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는 베세토튜브

  1. 안보와 정치부문의 ‘아시아 패러독스’
  2. 동북아 영토분쟁의 주요한 특징
  3. 이데올로기보다 앞서는 영토 국익
  4. 유럽연합(EU)의 교훈
  5. 동아시아의 공동체 구축을 향하여…

[요약] ‘아시아 패러독스’(Asia’s paradox) 혹은 아시아의 역설(逆說)’로 해석되는 이 용어는 아시아 역내국가 간 경제교류가 늘어나면서 상호의존성은 높아지는 반면 정치·안보 협력은 오히려 뒤처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경제협력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안보갈등을 지속하는 현상으로 자유주의자들은 상호의존의 심화가 각국이 공유하는 이익을 확대하여 국가 간 안보갈등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하였으며, 현실주의자들은 해외 경제에 대한 자국 경제의 민감성과 취약성의 증대는 안보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

자유주의 이론가는 국가들 간에 경제적인 접촉이 많으면 많은 수록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정치-안보 분야에도 협력이 이뤄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 간에는 경제적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까지 심한 정치-안보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동아시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안보갈등 수준이 높으며 경제의존의 “현저성(salience)”은 높으나 “대칭성(symmetry)”은 낮으며 특히 중국과 동아시아 주변국 사이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경제협력 이외에 전략적 라이벌 관계는 모든 지역에서 안보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1. 안보와 정치부문의 ‘아시아 패러독스’

아시아의 역설을 초래한 요인은 다양한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나 아시아의 안보불안을 가중시키는 최대 요인은 국가 간 얽히고설킨 다수의 영토분쟁이다. 실제로 아시아, 그 중에서도 동북아시아는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영토분쟁이 가장 밀도 높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동북아의 주요 구성원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네 나라 모두가 예외 없이 서로 교차하여 공식·비공식적으로 영토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러 동북아 4국이 상호 중층적으로 연루된 영토문제는 소련의 붕괴로 동·서 진영체제가 해체되었다.

그 결과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독자적 국익추구와 함께 국민국가 정체성 찾기를 본격화함에 따라 과거 냉전기 수면 하에 잠복되어 있던 영유권 분쟁이 노정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미·소 양극구도의 종식이 전후 국제질서를 지배했던 동서간 이열종대를 해체시키면서 민족단위 국가이기주의를 촉발시킨 것이다.

민족단위 국가이기주의와 영토분쟁

국가이기주의의 출현은 동서진영 간의 대립을 개별국가들 간의 대립으로 전이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며 동북아에서 동시다발적 영토분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제국주의와 동서 냉전대립으로 촉발된 국민국가 경계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국가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적 결과이다.

동북아 영토분쟁의 근본적 연원은 수천 년 간 기능해왔던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가 와해되고 러시아와 일본이 동북아의 새로운 중심부 세력으로 등장하던 19세기말 제국주의적 침탈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이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적 세력팽창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영토는 역사적 연고권과는 상관없이 승자의 전리품이 되었다.

동북아의 주요 영토마찰은 청나라가 쇠락할 때 제정러시아가 강압에 의해 연해주를 할양받았던 1860년의 러·중 ‘북경조약’, 일본이 동북아의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제국주의시대가 잉태한 갈등의 씨앗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냉전의 고조와 한국전쟁의 와중에 체결된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영토 조항들이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동북아의 정치는 기억(memory)과 정체성(identity)에 의해 지배되는 특징과 탈냉전시대 동북아의 영토분쟁은 역사논쟁과 동전의 앞 뒷면처럼 밀접히 맞물려 있고 폐쇄적 민족주의라는 자양분 속에서 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에서 기원하고 냉전의 종식으로 촉발된 동북아 영토분쟁의 근저에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대를 통해 어족 및 지하자원의 확보를 공고히 하려는 개별국가들의 열망과 역내 국가 간 역사불신, 민족감정, 패권경쟁 등이 개입되면서 영토 마찰은 더욱 가열되었고 첨예화되고 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영토문제와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데, 한·중·일 3국간 역사논쟁과 영토분쟁이 폭발력을 갖는 것은 그 밑바탕에 자기중심적인 민족주의가 깔려 있고 국수적 민족주의 정서에 기대어 취약한 국내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극우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선동이 영토갈등의 악순환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도화선을 제공하고 있다.

