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세기 대한민국은 탈아입구(脫亞入球)의 제3의 길로 가야 한다.

  1.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
  2. 현재 진행형인 한반도 주변 패권경쟁
  3. 지정학과 21/22세기 외교전략.
  4. 일본의 ‘탈구입아/탈미입아’의 허구성
  5. 한반도 탈아입구(脫亞入球)와 베세토튜브

  1.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

현대 일본 극우사상의 뿌리는 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 꼽히는 개화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1834~1901)의 탈아입구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입지전적 인물이 된 그는 조선 말기 개화파를 부추겨 갑신정변을 일으킨 인물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개화기 계몽사상가, 교육가, 저술가로 일본의 최고액 지패인 1만엔권의 얼굴로 일본을 상징하는 그는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국민의 교사’로 떠받들어지는 인물이다. 1860년대부터 개항과 개화를 주장하고 자유주의, 공리주의적 가치관의 확립, 막부 철폐와 구습 타파, 부국강병론과 국가 중심의 평등론을 역설하였으며 개화기와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 지식인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쿠가와 막부 가문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메이지 유신을 세우는데 큰 영향을 미친 후쿠자와는 소년 시절 학문에 뜻을 둔다.

봉건적이고 계급적 질서의 근거로 비판 받았던 한학 등에 반발하여 나가사키와 오사카에서 네덜란드어학인 난학(蘭學) 공부에 몰두하였다.

20대 중반에 도쿄에 가서 당시 세계의 중심이 네덜란드가 아니라 영국 미국 등 영어권이라는 사실에 놀라 학문의 방향을 영학(英學)으로 바꾸었다. 

1858년 도쿄인 에도(江戶)에 네덜란드어 어학교인 난학숙(蘭學塾)을 열고, 1860년 네덜란드 선박 함장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건너간 뒤 막부의 구미지역 견외사절단으로 프랑스, 영국, 독일, 아프리카 등을 방문하고 귀국한 후 자신의 견문을 알리고 개항을 주장하였다.

이런 경험으로 일찍이 유럽과 미국의 학문 및 서구사상에 눈을 뜬 그는 정부 각료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활발한 언론 및 저술활동으로 당대의 여론과 국가의 나아갈 바를 결정한 경세가였다. 조선의 김옥균-박영효 같은 개화파는 그를 스승으로 삼았고 스스로 조선의 후쿠자와가 되기를 꿈꾼 춘원 이광수는 그를 ‘하늘이 일본을 축복하여 내린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그는 일본에서는 근대화의 선각자이지만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에서는 군국주의의 씨를 뿌려 민족의 고통을 안긴 ‘나쁜 이웃'(惡友)이다. 특히 대만에서 그는 ‘가장 증오할 민족의 적’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는 1885년 3월 16일 자신이 창간한 <시사신보(時事新報)>에 실은 ‘파괴는 건축의 시작이다’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탈아론'(脫亞論)을 주장했다.

“일본은 오늘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이웃 나라의 개명(開明)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우리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벗어나 우리의 운명을 서구의 문명국가와 함께 하는 것이 낫다. 중국 및 조선 역시 이웃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대우할 필요 없이 서양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대우하면 된다.

악우(惡友)를 소중히 하는 사람은 그 친구의 악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나쁜 친구와 친해져서 함께 악명을 뒤집어 쓸 이유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들을 멀리해야 한다.”

서양만이 문명의 총화라고 여기고 동양에 결별을 고했던 후쿠자와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한다) 노선은 뒤집어보면 ‘아시아 멸시관’이다. 그가 내건 ‘탈아입구’ 노선을 추종한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먼저 전근대를 탈피하는 데 성공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웃나라에는 무한한 고통과 희생을 강요했다.

이웃나라를 연대와 협력의 상대가 아니라 일본이 ‘문명화’시켜야 할 침략의 대상으로 여긴 ‘탈아입구’를 통한 그의 국가 발전전략은 결국 전쟁을 통해 국가의 번영을 추구하는 군국주의 노선으로 귀결된다. 계속된 침략과 영토 확장으로 식민지를 확장하여 국가 발전을 위한 시장과 자원을 확보하는 한편 타국으로부터 획득한 전쟁배상금으로 국부(國富)를 축적하는 영국발 산업혁명 이후의 전형적인 식민지 수탈정책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근대 일본을 상징하는 인물로 서구가 비(非)서구를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본 박물학적 차원을 답습한 일본의 오리엔탈리스트(동양 편견주의자)이다.  후쿠자와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복제해 인류를 문명(유럽)과 야만(아시아)으로 나누고, 대표적 야만국인 중국, 조선, 터키, 페르시아 등과 결별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서구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동양의 제국주의자’일 뿐이다.

