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적 가치와 아중해 문명론 그리고 베세토튜브

  1. 리콴유(李光耀)의 ‘아시아적 가치론’
  2. 아시아적 가치와 오리엔탈리즘
  3. 왜 지금 ‘아시아적 가치’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는가
  4. 아중해(亞中海) 문명론과 베세토튜브

[요약] 지난 1991년 냉전이 종식된 후 서구 특히 미국이 전 세계에 자유민주주의와 1991인권을 수출하였다 당시 이 같은 일방적 흐름에 대항하여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뚜렷이 천명하였다

동양과 서양 간 문화의 차이를 고려할 때 아시아적 가치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위에 두는 것과 가족에 대한 헌신, 교육에 대한 몰입, 합의적 통치 질서와 안정 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경제발전을 다룬 중요한 논쟁 중 하나는 이른바 아시아적 방식 이란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된 것이었다

그러나 1997년에 발발한 아시아 금융위기가 아시아적 가치의 지지자들의 주장에 도전하였고 그 결과 아시아적 가치를 긍정하는 입장은 약화되었으나 근래 2008년 미국발 전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예외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지속적인 경제 회복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학자들 및 언론인들로 하여금 아시아적 가치 담론에 다시금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

세계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상징하듯 이른바 아시아 세기 가 도래한 현 시점에서 왜 아시아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만 하는지 그 이유와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주요 저널과 신문 등을 중심으로 아시아적 담론이 어떻게 다루어 졌는지 그 위상 변화를 파악하여 아시아적 가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조망하고자 한다.


1990년대에 싱가포르의 리콴유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는 미국 등 서방의 압력에 대항해서 ‘아시아적 가치’를 제창하였으나 1997~1998년 금융공황의 직격탄을 맞으며 이 주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 주장에 타당성이 전혀 없어서가 아니라 이 조그만 나라들에게는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에 대항할 힘이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제 중국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국식 민주주의’ 주장은 기존 세계체제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저항일 수 있다.

아시아적 가치(亞洲的 價値, Asian values)는 예의, 공손함, 성실성, 공동체에 대한 헌신, 국가에 대한 충성의 가치를 아시아의 고유의 가치로 평가하여 이러한 철학과 가치가 아시아의 경제 발전에 근간이 되었다는 개념이다.

이는 막스 베버의 청교도 윤리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아시아의 경제적 발전을 설명하는 데에도 이용되고 있다. 즉,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가 서구에서 발전한 이유를 청교도 윤리에 따른 청렴성 및 근면함에 구하고 있다면 아시아의 경제적 발전은 아시아적 가치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일대의 외환위기로 인해 아시아적 가치의 효용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견해도 있어왔으며, 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개발독재(developmental dictatorship)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개념이라고 평가되기도 했다.

 

  1. 리콴유(李光耀)의 ‘아시아적 가치론’

‘아시아적 가치’라는 단어, 그리고 그 개념은 아시아인이 만들어 낸 개념이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을 비롯한 고속성장을 한 ‘아시아의 4마리의 용’이라 불린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보고 서구인들이 ‘상찬’의 차원에서 만든 것이다.

아시아 각 나라들이 어떻게 고속성장을 이뤄냈는가를 미국과 유럽의 대학들과 연구소들이 정리했다. 일본은 물론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개별 역사적 조건과 환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고속성장에 대해서는 일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대략적인 공통점은▲ 정치적 : 민주주의와 개인의 권리보다 질서와 안정이 중요 ▲ 경제적 : 수출주도형, 저임금 장시간 노동, 높은 저축률, 노사관계의 인위적 화합 ▲ 문화적 : 교육열, 근면·성실 강조, 사회적 권위와 복종 강조, 지나친 개인주의 배격을 거론하게 된다.

그러던 서구인들은 1980년대 후반, 일본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돌변하기 시작하였고 부정적인 시각이 확대되면서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전면화된다.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 전체에 대한 공격, 서구인들이 스스로 칭찬하던 ‘유교 자본주의’에 대한 무차별 공격인 것이다.

