스럽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약탈로 얼룩진 지구(global pillage)’가 되고 있다는 자성이 일고 있다.

실상 세계는 곳곳에서 문화 충돌, 인종 분쟁, 민족 갈등의 형태 아래 전쟁, 폭력, 테러가 끊이지 않고 빈곤, 기아, 압제 등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질서를 보더라도 중국이 부상하여 G2의 대열에 중국이 유럽을 대신하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세계의 헤게모니가 네덜란드-영국-미국-중국으로 옮겨지면서 유럽과 미국을 잇는 대서양에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는 태평양으로 중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에서 아시아로의 ‘힘의 이동’은 이러한 세계의 재편성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4-1 아시아 세기는 진정 오는 것인가?

문명사적으로 아시아가 서구적 근대성에 대한 대안 지역으로까지 언급되고 있기도 하다. 유럽이 만들어낸 원래의 근대(modernity)에 대해 아시아가 제2의 근대(second modernity)로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시아는 유럽중심주의 아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서구적 척도에 의해 폄하되어 왔다.

유럽이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며, 생동적이라면, 아시아는 특수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정체적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아시아가 부와 권력이나 지식과 문화의 창출에서 세계의 중앙으로 올라서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시아의 부상이 서구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옥시덴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탈(脫)유럽이라는 미명 아래 나타나는 배타적 아시아주의는 결국 역(逆)오리엔탈리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앞서 있던 것으로 보인다. 어느 문명이고 영락(榮落)이 있듯이, 인류 두 번째 천 년 중 첫 다섯 세기(1,000~1,500년)는 아시아가 앞섰으나, 다음 다섯 세기(1,500~2,000년)는 유럽이 아시아를 넘어섰다.

유럽의 부흥은 아시아의 선진 문화유산(종교, 수학, 화약, 종이 등)을 과학 기술의 혁명으로 이어 갈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인류 두 번째 천 년이라 할 서기 1,000년경 중국과 중동은 상당히 도시화되어 있었던 반면, 로마의 인구는 450,000명에서 35,000명으로 줄어드는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슬람 지배 아래의 스페인 코로도바는 500,000명의 주민이 살았고, 바그다드는 백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운집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 9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동안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문명의 정수를 담은 서적을 수집, 번역, 종합하였고, 유럽은 이를 과학 기술의 혁명을 통해 ‘지리상의 발견’으로 이어감으로써 아시아를 앞지를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아시아가 21세기에 들어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유럽, 북미 대륙과 더불어 아시아는 근대 산업 세계의 3대 지주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일본은 비(非)서구 지역에서 처음으로 근대화를 달성하였으며,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네 마리의 용(Four Dragons)’으로 불리며 놀랄 만한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 후 ‘다섯 마리의 호랑이(Five Tigers)’라 할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은 새로운 공업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고, ‘친디아(CHINDIA)’로 호칭되는 중국과 인도는 세계적인 정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중국의 등소평(鄧小平)과 인도의 간디(Rajiv Gandhi)의 만남에서 공론화 되었던 ‘아시아의 세기(Asian Century)’가 마침내 도래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아시아 국가들이 보여준 발전의 역동적 측면은 세계의 그 어느 곳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다. 아시아의 인구와 면적은 북미, 남미, 유럽, 혹은 아프리카보다 크다. 비록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에 발 빠르게 적응함으로써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21세기형 지식 기반 사회로 옮겨가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디지털 산업의 발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사용 등에서 아시아의 국가들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아시아는 세계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교역량에서 미국과 유럽을 능가하는 가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공동체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중 한국, 중국, 일본은 세계 경제와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총생산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세 나라는 생산, 투자, 무역, 소비에서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아시아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협력이 필요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여파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중국 산동반도와 일본 서부 지역의 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한국으로서는 재앙 그 자체이다.

세 나라는 에너지, 금융, 환경, 테러, 지속가능한 발전 등 일련의 문제에서 공통의 협력 틀이 필요하다. 지역 공동체라는 먼 미래를 위해 한·중·일 세 나라는 문화와 경제 교류의 확대를 통해 국민들 사이의 이해와 신뢰를 높여야 한다. 인적·물적 소통과 교섭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향한 합의의 기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재등장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의 시대적 소명이 도출될 수 있다. 물론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국력 면에서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한국의 비(非)팽창주의적 입장이 중국과 일본에 대해 도덕적 차원에서 헤게모니적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4-2 아중해공동체와 베세토동맹

현재의 국제정세에서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며 백년하청(百年河淸) 더 나아가 천년하청(千年河淸)의 과제로 지난 세기의 수많은 통합담론과 국가간 논의는 결국 회의장과 만찬장에서 가식적으로 주고 받는 공허한 말의 성찬(盛饌)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이기주의 와 민족주의 발흥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특별한’ 국가이며 ‘미국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접근과 미국적 가치를 해외에 강요하는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는 세계 패권국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일본 또한 외교, 안보부분에서 미국과 싱크로율 100%를 보이며 전쟁가능한 보통국가로 체제를 전환하기 위해 평화헌법의 폐기를 추진하고 ‘미일동맹’을 더욱 강화하여 중국의 패권을 저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행보는 동북아 평화의  위협요인이다. 지난 세기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당시 세계 패권국 영국과 맺은 ‘영일동맹’의 데자뷰(Déjà Vu)이다.

다른 한편, 중화민족의 문명이 세계 중심에 위치하는 위대한 문명으로 나머지는 오랑캐로 낮잡아 보는 중화사상 (華夷思想), 중화민족주의와 함께 중국몽(中國夢), 강군몽(强軍夢)과 일대일로(一帶一路) 등 팽창전략을 전개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 또한 우려된다.