이런 그의 아시아 멸시론은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1827~1877)와 더불어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征韓論)에서 극에 달한다. 특히 후쿠자와에게 조선은 하루빨리 청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일본의 속국으로 삼아 ‘개화’해야 할 대상이었다.

국제관계를 밀림의 약육강식 관계로 파악했기 때문에 강대국 일본이 약소국 조선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시 하였고 청일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으로 보았다. ‘근대화=서양숭배’로 인식한 일본판 오리엔탈리스트인 후쿠자와는 서양 제국주의가 비서구 사회에 했던 전철을 답습해, 다른 아시아 국가에 일본에 대한 굴종과 숭배, 일방적 수용을 강요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본 근대화의 선각자일지 몰라도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권 시민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은 아시아 멸시관으로 침략의 과거사를 자랑스러운 역사로 분칠하려는 일본의 국수적 우익세력을 낳은 군국주의의 원조일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탈아입구’ 노선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를 계기로 구라파(유럽)가 미국으로 바뀌는 탈아입미(脫亞入美)로 바뀌어 21세기에도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팽창주의적 국가발전전략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잠시 정지되었으나 동서 냉전기에 다시 부활한다. 메이지 유신이후 수십 년 동안 서양 문물을 추종하고 모방해 창조했던 모든 것들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전후 일본은 동서 냉전체제에서 비롯된 이웃나라의 불행(한국전쟁)과 미국의 우산 속에서 경제를 부흥하고 마침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처럼 단기간에 국가 재건이 가능했던 이유는 메이지유신 이래 100여년 넘게 유지해 온 일본의 국가전략이 변함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탈아입구론’에서 여실하게 보여주듯이 일본은 아시아의 구성원이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영일동맹, 미일동맹 등으로 서양화의 길을 선택하였다.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시아를 벗어나고자 했던 뒤틀린 욕망 때문에 일본은 아시아에 대한 폭력적인 지배를 정당화했고 자신이 그토록 닮고자 했던 서양을 상대로 한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 뿌리깊게 남아있어 기회만 주어지면 현실문제로 비화된다. 과거의 잘못을 진솔하게 성찰하는 독일과는 다르게 패전을 부인하고 있으며 북한 핵문제를 지렛대삼아 군사대국화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뒤얽힌 관계는 각국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양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2차세계대전 후 미국은 독일과 달리 일본을 분할상태로 만들지 않고 천황제 유지라는 ‘국체호지’를 허락하는 한편 극히 제한된 수의 전범만 처결하는 아량을 베풀어 일본 스스로 미국에 대한 종속구조를 영속화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대해서는 패배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자기비판은 찾아볼 수 없고 사죄는 형식적이다.

‘나쁜 친구(惡友)’ 중국·조선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아시아를 벗어나자고 주장했던 19세기 말 일본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입구론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일본 우익의 뿌리로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동양인들이 백인들에 맞서 단합해야 한다면서 대동아 공영권을 외쳤다.

그러나 대동아 공영권은 구호일뿐 그 본질은 아시아를 유럽 열강으로부터 빼앗아 일본의 식민지로 삼자는 것이다. 한국 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 동남아 진출은 그 논리적 귀결이다. 일본의 퇴행적 역사관과 유럽과 미국을 추종하는 종속적인 대외관계는 변함이 없다.

1만엔 권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초상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아시아의 일원이면서 아시아를 애써 외면하고 멸시하는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 spiritual victory)을 가지는 한 일본은 주변국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며 아무리 경제력이 커져도 동아시아 지역과 국제사회의 리더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의 일원으로 한국·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본은 과거사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보다는 과거에 대한 인도적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거론되는 독일의 역사청산 사례는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임을 알아야 한다.

 

  1. 현재 진행형인 한반도 주변 패권경쟁

21세기 국제질서는 미중 양강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한일관계 또한 과거의 미국 중심의 수동적 관계에서 벗어나 신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귀로에 서 있다. 지리적 근접성, 좋든 싫든 역사의 공유, 문화적 유사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은 정치 민주화와 자유주의를 꾸준히 발전시켜 왔으며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국가 주도의 제조업 중심으로 수출에 집중하여 성장해 온 것도 유사하다. 또한 한류(韓流)와 일류(日流) 및 양국 시민사회 간 교류의 폭발적 증가는 국익을 넘어선 보편적 규범과 가치의 공유 기반을 넓혀 가고 있다.

그러나 수구적이고 반동적인 정치체제로 동아시아공동체를 향한 핵심 파트너십은 다음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탈구입아(脫歐入亞)’ 또는 ‘탈미입아(脫美入亞)’는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빗댄 말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탈아입구(脫亞入歐)한 일본이 다시 아시아로 회귀하는 탈구입아(脫歐入亞)로 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하겠다는 일본 정치권의 구상은 그야말로 혁명 수준의 이야기로 그 배경은 역시 중국의 부상에 있다.