리처드 훌브룩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아시아적 가치에는 명확하지 않은 모호함, 연고 자본주의, 이중 규범, 부정·부패가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 했으며 세계 최고의 논픽션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는 1998년 5월 31일자 <뉴욕타임스 선데이 매거진>에 “한국 재벌은 거래하면 안 되는 최악의 기업이고, 대우 김우중 회장은 옛 소련 공산당의 늙은 말과 비슷한 존재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이러한 비판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던 동아시아의 지도자인 리콴유가 들고 일어났다. 리콴유는 1994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아시아적 가치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인터뷰를 했고 이는 ‘문화는 운명이다(Culture is Destiny)’라는 글로 정리되어 FA 봄호에 실렸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는 유교 문명권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리콴유는 서양의 잣대로 동양(유교 문명권)을 재단하지 말 것이며 또 동시에 자신들의 체제를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FA지는 리콴유의 ‘문화는 운명이다(Culture is Destiny)’를 1994년 봄 호에 게재하기 전에, 저 유명한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Clash of Civilization)’을 먼저 게재했다. 이후 FA지의 가을호와 겨울호에는 이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문이 실렸으며, 논쟁이 무르익을 즈음 리콴유의 주장이 나온 것이다.

결국 리콴유가 먼저 촉발했다고 알려지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 논쟁 자체는 아시아인에 의해 촉발된 것도 아니고 미국과 유럽인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논쟁이기는 하나 그 배경에는 미국적 패권주의의 영속화를 노리는 전략적 접근이 근본적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헌팅턴을 비롯한 미국의 백악관과 국무성이 의도한 것이 ‘문명충돌론’ → ‘아시아적 가치논쟁’ → ‘미국의 자기 예시적 패권실현’의 프로세스라고 한다면, 그리고 아시아적 가치논쟁이 완전히 끝맺기도 전에 9·11테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미국의 패권주의 실현의 단초로 작용했다면, ‘아시아적 가치논쟁’의 핵심이 무엇인가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 아시아적 가치와 오리엔탈리즘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궁극적으로 문명의 충돌이나 오리엔탈리즘과 동떨어진 별개의 논쟁이 아니다. ‘동양적인 것’에 해당하는 ‘오리엔탈리즘’이 근대화 과정에서 서양 지식인들에 의해 왜곡된 동양관을 의미하듯이 ‘아시아적 가치’란 말 역시 그 유래에 있어서 대동소이하다.

19세기 서양 지식인들의 동양에 대한 몰이해로 18세기 이전의 서양이 동양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서양 지식인들은 동양 문화의 진면목을 이해할 기회를 놓친다. 대표적으로 칼 마르크스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아시아적 생산 양식(Asian mode of production)’ 역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한 예들이다.

아시아적 생산 양식에 의하면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그 의식 구조가 원시적 자연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개체 의식이 발달한 사적 소유 의식이 결여돼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과 레닌은 모택동에게 상해와 같은 대도시를 공업 도시로 만들어 억지춘양으로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바꾸고 다음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1920년 초반 모택동은 소련의 이러한 아시아적 생산양식 이론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오지 농촌에서부터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하여 대장정을 결행하여 성공하였다.

오리엔탈리즘은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의 논리와 궤를 같이 한다. 정반합은 시간적 계속성과 연속성을 갖는다는 것이며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변증법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런 변증법이 독일의 나치 등장을 합리화시켰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게르만 민족만이 절대정신의 담지자라는 헤겔주의는 우리에게 준 악 영향이 막심하다. 이에 일본은 아시아의 한 성원이라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소위 탈아론(脫亞論)의 맹신에 사로잡히며 인류학자들은 일본의 유전인자가 서양인들과 같다는 것을 생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하였다. 

