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근대문명의 요람이 된 지중해 문명

1. 지중해 문명의 개관
2. 지중해 연변의 역사
3. 지중해 문명의 교훈

1. 지중해 문명의 개관

지중해를 보면 오늘의 유럽과 세계 판도를 읽어낼 수 있다. 지중해는 로마가 카르타고와 그리스를 제패한 이후 “우리들의 바다(Mare nostrum)”라고 했지만,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세계의 바다가 되었다. 이후 그 주도권은 대서양과 태평양(亞中海)으로 넘어오지만 지중해는 여전히 다채로운 역사의 무대로 어떤 파도가 몰아쳐도 지워지지 않는 인류의 고대사적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중해는 “문명의 요람”으로 하버드 대학의 세계적인 신약 역사학자인 헐미트 퀘스터는 지중해를 “기독교의 요람(the cradle of Christianity)”이라고 부르면서, 기독교가 단지 어떤 특정한 지역의 종족 종교로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그리스-로마의 거대한 문명권과 만나면서 세계 종교의 위상을 얻어가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과 해석은 지중해에서 태어난 모든 문화, 종교 또는 문명은 지역적 경계선을 넘어 세계적 차원의 문명으로 변화, 발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 로마, 게르만과 비잔틴, 이슬람도 모두 이 지중해의 역사와 만나면서 그 출신과 뿌리의 한계를 넘는 문명권을 이뤄나갔다.

문명(Civilization)은 인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을 통하여 창출된 결과물의 총체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으로 구분된다.

그 문명의 생명력은 인류가 특정문명을 수용하는 공유성(共有性)에 있으며 같은 문명과 다른 문명과의 만남이나 교류과정에서도 실현될 수 있고 그 대표적인 일례가 다른 문명들이 혼합된 지중해문명(Mediterranean Civilization)이다.

오늘날 세계문명의 패권을 차지한 서구 근대문명의 요람은 지중해 문명(Mediterranean Civilization)으로 ‘지중해’는 유럽과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3대륙으로 에워싸인 지중해(관용적 약칭: ’유럽 지중해‘)를 지칭하며 보통 지중해(地中海)는 대륙으로 둘러싸인 대륙지중해(multicontinental mediterranean sea)와 국가들로 둘러싸인 다국간지중해(multinational mediterranean sea)로 대별된다.

지중해는 지중해의 해상(海上)과 그 연안 일원을 통칭하는데, 구체적인 공간적 범위로는 동은 시리아로부터 서는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까지, 북은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흑해로부터 남은 사하라 사막까지의 넓은 지역을 포괄한다

지중해 문명이란 한마디로 지중해 일원(연안과 해상)에서 다원적인 여러 문명들의 융합)에 의해 생성 발달된 복합적 해양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지중해 연안 일원에서는 수다한 문명이 출몰을 거듭하였으나 유럽계와 오리엔트계 2대 문명으로 대별할 수 있고 지중해문명은 이 두 계열 문명의 융합에 의한 아말감(amalgam, 물금)식 복합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실체로서의 지중해 문명은 다원적인 계열 문명의 융합에 의한 복합성이며, 그것이 바로 지중해문명의 정체성이다

지중해 문명의 복합성은 지중해가 단일 문명권이 아니라 복수 문명권에 속해 있음을 의미하며 5천년의 문명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비잔틴의 바다’→‘이슬람의 호수’→‘유럽의 바다’→‘터키의 바다’→‘유럽의 바다’→’유럽-이슬람의 바다‘로 그 주역이 역사에 따라 바뀌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문명의 주체는 오리엔트 문명→에게해 문명→그리스․로마문명→비잔틴문명→이슬람 문명→서구 기독교문명이 주도권을 형성해 왔다.

로마제국이 그리스와 라틴적 세계로 분할되고, 이후 이슬람이 비잔틴 제국과 이웃하여 그리스 문명을 번역, 소화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문명권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라틴적 로마 문명권의 후계자가 된 게르만의 유럽은 이슬람이 번역한 비잔틴의 그리스 문명을 다시 가져와 자신들의 르네상스에 활용하게 되는 것을 또한 보게 된다. 지중해는 지중해의 패권 내지 주도권을 누가 갖든 그야말로 문명의 요람으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고대 로마제국까지 유럽은 오늘날과 달리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남부유럽, 북아프리카, 중동을 포괄하는 지중해문명권이 있었고, 서유럽과 중부유럽은 흑해 동쪽, 이집트 남쪽, 어느 방향으로나 펼쳐져 있던 배후의 야만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고대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중세로 접어드는 단계에서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이 나타났고 중세의 두 문명은 고대 지중해문명의 공동상속자의 관계에 있었다.

이슬람세계는 강력한 역량으로 큰 세력을 형성하였고 기독교세계는 한쪽 모퉁이만 차지하고 있었을 뿐 문화-기술 수준에서 이슬람세계가 우월한 위치를 중세 내내 누렸다.