일본은 중국의 패권확대를 견제하기 위하여 아시아 중소국가와 손 잡을 아시아공동체는 일본의 과거사 직시-사죄-청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본 국민은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전개와 더불어 플라자 합의 이후 거품붕괴와 장기불황의 그늘을 탈피하기 위해 2009년 9월 전후 54년간의 자민당 1당 독주를 끝내는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반영한 민주당 내각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정책구상을 내놓았다. 그간의 ‘협력’이나 ‘연대’와 같은 언어적 수사에서 탈피하여 ‘공동체’라는 표현이 처음 나온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탈아입구(脫亞入歐)한 일본이 아시아로 회귀하는 탈구입아(脫歐入亞)와 `탈미입아(脫美入亞)를 주창하던 일본 민주당은 오키나와현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문제, 소비세 인상,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미흡한 대처 등으로 총선에서 참패한다.

불과 3년만에 아베 신조의 자민당에 정권을 반납함으로써 일본 조야의 탈구입아(脫歐入亞)와 `탈미입아(脫美入亞)는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잠시나마 종속적인 대미관계를 탈피하여 ‘대등한’ 미-일 관계 추구와 아시아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는 균형외교를 추진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최근 미국의 사드배치와 중국의 한국에 대한 보복, 북한의 핵미사일 등으로 미중 패권 경쟁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과거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된 패권 경쟁 역사의 본질적 구조를 제대로 분석하고 오늘날의 현실에 적합한 현실적 외교 전략과 국가 경영전략을 재검토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이 또다시 지정학적 위험에 빠지지 않고 동북아 균형자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전략을 재검토하여야 한다. 지난 2천 년간 동아시아의 세계사는 패권의 역사였고 한민족의 민족사는 패권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었다.

서양에서는 로마제국이 해체된 뒤 1천여 년간 비슷한 크기의 봉건영주들이 이합집산하였으며 17세기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3백 년간 비슷한 크기의 국민국가들이 국가주권을 확보하고 치열하게 서로 경쟁한 결과 세계1,2차 세계대전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 세계는 춘추전국시대, 남북조의 분열시대를 제외하고는 2천 년의 역사가 대부분 단일패권에 의해 전개되었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부딪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이 두 세력들이 패권경쟁을 벌여온 곳이다.

2천 년간 동아시아의 패권국 역할을 하며 주변국들을 자국 중심의 중화체제 속에서 인식해온 중국은 대표적인 대륙세력이다. 이에 반해, 대륙과 분리된 지리적 여건에서 중화체제에 대응하는 자국만의 독특한 봉건체제를 만들어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를 꿈꾸었던 일본은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해양세력이다.

한반도는 전통적으로 대륙세력인 중국에 속해 있었지만, 해양세력인 일본은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해 한반도를 교두보로 삼고자 했으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한반도는 수세기 동안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으로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 패권국들의 격전지가 되었다.

4백전 전의 임진왜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임진왜란과 한일병탄이다. 중국 또한 한반도에서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내정에 계속 간섭하고 때로는 전쟁도 불사했다. 여기에 19세기는 영국이, 20세기는 미국이 일본의 동맹으로 등장해 러시아와 중국의 대륙세력의 확장을 견제해 왔다. 특히 20세기 새로운 패권국 미국은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를 통해 전 세계에 자국의 힘을 행사해왔다. 

4백 년 전의 임진왜란, 1백 년 전의 한일병탄, 그리고 50년 전의 한국전쟁 등 지난 2천 년 동안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은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들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의 역사는 흥망의 부침을 겪었으며, 앞으로도 이 두 세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1945년 대한민국은 스스로 자주독립하지 못한 결과 동서냉전의 대리전이었던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긴 안목으로 보면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가는 길목을 빌려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임진왜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1876년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으로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북핵 위기로 인한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정명가도(征明假道)  임진왜란의 연장선에서 전개되고 있는 동아시아 국제전쟁의 여명(黎明, Dawn)이다. 지난 2천 년간 반복되어 온 지나간 역사를 통해 흥망의 역사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발견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외교정책을 펼쳐야 하며 단순히 어느 한 세력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 세력 간의 역학구도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잘 활용함으로써 한반도의 생존방식을 찾아야 한다. 또한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확고한 중심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해양·대륙 세력의 대립으로 또다시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해양 세력이 대륙세력과 대립각을 이뤄 충돌하면 분단은 고착화되고 또다시 한반도가 충돌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있다. 동아시아의 격류는 중국의 부상과 이에 맞선 일본의 군사대국화,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라는 동아시아 기본 질서의 뒤틀림에서 비롯된다. 미·일 동맹과 중국의 대립이라는 갈등 축이 부각되면서 한국은 외교적 딜레마에 빠졌다.