아시아적 모델과 유교

이와 관련해 서양의 허만 칸과 에즈라 포겔은 ‘아시아적 발전 모델’이 유교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유교적 가치 가운데 제왕적 지도력, 검약과 절제, 교육열, 협동과 근면, 가족적 인간 관계 등을 들었다.

이렇게 아시아에 주목하던 서양은 199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까지도 별 볼일 없는 상대로 여기고 있으며, ‘아시아의 기적은 끝났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서양의 학자들은 태도를 돌변해, 아시아적 가치의 가족적 경영 방식은 창의성과 유연성이 없는 가부장적 모델이며, 정실주의와 연고주의로 얼룩진 패거리주의라고 몰아붙였다. 이러한 견해가 오리엔탈리즘의 논리적 배경을 제공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유럽인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의 지도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감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전 싱가포르 수상 리콴유(李光耀)가 아시아의 기적은 끝나지 않았고 ‘아시아적 모델(Asian model)’은 유효하다며 강변하고 나섰다. 유럽 언론들이 아시아적 가치를 비판한 몇 가지 관점들과 리콴유가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반론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시아적 가치의 부정적인 요소들

유럽인들이 지적하는 아시아적 가치의 가장 부정적인 것은 아시인들의 독특한 정실주의에 입각한 ‘패거리주의(Cronyism)’이다. 크로니 자본주의, 크로니 정치, 크로니 학연주의에 따른 부패상이 아시아 사회의 가장 큰 병폐라고 보는 것이다. 학연·지연·혈연에 따라 다이아몬드보다 더 공고하게 결속되어 있는 아시아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는 권위주의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경제계·교육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내리고 있는 관료적 권위주의가 아시아적 가치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이다. 상호지급보증을 해주면서 선단식 경영을 해나가는 한국 재벌 경제는 마치 옛날 군주가 신하를 거느리고 행차하는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제럴드 시걸 소장은 1991년 12월 30일자 《파이낸셜 타임(Financial Times)》지 기고에서 이들 세 요소를 종합해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위기는 비합리적인 정치 제도 외에 패거리주의, 족벌주의, 학연주의, 비효율적인 금융 구조 때문이다” 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1970년대에는 그렇게도 부러워하던 아시아적 발전 모델이 지금은 가장 추잡한 것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아시아에 대한 구미 언론들의 이 같은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리콴유(李光耀)는 다음 몇 가지 논지를 들고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면서 강변하고 나왔다. 패거리주의란 “내 패냐 네 패냐가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가치판단의 기본 척도가 되면서 옳고 그름의 진실의 시비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따라서 부패한 크로니 정치가 국민 전체의 정신을 타락시키고 있으며, 나아가 환경을 파괴시키고 국가를 부도 사태로 몰고왔다.”

리콴유의 대반격과 아시아적 가치의 변호

먼저 아시아적 가치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하여 변호하기에 앞서 리콴유는 미국의 가치관에 대해 일침을 놓는다. 미국은 ‘정부(government)’가 비대해져 정부가 모든 구실을 다해주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다며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는 마약·교육·폭력을 꼽았다.

아시아 같으면 이들 문제를 모두 ‘가정(family)’이 도맡아서 해결하려고 할 터인데, 미국은 정부가 전권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리콴유는 마약 문제를 해결하려고 남의 나라(파나마)에 가서 대통령을 잡아오는 그런 무례한 짓을 할 수 있느냐 며 일침을 놓는다.

아시아인들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기초한 절약·근검·충·효 정신은 ‘가정에서 연장(in the extended family)’되어 국가까지 이어지는 가치관으로서, 아시아를 지켜주는 등대라고 했다. 리콴유는 서양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한마디로, 어떻게 1인 1표가 옳으냐 하는 것이다. 40∼60세 사이 유권자는 1인 2표를 행사하고, 60세 이상 40세 이하는 1인 1표만 행사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리콴유는 보고 있다.