기독교세계는 이슬람세계의 압박 아래 서서히 자라나다가 르네상스기에 이르러 격차를 급속히 줄여 대항해 시대를 통해 더 넓은 세계로 활동을 넓히면서 이슬람세계의 압력을 벗어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무역의 통로, 종교와 문명의 전달 매개,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격렬한 전장이었던 지중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각 국가와 대륙의 문명을 변화시켜왔고 바다와 육지를 넘나들며 문명이 소통되었던 어느 지역에나 적용 가능한 모델로 만들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채롭고 역동적인 문명의 역사가 펼쳐졌던 지중해가 오늘날 세계인에게는 한번 가고 싶은 관광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중해는 이제 지나간 역사와 문화 유적지를 관람하는 방식이지 더는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는 현장은 아니라 과거를 관찰하는 박물관에서 그치고 있다.

문명의 힘(power)은 조화와 질서에 있으며 정치, 경제, 종교, 가치관 등 제반 사회현상은 그 자체가 문명의 구성요소들로서 수요와 이해에 따라 제각기 기능하지만, 전체적인 관계를 조화시키고 질서를 잡아주는 것은 문명이다.

지중해 세계는 이미 고대부터 바다와 그 주변의 내해지역 그리고 이를 벗어난 대륙 간 교류를 병행하고 있었으며 지중해 문명은 폐쇄성의 바다에서 탈피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세계사적인 의미의 문명 간 교류에 있어서도 ‘유라시아’(Eurasia)의 성립에 기여하였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고 황해와 동해 및 동중국해 등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와 문명 교류사와 비교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각은 세계화, 지구촌화 시대를 살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번영을 위해 우리의 고대사를 다시 쓰게 하고 동아시아 문명 교류의 현장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데 유용하다.

 

2. 지중해 연변의 역사

지중해 문명의 여명기는 고대 이집트로부터 페니키아시대까지의 약2000년간이다. 이집트는 고왕국 시대(B.C.2850~2200)부터 이미 레바논으로부터 목재를 수입해오는 등 지중해 연안과 교류를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크레타(Crete)섬의 미노아(Minoa)문명은 이집트문명의 영향을 받아 기원전 2800년 경에 개화하여 기원전 1600년 경까지 번영하였다. 한편, 에게해 일원에서는 크레타문명과 미케네(Mycenae)문명 등을 망라한 이른바 에게문명(Aegean Civilization)이 발생하여 고대 동지중해 문명의 주류를 이루었다.

크레타문명은 햄(Ham)어계에 속한 이집트문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데 반해, 유럽계의 미케네문명은 셈어계의 크레타문명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어 번영하였다.

에게문명을 계승하여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에서 해상민족으로 등장한 페니키아(Phoenicia)인들은 기원전 12세기부터 9세기까지 기간에 티루스(Tyrus), 시돈(Sidon) 등 연해 상업도시들을 거점으로 활발한 해상식민활동을 벌렸다

그 영역은 북아프리카와 남스페인으로까지 확대하였고 그들이 오리엔트 문자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알파벳이 그리스에 전해져 유럽 알파벳의 조상이 되었다. 오리엔트문명과 그리스문명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례이다.

이와 같이 지중해문명은 이집트문명→에게문명→페니키아문명으로 이어지는 2,000여년 동안의 여명기로부터 애당초 뿌리를 달리하는 여러 문명의 융합에 의한 다원적인 복합 문명체로 출발하였다. 이 시기의 특징은 햄어계(이집트)와 셈어계(메소포타미아와 페니키아), 그리고 인도․유럽어계(에게해)의 3대 문명이 조우하여 최초의 지중해문명을 창출하였으며, 그 활동중심지는 동지중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중해문명의 형성기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이슬람제국의 붕괴시기까지의 약 2100년간이다. 이 시기에는 지중해의 북서 연안에서 인도․유럽어계의 그리스․로마문명이 정착하고, 이어 동남 연안에서 함․셈어계의 이슬람문명이 자리를 굳힘으로써 오늘로 이어지는 2원적 지중해문명이 형성되었다.

그 과정을 통관하면 다원성과 상관성에 기인된 지중해문명만의 정체성과 일체성은 시종 그 저변을 관류하고 있었지만, 문명주역들의 엇바뀜에 따라 그 내용이나 표현형태는 복잡다단하였다.

기원전 1200년 경 도리아족(Dorians)의 남하로 인해 미케네 문명은 파괴되고 그리스는 약 300년간(B.C.1100~800)의 암흑기(Dark Age)를 맞은 후 기원전 900년 경에 이르러 도시국가(city-state)격인 폴리스(polis)가 도처에 출현하면서 그리스문명은 비로소 탄생의 고고지성을 울린다.