북한 핵 문제와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 북한 주민들의 고통 해결 등은 우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 과제들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면 미국과 중국이 연결되고 일본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엄중한 도전 과제이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공간을 확대할 열쇠이다.

일본의 경우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로 ‘한반도 유사시’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북한 핵이나 미사일, 그리고 체제 붕괴 시 난민 문제 등을 자기들의 무장 강화 이유로 들먹인다. 동북아 질서의 기본 축을 흔들고 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한·일 관계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좀 더 큰 시각에서 상황을 살펴야 한다.

일본은 중·일 관계, 미·일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한·일 관계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아시아의 맹주가 중국으로 교체되는 과정을 생생히 겪었고 미국과 중국의 G2체제로 자신들이 변방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일본의 수구적 우파는 이러한 상황 전개에 몸서리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가 정립되면 일본이 왜소화될 수 있다는 ‘집단적 히스테리’를 갖고 있으며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G3가 되어야 한다는 게 일본의 입장일 것이다.

일본의 G3 추구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외교적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자신들의 우산 안에 머물러 있을 정도만큼의 군사화를 원하고 있다. 중동 등 다른 곳에서 힘을 쏟느라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주는 정도만 원하지 일본이 독자적인 기둥을 아시아에 세우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비록 중국이 14억 인구에 맞는 강대국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지만 국제사회에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외교행위가 아니라 일종의 군사행위였다. 영토문제가 불거지면 어느 나라든 군부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이것이 민족주의와 결합하면 위험해진다.

미국 역시 딜레마인 것은 마찬가지로 현재의 상황은 미국에도 아시아 외교의 큰 도전이고 시험대이다. 미국이 일본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중국이 군사력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미국에도 군사력 강화 필요성을 압박하는 부메랑으로 돌아 오데 될 것이다.

미국은 현상유지를 원하는 태평양에서 범고래들이 등장하는 걸 원치 않는다. 일본, 미국, 중국 모두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은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관리하여야만 할 것이다. 현재 가장 우려할 만한 상황 전개는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의 고삐가 풀리는 것이다.

과거 임진왜란이나 청일전쟁 때처럼 일본의 야심이 동북아의 질서를 결정적으로 흔들기에는 동아시아가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한·중·일 간 힘의 관계가 다르고 지구가 좁아졌지만 일본발 군비경쟁 가능성은 크다.

만약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진 일본이 군비경쟁에 나서면 2위 경제력을 가진 중국의 군비 확장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현재 중국은 1년에 1000억달러 이상, 일본은 500억달러의 국방예산을 쓰고 있으며 한국도 이들을 쫓아가느라 300억달러 이상을 쓰는데 이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면 우리로서는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다.

군비경쟁이 격화되면 역사적·지정학적 경험으로 봤을 때 한반도가 위험해 진다. 군비경쟁이 촉발돼 동아시아에서 외교 대신 군사논리가 득세하게 놔두면 안되며 군산복합체와 한 몸인 군부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 동아시아 전체가 위험해 질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외교의 시대가 부활되어야 한다.

미·일 동맹이라는 해양 세력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대륙 세력의 맞대결 구도 역시 외교를 통해 희석시킬 필요가 있다. 중·러·북이라는 대륙 세력과 맞부딪칠 경우 한반도 분단 상황은 큰 틀에서 고착되며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한반도 분단의 원인 제공자인 일본이 군사력을 부활시키며 미국의 용인 하에 한반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외교적 해법은 해양·대륙 세력의 충돌,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 한반도를 둘러싼 다자간 안보대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서로 경제적 의존도는 커지지만 정치 군사적 갈등 역시 커가는 아시아패러독스에 빠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외교와 경제협력 공간을 확대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 문제가 갈등 요소로 치달으면 1, 2차 대전 때의 유럽처럼 역내 국가들이 다 죽는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종의 공생관계, 상호의존 관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토처럼 집단 안보체제 수준은 아니더라도 갈등이 생기면 밖에서 싸우지 말고 다자간 대화 틀 안에서 얘기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중국이 해양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한국, 일본, 필리핀, 호주 등 남태평양 쪽의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중국도 이들 나라와 집단적으로 맞서서는 견디기 힘들며 동아시아 다자간 대화의 틀을 만들어 역내의 긴장과 대결의 에너지를 감소시키는 외교정책과 주도적 실천이 한국이 나아갈 길이다.