극우 세력의 부상과 후견인(Handler)

동북아 각국에서 극우적 민족주의자들이 영토문제라는 숙주에 기생하여 기회적 정치이익을 향유하는 ‘적대적 제휴’가 만연하고 있으며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영토문제를 교묘히 이용해 왔다.

미국과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의  방위비 증대로 큰 이익을 향유하는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는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분쟁을 부채질하여 무기를 팔아먹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로비스트와 후견인(Handler)들의 영향력이 점점더 확대되고 있다.

역사논쟁과 민족주의가 짙게 투영된 동북아 영토분쟁은 그 이면에 강대국들의 패권적 야망도 크게 개입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의 지역패권 경쟁은 민족주의와 결부된 영토 마찰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아시아의 중심으로 재등장한 중국과 군사대국화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일본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은 최근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첨예한 대치에서 보여주듯이, 영토분쟁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찾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동북아 영토분쟁에는 미국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동북아 영토분쟁의 단초를 제공한 원인제공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동서냉전 과정에서 전후 승전국인 미국이 태평양전쟁을 결산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한국전쟁 와중에서 서둘러 패전국 일본과 관련된 독도,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북방 4도의 귀속을 불명료하게 처리함으로써 영토갈등의 불씨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전후부터 오늘날까지 한·일, 중·일, 러·일 간 첨예한 영토분쟁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유지와 지정학적 입지를 강화시켜 준 아주 유용한 전략적 지렛대로 미국이 앞장서서 동북아 영토문제를 적극적으로 중재 해결할 까닭은 전혀 없다.

영토문제의 ‘현상타파’보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수준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게 동북아에서 워싱턴의 전략적 이익을 더 크게 해주기 때문에 현상유지를 선호할 것이라는 점은 과거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서구 제국주의 통치전략 지침서이자 상식이다.

 

2. 동북아 영토분쟁의 주요한 특징

실제로 미국은 러·일 영토협상의 진전을 배후에서 방해했고, 독도 및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대립과정에서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미국의 행태를 두고 러시아 학자 발레리 키스타노프(Valery Kistanov)는 동북아 영토분쟁의 ‘막후 연출자’(a director behind the curtain)로 표현한다.

탈냉전 이후 동북아 지역에 노정된 일련의 영토마찰이 대규모 군사적 충돌로까지는 비화되지 않고 있으나, 긴장의 주기적 고저(高低)를 반복하면서 잠복적인 분쟁의 뇌관을 형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북아 영토마찰에 현미경을 들이대 보면 다음 네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첫째, 동북아가 중·러, 러·일, 중·일 등 강대국간 영토분쟁이 중첩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국제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미국을 포함해 세계적 권력보유자들이 개입된 동북아 영토분쟁은 현재 경제적 번영과 협력 추세에 의해 은폐되어 있으나, 제어력을 상실한 국가적 야망이나 민족주의적 감정에 의해 점화될 경우 높은 휘발성과 폭발력을 지닐 수 있다.

둘째, 동북아 영토분규의 대상이 주로 하천 또는 해상의 도서(島嶼)라는 점이다. 영토분쟁 지역이 직접적인 국경선을 마주하지 않은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역내 국가간 대규모 군사적 충돌의 우발성과 민감성을 일정 수준 완충시켜주고 있다.

셋째, 동아시아 영토분쟁 핵심 연루국가가 암묵리에 세력권 확대를 모색하는 중국(서사군도/남사군도/센카쿠열도)과 일본(독도/센카쿠열도/북방4도)이라는 점이다. 이는 중·일의 영토 집착력을 반영하는 한편, 향후 양국의 팽창주의적 권력욕이 발동될 경우 그 첫 총성은 영유권 사수를 명분으로 한 영토분쟁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한다.

넷째, 동북아에서 영토분쟁은 과도한 군비경쟁과 밀접한 친화성을 갖고 있다. 영유권 분쟁과 해상교통로 확보를 위한 해군력 증강이 당사국간에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양 해군화를 모색하기 위한 한국의 지속적인 전력증강 사업,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힘의 ‘외부투사 능력’(power projection capability)과 ‘연장능력’(power extension capability)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 중국의 무력 흡수통일 가능성 차단을 위한 대만의 자위력 강화, ‘경제 대국·정치 난쟁이’에서 벗어나 자신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지향하며 정치군사적 대국화를 추구하는 일본의 재무장 등은 모두 동북아 군비경쟁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으며 영토분쟁이 이를 중요하게 추동하고 있다.