《타임》과 독일의 《슈피겔》 그리고 《LA 타임스》에 실린 리콴유의 주장을 요약하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슈피겔》 지에서 리콴유는 “상호간 의문에 기초해 공동체의 질서를 추구하는 아시아의 유교적 전통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부정과 부패는 다만 제도상 보완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화야말로 어느 민족 국가의 운명과 같이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교 문화를 자기 철학의 운명처럼 애지중지 받아드린다. 그래서 그는 하버드 대학의 유교철학자 두에밍을 특별 초청해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심지어 자기의 손녀 이름을 ‘수제’라고 짓는다. 대학의 ‘수신제가’에서 온 말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시아적 가치는 경제 기적을 낳은 아시아인들의 근면하고 성실한 특질을 지칭하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통했다. 심지어 일부 서구 언론은 80년대 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부러워한 나머지 ‘아시아적 가치가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갈 주도적인 가치’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지자 ‘아시아적 가치’는 하루아침에 위기를 부른 원흉으로 전락했다. 가족과 조직에 대한 맹목적인 순응을 강조하는 아시아적 가치는 권위주의 정부를 정당화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함께 아시아 각국에 만연한 천박한 연고주의와 망국적인 족벌주의, 부패한 관료주의를 키우는 온상으로 지목됐다.

아시아적 가치가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이뤘다지만 실은 내부로부터 부패와 비효율을 키워 결국은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론의 몰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이다.

그는 94년 ‘아시아 기적의 신화’란 논문에서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기술과 제도의 발전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이룬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과도하게 투입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며 조만간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불길한 예언은 3년 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그대로 적중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져 상당 기간 회복이 어려울 것 같았던 아시아 경제는 불과 1년여 만에 되살아났다. 서구의 비관론자들은 2001년 IT(정보기술) 거품이 꺼졌을 때도 ‘아시아의 기적은 끝났다’며 장기침체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는 미국과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빨리 일어섰다.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전문가들은 아시아 경제가 상당 기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핵심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회복되기 전에는 결코 먼저 살아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시아는 보란 듯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앞서 가장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아시아 경제가 번번이 오뚝이처럼 먼저 일어난다면 거기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시아의 놀라운 반등’이란 특집기사에서 아시아의 빠른 경제 회복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제조업 부문에서 반등의 기회를 선점할 수 있었고, 막혔던 무역금융이 신속하게 풀렸으며, 건전한 재정구조 덕에 효과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의 금융회사들이 이번 금융위기의 타격을 적게 받았던 것도 큰 힘이 됐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시아가 부문별로 그런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는 아시아만의 독특한 특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시아적 가치가 다시금 주목을 받는 이유다. 한국은 이 놀라운 반등의 선두에 서 있다.

정부와 국내 전문가들은 여전히 확실한 경제 회복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나라 밖에선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 회복세를 눈여겨보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유독 강인한 복원력을 보이는 한국 경제의 저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저력의 바탕에는 아시아적 가치로 뭉뚱그려 말할 수 없는 한국만의 특성, ‘한국적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1. 왜 지금 ‘아시아적 가치’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는가

말레이시아의 모함마드 마하티르(Mohammad Mahatir)수상과 싱가포르의 리콴유 수상(Lee Kwan Yew, 李光耀)이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면서 촉발된 1990년대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탈냉전 시대의 서구 지식인들에게 그들이 서구의 가치와 이념을 일방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나머지 세계에 적용하는 것이 갖는 문제와 파장에 대해서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 일정한 의미가 있다.

보편적으로 서구 철학에서 인권은 시민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는 경제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를 한층 더 강조한다는 것과 ‘아시아적 가치’는 세계화 혹은 시장 혁명을 맞아 점차 사라지기보다는 오히려 살아남게 될 능력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

지구촌 내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주장하는 것은 종종 물질적 성공 뒤에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오늘날 동아시아인들에게 경제적 번영은 이들의 도덕적 우월성의 증명이라고 볼 수 있다.