이렇게 탄생한 그리스문명은 그리스의 식민활동과 더불어 소아시아와 에게해를 비롯한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한편, 기원전 814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e)에 식민지를 건설한 페니키아의 식민활동이 활발해지자 지중해는 사실상 그리스와 페니키아에 의해 동․서의 두 세력권으로 양분되었다. 그리하여 유럽계의 그리스문명과 셈계의 페니키아문명은 해양문명으로 서로가 경합하고 교류하는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초기에는 알파벳을 그리스에 전할 정도로 페니키아가 문명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우세하였으나, 후원자인 페르시아가 살라미스(Salamis) 해전을 비롯한 일련의 전투(B.C.548~448 기간)에서 그리스에게 패하자, 그 여파로 페니키아는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결국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로스의 티루스 공략으로 동페니키아는 자취를 감추고 그리스세계의 확대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로스 대왕(B.C.334~324 재위)의 10년간 동정(東征)을 계기로 계속되었으나 그의 죽음 이후 약 300년간의 헬레니즘시대(B.C.334~30)가 열렸다.

헬레니즘문화는 동․서방의 이질문명이 직접 만나 형성된 새로운 융합문화로 헬레니즘시대의 주역은 이집트의 프톨레미(Ptolemy) 왕국과 지중해 동부 아시아 지역의 셀레우코스(Seleukos) 왕국은 모두가 그리스의 고전문명과 페르시아나 이집트의 오리엔트문명을 융합시켜 특유의 정치 및 경제제도를 운영하였다.

동지중해 일원에서 헬레니즘시대가 전개되고 있을 때,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로마인들은 기원전 272년에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세력을 서지중해로 향해 확장해 나갔다.

로마의 서진(西進)은 여전히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와의 격돌을 불가피하게 하게 되어 3차례의 포에니 전쟁(Punic War, B.C.264~146)이 일어난다.

결국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지중해 일원에 산재한 헬레니즘 제국을 차례로 속령화(屬領化) 함으로써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하여 3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로마인들이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호언한 로마시대는 약 500년간(B.C.146~A.D.476) 지속되었다.

로마제국 지배의 지중해문명은 그리스문명과 라틴문명, 오리엔트문명, 기독교문명 등 다종다양한 문명 요소들을 통합한 복합체적 문명이었고 서로마제국의 쇠퇴기인 5세기 전반에 동고트족(Goths)과 서고트족, 발달족(Vandals)들이 서지중해 주변을 공략하고 일시 영유하였으나 그리스의 고전문명을 계승한 비잔틴이 6세기 중반에 지중해 연안의 옛 로마 영토를 회복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지중해는 ‘비잔틴의 바다’가 되었다..

이어 그리스․로마의 고전문명과 함께 기독교까지를 포함한 지중해문명의 자양분을 토대로 하는 이슬람 문명은 칼리프 시대부터 지중해에 진출을 시도하여 아랍제국을 수립하여 동은 시리아에서 서는 북아프리카까지 지중해 동남부 일대를 정복하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지중해 서단인 안달루스(al-Andalus, 현 스페인) 지역에 약 800년간(756~1492)이나 이슬람 왕조가 군림하였다.

이제 지중해는 ‘아랍의 바다’(또는 ‘이슬람의 호수’)로 변하여 아랍․무슬림들은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을 통채로 번역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이슬람문명을 꽃피웠다.

이슬람 문명은 그 자체가 그리스․로마문명과 페르시아문명, 고대 오리엔트문명 등 주변의 여러 문명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생성된 복합문명이다.

연안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제국은 끈질긴 이슬람의 공격에 대응하면서 동지중해에서 전통 그리스문명을 지켜나갔으며 7차에 걸친 십자군원정(1096~1270)으로 이슬람문명과 지중해 연안의 서구문명간에 진행된 광범위한 접촉은 내륙 서구문명의 지중해 진출을 촉발하여 중세말엽에 이르러서는 지중해가 ‘유럽의 바다’로 다시 변신하게 된다.

지중해문명의 형성기가 지니고 있는 문명사적 특징을 간추려 보면, 유럽의 고전문명과 이슬람 문명이란 2대 문명체계가 완성되어 서로 만나고 교류함으로써 지중해문명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발전한 고대문명을 계승하고 거기에 라틴적인 요소들을 가미하여 지중해를 비롯한 유럽의 고전문화를 완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방의 기독교를 수용하여 유럽문명의 정신적 근간을 마련하였다.

무슬림들은 그리스․로마문명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문명들을 적극 수용하여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정연한 이슬람문명 체계를 세우고 찬란한 선진문명을 가꾸었으나 몽골의 제3차 서정(1253~60)으로 압바스조 이슬람제국이 멸망(1258)한다.