기존 패권질서의 성급한 재구축 시도는 해양세력인 일본과 미국의 봉쇄전략을 더욱 구체화할 것이며 인도아대륙 국가의 경계심을 증폭시켜 아시아 역내에 끝없는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우리와 후세의 생활터전인 동아시아의 전쟁 예방과 평화 및 번영의 길인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은 중국과 일본의 강력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 인해 한국이 주도하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는 지정학적 고차원의 방정식 풀이 문제이다.

대한민국이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경쟁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동아시아의 평화체제와 공동번영을 성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주도의 동아시아공동체는 말의 성찬일 뿐…

후기 산업화 시대 고속 성장하여 G2국가로 부상였으나 소강(小康)/대동(大同)사회 실현과 생태문명으로의 전환과제를 안고 있는 중국,

국토분단 백 년을 앞두고도 긴장이 격화되어 한민족 생존문제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시급한 대한민국,

아시아의 당당한 일원으로 태평양전쟁 종전이후 영속적인  대미종속 탈피와 탈구입아(脫歐入亞)/탈미입아(脫美入亞)의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

모두가 아시아 중핵국가로서 위상을 뽐내고 있으나 기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결손국가(缺損國家, handicap state)’일 뿐이다. 한중일 3국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국가이기주의와 강성 민족주의를 조금씩 완화하고 지역 공동체 형성에 나서야 한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과 같이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에서 국가와 정부실패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지역공동체 협력의 요체는 결국 정부와 시장의 실패를 예방하고 보완하는 민간 부문과 제3섹터의 자발적 참여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제3의 길에 해답이 있다.

개별국가의 독자적인 개발 프로젝트와 함께 국가간 프로젝트가 병행되어야만 저상장, 제로성장, 역성장 시대의 국부를 키우고 역내 평화와 공동번영을 달성할 수 있음는 이미 유럽의 에어버스, GSM 등의 사례에서 증명되었다.

세계화 시대에서 생명력을 지닌 지역경제권의 형성을 위해서는 국책사업뿐만 아니라 국제협력 프로젝트와 같은 다층적, 수평적 연계가 긴요하다. 개별 프로젝트와 이벤트를 넘어서 지역경제협력은 금융과 인적자원, 그리고 교역대상자들의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그만큼 금융, 물류, 자원 등에 특화된 인력을 키워내고 그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충분히 씨를 뿌리고 추수를 기다리는 인내가 동아시아 경제협력의 요체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한·중·일의 반동적인 수구세력이 아니라 평화를 애허하는 많은 젊은 인력들이 참여하고 성장해야 한다.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 Community) 형성과 베세토튜브 프로젝트는 국가와 정부의 리더십으로는 실패가 명약관화한 사안이다. 현재의 국가이기주의와 민족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이고, 백년하청(百年河淸) 더 나아가 천년하청(千年河淸)의 과업이다.

동아시아공동체 혹은 아중해공동체(亞中海共同體)와 베세토튜브는 북유럽의 한자동맹의 역사를 반추하여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ベセト同盟, Beseto League)의 결성을 통해 추진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국가이기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운 학계, 시민사회와 같은 제3섹터에서 담론을 형성하는 한편, 정치·외교·안보 문제 등 국가간 경성 갈등구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지방정부와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국가와 정부는 후원하고 지원하거나 적어도 방해하지 않는 굿 거버넌스(協治/共治)가 긴요하다.

중국의 베이징(北京)시 정부, 한국의 서울(首尔)시 정부, 일본의 도쿄(东京)도 정부의 3각 동맹을 주축으로 경과노선에 있는 텐진시, 인천시, 경기도, 강원도, 이시카와, 기후, 나가노, 야마나시현 정부가 참여하는 베세토동맹(北首东同盟) 체제로 출발하여 점차 참여도시를 확대하여 아중해동맹(亞中海同盟)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한·중·일 3국이 국가주의·민족주의에 매몰되어 아시아 국가간 갈등을 증폭하고 분쟁을 지속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는 서방진영의 걸기대(乞期待)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는 것이다.

아시아의 중핵 국가인 한중일 3국은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에서 시작하여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를 한중일 3국의 주도로 완성하여야 한다. 최첨단의 기술력과 함께 막대한 외환보유액 등 자금력도 충분하다. 단지 고질적이고 빈약한 글로벌 리더십이 문제일 뿐이다.

22세기 생태문명 사회를 살아갈 사해동포(四海同胞, Cosmopolitan)들이 함께 상생(相生)하고 공영(共榮)하는 것만이 산업혁명 이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식민지 수탈과 자원약탈에 이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후발국에 대한 보호무역, 기축통화의 지배력 남용, 반복되는 환율전쟁으로 근린궁핍화 전략을 정당화하는 서구 근대문명의 모순을 극복하고 성실성, 예의와 공손, 공동체에 대한 헌신 등 참된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를 증명하는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유사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인 ‘아시아 패러독스’를 스스로 극복하여 한다. 베세토튜브(北首东管,  ベセトチューブ, besetotube)를 기반으로 아시아튜브(ASEAN), 태평양튜브(NAFTA), 북극해튜브(EU)로 연장되는 범구관도(汎球管道, Global Tube)를 완성하는 과업이야말로 서구 근대를 초극(超克)하여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를 열고 생태문명(生態文明/生态文明, Ecological Civilization)을 꽃피우는 제3의 길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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