문명충돌론

한편 ‘문명 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다음과 같이 서문의 제일 앞부분에서 주장하였다. 1990년대 초 나는 가나와 한국의 1960년대 초반 경제 자료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 상황이 아주 비슷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현재)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엄청난 발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내가 볼 때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 등을 하나의 가치로 생각한다. 가나 국민들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간단히 말해서 문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2001년 가을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무슬림 세력에 의해 공중 테러 당하여 붕괴되었ek.

무려 3,000명 가량의 인명을 앗아간 대사건이 일어남으로써 탈냉전시대에 ‘문명충돌론’을 주장한 국제정치학자 헌팅턴의 안목에 한층 더 힘이 실리게 되었다.

당시 위성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생생하게 중계된 이 사건을 계기로, 종교가 기반이 되는 ‘문명 간의 차이’를 새삼 재인식하게 된 아시아인들 가운데 자연스럽게 여타 세계 특히 미국과 유럽과 구별되는 ‘우리 의식’(we-feeling)이 한층 고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지구촌에서 바야흐로 ‘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목도하는 아시아인들 특히 지식인들 과 정치가들 가운데 한편으로는 세계화가 동반하는 ‘유럽중심주의’나 ‘서구 제국주의’(서구 우월주의) 그리고 시장 만능의 앵글로색슨적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계 혹은 반응으로서 ‘우리 의식’이 높아져서 전통 지향적인 보수적 공동체 개념인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구촌에서 최근 예외적으로 급속도의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아시아 사회 속에서 ‘우리 의식’의 고양(高揚)과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과 함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서구의 사례처럼 이혼율의 증가와 함께 아이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이는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가 적시하였듯이, 산업 사회의 발흥은 문화 변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결과적으로 산업화가 될수록 전통적 가치 체계가 ‘상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달성한 일본을 따라 산업화를 추진한 네 마리 작은 용과 최근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중국 그리고 상대적으로 뒤늦게 산업화 대열에 뛰어든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장차 사회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또한 경제발전이 ‘아시아적 가치’에 어떤 변화를 갖다 줄 것인 가 등의 문제가 최근 관련 학계와 언론인 가운데서 중요한 논제로 부상하고 있다.

요약하면,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 발표된 때와 거의 같은 시기인 1990년대 중반에 리콴유와 마하티르 등에 의해 주도된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계기로 한동안 쇠퇴하였다. 그렇지만, 2001년 9/11 사건 이후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점차 부활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서구의 연속적 침체와 대조적으로 중국을 위시하여 아시아 지역에서는 꾸준히 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한층 활성화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아시아적 가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서방 세계는 연속적인 경제 침체를 보인 반면 중국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금융위기를 잘 극복한 결과 ‘아시아적 가치’가 재 주목되는 쪽으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선임장관이 1999년 초 ‘아시아적 가치’가 아시아 금융 위기의 원인이 아니며 ‘아시아적 가치’가 장차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줄 것이라고 이미 예측한 것이 현실로 드러났음을 말해준다 할 것이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미국 예일대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1992년에 출판된 『21세기의 준비』에서 새로운 범세계적 변화의 힘들 – 지구의 온난화, 생명공학 혁명, 로봇공학혁명, 출산율의 저하, 인구의 불균형, 금융의 변덕스런 양상, 농촌의 낙후화 등 – 이 대세를 이루게 될 21세기에 대한 대비가 비교적 잘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무역국들과 독일, 스위스, 스칸디나비아의 일부 국가들 그리고 하나의 총체로서EC(European Community, 유럽공동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국제금융혁명 같은 초국가적 도전에 직면하여 국가의 전통적 기구들은 기능이 약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여전히 사회가 변화에 대응을 시도하기 위한 주요기관이며 정치적 지도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케네디는 사람들이 지구상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인간자원과 기술자원이 얼마나 윤택한지를 지구촌의 대변동을 앞둔 그들의 앞날을 크게 좌우한다고 보았다. 사회에 따라 새로운 도전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까닭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다름 아닌 ‘사회적 태도, 종교적 믿음, 그리고 문화 같은 분야를 지목하였다.