개혁개방을 내걸고 대외적으로는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길러나간다는 도광양회 (韜光養晦)를 내걸고 국력 증대에 매진하던 중국은 30년이 지난 오늘날 G2 대국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자 이제 화해세계를 주창하면서도 필요한 일은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간다는 유소작위 (有所作爲)를 노골적으로 국제정치 사회에 실천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개혁개방이 가지고 온 급격한 경제성장의 물결을 타고 대중화(大中華) 제국의 부흥에 대한 열망을 국가 차원에서 형상화하는 문화정치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0 상하이 엑스포를 유치하면서 중국 정부는 역사상 유례없는 자신감과 거침없는 대국적 행보를 하기 시작하였다.

중화제국의 부활과 미국의 사드 배치와 같이 세계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노력,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패권 경쟁 속에서 파멸적 악순환에 빠진 남북관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한중관계의 파탄, 한일관계의 파국, 풍전등화와 같은 심화된 국제체제의 갈등 관계 속에서 동북아 균형자로 자리 잡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무엇일까?

 

  1. 지정학과 21/22세기 외교전략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은 지리(인문·자연)가 국제정치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국제정치 행위를 지리적 변인을 통해 이해,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목적이 두는 외교정책 연구 방법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리적 변인은 연구 대상이 되는 지역의 지역 연구, 기후, 지형, 인구 구조, 천연자원, 응용과학 등을 포함하게 된다.

지정학에서는 지리적 공간에 있어서 정치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구체적으로는 외교사와 영해, 영토 사이의 상호관계를 조망한다. 학문적으로 지정학은 지리와 정치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역사 및 사회과학적 분석을 주로 한다.

학문외적으로는 정부 부처나 싱크탱크 등의 비영리단체와 중개업체, 컨설팅업체 등의 영리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에서 지정학적 예측을 하며 연구 주제는 지역, 공간, 지리적 요소에 따른 국제정치 주체들의 이익 관계 등이 포함된다.

21세기는 세계화의 시대로 경제적으로 세계가 통합되고 기술발전으로 소통이 활발해져 지구촌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국가들 간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경쟁과 모략이 난무하고 세계 도처에서 전쟁과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기원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나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통용되었을 법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의 원리가 오늘날 21세기 국가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

한반도는 독특하게 주변 4국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강대국들로서 경제력 기준 세계 1, 2, 3위 국가들(미, 중, 일), 군사력 기준 세계 1, 2, 3위 국가들(미, 러, 중)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 때문에 한반도와 주변 국가들 간에 벌어지고 있는 국제정치 상황은 전 세계 다른 어느 지역에서보다도 갈등 양상이 심화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위치라는 지정학적(地政學的) 요인 때문이다.

4국 중 미국, 일본은 해양세력이고 중국, 러시아는 대륙세력으로 국제정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은 끊임없이 경쟁해왔다. 과거 역사에서 보듯이 19세기 내내 해양세력 영국과 대륙세력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자 냉전을 총칭하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Турниры теней)이 전개되었고 지금도 한반도는 그 후유증으로 분단이라는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조정을 향해 “명을 치러 갈 테니 길을 비켜 달라(征明假道)”고 요구했는데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며 이러한 딜레마는 300여 년 후에도 반복되어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도 해양세력 일본과 대륙세력인 청나라와 러시아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치른 전쟁이었다.

1945년 일제에서 해방되던 당시에도 또 다시 지정학적 딜레마가 반복되어 그 해 8월 한반도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 내고 무장해제시키는 방식에 대해 해양세력 미국과 대륙세력 소련이 타협의 산물로 38선을 만들어낸 결과 한국전쟁의 참화와 지속된 분단 상태를 72년이 지난 지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첨예한 남북간 군사적 긴장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안타까운 상황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주변 4대강국의 압박 속에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국제관계 전략으로 두 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세계 패권국이자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 중심, 즉 반대륙·친해양 전략으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또 하나는 균형외교 전략으로 세계 패권국인 미국과 미일동맹의 일본, 아시아의 강대국인 중국, 준동맹 관계를 형성한 중·러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는 것이다. 이 두 전략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외교안보와 함께 한반도의 통일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의 역학구도가 달라진다. 

현재와 미래의 아시아에서 강대화된 ‘중화제국’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크게 보아 아시아태평양 차원에서 미국의 군사력강화(Pivot to Asia)와 미일동맹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때 비로소 ‘현상을 변경’하고자 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패권안정’을 유지하는 ‘재균형’을 이룰 수 있다.