한중일간 영토와 안보 갈등

한국, 일본과 중국 간의 현 관계는 정치-안보 분야에서 문제가 심해도 경제 등 분야에서 매우 밀접하다. 왜냐하면 삼국은 갈등이 일어나든 협력이 이뤄지든 상관없이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중일 간에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안보적인 갈등은 먼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세기 말 중국과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을 강화하기 위해 심각하게 경쟁하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을 서방 세력에서 독립시키고 ‘대동아 공영권’으로 통합시킨다는 슬로건을 핑계로 이 주변 국가를 침략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제2차세계대전 후 일본과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진영에 속해지고 중국과 북한은 사회주의진영의 부분이 되었으며 20세기 말까지 삼국은 이념적인 갈등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소련과 사회주의진영의 붕괴 후 중국이 아직까지 사회주의를 지키는 국가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이념의 중요성이 떨어져 한국과 중국은 일본이20세기 초반에 저지른 범죄를 잘 기억하고 있으나 한중일 협력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21세기 초기부터 한중일 협력이 새로운 단계에 올라왔다. 1999년 아세안+3 회의와는 별도로 한중일 정상회담이 처음에 이뤄지고 2010 년 한중일 정상회담 시 삼국의 지도자들은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의 설립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고 2011년에 서울에 한·일·중 3국 협력 사무국(TCS)을 설치하고 3국 정부간 협의체를 개최하고 협력사업을 발굴하는 등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오고 있으나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자유주의의 이론가는 국가들 간에 경제적인 접촉이 많으면 많은 수록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정치-안보 분야에도 협력이 이뤄진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 간에는 경제적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아직까지 심한 정치-안보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은 자유주의적인 이론에 안 맞기 때문에 역내 국가간 경제적 상호의존에도 불구하고 정치-안보 협력은 뒤쳐져 있다는 현상인 ‘아시아 패러독스’현상이 노정되고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자유주의적인 이론은 국제무대에서 행동하는 국가들이 각자의 세력에 따른 위치를 차지하고 경제가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는 현실주의와 달리 경제 등 분야에 깊이 협력하는 국가들이 안보 분야에서도 밀접해진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을 기준으로 하면 한중일 간 관계는 예외로 볼 수밖에 없다. 한중일 간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패러독스의 이론은 자유주의적인 이론의 대표적인 사례인 유럽 연합 과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한다면 지속적으로 심화되는 경제 협력 외에 다른 요소들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한중일 간 관계의 역사에는 통합을 촉진하는 요소보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많아 한국, 일본과 중국은 아직까지 신뢰를 구축하지 못했는데 안보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의 결과

동북아시아 한국․중국․일 3국은 총 인구는 20억명과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경제의 중심국가로 상호 경제의존도 높으나 역사와 안보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신뢰 부족으로 정치․안보 협력은 적대적인 상황이 연출이 지속되고 있어 미국·EU에 비해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현저히 저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시장에서도 거래시장과 인프라가 미비하여 막대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의 원유, 가스 가격은 유럽과 북미 지역에 비하여 항상 $1.0~1.5/배럴 비싼 가격과 하역항 변경 금지 등 차별적 취급으로 시장성 결여되는 아시아 프리미엄(Asia Premium)으로 산업경쟁력 확보에 부담이 되고 있어 이의 해소를 위해서는 중동 원유의 대체 공급원 확보를 위한 동북아 국가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미국의 재팬배싱(Japan Bashing)은 1980년대 일본의 경제공습을 맞아 미국을 잠에서 깨울 ‘웨이크업 콜(자명종)’을 울려야 한다는 캠페인으로 일본의 배타적 거래관행과 폐쇄적인 유통 제도 등 미국 제품의 수출을 막는 구조적 장벽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는 보복조치를 부른다.