인류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가치에 주의를 기울이는 케네디의 이 같은 인식은 오늘날 사회과학계에서 문화주의자를 대표하는 고전 사회학자 베버와 토끄빌 등의 안목과 궤를 같이 한다.

구체적으로, 케네디는 『21세기의 준비』에서 현재 “우리가 수없이 많은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며, 21세기에 대한 대비태세를 강구하는 데 ‘교육의 역할’과 ‘여성의 지위 향상,’ 그리고‘정치적 지도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비록 경제성장이 문제의 전부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집단이나 개개인이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다른 대부분의 것들 – 건강, 교육, 레저 등 – 의 기초가 되는 것이 적절한 ‘생활수준’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 재교육하고 사회체제를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육의 역할과 관련하여, 케네디는 우선 후진성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큰 원인의 하나는 동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여러 문화권에서 교육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케네디의 주장에 입각하여 21세기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것을 간추리면 국가, 교육, 정치적 지도력 같은 요소를 들 수 있다. 현재 지구촌에서 이 세 가지 요소가 상대적으로 가장 중시되는 ‘문화권’은 아시아(유교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와 싱가포르, 홍콩, 타이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가 될 것이다.

케네디의 예측에 준거하여 향후 아시아의 미래는 상대적으로 밝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운다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증대되는 가운데 이 지역 문화의 공통적 키워드로서 ‘아시아적 가치’는 재조명되고 긍정적으로 재평가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오늘날 문명의 미래를 놓고 정치학자 일본계 미국인(3세)이며 이데올로기 대결의 역사(자유주의와 공산주의)는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한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후쿠야마(Francis Yoshihiro Fukuyama)가 대표하는 견해인 세계의 정치구조, 경제체제, 그리고 가치관들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수렴될 것이라는 입장과, 다른 한편으로 헌팅턴이 대표하는 견해인 앞으로 문화 간 차이가 심해져서 결국 ‘문명의 충돌’이 임박했다는 입장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자본주의를 수용한 지 이미 100년이 경과했기 때문에 서구적 가치인 독립성, 자유, 합리주의가 강하게 뿌리 박혀 있을 것이라 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사회의 각 분야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앞의 니스벳 연구와 사회심리학자 해리 트리안디스의 경험적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은 황화문명이래 5000년 쉼없는 독자 문명권을 형성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나 거대한 문화 담론이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차원에서 생각해볼 때 세계 주류 문화에서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모호한 정체성은 중국은 아시아 문명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지구촌 시대인 오늘날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의 국가적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지난 19세기 백인 남성 두 명(마르크스, 레닌)의 사상을 바탕으로 국가정책을 펼치고 있다. 200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갖는 유교적 가치관을 되살리려는 노력(공자학원 등)을 하지만 중국 지식인과 정치인은 유교적 가치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간극이 큰 두 개의 지적 전통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어 중국문명에 대해 일관성 있는 시각을 전세계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를 밝히는 가장 보수적인 견해인 해부학상 현생인류의 기원에 대한 과학자들의 가장 지배적인 견해는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이 가설은 인간이 아프리카에서 진화하여 5만년에서 1만년사이에, 아시아에서의 호모 에렉투스와 유럽에서의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인구를 대체하면서 이주하여 현생인류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학적 증거는 1~5만년 현생인류의 역사에서 동양과 서양의 인종, 국가, 문화, 문명은 원래 한 뿌리였고, 갈라진 문화와 문명은 다시 합치기를 반복하는 혼성과 교잡의 과정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21세기 세계 어디에서든 100% 고유한 문화라는 건 더 이상 찾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전통이 복잡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삼을 지에 대해 아시아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가 전세계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지 여부는 수구적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국가에 대한 새로운 자의식과 타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보수 반동 정권의 의도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1. 아중해(亞中海) 문명론과 베세토튜브