현재 미국의 패권력과 일본의 종합국력 그리고 한국의 국력을 염두에 둘 때, 미일동맹과 현재의 한미동맹은 중국에 균형을 맞추기에 충분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결합되더라도 일본의 군사력이 강화되면 미일동맹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중·러의 준동맹에 대해 동아시아에서 현재의 ‘패권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균형력’을 가지게 된다. 여기서 세계 10위권의 경제·군사력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충인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역사는 반복되는 가?

역사는 반복되는가?(History repeats itself?) 이미 역사가 보여준 그 인과를 다시 반복하지 말 것 경고하는 이 말은 같은 원인에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는 논리를 역사에 적용한 것이다. 주로 왕조사관에 근거하면 중국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에서 정치적 문란으로 혼란에 빠진 와중에 농민 봉기가 일어나고 새로운 지도자가 집권한다 사실에 비추어 보면 확실히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역사와 경험이 가르쳐주는 것은, 민족과 정부가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우거나, 원칙을 이끌어내고 그에 따라 행동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역사의 철학에 관한 강연 중 서론, 1832년) <Was die Erfahrung aber und die Geschichte lehren, ist dieses, daß Völker und Regierungen niemals etwas aus der Geschichte gelernt und nach Lehren, die aus derselben zu ziehen gewesen wären, gehandelt haben.>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헤겔은 옳았다. <Hegel was right when he said that we learn from history that man can never learn anything from history.>

역사는 되풀이되는데 이를 항상 예측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If history repeats itself, and the unexpected always happens, how incapable must Man be of learning from experience.>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 – 마크 트웨인

 

  1. 일본의 ‘탈구입아/탈미입아’의 허구성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는 이토 히로부미의 고향인 야마구치현(구 조슈 번)출신으로 1936년에 만주국 정부의 산업부 차관이 되어 산업계를 지배하다가 1940년 귀국하여 1941년 도조 히데키 내각의 상공대신에 취임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도조 내각의 관료로 A급 전범으로 3년 복역하였다.

정계에 복귀하여 자민당 결성의 중책을 맡았고 그 후 총리를 역임하였고 퇴임 후 지금까지 일본 보수세력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전후 대표적 친미파로 분류된다. 쇼와의 요괴(昭和の妖怪)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조부이다.

아베 총리 등 일본의 극우파는 평화헌법이 일본 고유의 정신을 좀먹고 있다고 생각하며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평화헌법 개정 추진과, ‘일본이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라 전쟁을 끝낸 것이다’ 라고 하여 패전을 내면화하고 있다.

천황은 ‘살아있는 신’의 현교(顯敎)로 삼아 다테마에(建前)로 신민(臣民)을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통치하고 국가역량에 동원하고 있으며, 밀교(密敎)는 혼네(本音)로 군부나 내각 등의 권력자 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아베정권은 일본 신민(臣民)에게 현교로 내걸었던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다’는 심리적 각인의 봉인이 풀려 나타나는 혼네인 거만한 내셔널리즘의 부활을 막을 능력이 없다. 왜냐면 이들이야말로 전쟁책임을 회피한 전범들의 후손이자 후계자로 전후 체제의 현교적 영역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정통성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패배를 모호하게 만드는 종전(終戰)으로 호도하여 패전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일본과 주변국에 실질적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아베 총리가 ‘전후체제의 탈각(脫却)’을 부르짖는 것은 ‘전후 민주주의 규칙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다테마에’를 벗고, ‘대일본제국의 긍정=패전의 부인’이라는 욕망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혼네’로 일본 보수우익의 역사인식에 깊게 뿌리 박힌 근간이다.

전후 미국은 독일과 달리 일본을 분할상태로 만들지 않고 천황제 유지라는 ‘국체호지’를 허락하는 한편 극히 제한된 수의 전범만 처결하는 아량을 베풀어 일본 스스로 미국에 종속되게 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 종속구조를 영속화하였다.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대해서는 패배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반성이나 자기비판은 찾아볼 수 없고 사죄는 형식적이다.

일본이 종속구조의 대미관계에서 태평양전쟁 패전의 결말을 무제한 수용하는 다테마에(建前) 이면의 혼네(本音)는 아시아 각국에게 패전을 부인하며 전쟁배상책임을 부정하고 모호한 경제협력을 고집하는 전후 일본의 아시아 정책은 지극히 형용모순의 외교정책이다.

‘나쁜 친구(惡友)’ 중국·조선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아시아를 벗어나자고 주장했던 19세기 말 일본 근대화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입구론은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오늘날 일본 우익의 뿌리로 자리 잡는다.

욱일승천하던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동양인들이 백인들에 맞서 단합해야 한다면서 대동아 공영권을 외쳤으나 대동아 공영권은 구호일뿐 그 본질은 아시아를 유럽 열강으로부터 빼앗아 일본의 식민지로 삼자는 것이다. 한국 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 동남아 진출은 그 논리적 귀결이다.