이후 이슬람 터키가 등장하여 십자군 원정을 격퇴하고1299년 오스만 터키는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여 비잔틴 제국을 정복하고 동으로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발칸 반도와 시리아, 남은 이집트로부터 북아프리카의 알제리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지중해는 ‘터키의 바다’로 되었다.

이 시기 지중해문명의 전환점은 14~16세기사이에 근대의 서막을 알리는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가 도래한 점이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서구인들이 그리스․로마의 고전문화를 수용하여 발전시킨 이슬람문명으로부터 자신들의 전통문화인이 고전문화의 요소들을 적출하여 부흥시킨 르네상스는 고전고대문예 (古典古代文藝)의 부흥을 바탕으로 새로운 근대문화를 창조하려는 문예부흥 운동으로 지중해 문명의 근대화에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1498년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인도항로를 개척한 것이 신호가 되어 대항해시대의 도래로 지중해 세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서구문명의 중심이 점차 지중해로부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해양국들이 자리한 대서양 연안으로 옮겨갔고 서구는 르네상스를 계기로 ‘과학혁명’, ‘산업혁명’을 성공시켜 자본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고 이슬람 세계의 식민지화로 지중해는 또다시 ‘유럽의 바다’로 변신하게 된다.

근세 들어 산업혁명에서 촉발된 근대화에서 승기를 잡은 서구는 이슬람세계와 아프리카 및 아시아 세계에 대하여 일방주의적인 굴종과 양보만을 강요하여 근대사회 형성기 독자적 문명을 영위하던 수많은 지역을 침탈함으로써 문명간 공존의 파괴와 갈등이 조성되었고 문명 충돌(clash of civilizations)로 비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3. 지중해 문명의 교훈

–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모순, 민족주의

지중해의 다문화 문명은 내해에서의 관계와 교류 이외에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그리고 중국의 대문명권 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서도 문명의 세계화를 이룩하였다. 이처럼 지중해는 지리적으로는 유럽의 바다였다.

문화적으로는 유라시아-아프리카의 바다이었고, 지역문명 간 분쟁과 관용의 이야기들은 도시의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유대교의 성서들은 기독교인, 아랍-무슬림 그리고 유대인 모두가 다문화의 형제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현대의 다문화 사회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지중해 세계의 다문화 전통에서 그 교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중해를 유럽의 내해(European sea)가 아니라 유라시아-아프리카의 바다(The Sea of Eurasia-Africa)로 인식하여야 하며, 다문화 전통은 시공(時空)을 공유하는 이질적인 문화요인들의 단순한 공존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어울려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문화자원이다.

한반도에도 사실 지중해가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황해, 남해, 동중국해)과 일본(동해)이 서로 이어지고 있는 바다의 문명사가 바로 동아시아 지중해인 아중해(亞中海, AJoongHae)의 역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중해 문명사는 흔쾌히 정립되고 있지 못하다.

국가이기주의에 연원한 동아시아 각국의 편협한 자민족 중심의 역사해석이나 역사공정, 신화와 역사는 엄연히 구분하여야 함에도 신화를 역사로 편입하고 편찬하는 ‘만들어지는 민족주의’는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모순이다.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세계화 바람 속에서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국력이 부상하는 나라에는 자만심을 불어넣고 국력이 하락하는 나라는 불안과 초조감에 사로잡히게 하며 국가를 등에 업은 전통적 민족주의, 자원 민족주의, 사이버 민족주의, 기존 국가로부터 분리와 독립을 추진하는 하부 민족주의 등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

로마제국 이후 분열된 지역 통합과 2000여 년의 지역갈등과 처절한 전쟁으로 형성된 민족주의를 극복해 보려는 유럽에서조차 국가로부터 탈퇴하려는 하부 민족주의가 발현되어 스코틀랜드와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독립 민족주의가 분출하고 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가 평평하다”며 세계화를 예찬했으나 보호막이 없는 평평한 세계는 강풍과 폭우로부터 피하기 어려운 존재적 불안의 세상이다. 민족주의 담론은 확고한 세계관과 역사관을 심어주고 탄탄한 심리적 뿌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와 취약한 현재로부터 도피하기 좋은 안식처다.

– 세계화 바람 속 민족주의 기승 … 늘어가는 지구촌 화약고

세계화 시대에 정체성의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민족 정체성은 개인의 존재를 지켜주는 마음의 기둥이기 때문에 세계가 하나 되는 시대에 더더욱 필요하다.

그러나 민족 정체성과 민족주의는 구분되어야 하고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나 평화, 인권이나 과학 등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에서 벗어나면 심각하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정치세력이 취약한 지지기반을 극복하기 위해 민족간 증오를 자극하고 충돌을 유발하는 불순하고 오도된 정치적 목적의 국수적 민족주의는 인류에게 커다란 불행과 비극의 씨앗이 된다.

Post Author: beseto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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