미국 의회에서는 1987년 일본산 제품을 부수는 퍼포먼스까지 벌어지고 일본은 미국의 경제 압박에 굴복한 결과  ‘거품 경제’가 끝나고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다. 코리아 배싱, 차이나 배싱 등 아시아 각국과 도요타 배싱, 삼성 배싱 등 악덕기업 이미지를 덧씌워우는 ‘기업 배싱’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중․일 3국 간 긴밀한 경제협력과 사회협력이 이뤄진다면 외교안보협력에서도 지속적인 관계개선이 기대되며, 반대로 외교안보관계가 개선된다면 다시 경제 및 사회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는 선순환이 기대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공동체 구축은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운 과제로 지역통합의 모범사례로 간주되고 있는 유럽 통합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경제통합→사회․문화적 접근→정치․외교 통합’의 과정 중에서 가장 첫 번째 단계인 경제통합에서조차 커다란 복잡성을 노정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 사이에 상존하고 있는 과거사 미청산 문제와 각국간 숙적관계는  지역통합을 주도할 수 있는 주축세력으로서의 동북아 지역의 통합을 더디게 만들어 동아시아 전체의 지역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동아시아 통합의 장기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정치․외교 관계를 개선하여야 한다.

 

3. 이데올로기보다 앞서는 영토 국익

역사적으로 동북아에서는 영토가 국제관계에 가장 민감하게 개입하는 중요한 상수로 작용해 왔는데, 이는 역내 국가들이 영토를 그 어떤 가치에 우선하는, 지켜야 할 핵심적인 국가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널드 자고리아(Donald S. Zagoria) 박사도 동북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리·영토적 이해관계가 이데올로기보다 더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요소’(permanent and constant element)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 냉전시절 동북아지역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을 수반한 영토분쟁, 즉 중·소간, 베트남·중국간, 캄보디아·베트남간의 국경충돌을 그 실증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 상호 인접한 공산국가들 간 영토분쟁의 역사는 수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깊은 역사적인 연원을 지닌 것으로,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소 국경분쟁의 경우, 양국이 지고한 가치로 간주했던 이데올로기적 유대가 영토적 국익 앞에서는 한낱 허상에 불과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1969년 우수리강 중류의 전바오다오(珍寶島)에서의 국경 무력충돌은 급기야 철의 단결을 과시했던 동맹적 양국관계를 해체하면서 숙적관계로까지 돌변시켰고, 그런 앙숙관계를 근 30년 동안 지속시켰다.

북방 4도를 둘러싼 러·일 영토분쟁의 지속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지난 냉전시절 북방 4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으로 러·일관계는 국제적 환경변화로부터 격리되어 마치 화석처럼 오랫동안 정체되었다. 그런 현상은 냉전구조 해체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소련의 붕괴로 이념의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사라졌고, 양국 간 상호 군사적 위협인식이 현저히 해소되었으며, 더욱이 러시아가 일본과 동일한 서구적 가치체계의 시장민주국가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문제에 대한 상호 비타협적 태도로 인해 양국관계는 여전히 국제법상 ‘전쟁의 지속’ 상태에 머물러 있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교전 당사국인 러시아와 일본이 아직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를 한순간에 경색시키는 독도 신경전도 같은 범주에 속하는데, 이런 일련의 사례는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지리영토적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영토문제가 동북아 국제관계의 역학을 일정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대표로 한 일본 내 극우정치 세력들이 장기 경제침체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건으로 인한 전 국민적 히스테리를 해소하기 위한 출구로서 민족주의와 영토문제를 이용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일본사회가 급속히 보수 우경화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 정부의 독도문제 제기 방식에서 과거와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한국 내 반일 감정의 격화와 한일관계의 경색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독도 영유권 주장이 점차 강경해지고 도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문제 제기 시 우회적이고, 신중하며,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접근태도를 보여 왔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되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가급적 갈등의 확산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외교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전략 하에 물리적 방식을 동원해 독도 영유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논쟁은 외견상 한국과 일본 두 나라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논쟁의 발단과 지속에 대한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해보면 독도 문제는 동북아 역내 국가 간에 얽히고 설킨 다수의 영토분쟁들 가운데 일부이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다자적 게임의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도문제는 동북아의 전체 영토분쟁과 전략환경이라는 보다 큰 틀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일본의 영토 공세에 대한 대처도 그런 맥락 속에서 강구되어야 한다.