‘전후 체제의 탈각’을 외치는 아베 신조 일본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보수 지배층은 전후에도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 깊이 굴복하는 한편, 패전 사실은 부인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패배를 부인하는 것은 미국의 지배에 대한 부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미 종속은 철저하게 지키는 한편 일본 국내의 신민(臣民)과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패전을 부인한다.

이 같은 ‘패배 부인’과 ‘대미 종속’은, 패배를 부인할수록 대미 종속이 심화되고 대미 종속이 심화될수록 패배를 부인하는 상호보완적 구조인 영속패전론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명백한 ‘패전’을 굳이 ‘종전’으로 바꿔 부르며, 자신들은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민당 정권이 주장한 탈구입아(脫歐入亞)와 하토야마 정부가 주창하였던 ‘탈미입아'(脫美入亞, 미국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들어감)는 대등한 미-일 관계와 균형외교로 아시아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정책은 애당초 영속적으로 대미종속 관계에 있는 일본에게는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조어도(钓鱼岛),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북방영토(구나시리, 에토호루, 시코탄, 하보마이), 독도 문제는 쇼와 천황폐하가 옥음방송(玉音放送)으로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을 수락함으로써 정리되었으며, 청일전쟁 이후 획득한 영토를 제외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원칙을 파기하는 것이다.

일억옥쇄(一億玉碎) 본토결전의 파멸 위기에서 일본을 구한 천황폐하의 어지(御旨)와 국체호지(國體護持) 및 황조황종(皇朝皇宗)을 부인하는 일부 수구적 극우 정치인은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일본은 영토문제를 ‘해결 아닌 해결(센카쿠 열도)’로 남겨놓는 것도 실패하고 제3자 조정해결 (북방영토와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도 불가능하다. 일본에게 남겨진 해결방법은 영토문제의 최종심급 즉 ‘전쟁’ 밖에 없다. 그래서 아시아 각국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으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인 일본을 경계하는 것이다.

일본의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화는 전전 군국주의의 부활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오래된 ‘무'(武)에 대한 관성으로 내부적으로는 문치의 경험이 일천하여 지식인과 민중의 권력 통제가 미약하고, 외부적으로는 이웃들과의 다자 외교에 미숙하다.

해양세력의 환상적인 궁합인 카우보이와 사무라이의 의기투합으로 나타날 본격적인 대륙세력 봉쇄의 후 폭풍은 한반도에 또다시 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것이다.

 

  1. 한반도 탈아입구(脫亞入球)와 베세토튜브

일본이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는 ‘명예 백인국가’로 행세함으로써 긍지와 국가 정체성을 유지해 온 일본판 오리엔탈리즘이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天皇)을 존숭하고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의 재무장은 북한 핵문제와 맞물려 또 다른 정명가도(征明假道)의 핑계거리가 될 수 있다.

중화민족의 문명이 세계 중심에 위치하는 위대한 문명으로 나머지는 오랑캐로 낮잡아 보는 중화사상 (華夷思想), 중화민족주의와 함께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친성혜용(親誠惠容)을 의심하게 하는 화평굴기(和平崛起), 주동작위(主動作爲), 돌돌핍인(咄咄逼人)이라는 사자성어의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외교를 펼치는 중국의 외교정책은 또 다른 패권주의로 중국 위협론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특별한’ 국가이며 ‘미국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접근과 미국적 가치를 해외에 강요하는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는 세계 패권국인 미국의 일방적 행보와 일본의 평화헌법 폐기 및 중화민족주의의 질주는 아시아 역내에 끝없는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국가들은 국가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군비를 더욱 확장하게 될 것이다. 국가간 적대적 상호의존의 고도화와 군비경쟁의 악순환이 심화되고, 핵도미노 현상에 빠져 동아시아는 3차 대전의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변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탈아(脫亞)하여 지구의 중심으로 입구(入球)하는 제3의 길로 21~22세기의 국가 운명을 개척하여야 한다.

탈아입구(脫亞入球)로 한반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자…

아시아 지역에서 2차 대전 이상의 초거대 규모의 전쟁 이후에 가야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면 이는 인류의 멸망을 초래하는 비극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과 북조선이 아시아 대륙에서 탈피(脫亞)하여 중국과 일본에서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로 영토를 옮길 수 있다면 이러한 비극은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판구조 이론상 수 억년이 흘러도 불가능하다.

한반도 주변 미중일러 4대 강국 모두 무책임하게 기후변화, 지구촌 기아문제 해결, 국제사회의 바람직한 미래 설계 등 강대국에게 부여된 본연의 의무는 외면하고 있다.