금욕과 절제를 중심으로 한 청교도(淸敎徒, Puritans)주의가 미국의 이민개척사에서 개척자의 종교이었고 생활철학이었다. 청교도는 미국 시장경제 발전의 이념이었고, 그것이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를 꽃피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사회가 복잡화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지구 어디에서도 이러한 청교도적 생활자세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서구문명의 한계

오늘날 세계 경제위기는 돈에 대한 집착과 탐욕, 사회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가 초래한 도덕성 위기에서 찾고 있다.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는 청교도의 본고장인 월가의 악덕 금융가 들의 탐욕과 방탕한 경영에서 온 것임은 전세계인이 알고 있다.

지렛대(leverage) 없는 신용, 무한대에 가까운 레버지지 없는 금융상품판매, 종착역을 뻔히 알면서도 나한테만은 그 종착역이 되지 않을 것을 막연한 기대감을 갖는 인간의 탐욕은 전세계인을 고통의 나락으로 내몰았다.

미국 리먼사태 당시의 시장과 인간의 본성을 간과하고 그러한 미국 금융시장의 상황을 방치한 정책당국이나 감독기구가 일차적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그들도 불운의 종착역이 그들 대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살아왔을지도 모르나 결국 그것이 터져 세계적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모든 지구인들은 도매금으로 볼모가 되어 희생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아시아의 금융위기 시에 미국은 IMF 등을 동원하여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국가 들에게 가혹할 만큼 자유시장 논리에 입각한 개방과 정부 시장관여정책 축소를 강요하였다.

당시 동원된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투자회사 운영자들은 시장경제논리로 정부는 시장에서 철수하고 정부의 보호를 철폐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이런 서구적 시장논리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수상이었고 마아티르 말레지아 총리였다.

‘아시아적 가치’는 여러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고, 그것이 아시아의 발전에 큰 기여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빠른 발전을 동양의 유교문화에서 찾은 연구도 있다. 역사를 보더라도 아시아는 서구사회와 차별되는 사회윤리 도덕이 존재하여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효(孝)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 문화나, 충(忠)을 바탕으로 한 헌신의 문화가 존재한다. 연장자에 대한 예의나 조직을 위한 자기희생, 근면 절제 등은 아시아적인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성장의 동력으로 부상한 아시아, 특히 한중일 3국은 21세기를 맞아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높아졌으나 정치 안보적 갈등은 심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평화와 화합, 상호이해와 신뢰를 증진하여 이러한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국가 및 지역 간 공조와 파트너십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새롭고 다양한 역내 질서를 추구하며, 공동 번영을 위한 공동 이익의 확대에 힘써야 한다.

아시아의 중요한 나라로서 한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발전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강의 기적에서 한류 바람까지 한국은 아시아에서 경제·문화면에서 항상 앞서는 나라로 대한국민은 세계경제 위기의 어려움을 국가 거버넌스 역량을 더 키우는 기회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아시아의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아시아를 설계하고 역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아시아적 가치기반의 아중해 문명창달

우리가 많이 보고 느낀 바와 같이, 국제 정세의 빠른 변화와 국제 경제·정치적 상황 속에서 아시아의 지위와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세계경제 규모와 세계 총GDP의 3분의1을 차지하며 4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아시아는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다.

아시아가 성취한 큰 진전은 탈냉전시대에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정보다 더 큰 유익은 없고, 혼란보다 더 큰 손해는 없는 법이다.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노력해서 얻은 성취를 우리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국가간 협력은 급증하고 있고 경제통합과 자유무역지대 등에서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 긴밀한 유대와 상호의존적인 아시아 국가들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로 평화와 발전은 오늘날 아시아의 주요 관심사이며, 향후 미래 아시아의 갈 길을 대변해 주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지정학적 ‘우위’를 바탕으로 세력권을 장악하고 있던 중국·한국·일본은 수구 반동적인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조금씩 완화하고 지난 역사의 과정에서 회자됐던 과오를 동아시아의 문화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극복하여야 한다.