세계사를 관통해 볼 때 지구상에 고정된 영토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한 국가의 공간적 규모를 구성하는 영토는 영구불변의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해당 국가의 흥망성쇠의 부산물이었다. 요컨대 세계사는 전쟁을 통한 지속적인 국경 변동의 역사였고, 전쟁을 결산하는 강화조약은 승자의 논리를 패자에게 강요하여 승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외교적 안전장치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 영토는 ‘할양’(cession)이라는 이름으로 승자의 전리품이 되었다. 따라서 한 국가의 영토 지리적 범위는 힘의 법칙에 의해 크게 좌우되어 시대적 흐름에 따라 팽창과 축소를 반복하였다. 그렇기에 국가 간 영토분쟁은 법리적인 측면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직 힘의 법칙만이 정의였고, 강자만이 자국에 유리한 ‘영토보전의 원칙’(principle of territorial integrity)을 내세울 수 있었다. 이런 영토보전의 속성을 명료하게 인식한다면, 한국은 자신의 영토를 스스로 사수할 수 있는 국력의 신장과 국가안보 능력을 최우선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독도 사수를 위한 다양한 세부적인 대응전략은 이것이 전제되었을 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논리를 강화하는 가운데 실효지배를 영구화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동아시아는 경제협력은 심화되었지만 안보갈등은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동아시아만의 예외적 모습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경제협력은 양국의 공동이익을 통하여 평화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종종 비대칭적 의존관계를 통하여 안보갈등의 빌미를 제공한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동아시아는 무역의존의 현저성과 비대칭성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과 별도로 미중, 중일, 남북한 등 역사적·전략적 라이벌 관계는 해소되지 않은 채 탈냉전기에 들어서 안보갈등을 더욱 부추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동아시아 안보갈등은 경제협력을 통해 상호의존의 현저성과 대칭성이 동시에 증가하고 전략적 라이벌 관계가 완화되는 상황을 맞이할 때, 긍정적 변화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시아 경제협력이 주요 라이벌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 변화를 살펴보면 양국 간 경제협력의 현저성에서 1970년 중후반 이후 급격한 상승세를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중국의 대미 의존 정도는 미국의 대중 의존 정도를 항상 앞섰으며, 양국 간 경제협력의 비대칭성은 1990년대 후반 들어 다소 심화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GDP는 1990년에는 미국 GDP의 6%에 불과하였지만, 2000년 11.6%, 2010년 39.6%, 2013년 55%에 이르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향후 10년 정도 있으면 미국 GDP를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추월하면 양국의 경제협력의 비대칭성은 거꾸로 미국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할 것이다. 패권국과 도전국 사이에서 경제력의 전이가 일어난 후 군사력의 전이가 일어나기 전 시기가 패권국에 의한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이다.

미국의 대중 의존이 중국의 대미 의존보다 높은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의 취약성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경우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군사력 사용 가능성은 현재보다 높다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력 전이는 본격적인 양국 간 정치·안보갈등의 시작을 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통적인 동아시아 라이벌 관계인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중국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 역시 1970년대부터 경제협력의 현저성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중국의 대일 의존도가 일본의 대중 의존도보다 높았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의존도가 중국의 의존도를 앞서기 시작했다.

양국의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서 일본이 대중 균형 전략을 강화시키고, 중국은 일본에 대하여 자신감을 바탕으로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가운데 양국의 전략적 라이벌 관계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4. 유럽연합(EU)의 교훈

만성 재정적자로 인해 자동예산삭감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미국은 역외균형전략 외에 선택의 폭이 넓지가 않다. 역외균형전략이란 해당 지역에서 특정 국가의 역할을 높여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G2국가로 성장한 중국을 견제·봉쇄하기 위해서는 ‘불침항모’로서 일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에 맞서 싸우는 미군을 위해 일본 열도 전체를 미군이 사용할 수 있는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제공하는 불침항모(不沈航母)론은 전쟁가능한 보통국가를 위한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our most important ally)’으로 삼아 일본의 역할을 통해 힘의 균형추를 다시금 미국 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가능토록 하였으며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인 ‘보통국가’로 변신하려는 일본의 이해와도 맞닿아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안보에서는 동맹국들에 역할 분담을 요구하는 한편 전형적인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전략에 기초한 것으로 중국의 부흥과 확대되는 정치적 존재감의 확대를 막을 수 없고 억제비용의 부담도 더는 혼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나 중국과 일본이 협력해서 미국중심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는 중일 관계에 족쇄를 채워 갈등의 불씨를 남겨놓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고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지지함으로써 미국에 의한 동아시아의 외부적 균형이 유지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 역내 국가들은 상호간 위계질서 없이 각자 자율성을 갖는 무정부상태를 선호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지역통합이 진전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낮은 역내 무역 의존도 이외에도 지역 국가들이 현재의 자율성과 무정부상태가 자신의 이익에 최선이라 여기고 통합을 위한 어떤 상황변경과 희생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동아시아 질서는 2천년에 걸친 중국의 패권 시기와 백년에 걸친 일본의 패권 시기를 거쳐 다시 중국이 과거의 패권적 지위 회복을 시도하는 가운데 있다. 압도적 패권국가 없이 다자관계를 통해 지역통합을 이뤄낸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통합의 미래는 중국 또는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은 한번도 아시아에서 지역통합을 지지한 적이 없었다.