자신들의 과오와 정책실패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제위기 국면에서 너죽고 나 살자는 ‘양적완화’란 이름의 무제한 통화공급과 환율전쟁은 근린 궁핍화전략의 통화정책이다.

한정된 석유자원 쟁탈과 띠끌만한 섬을 두고 영토분쟁을 불사하며 눈앞의 국익에만 집착하는 어른스럽지 않는 소인배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대국들의 무한 국가 이기주의와 민족주의가 발흥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은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서는 한반도 이해 당사국인 미중일러를 설득하고 견인하여 베세토튜브·아시아튜브·태평양튜브·북극해 튜브로 확장되는 글로벌튜브망 건설을 국제사회 공동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그 길은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탈피하여 지구의 중심에 서는 탈아입구(脫亞立球)하는 제3의 길로 한반도 주변 4대 강국간 평화와 국익과 국부를 키우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개발, 온실가스 배출 감소, 화석연료 이후의 글로벌 교통망 구축, 후기 산업사회의 일자리 창출 등 그 효과는 인터넷에 버금가는 경제효과와 함께 세계평화 체제와 지구촌의 일일 생활권화 등 다방면의 후방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세종대왕과 베세토 튜브

화폐 초상인물은 국가의 정체성과 국격을 나타내며 국민의 정신세계와 역사 및 국가가 지향하는 국책(國策)을 표상한다. 미국은 국부(國父) 조지 워싱턴과 흑인해방의 주역인 에이브러햄 링컨, 중국은 국부인 마오쩌뚱(毛澤東), 인도는 ‘위대한 영혼’ 간디, 베트남은 ‘민중의 호 아저씨’ 호치민(胡志明), 예술의 나라 프랑스는 화가 세잔, 독일은 수학자 가우스,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상징인물로 내세운다.

대한민국 1만원 권에는 전면에 세종대왕 초상과 최초의 순수 한글 작품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제2장) 및 조선시대 임금을 상징하는 병풍그림으로 음양오행을 뜻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를 비롯해 적송과 폭포가 그려진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천체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고 시계 역할을 하던 천체 관측기구인 혼천의(渾天儀)와 하늘의 별자리 모습(天象)을 지상의 분야(分野)와 연관해서 하나의 도상으로 표현한 대표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당시 세계 최고수준이던 조선시대 천문. 과학 기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한반도는 수 천년 동안 흉노(匈奴), 선비(鮮卑), 거란(契丹), 몽골(蒙古), 여진(女眞) 등의 북방민족과 중국/러시아의 대륙세력, 일본과 영국/미국 등 해양세력에 의한 패권다툼으로 격전지가 되어 왔다.

기존 패권국에 맞서 자기중심의 새 질서를 만들려는 신흥 도전국 간 힘겨루기 역사가 바로 피비린내 나는 세계사이다. 

힘을 길러 패권국으로 등극하지 못하면 패권국간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패권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 선진 문화를 꽃피웠던 역사가 있다.

바로 세종시대로 세종대왕은 중화체제에 매몰되지도, 조선만을 고집하지도 않으며 인류 최후의 알파벳인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등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문명체제를 구축했다. 대왕은 지극한 애민정신과 민본사상에 기초하여 조선시대 르네상스를 이루었다.

그 시대 경제활동의 근간이었는 농업진흥을 위한 <농사직설>을 편찬하였고 약학, 천문학, 측우기, 해시계 등 과학기술 발전도 최첨단을 달려 중국과 아랍세계를 능가하는 수준이 었다. 1983년 편찬된 일본의 과학기술사전에 실린 15세기 전반기 인류 과학업적의 절반이 조선의 것이라는 기록은 이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단군조선 이래 민족사에 황금시대였다.

이제 아시아는 시장경제와 산업화의 결과로 약 14억의 중산층과 16억의 네티즌을 형성한 지역이다. 이러한 중산층과 네티즌이 동아시아의 시민사회, ‘시빌 아시아(Civil Asia)’로 뭉치면 군산복합체와 극우 정치인의 발호를 억제하여 국가주의를 조금 완화하고 시민주의가 강화되어 동아시아는 크게 안정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국민은 누구인가? 현실적으로 대륙의 일부이면서 해양의 뱅가드(vanguard)다. 일본이 아무리 막강해도 대륙의 교두보를 갖고 있는 한국과는 위상이 다르며 중국에게도 대한민국은 무시할 수 없는 작지만 강한 나라이다.한국은 미국에게도 그만큼 중요한 나라로 동맹국이다.

우리가 이런 위치를 활용하여 주변 4강을 설득하고 조율하면 미·일 해양세력과 중·러 대륙세력의 조정자로서 완충역할도 가능하고, 종국에는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어 나가는 주역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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