지정학적 우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정문화적 공통요소를 찾아 진흥하여야 19세기 후반에 잃었던 동아시아 공동체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복고적인 유교 사상의 부활과 자민족 중심의 아시아적 가치의 추구는 자체적으로 아시아인에게 모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와 영역일 뿐이다. 지구촌 세계인들이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문화와 문명은 유구한 전통의 아시아 문화(1)와 근현대 서구 생활문화(2)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문화, 문명임을 자각하여 제3의 문화와 문명을 창달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본 연구회에서 주창하는 아중해 문명론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아중해(亞中海)란?

베세토튜브 연구회는 중국, 한국, 일본의 수도인 베이징(北京,Beijing)↔서울(首尔,Seoul) ↔도쿄(东京,Tokyo) 간을 진공자기부상 궤도를 육상과 해상에 건설하여 극초고속 튜브셔틀을 운행함으로써 21세기 동북아  韓·中·日국민의 친선과 우의를 증진하는 국제협력 프로젝트의 무대가 펼쳐지는 서해, 동해, 남해 일원의 바다를 아중해(亞中海)로 통칭한다.

아중해의 영어표기는 ‘AJungHae’ 로 하여 유럽·아프리카·아시아(터키)내해인 지중해(地中海, Mediterranean Sea)에 대응시킨다.

아중해를 유라시아 동부 지중해를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되도록 하여 과거 찬란한 동아시아 문명의 우수성과 21/22세기 지속가능한 성장(SDGs)과 평화공존의 대명사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본 베세토튜브연구회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후기 산업화’ 시대와 이후 도래할 태양에너지 시대인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혹은 ‘생태사회(Eco society)’시대의 아중해(亞中海) 문명창달(文明暢達)방안을 연구할 것이다.

아중해 문명창달을 위한 주요 과제

후기산업산회, 탈산업사회에서 더 많은 에너지 사용, 무한한 성장, 끝없는 물질적 진보는 불가능하다. 인류는 탈석유(Post Oil)의 생태문명 시대를 대비한 글로벌 운송 시스템의 광범위한 변화와 생활상 예측 및 대응방안이 시급하다. 전세계의 모든 인류는 21/22세기를 이끌어갈 새로운 비전을 애타게 찾고 있다.

“베세토튜브연구회”는 인류의 프런티어 아카데미로 21/22세기 생태문명(生态文明) 창달을 위한 만리장도(萬里長途)에 나서고자 한다. “베세토튜브(besetotube)연구회”의 주요 연구과제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역내 협력 프로젝트 추진방안
- 베세토(한·중·일), 아시아(ASEAN), 태평양(NAFTA), 북극해(EU)튜브
- 사할린/시베리아 송유관, 천연가스파이프라인의 튜브망 병행 구축
- 시베리아/몽골/아중해 풍력단지(Wind Farm)와 동북아 슈퍼그리드
- 저(低)엔트로피 생태문명 경제체제에 적합한 교통모드 시스템
 (전기차 파워트레인+자율주행자동차+스마트시티 등) 구축방안
- 4차산업혁명과 생태문명 시대의  역내 경제산업 클러스터 구축방안

생태문명 시대 인류 보편적 문화·경제·기술의 기초연구
- 서구문화(1)와 동양문화(2)를 씨줄 날줄로 엮는 생태문화(3)
- 인본 위주의 포스트 자본주의 생활문화와 경제제도 창출
- 자연 순환형의 도시문화와 정보와 에너지의 도시 기반구조
- 탈산업화 시대의 인문과 자연과학 및 기술공학의 요람지생태문명(生态文明 )시대 지역안보 레짐 구축방안
- 산업화 시대 약탈적 국제정치 레짐의 극복과 치유방안
-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는 군사비 지출삭감을 위한 역내 군축방안
- 한중일, 동북아 FTA(한중일+러,몽골,대만 등)로 경제공동체 구축
-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위한 다자간 안보협력 기제개발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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