동아시아 질서는 2천년에 걸친 중국의 패권 시기와 백년에 걸친 일본의 패권 시기를 거쳐 다시 중국이 과거의 패권적 지위 회복을 시도하는 가운데 있다. 압도적 패권국가 없이 다자관계를 통해 지역통합을 이뤄낸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 통합의 미래는 중국 또는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국은 한번도 아시아에서 지역통합을 지지한 적이 없었다.

우선 유럽통합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경제통합이 먼저 진행되고 정치통합이 시차를 두고 뒤따르는 것은 지역통합의 일반적인 순서라는 점에서 정치와 경제 관계의 불균형을 꼭 모순이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다.

유럽은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출범을 시작으로 경제협력이 시작된 후 1992년 본격적인 정치통합체인 유럽연합이 출범하기까지 40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나아가서 이와 같은 불균형을 전제하더라도 아시아의 현실이 경제와 정치 영역 사이의 모순을 말할 만큼 높은 수준의 경제통합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유럽과 달리 강성 국가주의가 여전히 그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운데, 정치와 안보 부분은 뒤로 미루고 ‘시장과 경제’ 협력에 일차적인 초점을 두고, 기능주의적 접근에 의한 경제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나 정부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통합의 문제를 논의함과 동시에 세계화와 정보화에 따른 기업과 제3섹터의 정치적·경제적 ‘소프트 파워’에 의한 새로운 통합 시도를 추진할 필요가 제기된다.

국부와 시장을 창출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기능적으로 국가 혹은 정부 중심의 접근방법론을 벗어나서 유럽의 경우처럼 거대 프로젝트의 비즈니스 서클이 주축이 되는 부문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동아시아 국가 간에 전략적 동맹이 가능한 역내 산업 간 네트워크(regional intra-industry network)로 출발하여 점차적으로 동아시아의 전반적 경제통합으로 발전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유럽의 에어버스 사례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축에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디지털 기술이 아닌 교통 부분의 경우는 유럽이 세를 결집하여 100년 아성의 미국세를 격퇴하게 된다. 1967년 9월 영국, 프랑스 및 독일 정부는 3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에어버스 300을 개발하는 협정에 서명하였는데, 이것은 콩코드(Concorde) 이후 유럽에서 이루어낸 숙원사업의 하나로, 항공산업의 협력프로그램으로서는 두 번째이다.

에어버스사는 유럽의 주요 몇 개국이 연합전선을 펴서 이룩한 쾌거로 미국 항공기 산업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항공산업의 대 프로젝트로 성장하였다. 2005년에는 보잉사가 1,002대의 비행기를 수주하였으나 에어버스사는 1,055대를 수주하여 항공산업의 오랜 질서를 개편하게 된다. 에어버스의 경험은 유럽의 입장에서 경제통합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5. 동아시아(아중해) 공동체 구축을 향하여….

동아시아의 공동체 구축은 현재로서는 지난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동아시아의 지역통합은 한국이 주도하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는 지정학적 고차원의 방정식 풀이 문제로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경쟁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동아시아의 번영을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의 성공사례들을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재인식하여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유럽의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동아시아 통합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아시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지역경제를 내부적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고리가 없는 동아시아가 지역협력과 통합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적인 다자주의 선호를 고려할 때 동아시아가 경제적 지역주의로 발전하더라도 ‘열린 지역주의(Open Regionalism)를 추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지역 및 세계의 강국으로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을 적극적으로 포괄하는 지역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이들의 갈등관계로 인해 발발할 수도 있는 지역안보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방지하는 전략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지역주의를 기피했던 동아시아가 새로이 지역통합을 추구하기 시작한 최근의 상황은 다자간 무역체제의 초기부터 지역주의를 지향했던 유럽이 처했던 전략적 환경과는 크게 다른 맥락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협력과 통합을 통해 경제적 번영을 성취할 수 있는 기초가 제공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아시아가 처한 현재의 환경이 50년 전 유럽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통합을 위해서는 지역 차원의 장기비전에 합의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지역차원의 어젠다를 개발하고 그 구체적인 실행계획에 합의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역통합을 위해 필요한 국가 간 합의 또는 공동정책의 채택을 ‘국가주권의 포기(giving-up souvereignty)’라고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유럽국가들이 유럽 통합 과정에서 채택된 다양한 공동정책들을 추진하면서 ‘국가주권의 공동 활용(pooling souvereignty)’이라는 매우 실용적인 방안을 성공적으로 실험해 왔고 각종 기술표준 제정에서 전세계적인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을 배워 각국의 독자노선보다 주권의 공동활용이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경쟁에 따른 역내 국가들의 정책 혼선, 일본의 식민지 과거사 미청산에 따른 중국, 한국과의 영토문제, 역사교과서 등 분쟁소지가 엄연히 존재하고 북한의 핵개발에 따라 나타나는 안보불안 등 정치․외교적인 측면의 제약요인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나 한중일 3국은 시장의 힘에 의한 통합에 의해 이미 상당한 수준의 경제통합을 이룩하였으며, 경제통합을 통한 공동의 경제적 이익이 어느 정도 이미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과도한 주도권 경쟁이 동아시아 지역통합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나 한국이 지역문제와 글로벌 문제와 해결에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근대적 세력균형의 정치를 지역공동체의 정치로 변화시키는 균형자 혹은 연성변환자(soft transformer)로 동북아 지역의 다자협력질서를 창출하여야 한다.

한중일 3국을 아우르는 자유무역지대 또는 더 나아가서는 관세동맹 및 통화동맹 등을 실현하기 위한 환경을 구축하여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아직도 세계경제에 일정한 불확실성을 주고 있으나 동아시아 국가들은 2000년대 중후반의 기간 동안 한국·중국·일본이 각각 아세안과 FTA를 개별적으로 체결하는 아세안+1 FTA 협정들을 성공적으로 완성하였다.

더불어 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East Asian FTA: EAFTA) 또는 동아시아포괄적경제협력협정(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for East Asia: CEPEA) 등의 형태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향한 다양한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어 이러한 분위기의 전환은 동아시아 지역통합에 매우 커다란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아시아의 지역통합은 중국과 일본의 강력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 인해 한국이 주도하지 않으면 성사되지 않는 지정학적 고차원의 방정식 풀이 문제로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 경쟁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동아시아의 번영을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의 성공사례들을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재인식하여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유럽의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동아시아 통합을 보다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우리와 후세의 생활 터전인 동아시아의 전쟁 예방과 평화 및 번영의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

동아시아공동체 혹은 ‘아중해공동체(亞中海 共同體)’를 창설해가는 과정에서 한국은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이자 역내에서 어떤 패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을 가장 중립적인 위치의 국가로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주도적으로 견인하고 추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나라이다.

범아시아 공동 시장 이전의 단계로 ‘아시아판 에어버스’라고 할 수 있는 ‘베세토튜브’ 프로젝트와 같은 3국 공동 프로젝트와 에너지 전송망인 슈퍼그리드, 송유관과 천연가스관을 공동으로 병행 구축하여야 한다.

저성장, 제로성장, 역성장 시대를 대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함으로써 산업화 시대의 경착륙을 유도하고 생태문명이 전개될 22세기를 살아갈 후손들의 인간안보와 에너지안보 인프라의 초석을 놓아야만 한다..

지역내 대화와 협력의 틀을 정착시키기 위해 상호신뢰의 기반을 마련하여 동북아 평화협력 틀에 적합한 분야를 발굴하고 상호 보완관계를 통하여 한·일·중 3국 간의 협력이 3국 간 평화와 안정, 나아가 아시아 전체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베세토튜브와 같은 협력 프로젝트의 담론 형성이 요구된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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